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24화 (22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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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스킬

"안 해."

"네!?"

내 갑작스러운 말에 정현이는 물론이고 지원이랑 지아마저 놀란다.

"잘 들어. 니들 맘대로 오해하고 그러면 정말 짜증 낼 테니까. 먼저 정현이. 너는 분명히 매력 있어. 그리고 나는 너와 섹스하고 싶기도 해. 지금 당장 니 옷을 벗기고 니 가슴을 빨며 내 물건을 니 몸속에 넣고 흔들고 싶어."

적나라한 나의 말에 정현이는 조금 민망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지금은 안 하겠어. 나는 너희를 그렇게 막 대하고 싶진 않아. 너희는 이 펜스에 오래 있어야 하고 앞으로 나와 계속해서 볼 사이야. 그런 식의 관계는 내가 싫어. 너도 마찬가지야. 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이 다 한다고 너도 휩쓸리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봐. 방금 말했듯 너희와 나는 두고두고 볼 사이야. 얼마든지 언제든지 원할 때 할 수 있어. 그러니 가서 조금 더 생각해. 다음에 나를 볼 때까지 생각해서 말해. 그때도 그런 마음이 여전하다면, 그때는 내가 지금껏 다른 남자에게 느끼지 못했던 쾌락을 줄게."

속사포처럼 내뱉은 나의 말에 정현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 그런데…."

"말해."

"저도…. 남자 경험이…. 없는데…."

뭐지. 스물넷이라고 안 그랬나? 이렇게 이쁘장한 애가 스물넷이 됐는데도 경험이 없다고?

"그래.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네.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입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

민감한 사항이잖아. 괜히 이런 거로 말실수하면 다시는 얼굴 보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정현이는 뭔가 복받치는 듯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네가 소중하게 여겼던 순결을 나에게 허락한 거. 기쁘게 생각할게. 너는 지금 거절당한 게 아냐. 네가 그렇게 지켜온 거라면, 이런 식으로 휩쓸려서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곰곰이 생각해봐. 그리고 말해줘. 다음에 나를 봤을 때도 내가 그럴 자격이 있어 보인다면, 나는 얼마든지 기쁘게 너를 안아주겠어."

힘들다. 힘들어. 상처받지 않게 말하는 것도 힘들다.

단지 얘들이 이러는 게 짜증이 났을 뿐인데. 그걸 이렇게 포장하려니 힘들다.

다행인 것은 정현이는 내 말에 넘어간 듯하다는 것.

오히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여기는지 나를 보는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하아…. 힘들다. 정말로.

"그리고 지원이랑 지아도. 뭔가를 기대했겠지만,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야겠다.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너희가 정현이를 배려해 준 것 나는 잘한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오늘은 돌아가. 아까 말했듯 오늘만 날인 건 아니잖아."

지원이와 지아도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정현이를 밀어냈는데 자기들과 할 수는 없다는걸 알 테니까.

그렇게 세 여자가 나갔고,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하아…. 돌아버리겠네. 대체 저 여자들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물론, 짐작이 가는 건 있다. 어쨌든 나는 스킬이 많은 능력자니까.

세상이 망하기 전에 돈과 외모 같은 게 우선 됐다면, 지금은 스킬과 생존 능력이 우선 되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나에게 매달릴 정도는 아닌거 같은데…. 내가 외모가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윤서나 송이가 바람을 넣은 걸까? 섹스를 잘한다고?

그건 맞다. 내가 다른 남자들이 섹스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연거푸 세 번을 해도 물건이 죽지 않는 건 보통은 아니잖아.

아마…. 그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근데 정말 왜 그렇지?

진짜 회복 포션 탓일까?

물론 회복 포션의 영향이 맞긴 할 거 같다. 스킬 숙련도를 올리지 않는 날에도 회복 포션은 꾸준하게 먹으니까.

강박적인 탐지 때문이긴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닌거 같은 생각이 든다.

뭐가 있을까? 회복 포션을 먹기 시작한 건 오래전부터란 말이지. 근데 갑자기 최근 들어서 몸 상태가 좋아졌단 말야.

최근들이어서 바뀐 것. 뭐가 있지?

스킬이 많아진 것? 그건 아닐 거고.

아니면…. 잠깐. 그래…. 있다. 내 몸에 영향을 미친 것들.

미나의 질병 해제. 그게 있었어.

질병 해제는 딱히 병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숙련도가 오른다고 했잖아.

그럼 그때 내 몸에 있던 질병이 뭔진 몰라도 낫게 된 거야.

남자의 발기에 영향을 주는 건…. 혈액 순환.

혈액 순환에 영향을 미치던 질병들이 나아서 피가 미친 듯이 잘 돈다면? 그건 발기랑 상관있지 않을까?

으음…. 원장 새끼를 죽이지 말아볼걸. 나름 의학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확인해 볼 수 있을 텐데.

그래도 그 커넥션인지 나발인지가 있으니 앞으로 의사 만날 일은 많겠지? 다음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지.

아직 열시도 안된 시간.

지원이와 지아, 정현이를 보낸 게 약간 후회된다.

크으…. 멍청해. 멍청해. 인제 와서 후회하면 뭘 하나. 에휴. 그냥 스킬 숙련이나 쌓아야겠다.

수중에 있는 코인은 150만 정도.

캠프를 털고 투명화를 배우면서 코인을 박박 긁어 썼는데 컴퍼니랑 동산을 털면서 얻은 코인이 많았다.

짜릿한 수치야. 150만이라니.

역시 스킬 여러개인 놈들은 코인을 많이 들고 있어서 좋다니까.

내일이 올해의 마지막 날인가? 으음…. 시간 참 빨리 지나가네.

그럼 천호동 갈 때까지 아직 시간이 꽤 있으니 스킬 하나를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코인도 많고 시간도 넉넉하니 어서 올려보자.

어차피 오늘은 여기서 잘 거 아니잖아. 밤새도록 포션 먹으면서 스킬이나 올려야지.

그렇게 침대에 자리를 잡고 투명화를 쓰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물리 엔진이 고장 났다고 생각이 들 모습이겠지?

계속해서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니까?

해제되는 스킬은 이래서 편하다. 정말 미칠듯한 속도로 스킬을 올릴 수가 있어.

대략 15초에 스무 번.

투명화를 쓰고 해제를 반복하는데 걸리는 시간.

회복 포션을 마시는 시간까지 30초. 즉 1분이면 숙련도 40번을 채울 수 있다.

지금 투명화 숙련이 중급 50퍼. 남은 건 5,500번. 포션 137개만 먹으면 스킬을 올릴 수가 있다는 소린데.

1분에 2개씩 먹으니 2시간 이내로 가능하단 소리다. 물론…. 먹을 수 있다면.

한 40개 먹으면 뒤질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 그래도 해본다. 어차피 시간은 많아. 내일 아침까지 여유도 있잖아.

그렇게 숙련 올리는 것을 시작했다. 어지럽든 말든 회복 포션을 꾹꾹 입에 쳐넣어 가면서.

똑똑

노크 소리에 퀭한 눈을 떠서 시계를 바라본다.

아침 8시. 누가 이런 시간에 나를 부를까? 부장이겠지? 부장일 거야. 부장 말고 나를 깨울 사람이 없어.

"성철씨?"

내가 대답이 없자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를 내서 대답하려 했지만, 목이 꽉 잠긴 듯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밤사이에 스킬을 고급 64퍼 까지는 올렸지만, 도저히 더는 못 할 것 같아 이렇게 반 시체처럼 누워있다.

우욱…. 포션이 액체긴 하지만 몸 안에 들어가서 사라지는 게 다행이야.

물처럼 위장에 남아있었다면…. 지금쯤 배가 남산만 해졌겠지.

"들어가겠습니다!"

약간 다급한 듯한 목소리로 외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부장.

그리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으…."

"괜찮습니까? 공격이라도 당한 거예요!?"

나는 겨우 팔을 들어 아니라는 뜻으로 휘휘 저었다.

나를 보고 당황해하는 부장.

하긴, 어제 멀쩡히 들어간 인간이 아침에 보니 처박아놓은 세탁물처럼 찌그러져 있으면 당연히 놀랄만하겠지.

"괜찮…."

"무슨 일이에요? 왜 그런 거예요?"

"괜찮아요…. 좀 쉬면 나아요…."

힘겹게 말을 하자 부장은 여전히 나를 보고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이럴 때 공격당하면 바로 끔살 당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억지로 괜찮은 척을 해야 하니 힘드네. 그래도 몸은 쌩쌩하니까…. 괜찮은 거 맞지.

"숙취…. 같은 거예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숙취요? 아니…. 어제 술도 안 마셨잖습니까?"

"이따…. 설명해드릴게요. 일단은…. 지금은 조금 더 누워있을게요."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것은 아니죠?"

"네…. 하아. 좀 누울게요."

"네. 혹시 필요한 거 있습니까?"

"없어요…. 아니다. 시원한 물이 필요해요."

"알았어요. 좀 누워있어요."

부장이 나가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마지막 포션을 먹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직 천장이 빙빙 도는 느낌.

너무 과했어. 마지막 포션 먹기 전 다섯 개 정도는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욕심부리고 처먹었더니 이 꼴이네. 어휴. 등신.

얼마 뒤에 부장이 물병과 컵을 가져왔고, 나에게 물을 따라 줬다.

그대로 목구멍에 부어버리자 그제야 조금 정신이 나는 것 같다.

마치 메마른 땅바닥에 비가 온 느낌이야. 물이 몸에 스며드는 게 느껴질 정도.

상태가 상당히 좋아졌기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니 더 누워있지 왜…."

나는 일어나서 부장에게 회복 포션과 스킬 숙련에 대해 찬찬히 설명해줬다.

그런 나를 질색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부장.

"그렇게 강해지려면 그런 짓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죽는 것보단 낫죠…. 후우…. 물 한 잔만 더 주실래요?"

부장에게 물을 더 받아서 마시니 확실히 상태가 더 좋아진다. 어지러운 것은 남아있지만, 아까처럼 뒤질 것 같은 느낌은 아니네.

"지금이…. 여덟 시죠. 정오까지만 더 쉴게요. 혹시 누가 물어보면 안에서 이사장이 남긴 것들 살펴본다고 해주세요."

"그래요. 걱정하게 하는 것보단 그게 낫겠네요. 그럼 쉬세요."

"네. 고마워요."

"아.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뭐 목에 넘길 수는 있어요?"

"식사…. 아…. 원래 아침은 안 먹는데…. 여사님 음식이면 또 한 끼 안 먹는 게 아쉽고…."

"그럼 여기로 가져다줄게요."

"아니요…. 그럴 것까진 없어요. 이따가 내려가서 두 배로 먹죠."

"으음…. 그래요. 그럼 쉬세요. 나가볼게요."

"네. 누워서 이렇게 말하는 거…. 죄송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쉬기나 하세요. 대신 이따 나올 땐 멀쩡하게 나오세요. 원래 그런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부장이 나갔고, 나는 한결 나아진 상태로 천장을 바라봤다.

참…. 신기한 사람이야. 이제 본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 같잖아.

그렇게 정오까지 물을 계속 마시며 우두커니 누워있다 보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다음부턴 욕심내지 말고 이렇게 멍청한 짓 하지 말아야지.

정오에 다시 찾아온 부장과 내려가서 점심을 먹었다.

몸이 이 꼬라지인데도 밥은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크…. 솔직히 여기 밥은 정말 겁나 맛있어.

"식량은 2주 치만 먼저 챙겼어요. 5인분 2주 치."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부장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래야 적어도 2주 안에 다시 오겠죠."

피식하고 웃으며 다시 밥을 먹자 부장은 나를 뿌듯하게 바라본다.

아들…. 까진 아니고 조카를 바라보는 눈빛? 왠지 정감 있는 모습이네.

"근데. 저거 어떻게 가져갈 생각입니까?"

"이사장 녀석 차 없었어요?"

"아. 있긴 있죠. 꼴에 세대나 있습니다."

"세대나? 뭐가 그리 많데요?"

"돈 많은 놈의 허영이랄까요?"

"흐음…. 사이비 교단이 제법 잘됐었나 봐요?"

"죽었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사장 그놈이 교주였을 때는 솔직히 대단했습니다. 옆에서 봐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죠."

"하긴…. 그 정도는 돼야 사이비 교주도 하겠죠."

"아. 그리고 그 원장 녀석이 타고 온 차도 있어요."

"아. 그러네요. 혹시 전기차는 없어요?"

"전기차요?"

"네. 기름 차는 귀찮아서. 시끄럽기도 하고."

"전기차는…. 여기 법인명으로 되어있는 차가 있긴 해요."

"그럼 나머지 차 다 가지고 그거 나 줘요."

"이사장 차가 뭔진 알고 그래요?"

"뭔데요? 뭐 외제 차나 비싼 차 그런 거겠죠.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조용하고 충전하기 편한 차면 돼요."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그럼 차에다 식량 좀 실어주세요. 금방 갈 거니까."

"흐음…. 알겠어요. 근데 전기차 충전할 곳은 있어요?"

"그거 콘센트로 꼽는 선 같은 거 있지 않아요?"

"아아. 있어요. 그럼 그것도 챙겨줄게요."

"네. 그렇게 부탁 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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