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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자! 네가 숨기고 있는 걸 말해!"
조인트를 깠다. 입이 틀어막힌 채 비명을 지르는 이사장.
"뭐라고!? 말하기 싫다고!? 독한 녀석! 이래도!"
또 깠다. 맞은 데 또 맞으면 존나 아픈데….
역시 비명을 지르는 이사장. 이 녀석이 이런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없겠지. 망하기 전에도 교주네 어쩌네 하면서 산 새낀데.
"이야. 역시 입이 무겁구나!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대체 뭐 하는 겁니까?"
조인트를 까는 나를 보면서 부장이 한심하다는 투로 바라본다.
"뭐긴 뭐야. 심문하는 중이지."
"입에 테이프 칠을 하고요?"
"에이…. 재미없게. 그냥 때리고 싶었어."
나는 한 번 더 이사장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쳇. 부장 이 녀석 유머 감각은 없네.
아니…. 내 유머 감각이 구린 건가?
나는 매혹 스킬이 있는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벌컥 열었다.
안에서 울고 있었는지 여자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뭐야. 울었어?"
"아니에요…. 무슨 일이세요?"
90점 여자가 눈물을 빠르게 훔치고 내게 물어본다. 왠지 이 여자가 이들의 대표 같은 느낌인데?
"이사장에게 매혹을 걸어줄 사람이 하나 필요해서."
"그거라면 제가 할게요."
냉큼 대답하는 여자. 다른 여자들은 그런 90점 여자의 말에 아무런 이의가 없는 것 같다.
음…. 이쁜만큼 당한 게 많은 건가?
"너. 이름이 뭐지?"
언제까지 90점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채원이요. 강채원."
"흠. 나이는?"
"스물다섯요."
"그래. 채원아.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
그러면서 나는 슬쩍 채원에게 매혹을 걸었다.
이 여자가 지금 상황에서 딴짓 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는 게 낫다.
괜히 의심하느니 몰래 매혹 거는 게 속 편하지.
이사장 앞으로 온 나와 채원. 그녀는 이사장을 보더니 증오로 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으음…. 당한게 많은가 봐. 하긴, 매혹에 걸린 여자들이 어떤 짓을 당했을지는…. 뻔하다.
채원은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그대로 이사장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뾰족한 하이힐 코로 얼굴을 얻어맞은 이사장이 죽겠다는 듯 비명을 지른다.
"야. 니 발이 더 아프겠다. 나중에 충분히 복수할 시간은 줄 테니까 일단 얘 매혹 좀 걸래?"
"네. 알겠어요. 매혹."
이사장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뜯었다.
아프다고 아직도 앓는 소리를 내는 이사장.
"아오. 시끄러. 얘 좀 조용히 하라고 해."
"조용해."
아픈 건 여전한 거 같지만 입을 다무는 이사장. 편하긴 한데 한번 거쳐야 하는 게 귀찮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거짓 없이 아는 걸 모두 들을 수 있는데 이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럼 뭐부터 물어봐야 하나? 어차피 동산의 일은 전부 해결됐으니 딱히 궁금한 건 없다.
내가 궁금한 건 이놈이 가지고 있는 커넥션.
"오후 네 시에 온다는 놈. 그놈에 대해서 말해봐."
"아…. 최 원장에 대해서 말해."
얼래? 채원이가 더 잘 아나? 아…. 추잡한 짓거리라고 했지. 그럼 이해가 간다. 당사 지니까 잘 알겠지.
"최 원장은 대형 병원의 원장입니다. 매혹 스킬을 가지고 있고요. 서울 어딘가에 산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지금은 거처를 옮겼다고 했어요. 가본 적은 없습니다. 로얄클럽에 들어온 지는 얼마 안 됐고 저와는 매혹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친해졌으며…."
"잠깐. 잠깐…."
로얄클럽. 로얄클럽?
나는 배낭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이전 백마촌을 털면서 비즈니스 호텔 금고에서 얻은 서류.
안나를 가둬놨었던 그 새끼…. 그놈이 가지고 있던 서류. 그걸 안나와 유정이 아는 대로 적어서 줬었지.
거기에도 그런 단어가 있었다.
나는 종이를 꺼내 살펴봤다. 최 원장. 최 원장…. 병원 원장. 최경현. 이놈인가?
"그 원장 이름이 최경현이냐?"
"최경현 맞아?"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저도 매번 최 원장이라고만 불러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오케이…. 이거 나이스 하네. 이렇게 먹잇감이 하나 알아서 들어온다고?
이거 좋네. 잠깐 그럼 이 새끼도 리스트에 있나?
"이거 이사장 놈 이름이 뭐지?"
"박상동입니다."
채원이가 대답한다. 그래 이름 정도는 얘도 알겠지.
리스트에서 박상동을 찾아본다…. 어디…. 없네?
"야. 너 백마촌이라고 아냐?"
"백마촌이라고 알아?"
"잠깐만, 이거 계속 일일이 네가 중계를 해줘야 하나? 내가 하는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라고 말해봐."
"이분의 질문에 솔직히 대답해."
"네."
"너 나이 몇 살이야?"
"마흔여덟입니다."
"맞아?"
"아…. 나이까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니가 얘 나이 좀 물어봐."
"나이가 몇이지?"
"마흔여덟입니다."
되는 건가? 논리상으로는 되는 거 같은데.
일단 그냥 해보자. 맞겠지.
"너 백마촌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대로 말해봐."
"거기에 기가 막힌 외국인 여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번 보고 싶었는데, 그년이 그렇게 이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최 사장이 로얄클럽에 오지 않더군요. 소문으로는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기가 막힌 외국인 여자는 안나를 말하는 거겠지?
퍽
약간 배알이 꼬여서 발로 녀석의 얼굴을 찼다.
갑자기 내가 이사장의 얼굴을 걷어차자 깜짝 놀라는 채원과 부장.
"근데 왜 안 갔지?"
"으윽…. 저는…. 함부로 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영역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요."
"지랄하네. 꼴에 또 몸은 드럽게 사렸나 보구나?"
내가 독기어린 말을 하자 채원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로얄 클럽인지 거기는 어떻게 나갔어?"
"거기는 제 천사들을 전부 데리고…."
천사라는 말이 나오자 이번엔 채원이가 얼굴을 걷어찼다.
"저희를 말하는 거예요."
"아. 그래? 한 대 더 차도 돼. 근데 발 괜찮은 거야? 이걸로 때릴래?"
내가 마체테를 내주자 그걸 받아들더니 물끄러미 바라보는 채원.
"아직 죽이진 말고."
짝!
내 말을 듣더니 얼굴을 향해 시원하게 풀스윙을 날린다.
캬…. 폼 죽이네. 칼날 면으로 저렇게 때리기 쉽지 않은데. 그걸 하네.
"크어억…. 아아악!"
"아. 시끄러. 입 다물고 아파해."
맞으면서 날에 얼굴이 베었는지 볼에서 피가 흐르는 이사장.
아프다는 소리도 못 내고 입을 꾹 막은 채 오만 인상을 다 쓴다.
"그럼 너도 거기 위치 알아?"
"네. 가봤어요."
마체테를 돌려주며 말하는 채원.
"어딘데?"
"여의도요. 여의도의 한정식집."
"지랄들을 하네. 아주. 매번 거기에서 하나?"
"네."
"언제 또 하는데?"
"반년마다 한 번씩 해요. 다음은…. 6월요."
"멀었네. 이번 달에 했어?"
"네. 이번 달 초에요."
"아아…. 그래? 아깝네. 암튼 6월이라고? 만약 이사장이 죽고 오늘 그 원장이라는 새끼도 죽으면…. 위험을 감지하고 모임을 그만두려나?"
"아마…. 그렇진 않을 거예요. 이사장이나 최 원장이나 거기 모임에선 거물이 아니었으니까요."
"이정도인데 거물이 아니야? 뭐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 오길래? 야. 상동아. 니가 말해봐라. 거기에서 거물이면 대체 어떤 놈들이냐?"
"그건…. 저도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로얄클럽에 들어갔다고 다가 아니라서요. 원래부터 있던 비밀스러운 모임이라 뒤늦게 들어간 저는 저랑 급이 다른 분들의 정확한 정보는 잘 모릅니다."
"하. 미쳤네.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분'이라고? 이 새끼도 제정신 아니네. 정말."
"제가 느끼기로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치인이나 재벌가들의 자녀들…. 돈뿐만 아니라 권력까지 있던 사람들…."
"하. 그렇지. 그런 새끼들이 세상이 이렇게 됐다고 싹 망하지는 않았겠지."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다.
아무리 스킬이 생겨나고 세상이 망했다고 원래 잘살던 놈들이 다 망했을까?
아닐 거다. 많은 이들이 습격을 당하든 무슨 짓을 당하든 했어도 진짜 상위 0.1퍼센트 같은 놈들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물론 돈이 제구실을 못 하면서 많은 급격한 변화가 있었겠지만, 진심으로 머리 좋은 놈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다들 자기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원래의 삶을 돌려놓았을 거다.
그들에겐 그저 잠깐의 해프닝이겠지.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원래의 영화를 누리는 놈들이 진짜 엘리트인 거고.
나이 먹은 이들은 변해가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 못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을 거다.
똑똑하고 힘도 있고 인프라가 충실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망한 세상.
나 같은 놈하곤 출발선이 달랐겠지. 이것저것 테스트해보기도 편했을 것이고.
"영 쓸모가 없네. 로얄클럽인지 나발인지는 됐고, 너. 캐슬 알지?"
"캐슬요. 알지요."
"아…."
"음…."
채원과 부장의 반응이 조금 묘하다. 아. 여기 있다가 나간 놈이라고 했으니 이들도 아는 사인가?
"말해봐. 아는 것 다."
"캐슬은…. 부 교주였던 박성채가 제 천사인…."
마체테가 없는 채원이 또 얼굴을 걷어찼다.
"야. 그 천사 소리 하지 마라. 너 맞는 거 즐기는 거니? 일부러 그러는 거 같아?"
씩씩거리는 채원이를 진정시키자 자기가 말한다고 하는 채원.
"후우. 박성채 그놈은 저를 강간하려다 실패하고 쫓겨났어요."
"아이고. 지랄도 풍년이네."
"끝이에요."
"엥? 뭐 더 없어?"
"어떤 게 궁금하신 거예요?"
"음…. 언제 나갔지?"
"3년…. 정도 전에요?"
"그놈 스킬은?"
"나갈 때 기준으로는 투명화요."
"흐음…. 매혹이 아냐?"
"네. 제가 알기로는요."
그럼 그 이후에 매혹을 찍었나? 뭐…. 상관없지. 뭘 얼마나 배웠던 지금 나를 막을 방법은 없다. 정말 나보다 스킬을 많이 배워서 내가 모르는 스킬을 쓰지 않는 이상은.
"이름이 성채라서 캐슬이야? 하. 정말 단순한 새끼네."
"아…. 그렇군요. 이제야 알았어요."
채원이가 피식하고 웃는다. 음. 역시 웃으니까 이쁘네? 웃으면 92점 정도로 하자. 이정도면 충분히 이쁘지.
물론 승희와 미나, 세아와 안나 전부 130점이다. 물론 100점 만점에.
"너네는 이놈한테 더 궁금한 거 없지?"
"네."
"저도 없습니다."
"부장은 궁금한 거 정말 없어? 뭐 숨겨둔 재산이나…. 아 재산이 필요가 없구나. 어차피 식량 말고는 의미가 없지."
"네. 어차피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고 있는 걸요. 이자가 실무에서 손 뗀 지는 꽤 됐습니다. 방해하면 했죠."
"그래. 그럼 이놈 치우자. 채원?"
"네?"
"이 남자. 직접 죽이고 싶나?"
내 질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채원.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한다.
"네. 하지만 다른 친구들도 그러고 싶을 거예요."
"알았어. 이놈 죽일 때는 꼭 참가시켜줄 테니 조금만 참아. 지금 죽여버리면 궁금한 게 생겼을 때 후회할 거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서 쉬어."
"네."
나를 보고 아련한 표정을 짓는 채원. 아. 매혹이 걸려있지? 멀어져가는 채원에게 무효화를 썼다.
매혹이 편리하긴 하지만…. 오래 볼 사이라면 자주 거는 것은 좋지 않지. 사람이 망가져 버리니까.
채원이가 나가고 나와 부장은 이사장의 입을 틀어막고 집무실에 안에 있는 화장실 욕조에 처박아놓았다.
"굶겨 죽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네?"
"아. 혼잣말이야. 근데 부장. 계속 부장이라고 불러도 되나?"
"뭐 상관없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이름이라도 알자."
"정선균입니다."
"몇 살?"
"서른여덟요."
"음…. 어린 내가 계속 반말해도 왜 기분 나빠하는 티가 안 나?"
"글쎄요. 약육강식 아닙니까? 나이 먹었다고 존대 받으려 하기엔 제가 너무 약하네요."
흐음. 왠지 멋진데? 남자가 이렇게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은 처음 봤다.
이렇게 말하니 전혀 약한 거 같지가 않잖아. 오히려 힘을 숨기고 있는 고인물 같은 느낌인데.
"좋아요. 부장님은 멋진 분이네요."
"얼래? 왜 갑자기 존대합니까?"
"존중이죠. 존중. 부장님은 약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충분히 리스팩 할 만하니까 하는 겁니다."
"하하. 세상이 망한 다음 들었던 소리 중에 가장 뿌듯한 소리네요."
시계를 보니 아직 열두 시. 세 시까진 아직 꽤 남은 시간.
그나저나 이 여자들은 왜 이리 안 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