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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다행히 지원이나 지아는 눈치를 못 챈 거 같다.
정말…. 한송이 이 여자. 터무니없는 짓을 해서 사람을 쫄리게 하냐.
그래도 짜릿하긴 했어. 스릴있는 섹스도 가끔은…. 어휴 씨발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다.
별다른 변화가 없는 맞이방. 캠프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건가? 인원을 충원하는 루트가 캠프만 있던 걸까?
"지원."
"네."
"동산에 인원 충원을 하는 곳이 캠프만 있나? 알고 있는 거 있어?"
"저는 없다고 들었어요."
"그래?"
"상주 인원이였기에 잘 모르는 것도 있어요."
"그래…. 그렇군."
맞이방 앞에 주차되어있는 버스들. 캠프에서 온 버스 두 대 말고 다른 버스 두 대가 그대로 있는 거 보면 아마 맞을 거 같다.
저 버스가 캠프로 가서 사람을 데려왔지. 아마 다른 곳이 있다면 거기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으음. 그럼 동산도 나름 문제가 생긴 걸 텐데? 인력 수급을 더 할 수 없다면 곤란해지는 거 아냐?
근데…. 왜 인력 수급이 필요한 거지?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을 거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인원을 수급한다?
설마 아직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더 있는 걸까? 아니면…. 주기적으로 인원 정리를 하는 걸까?
아마 후자가 맞지 싶은데.
어쨌든 이들은 동산 안에서 틀어박혀 있는 인간들.
인간 사냥을 나가는 기색은 없으니 코인을 수급하기 위해서는 안에서 사람을 잡아야 한다.
근데 생산 스킬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코인 얼마 안 될 텐데…. 그걸로 감당되나?
알 수 없는 노릇이네. 그럼 적어도 이 녀석들은 상당히 정체되어있다는 뜻이잖아?
생존에만 온통 몰빵을 하다 보니 발전이 더뎌지는 거다.
이건 나름 찌를 수 있는 빈틈이다.
스킬이 세 개 네 개씩 되는 놈들은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코인이 어마어마하게 드니까.
으음…. 내가 너무 쫄아있는 게 아닐까? 사실 이놈들은 생각보다 허접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탐지에 두 명의 기척이 잡혔다.
빙 둘러서 곧바로 화원으로 다가오는 두 사람. 아마도 윤서와 정현이겠지?
문이 열리고 두 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린듯한 모습.
"아휴. 힘들어라."
정현이가 한숨을 내쉬며 내 옆의 의자에 앉는다.
윤서 역시 힘든 내색은 하지 않지만 추운 곳에 있다가 따듯한 화원 안으로 들어오니 불이 빨갛게 상기되어있다.
"어때? 다닐 만하나?"
"유산소 운동으로는 딱이네요."
너스레를 떠는 정현. 여유가 있는 거 보니 생각보다 할 만한가 보다.
"윤서는?"
"크게 무리는 없었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펜스가 꼼꼼하네요."
"그치? 그럼 보고 온 거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볼까?"
"아. 그럼 우리 다녀와도 돼요?"
활기차게 말하는 지아.
나는 그런 지아를 한 번 보고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내가 다가오자 살짝 주춤하는 지아.
"지아야."
"네…?"
"너에게 가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어. 대신 조심해. 송이와 지원이는 크게 걱정 안 해. 뭐가 위험하고 뭐가 자신의 목숨을 잃게 하는 행동인지 뼈저리게 잘 알 테니까. 하지만 너는 아냐. 솔직히 말해서 너는 아직 불안해. 그러니 송이와 지원이의 말을 잘 따라. 네 행동이 너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의 목숨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마."
진지한 나의 말에 지아는 약간 주눅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하지 마세요. 옆에서 잘 돌볼게요."
지원이가 슬쩍 나서서 내게 말한다.
나는 그런 지원을 보고 역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게 더 문제야. 네 성격상 동생이 위험하면 너는 동생을 살리고 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말에 지아가 깜짝 놀란다. 뭐지?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나?
내가 봤을 때는 거의 백프로다. 지원이의 성격은 그래 보인다. 자신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더 위하는 타입.
그러니 이런 동생을 지금까지 돌봤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같이 가잖아요."
송이가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이 여자. 터치가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냐?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다른 이들이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다.
무서운 여자.
"그래. 어쨌든 다녀와. 조심만 하면 산길을 산책하는 정도밖에 안 되니까. 알겠지?"
"알았어요."
"네."
"명심할게요."
세 여자가 대답했고, 그녀들은 투명화를 쓴 뒤 화원을 나갔다.
다 큰 어른을 내보내는데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느낌이라니.
이 여자들이 이 정도인데 승희나 미나, 세아랑 안나를 내보낼 때는 어떤 느낌일까?
에휴. 이것 참…. 이것도 걱정이네.
"정말 신기한 사람이네요. 당신은."
윤서가 나를 보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뭐가?"
"당신이 캠프에서 사람을 죽일 때는 정말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데 저렇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무섭다고 생각했죠. 근데 또 저희와 이야기할 때는 전혀 다른 사람 같네요. 다정하고…. 배려심 있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진지한 윤서의 질문.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내가 변태 새끼,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니까."
"진짜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다고 말하지 않아요."
"자기가 그렇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 사람이면 더 무서운 거 아냐?"
내 말에 피식하고 웃는 윤서.
이쁘장한 얼굴이 웃으니까 더 이뻐 보인다.
그래. 역시 사람은 웃어야지. 웃어야 이쁘지.
"됐고, 앉아봐."
내가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윤서가 맞은편 대각선쯤에 앉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현이가 앉았다.
나와 윤서를 보면서 약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모습.
얘는 또 머릿속에서 무슨 망상을 하고 있길래 표정이 저래.
"투명화는 쓰자. 그래야 자세도 좀 편안하게 하고 그러지. 눈치 볼 필요 없잖아?"
그리고 내가 투명화를 쓰자 윤서랑 정현이도 투명화를 썼다.
"그래. 보고 오니 어때?"
"쉽지 않겠네요."
"그치?"
"근데 또 이상해요. 쉽진 않아 보이는데 그렇다고 엄청 까다로운 것도 아니잖아요?"
"맞아. 그것도 그렇지."
"전기 펜스. 전기가 정말 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위협적이긴 해요. 근데 그뿐이잖아요? 초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감시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뚫으려면 얼마든지 뚫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 정확하네."
"동산에 온 사람들은 거의다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 많아요. 저 전기 펜스는 외부의 침입을 막으려는 것보다는 실망한 사람들을 못 떠나게 막는 심리적 울타리 같은 느낌이에요."
"그건 또 새로운 관점이네. 계속해봐."
"제 주관일 뿐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 전기 펜스는 외부의 침입을 막는 용이 아니라고."
"동산을 관리 하는 녀석들은 안에 사는 이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
"네. 가두고 통제하는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못 들어오게 틀어막는 것도 아니죠. 그냥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런 느낌?"
"그럴듯하네."
"아마 안쪽의 상황을 보면 확실하겠죠? 안쪽 건물들의 경비가 삼엄하다면 제 말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전기 펜스는 그냥 데코레이션일 뿐인 거죠."
"관리자와 수뇌부만 지키면 생산 인원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네."
"으음…. 그럴듯해. 닭장에 여우 놈들을 한 마리도 못 들어오게 틀어막기보단 적당히 울타리를 쳐놓고, 만약 침입한 여우가 닭 한두 마리를 물어 죽어도 들어온 여우를 쏴죽인다는 건가? 닭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비유가 참…. 잔인하긴 한데 적절하네요."
"어차피 이 세계에서 인간은 딱 그 정도니까. 살아있으면 노동력, 죽으면 코인."
내 말에 윤서도 정현이도 아무 말을 못 한다.
사실 그녀들도 알고 있을 거다. 세상이 이렇게 되면서 스킬에 따라 명백하게 계급이 갈렸다는 것을.
그렇게 하위 계층이 된 인간들은 세상이 멀쩡했을 때 무슨 일을 했든지 아무 의미가 없다.
똑똑했던 변호사나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도 스킬이 쓰레기라면 한낱 노동력이 될 뿐이다.
이 세계는 법도 병원도 필요 없게 되었으니까.
물론 똑똑했던 놈들이라면 알아서 좋은 스킬을 골랐겠지.
"정현이는 어때?"
"네? 저요?"
내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는 정현. 그러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대체로 윤서 언니의 말은 맞는 거 같아요. 비슷하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의문이 조금 있어요."
"의문?"
"안에 있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적다고?"
"네. 적어요. 저는 그래도 캠프에 상당히 일찍 합류했고, 수많은 사람을 이곳 동산으로 보냈어요. 저랑 만났을 때 보셨죠? 버스 한 대에 거의 열 명씩 타고 있던 거?"
"그래. 그 정도는 되더라."
"그런 버스가 한주에 몇 대나 동산으로 들어갔을 거로 생각해요? 동산은 세상이 이 모양이 되기 전에도 존재하던 곳이에요. 이렇게 사람을 받아들인 지 4년이 넘었다는 소리죠. 그래서 저는 이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네요."
"아…."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요?"
나는 아까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인력 수급. 왜 인력 수급이 계속 필요한지에 대해서.
"아…. 그렇다면…."
"그래. 안에서 주기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 거야. 가만히 앉아서 정기적으로 코인을 벌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아귀가 맞네요…. 이럴 수가."
"아무리 생활 스킬이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스킬이 없더라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야. 벽돌이든 낫이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스킬뿐만이 아니지. 결국, 코인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거야. 그런 사람들을 쳐 죽이는 거지. 가만히 앉아서."
"그렇군요. 그래서 그렇게 사람을 계속 보내도 꽉 차는 게 아니었구나…."
"대충 알겠네. 저 녀석들은 저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
"소중하게 대하는 척은 하고 있겠죠. 대놓고 불만을 일으키게 할 수는 없으니까."
윤서의 대답. 그 말이 맞다. 정확한 표현이네.
"보호하고 있는 척하고 있다는 거지. 어차피 농사나 작물 재배, 동물들 키우는 거는 핵심 몇 명만 있으면 되니까?"
"그렇군요."
"일단…. 좋아. 역시 집단지성은 훌륭하네. 너희들이 똑똑해서 다행이야."
내 말에 괜히 뿌듯해하는 정현과 내색 안 하려 하지만 살짝 표가 나는 윤서.
참 희한한 여자들이야. 칭찬 받는 게 그리 좋은가.
"그럼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긴 하네. 일단은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좋은 방법이 있나요?"
"글쎄. 아직 확정은 아니니까. 정보를 더 모아야지. 우리끼리 뇌피셜로 확정하고 일을 진행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죠."
"일단 다들 돌아오면 한 번 더 이야기하자. 그때까진 좀 쉬어. 저기 평상도 있으니 누워있어도 돼. 어차피 모습도 안 보이는 데 편하게 있으라고."
"알겠어요."
"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일어나 구석으로 갔다.
김칫국을 마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까 송이처럼 안겨드는 여자가 또 있을 수 있으니까.
물론 스릴있고 좋긴 했지만…. 내 취향은 아냐.
일단 나는 벗은 몸을 보고 충분히 가슴을 만지는 게 좋다.
기왕 할 거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지 질질 끌려다니고 싶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