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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맞이방은 평범한 도로 옆에 있는 휴게소처럼 생겼다.
정말 누가 봐도 휴게소다. 넓은 주차장과 특색 없는 커다란 건물.
차를 세워놓고 화장실 한번 들렀다가 편의점은 아닌데 편의점인 척하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서 나와야 할 것 같은 건물.
하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달랐다.
일부러 떼어버린 간판 자국, 정면 말고는 전부 틀어막혀있는 입구.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기 힘든 개미지옥 같은 느낌이 든다.
왜 그런 느낌이 들까? 뭐 때문에 그렇지?
"저…."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
"누구? 정현인가?"
"네. 저기 저쪽 끝 보세요."
작고 빠르게 말하는 정현의 말.
"저쪽 끝이라고 하면 내가 몰라."
"아. 맞다. 안보이죠. 저기 왼쪽 끝에 세워져 있는 버스 두 대."
"아아."
캠프에 있던 버스와 같은 버스다. 그때 놓쳤다던 버스 두 대인가 보다.
캠프의 상황은 이미 전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럼 캠프를 친 놈들이 자신들의 동산까지 노릴 거라고 생각할까?
으음…. 나라면 경계 정도는 할 텐데. 그래도 설마 자기들을 치러 오겠냐는 생각을 하긴 하겠지. 규모가 다른데.
"멈춰 있어 봐."
그렇게 말하고 조금 다가가니 탐지 끝에 기척이 살짝 걸렸다.
바로 뒤로 빠졌다. 쟤들도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고 했으니까.
지금은 우리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없다. 기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승리의 공식이다.
괜히 우리를 노출해서 경계하게 하면 안 되지.
"빠지자."
일단 맞이방에서 물러났다.
정보를 모아야 해. 무작정 들이친다고 기습이 아니다.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빈틈을 노리는 게 기습이지.
휴게소 맞은편에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있고 화원이라는 간판이 보였기에 그쪽으로 모두를 데리고 이동했다.
화원 안에 들어가자 훈훈함이 느껴진다. 화원이라 그런가? 난방이 유지되고 있네.
내가 투명을 풀자 다들 따라서 투명을 푼다. 차가운 날씨 때문인지 다들 얼굴이 불그스름하다.
"자. 일단 여기서 모두 대기하고 있어."
"네? 대기요?"
윤서의 의아한 듯한 대답.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놀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정면 입구를 감시하라는 소리지. 들어오는 차량, 인원, 사소한 움직임. 전부 다 체크해. 항상 투명화는 유지하고. 앞으로는 너희도 밖에 계속 나다녀야 할 거야. 따듯한 곳에서 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나는 나갔다 올게."
"네."
여자들을 두고 투명을 쓴 뒤 밖으로 나왔다.
탐지가 없는 여자들을 함부로 접근시킬 수는 없다. 저놈들이 어디서 어떻게 보고 있을지 모르니까.
일단은 내가 내 눈으로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없어도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 있지.
그거 잠시 따듯한 곳에 있었다고 찬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아. 씨발. 그냥 적당한 핑계 대고 날씨 풀릴 때까지 기다릴까?
이 빌어먹을 추위는 생각할수록 짜증 나네. 손발이 얼어붙는 느낌이야. 에휴.
맞이방을 우회해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일단 파악하는 게 우선이잖아.
입구가 여기 밖에 없을까? 그렇진 않을 거다. 차가 들어가는 길도 있을 것이고 아무튼 뭔가 더 있을 거다.
원래 사이비 교단이라고 했으니 삐까번쩍한 입구가 있을 거다. 없을 리가 없어.
그럴듯한 건물과 입구가 있어야 속는 사람이 생기지.
크게 오른쪽으로 돌아 접근해봤다.
완만하게 올라가는 산길. 왜 또 산이야. 귀찮게.
그리고 내 눈앞에 펜스가 보였다. 물류센터 외곽에도 처져 있는 비슷한 모양의 펜스.
하지만 다른 점은 그 펜스 윗부분에 철조망이 잔뜩 쳐져 있다는 거다.
그리고 거기 붙어있는 감전 주의 팻말.
하…. 이게 그 전기 두른 펜스야? 진짜 전기가 통하고 있는 거 맞아?
전선 같은 게 있긴 있는데…. 상당히 어설퍼 보인다. 그렇다고 이걸 만져볼 수도 없고.
잔뜩 말라버린 덩굴들이 붙어있는 펜스와 철조망. 일단 지금은 확인이 안 되니 놔두자. 방법도 없고.
탐지를 유지한 채 펜스를 따라 걸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펜스. 이거 끝이 있긴 한 거야?
길을 벗어나 펜스는 본격적으로 산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떤 새끼가 이런 걸 설치했는지 몰라도 어지간히 고생했겠네. 이런 데다가도 펜스를 두르다니.
다행인 것은 군부대같이 보초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긴, 누가 이런 곳을 노리겠어. 지키고 있는 것은 인력 낭비지.
그렇게 졸지에 산을 타고 한참을 걸으니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경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오는 도로. 도로 옆을 따라 계속 걸으니 뭔가 그럴듯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여기구나.
갑자기 넓어지는 도로. 그리고 느껴지는 기척.
일단은 다시 기척 바깥으로 물러났다. 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저 앞쪽의 건물.
그쪽으로 크게 돌아 걸어가 보니 입구가 보였다. 아마도 여기가 동산의 원래 입구처럼 보인다.
에덴동산. 거참 이름만 들어봐도 사이비네.
입구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간판. 그리고 육중한 철문과 그 옆에 붙어있는 경비실 같은 곳.
문제는 탐지 범위 밖으로는 저 앞을 지나갈 수가 없다.
이거 곤란하네. 돌아가려면 오른쪽 산길 위로 한참 돌아야 할 것 같은데.
저 안에 있는 놈이 탐지가 있을까? 있다고 해도 지금 쓰고 있을까? 그렇진 않을 거다. 탐지는 종일 켜고 있을 수 없는 스킬이다.
아…. 이렇게 타협하긴 싫은데.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야 하나?
계속 갈등 된다. 에이씨.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거 고민했다고.
길을 벗어나 오른쪽 산길로 올라갔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보다 내 몸이 조금 피곤한 게 낫지.
투명화 쓴 놈이 입구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그것보다 수상한 게 어딨겠어.
그렇게 산길로 올라오니 입구 안쪽이 제법 보였다.
올라오길 잘했네. 여기서 좀 볼까?
쌍안경을 꺼내 입구 안쪽을 살펴봤다.
육중한 철문 안쪽으로 잘 닦여져 있는 아스팔트 길은 쭉 안쪽으로 이어져 있다.
체육관처럼 보이는 건물과 커다란 건물들. 이런 곳에 잘도 저런 것들을 지었구나.
하긴 저 정도 인프라가 있으니 이런 짓을 하는 거겠지.
기왕 올라온 김에 산길을 제법 더 올라갔다.
그러자 건물에 가려졌던 동산의 안쪽이 보였다.
쫙 깔린 비닐하우스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컨테이너들.
그리고 꼬물꼬물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그러니까…. 저 비닐하우스들이 1년 내내 돌아간다는 거지?
상당히 깔끔하게 구역화되어있는 비닐하우스들과 컨테이너들.
그리고 엄청 커다랗게 만들어진 비닐하우스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농기계까지 움직이고 있다.
와…. 진짜 본격적이네. 하긴 이 정도는 돼야 저 많은 인간을 먹여 살리겠지?
다른 곳들을 보기 위해 더 움직여봤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소 축사. 맙소사. 대체 몇 마리야? 엄청난데?
물류센터가 편의점이라면 여기는 대형마트쯤 되는 거 같다.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시설들.
아마 전기와 수도가 무제한이 아니었다면 유지가 안 됐을 시설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거 같다.
저 정도 밀집도라니…. 저거 사료 같은 건 감당이 되는 거야?
아마 여기도 성장 스킬이 있겠지? 생각해보면 소 같은 커다란 동물에 성장을 쓰는 게 이득이다.
중간에 성장 과정을 스킵한다면 기왕이면 큰 동물을 뻥튀기 시키는 게 좋은 거잖아? 게다가 소는 버릴 곳이 하나도 없다.
뼈 한 조각까지 끓여 먹잖아. 심지어 가죽까지 쓸 수 있다고.
왜 소 생각을 못 했지? 물류센터에서도 소를 키우라고 해야겠다. 소똥 냄새는…. 뭐 알아서 하라고 하고.
정말 쌍안경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다.
진짜…. 이런걸 만든 새끼는 난세의 간웅 정도는 되는 거 같아. 만든 것도 대단하고 유지하는 것도 대단하다.
한두 명의 인력으로 가능한 곳이 아닌데. 참나…. 이게 되네.
이걸 문제없이 아직 돌리고 있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능력자 중의 능력자야.
이건 스킬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잖아.
여길 성공적으로 장악해도 운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는데…. 실제로 보니 살짝 자신이 없어지려고 하네.
으음…. 일단 그건 장악하고 나서 생각하자.
사과를 따지도 않았는데 사과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 봐야 아무 의미 없지.
그렇게 한참을 더 살펴본 나는 다시 펜스를 따라 걸었다.
펜스는 결국 큰길까지 이어졌고, 큰길을 따라 걸으니 맞이방이 보였다.
생각보다…. 꽤 크다.
게다가 펜스가 빈 곳이 없다. 그리고 망가지거나 문제 생긴 부분도 없다.
결국, 계속해서 관리한다는 소린데…. 생각보다 까다롭네.
화원으로 돌아가자 기척에 다섯 여자가 잡힌다.
그 사이 별일은 없는 거 같은데…. 뭐 하고 있는지 잠시 지켜볼까?
아니 지켜보는 건 아니지. 다들 투명화를 쓰고 있어서 보이는 게 없으니.
한 바퀴 빙 돌아보니 화원의 뒷문이 있었다. 여기라면 안 들키고 들어갈 수 있겠네.
살그머니 들어가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탐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탐지가 없다면 여긴 그냥 비어있는 화원일 뿐이잖아. 여기에 나 포함해서 여섯이나 있다는 생각을 누가 하겠어.
"저기 언니."
"지아야. 조용히 있어."
"저기 언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바뀌는 지아.
어휴. 저 가시나는 정말 한번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려나.
"그 오빠. 괜찮은 사람 맞아?"
이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네. 갑자기 내 이야기라니?
"당사자 없을 때 뒷이야기 하는 거 아냐."
"그럼 있을 때 앞 이야기해? 그럴 수는 없잖아."
"만약 몰래 들어와 있어서 지금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떻게 할래?"
지원이의 말에 약간 뜨끔해졌다. 예리한 여자. 역시 쉽게 볼 여자는 아냐.
"후후. 그럴 줄 알고 내가 아까 옷에다가 테이프 쪼가리 붙여놨지. 만약 들어왔으면 테이프가 둥둥 떠다녔을걸?"
지아의 말에 나는 조용히 내 옷을 살폈다.
얼래. 정말 붙어있네. 저 가스나…. 말로 정신없게 군건 연막이야? 그런 건 아닌거 같은데…. 어쨌든 상당히 영악하네. 투명화 조건도 잘 알고 있고?
"그 사람이 있건 없건 뒷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흐응.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불만이 없는 건 아니네?"
"불만 없어. 자꾸 유도신문 하지 마."
"아. 왜에. 동생한테만 알려줘라. 뭐 어때? 그런 걸 알아야 나도 대응을 하지."
"너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잖니. 그만 칭얼거려."
"언니 혹시 그 오빠 좋아하니?"
"최지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하. 맞구나? 어쩐지…. 뒷담화를 안 하려고 하는 거 보고 딱 감을 잡았지."
"그런 거 아냐. 좀 조용히 하고 있어."
"아냐? 그래? 그럼 내가 좋아해도 되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코인도 막 아낌없이 가져가라 했다며. 나도 데리고 오라고 했고. 그리고 능력도 있다며? 게다가 젊고. 생긴 것도 그 정도면 괜찮고. 이 세상에서 그런 남자가 어디 흔해?"
"하아.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일하는 중이잖아."
"맞아. 자꾸 그런 이야기 하면 윤서가 슬퍼할 거야."
"거기서 왜 내 이야기가 나와요?"
송이와 윤서의 목소리.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윤서씨 그 사람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아냐?"
"아니 갑자기 그런 소리를…. 아니거든요? 괜히 오해하지 마요!"
"그래? 으음. 난 그 사람 맘에 드는데."
"으악. 송이 언니가 이미 점찍어 놓은 거예요?"
"글쎄. 그 정도는 아냐. 설마 나같이 나이 많은 여자를 좋아할까? 그냥 같이 즐기는 거지."
"어머…. 이게 어른의 대화인가? 갑자기 수위가 확 올라가잖아요!"
"뭐 어떠니. 이젠 임신도 안되는 세상인데.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는 거지."
"와아…. 송이 언니 화끈하다."
갑자기 이야기가 진창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어휴. 여기 있으면 안 되겠어. 그냥 다시 나가야겠다.
계속 있다간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거 같아.
"어…. 송이 언니랑 대장이랑 이미 그런 사이에요?? 이럴 수가. 한발 늦었다니."
정현이까지…. 어휴. 빨리 나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
이 여자들은 정상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