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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조금 쉬려고 했는데 계속 쓰게 되네요. 연참은 계속됩니다. ㅎㅎ
경영 악화
"고영준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대략 40대. 세상이 망하기 전까진 의사였던 남자죠."
"의사? 지금은 제일 쓸모없는 직업이네."
"그렇죠. 힐이랑 질병 해제만으로 인류가 극복하지 못했던 병들마저 다 낫게 해버렸으니까요. 그렇게 아팠던 사람들은 오히려 세상이 이렇게 된 걸 좋아하더라고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가긴 하지만."
"그래서?"
"개인 병원을 하고 있던 남자였어요. 전…. 그 남자한테 남자친구를 잃고 2년 정도를 노리개로 살았죠."
"2년? 최근까지가 아니라?"
"네."
"어떻게? 남자가 실수했나 보지? 어지간해선 한번 잡은 여자를 놓치는 경우는 별로 없을 텐데."
"후후…. 그 철두철미하고 교활한 놈이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죠. 팔렸어요. 다른 남자한테. 고작 통조림 30개로.
"하…."
"'네가 제법 괜찮은 여자긴 한데 30살 넘었으면 필요 없어.' 그놈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에요. 빌어먹을 새끼…."
"와. 그 새끼도 정상은 아니네. 그래서?"
"날 사간 놈은 고영준 그 새끼보단 멍청했어요. 내 스킬이 기절인데도 방심하다가 결국에는 저한테 죽었죠."
"흐음. 그건 잘됐네. 그리고?"
"복수하기 위해 반년 만에 병원에 돌아갔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더라고요."
"사라진 거 맞아? 죽은 건 아냐?"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죽으면 시체가 없어지니까 죽었는지 떠난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죠. 그런데 그놈의 차도 없어지고 소지품 몇몇 개도 없어져서 혹시나 하고 계속 찾아봤죠. 그리고 다시 반년쯤 뒤에 그놈을 봤다는 정보를 들었어요."
"죽은 건 아니라는 거야?"
"네."
"그래서 지금은 어디 있는 데?"
"그건 모르죠."
"그게 끝이야?"
"끝이니까 이러고 있죠."
"음…. 근데 이해가 안 가는데."
"뭐가요."
"네 스킬. 두번째 스킬은 반사로 한 건 이해가 가는데, 왜 세 번째를 수납으로 했지? 복수하려면 다른 스킬이 더 많았을 텐데."
"아뇨. 복수를 위해서도 제 스킬은 세 번째로 수납이 가장 어울려요."
"그래? 좀 더 전투에 맞는 스킬을 얻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에요."
상당히 단호하게 말하는 민희. 이렇게 단호하니 내가 할 말이 없다.
뭐…. 본인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그걸 내가 왈가왈부 할 건 아니니까.
"나중에 정보 들은 건 내용이 뭔데?"
"분당에서 매혹 쓰는 40대 남자가 있다는 거요. 인상착의가 비슷해요."
"그럼 확실한 건 아니네?"
"그렇긴 하죠."
"분당이라. 그 남자 원래 병원은 어딨었는데?"
"강남요."
"그럼 결국은 그 이후로는 정보를 얻은 게 없는 거야?"
"네."
"쉽지 않네? 살아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거잖아?"
"아뇨. 그 새끼는 살아있을 거예요. 쉽게 죽을 놈은 아니니까. 어찌 보면 당신 같은 남자라서."
"뭐야. 칭찬이야? 욕이야?"
"후후. 알아서 생각하세요."
이 여자가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다. 매혹을 걸고 들은 건 아니니까.
하지만 믿어주기로 했다. 적어도 분노를 표출할 때 민희의 모습은 연기나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마저 연기라고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하네. 영화계는 대단한 여배우 하나를 잃은 거지.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넌 분당으로 갈 거지?"
"그래야겠죠. 이제 얽혀있는 것도 없으니."
"그럼, 가서 정보를 얻어. 그리고 1월 8일에 천호역에서 만나자."
"천호역? 왜요?"
"넌 그 상태로 뭔가를 하기엔 너무 약해."
약간 발끈하는 표정을 짓지만 입을 열지는 못하는 민희.
당연하다. 그게 사실이니까.
당장 눈앞에 자신을 아주 쉽게 제압한 내가 있으니 그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거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정보만 얻어. 그리고 그날 천호역으로 와. 너는 복수를 하려면 좀 더 쓸만해 져야 해. 지금으론 역부족이야. 허점이 너무 많아."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신경을 써주죠? 난 아직도 그게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그 정도로 가치 있다고 생각은 안 드는데 말이죠."
"내 맘이야. 내 변덕에 이러쿵저러쿵 토 달지 마. 나도 내 마음 다 모르니까. 그냥 네 눈 밑의 점이 널 살렸다고 생각해."
"점? 이거요? 눈물점?"
"아. 매력점 아닌가? 눈물점이라 부르나?"
"눈물점이라고도 부르고 매력점이라고도 부르고…."
"뭐면 어때. 암튼 그게 널 살렸다고 생각하면 돼. 그거 아니었으면 이미 죽었겠지."
"나 참…. 살면서 의사 새끼가 가장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음. 이건 칭찬으로 들리네."
민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파 등받이에 걸쳐둔 자신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나를 보고 말한다.
"1월 8일 천호역? 시간은요?"
"글쎄. 정오로 할까?"
"천호역 어디로 가면 되죠? 거기 엄청 큰데?"
"아. 가봤어?"
"컴퍼니 신입 연수 때요."
"아…. 그놈의 컴퍼니. 그럼 너도 안에 들어가 봤겠구나? 거기 백화점이 있다는데 어딘지 알아?"
"백화점? 아. 거기?"
"그래. 백화점 1층에서 보자."
"내가 나오지 않으면요?"
"그럼 뭐…. 언젠간 다시 만났을 때 바로 죽이겠지."
"평생 도망 다녀야겠네."
"그래. 할 수 있으면."
피식 웃은 민희. 그러더니 자신의 인벤토리를 열어서 뭔가를 하나 꺼낸다.
"자요."
"이게 뭐야?"
"내가 가면 열어봐요. 당신이 날 살려줬으니 주는 선물이에요. 지금 당장은 필요 없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지고 다녀요."
"뭔데? 지금 열어보면 안 돼?"
"네. 제가 간 다음에 열어봐요. 탐지에서 없어질 때쯤? 1월 8일에 보자 그랬죠? 그럼 그때 봐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민희.
대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어?
탐지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아래로 내려가 점점 멀어지는 여자.
굳이 그녀의 말을 들을 필요 없이 지금 열면 되긴 하지만, 그냥 하라는 대로 한다.
폭탄이나 이런 건 아니겠지? 아. 화약은 없어졌지?
탐지에서 그녀가 사라지자 나는 그녀가 준 상자를 열어봤다.
이게 뭐야…. 방독면?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방독면이라니. 이게 뭐야?
독가스라도 설치해 놨나??
하지만 금방 의심을 지웠다. 아직은 필요 없다고 했고, 1월 8일 날 보자고도 했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번거롭게 죽일 이유가 없다. 죽였으면 아까 죽였겠지.
뭐가 됐든 상당히 아찔한 느낌이 들긴 했다. 아오….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네.
벙커로 돌아가는 길.
컴퍼니 일은 깔끔하게 해결됐지만 마지막 민희의 행동이 엄청나게 신경 쓰인다.
수납 스킬이 필요한 것과 방독면.
이 여자….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화학병기나 생물병기 같은 것.
화약이 전부 사라진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남은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면 화학병기나 생물병기 같은 게 맞긴 할 거다.
근데…. 그걸 만들 수 있어? 아니…. 만들 수야 있겠지. 원래 사람이 만든 거니까.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걸 쓰는 것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상상도 못 한 일이다. 화학병기라니 근데 민희는 그런 걸 어떻게 알지?
비록 한 학기밖에 가진 못했지만, 대학 화학과를 다니던 나인데도 전혀 감히 안 잡히는데.
다음에 만나면 확실히 물어봐야겠다. 이것 참…. 스킬이 아닌 거로 이렇게 등골이 오싹한 적은 처음이네.
근데 화학병기는 쓸 수 있는 건가? 화약을 막은 놈들이 그런걸 놔뒀을 리가 없는데.
모르겠네. 이렇게 전문적인 영역이 나오면 비전문가인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끄응. 이런 걸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학교 다닐 때 전공 교수가 살아있었으면 한번 물어보기라도 해볼 텐데. 으음…. 그 교수는 죽었겠지?
하아. 민희를 괜히 살려둔 건가? 굉장히 멍청한 짓을 한 거 같은데.
1월 8일 날 또 보자는 말만 믿고 놓아준 게 과연 잘한 짓일까?
민희가 알고 보니 컴퍼니의 이사였고 이대로 돌아가서 컴퍼니 놈들을 죄다 끌고 나를 죽이러 오는 것도 가능한 거잖아?
그렇게 별 희한한 망상을 하면서 가다가 문뜩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는 망상이 너무 심하다. 물론 이게 어떨 때는 도움이 되긴 하지만…. 지금은 너무 과하다.
됐다. 신경 쓰지 말자.
이런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나만 피곤해진다.
이렇게 망상을 한다면 승희가 모든 일의 흑막이고 세상을 이렇게 만든 초월적인 존재인 데다가 미나와 세아, 안나가 전부 연기자고 세상 사람들이 지금 나를 티비 생중계로 보고 있다는 망상도 가능하다.
어우. 생각하니 이것도 끔찍하네. 근데 그런 프로가 재미는 있나?
시청률 개똥일 것 같은데.
아무튼, 정도를 넘어선 망상은 좀 자제하자.
살려줬으면 살려준 대로 믿자. 캠프에도 네 명이나 살려줬잖아. 이런 식으로 망상 질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거야.
다른 생각을 하자. 기왕이면…. 코인 같은 거.
이번 컴퍼니 녀석들을 잡고 수확이 상당히 컸다.
일단 코인. 7명 죽이고 70만이라니 역시 달달하다.
스킬을 여러가지 가지고 있는 놈들일수록 코인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너무 좋다.
그 부장 놈이 네 번째 스킬을 가지기 전에 잡았으면 조금 더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네.
그리고 스킬. 페이즈 아웃.
말만 들어서는 개사기 스킬인데…. 일단 탐지의 씹 하드 카운터 라는 게 너무 맘에 든다.
나처럼 탐지를 써본 사람이라면 탐지의 사기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탐지의 단점이라면 유지비용이 비싸다는 것. 딱 그거 하나뿐인데.
그런 탐지의 하드 카운터라니. 말도 안 되는 능력이야. 쓰기에 따라서는 그 어떤 스킬보다 활용도가 높은 스킬.
지속시간이 궁금하긴 한데…. 막 5초 10초 이런 건 아닐 거다.
적어도 부장 놈이 탐지거리 밖에서 라운지까지 걸어온 시간은 분 단위가 넘었다.
짧지 않다는 소리.
게다가 벽도 넘을 수 있다고? 인식도 안 되는데? 그건 뭐, 최고의 도주기잖아.
광역 스킬 무효화에 풀리긴 했지만, 그건 단점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이 스킬 찍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게다가 그걸 아무 데나 랜덤으로 싸갈기는 놈도 없을 거고.
부장은 그냥 운이 드으으으으으럽게 나빴을 뿐이다. 왜 하필 그놈들 사이에 있어서….
아무튼, 탐나는 스킬이다. 당장 배우고 싶을 정도로.
게다가 가장 큰 수확.
정세희 그년의 행방.
하아…. 드디어 꼬리를 잡았네. 게다가 이렇게 의외의 곳에 있다니.
캐슬. 다음 목표는 캐슬이다.
의정부의 동산도 동산이지만 캐슬도 빨리 쓸어야겠어.
이것 참…. 할 일이 많아지네.
드디어 벙커가 보인다.
짧은 외출이었는데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거 같다.
일단 들어가서 쉬자. 쉬어야 이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지. 지금은 생각하는 것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