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00화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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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악화

아랫도리가 뻐근하다.

하아. 내가 미쳤지. 뭐에 씌웠던 게 분명해.

아까까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의 짐승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마지막 사정 때는 정액이 거의 투명할 정도였으니까…. 말 다 했지.

"야…. 일어나라. 슬슬 준비해라."

다섯 시. 아직 곤히 쓰러져 자는 민희를 깨웠다.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는 알몸의 여자.

저 여자랑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모른다. 어휴. 왜 그랬을까. 내가 홀린게 맞다니까.

그래도 한가지 좋은 건 있었다. 저 여자는 나를 맘에 들어 한다.

내가 맘에 드는 것인지 내 물건이 맘에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크게 다를 건 없잖아?

적어도 내가 어제의 그 찰리인지 뭐시기인지보단 섹스를 잘했나 보다.

크흠. 이거 참…. 뿌듯하기도 하고 으쓱으쓱하기도 하고….

암튼 그렇게 민희가 느긋하게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있는데 탐지에 누군가 걸렸다.

6시가 다 되어가는데 이곳에 올 사람이라면 컴퍼니 녀석들밖에 없지.

탐지가 있어도 지금은 괜찮다. 탐지에 이름표가 뜨는 건 아니니까.

아마 먼저 온 다른 인원이라고 생각하겠지. 과연 지금 오는 녀석은 탐지가 있는 놈일까? 없는 놈일까?

"민희."

"네?"

전시된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을 하는 여자.

이런 세상이 됐는데 화장을 하는 여자를 보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또 화장해놓은 것을 보면 이해가 간단 말이지.

벙커에 있는 여자들에게도 사다 주고 싶다. 안 그래도 이쁜 여자들인데 화장까지 하면 장난 아니겠지?

승희랑 세아도 본바탕이 좋으니 괜찮을 것이고, 미나야 말할 것 없고 안나는…. 캬. 외국인한테 K-화장시켜놓으면 정말 이쁘던데.

청주. 한번 가긴 해야겠어.

"여기서 자주 모였었던 거지?"

"네."

"예전에도 이렇게 먼저 온 적 있었나?"

"아뇨. 저는 보통 시간 맞춰 오는 편이라."

"그래? 알겠어."

별 도움은 안 되네. 음…. 일단 지켜보자. 먼저 온 저 녀석이 어디로 가는지.

내가 저 녀석이고 탐지가 있는 놈이라면 모이기로 한 라운지보단 이곳으로 먼저 올 것이다.

서로 생면부지도 아니고 한 시간 동안 멍하니 기다릴 필요는 없잖아?

탐지로 계속 지켜보니 녀석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오케이 일단 하나.

과연 얼마나 의심이 많은 녀석일까? 민희가 있으니 크게 의심은 안 할 거다.

어차피 나의 전투는 순간의 방심만 포착하면 된다. 무효화와 수면이 들어가는 1초도 안 되는 시간.

딱 그 시간이면 1대4까지는 충분히 가능하지.

점점 가까워지는 기척. 나는 투명화를 쓰고 적당히 숨었다.

이렇게 좋다니. 다시 한번 투명화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네.

"어? 뭐야. 여왕님이잖아?"

나타난 한 남자. 그리고 그는 잠들었다.

"에휴. 불쌍한 녀석."

민희는 쓰러진 녀석을 힐끔 바라보고 한마디 하더니 다시 하고 있던 화장을 계속한다.

모습을 드러낸 나는 쓰러진 녀석을 살펴봤다.

약간 경박하게 생긴 남자. 정장이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

"컴퍼니 맞지?"

"네. 그 녀석은 빨리 죽여도 돼요."

"뭘 어쨌길래 우리 여왕님의 심기를 거슬렀지?"

방금 남자가 한 여왕님이라는 말. 딱 맞는다. 그거 말고는 다른 별명이 떠오르는 게 없네.

"참고로 나는 그 별명 별로 안 좋아해요."

"왜 그래? 딱 맞는데."

민희의 뒤에 서서 화장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갈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워지는 과정은 약간 경이로운 느낌이 들 정도다.

"저거 안 죽여요?"

"저거라니…. 엄청 밉보였나 보네."

민희의 벌어진 블라우스 앞섶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이씨…. 이렇게 벌어져 있으면 손을 안 넣을 수가 없잖아.

"가슴 정말 좋아하네요."

"어쩔 수 없지. 본능인걸."

"그래도 다른 남자들보다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요?"

"그만큼 내가 애정결핍인가 보지."

민희의 가슴을 한 번 더 주무른 다음 손을 빼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근데 얘는 왜 이리 짐이 없어? 너무 맨몸인데?

"얘 스킬 뭔지 알아?"

"감전이랑 탐지랑 수납요."

"수납? 어쩐지 그래서 짐이 없나 보다? 근데 너희는 왜 이리 수납을 좋아하냐?"

"들고 다니는 짐이 많았으니까요. 정말 귀찮거든요."

"아. 너희 무전기 있지 않냐?"

"다 있는 건 아니에요. 가진 사람이 몇 명 있어요."

"아. 그래? 몇 명?"

"세 명인가? 그랬던 거 같은데."

"너희는 왜 없어?"

"저희는 구역을 많이 벗어나니까요."

"그래? 어제 그 남자도 무전기 없나?"

"네."

음…. 날파리녀가 하나 가지고 있었지. 그럼 두 명이 더 가지고 있다는 소린데.

그 두 명은 날파리녀가 반응이 없는 걸 알아차렸으니 뭔가 대응을 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자를 테이프로 둘둘 감는다.

요란한 테이프 소리에 민희는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뭐 하는 거예요?"

"제압."

"죽인다면서요?"

"약속 시각이 다 됐는데 탐지 걸린 놈이 와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면 의심할 테니까."

"헤에. 상당히 용의주도하네요? 꼼짝없이 당한 이유가 있네."

"글쎄. 용의주도하다고 볼 수도 있고 노파심이 큰 것일 수도 있지. 뭐가 됐든 나는 기회가 왔을 때 일을 망치고 싶진 않으니까."

테이프를 아낌없이 써서 남자를 초록색 고치로 만들어 놨다.

오랜만의 테이프 질이지만 테이프 마스터의 솜씨는 녹슬지 않지. 후후.

"다 됐어?"

"거의요."

"다 되면 말해."

"이것만 바르면 돼요."

은은한 조명 아래서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역시 사람은 분위기가 있어야 해.

"됐어요. 가죠?"

나는 배낭을 메고 남자도 어깨에 둘러멨다.

체구가 작은 녀석이라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질질 끌고 갈 뻔했어.

"와. 성인 남자를 그렇게 번쩍번쩍 든다고요?"

"살아남으려면 해야지. 아오씨. 그래도 무겁네."

라운지가 멀었으면 이럴 생각도 안 했을 거다. 다만 사람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기는 역시 쉽지 않다.

당장이라도 내팽개치고 그냥 마체테로 찍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든다.

겨우 꾹 참고 라운지로 데리고 온 남자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떨어진 충격에 신음을 내는 남자.

남자의 신음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서 다시 수면을 걸었고 녀석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잠들었다.

"수면, 투명화, 매혹, 탐지, 거기에 반사도 있는 거 같고…. 매혹을 해제한 스킬도 있고…. 맙소사. 스킬이 여섯 개나 돼요?"

"눈썰미가 좋네?"

"살아남으려면 좋아야죠."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민희. 이런 부분은 맘에 든다. 위트와 여유가 있는 모습. 게다가 똑똑하다.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면 안 되는데."

"그 정도로 눈치 없지는 않아요."

"내가 걱정하는 것은 네가 다른 놈에게 매혹에 걸렸을 때가 문제인 거니까."

"그런 걱정까지 하는 거예요? 진짜 치밀하네요?"

"정보는 힘이니까. 그거 알아? 이게 국정원의 원훈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정보는 국력이다' 지만."

"흐음. 정보가 힘인 건 맞죠. 모르고 있으면 눈 뜨고 당하니까요."

"그렇지. 아. 또 온다. 이번엔 두 놈이네."

남은 녀석들은 다섯. 그중에 두 놈. 과연 이놈들은 어떤 놈들일까?

나는 테이프 칠 당한 남자를 눈에 안 띄게 잘 처박아놓았다.

뭐…. 자고 있으니 잠꼬대를 하지 않는 이상 들키진 않겠지.

점점 가까워지는 두 명. 나는 다시 투명화를 썼다.

"설마 연기를 못하거나 그러진 않지?"

"잘 모르시네요? 여자는 일생이 연기에요."

"너무 극단적인 거 아냐?"

"크게 다른 바 없어요."

"재밌네."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민희 역시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인벤토리를 열어 책을 하나 꺼내 읽기 시작한다.

참…. 여우 같은 여자야.

내 생각에는 내가 저 여자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마 저 여자는 자신의 이익을 충분히 저울질하고 나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불쾌하진 않다. 그게 비즈니스고 그게 사회생활이잖아.

"얼래? 누님 혼자에요?"

"과장님. 오랜만이에요!"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 모습을 드러낸 순간 끝이다.

광역 스킬 무효화와 수면이 걸리고 두 남녀는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진 두 명을 보며 감탄하는 듯한 표정의 민희.

"대체 당신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죠?"

"날?"

"너무 사기잖아요? 쟤들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애들이 아닌데."

나랑 비슷한 또래의 남녀. 정장보다는 청바지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녀석들.

남자야 별 관심도 없고 특색도 없으니 그냥 바로 테이프 질 해버렸다.

그리고 여자. 이쁘다기보다는 귀여운 쪽의 외모.

충분히 괜찮은 편이지만 눈이 한없이 높아진 나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다.

"누구나 방심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아니, 방심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얘들도 반사는 기본으로 있는 애들이에요. 그리고 이런 곳에 오면서 반사를 켜지 않을 리도 없고요. 말도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거 맞아."

여자도 테이프 칠을 마저 하고 둘을 사이좋게 아까 남자가 있던 곳에 쌓아놨다.

이제 남은 건 세 명.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아. 얘들 중에 무전기랑 탐지 있는 녀석이 있나?"

"거기 남자애요."

"얘가 무전기랑 탐지 둘 다 있어?"

"네."

나는 녀석들이 떨어뜨린 가방을 열어 안을 살폈다.

지난번에 날파리녀가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무전기. 흐음. 이걸 이용해볼까.

나는 다시 여자애를 끌고 와서 매혹을 걸고 기껏 감아놓은 테이프를 다시 뜯었다.

내가 하는 짓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민희.

뺨을 찰싹찰싹 때리자 여자애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일어나."

"네."

"쟤 옆에 앉아."

"알겠어요. 과장님 말씀하시는 거죠?"

"얘는 왜 이리 너한테 깍듯해?"

"예전부터 그랬어요. 저도 몰라요."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멋있잖아요. 같은 여자가 봐도 멋진데."

뭐, 그런 거야 내가 알 바 아니고.

"너 무전기 쓸 줄 알지?"

"네."

"만약 무전 오면 네가 받아. 왜 남자가 안 받았냐고 하면 똥 싸러 갔다고 그래."

"알겠어요."

민희는 내가 말한 것을 듣고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물어본다.

"뭐 하는 거예요?"

"뭘?"

"지금 말한 것들요."

"남은 녀석들을 방심하게 만드는 수작?"

"와….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요. 당신. 그런 건 어떻게 알고 하는 거죠?"

"만화책을 많이 읽어. 소설도 많이 읽고. 내가 생각한 기발한 것들은 이미 누군가가 써먹을 대로 써먹은 것들이야."

"하아. 정말 보면 볼수록 놀랍네요."

"남은 세 명에 대해서 말해볼래?"

"남은 세 명…? 네 명인데요?"

"아. 날파리녀는 이미 죽였어. 그 비행에 투명화 있는 여자. 내가 여기 너희들이 모이는 걸 어떻게 알았겠어?"

"아…. 그렇군요."

민희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바로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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