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80화 (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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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Elf

처음 잡힌 기척은 둘. 딱 붙어있는 기척.

갑자기 생긴 기척에 놀랐다. 이런 상가 건물이 뭐가 볼 게 있다고 여기에 사람이 있지?

저렇게 딱 붙어있는 거 보면 보통 남녀 사이인 경우가 많던데. 그냥 지나가다 머무는 커플인가?

어차피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건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기척이 더 느껴진다. 얼래. 뭐가 이리 많아?

총 일곱. 상가 건물에 적당히 흩어져 있다. 웃긴 건 1층에는 아무도 없다. 전부 2층과 3층에 있다.

한 건물에 이렇게 여러 명이 있다면 한패라고 보는 게 맞겠지. 설마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우연히 한 건물에 있지는 않을 거 아냐.

뭐 하는 놈들인데 이런 곳에서 살지? 더 살만한 곳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안에 통조림 창고라도 있나? 그런 게 아니고서야….

보통 이런 경우는 뻔하다. 처음에 자리 잡고 따로 옮길 생각을 못 해서 그대로 쭉 사는 경우.

아지트를 옮기는 메리트가 어지간히 크지 않는 이상 그냥 익숙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제법 봤으니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자. 아무리 그래도 이 건물은 방어가 너무 부실한데.

일단 입구가 너무 많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이렇게 많으면 방어의 의미가 없다.

뭐…. 유사시 교전을 하지 않고 바로 도망갈 생각이라면 이런 건물이 좋기야 하겠지. 어디로든 도망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굳이 이런 데서 살 필요가 있나? 모르겠다. 의문투성이네.

일단 들어가 본다. 일곱 정도야 뭐…. 한 번에 몰려서 덤비는 게 아닌 이상 별로 위협적이지도 않지.

너무 당당하게 가장 큰 출입구로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다른 입구를 찾아봤다.

편의점. 좋네. 안쪽에 건물 안으로 통하는 문이 있겠지? 여기가 좋겠어.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에 문이 보인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 느꼈다.

아. 허술한 곳이 아니구나.

안쪽 복도로 통하는 문일 텐데 잡동사니로 잔뜩 막혀있다.

고의로 막아놓은 문. 단기간에 소리를 내지 않고 치울 수 없을 정도로 쌓인 잡동사니들.

혹시나 해서 옆에 있는 화장품 프랜차이즈로 들어갔다. 여기도 마찬가지. 문이 막혀있다.

그 옆, 옷가게. 마찬가지. 다 이런 식이다.

입구는 많은데 열려있는 곳이 없다.

아…. 귀찮네. 서점은 이 건물 지하에 있으니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따위로 막아놓다니…. 짜증이 확 밀려온다. 그냥 때려 부수고 길을 내?

아니…. 아무리 짜증이 나도 그건 그다지 할만한 짓이 아니다. 내가 그런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우. 천천히 찾아보자. 이놈들도 밖에 나다녀야 하는데 길이 없진 않겠지.

그렇게 한 30분 넘게 1층을 헤맸다. 그리고 나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

왜 이 건물에서 짱박혀서 사는지 알 거 같다.

1층은 완전히 미로다. 수많은 입구와 가로막힌 문, 그리고 길이 있는 것 같으면 막혀버리는 통로.

오랜 시간 천천히 만들어온 흔적이 보인다. 길을 아는 자들만 여유롭게 다닐 수 있는 그들만의 안식처.

하아…. 윗층은 포기하더라도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꼴을 봐서는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하. 씨발…. 폭발 마렵네.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길을 찾아본다.

그래. 던전이라고 생각하자. 길이 없을 리가 없다. 게임이라고 생각하자고.

어떤 새끼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상당히 체계적이다.

내키는 대로 길을 막고 아무렇게나 장애물을 쌓은 게 아니야. 치밀한 계산으로 외부 통로를 다 막고 딱 원하는 길만 틔워 놓은 거야.

게다가 이 장애물들도 상당히 지능적이다.

쇼핑카트와 펜스같이 건너편이 훤히 보이는 장애물로 틀어막아서 공간을 인지하는 게 상당히 헷갈리게 해놨다.

때려 부수자니 시간이 한참 걸릴 거고, 소음을 들으면 녀석들이 대응하러 오겠지.

좋아. 그래. 만든 새끼…. 인정해준다. 대신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아무리 미로를 만들어 놨다고 하더라도 한쪽 벽을 손으로 집고 쭉 가면 결국 길은 나오게 되어있다.

물론 시간이 조온나 많이 걸려서 문제지 결국은 갈 수 있게 되어있다. 원래 미로가 그러니까.

한 시간 정도를 미로에서 헤맨 끝에 길 같아 보이는 것을 찾았다.

맞겠지? 이 정도면? 후후. 씨발. 아무리 힘들게 만들어 놨어도 공간의 한계라는 게 있잖아.

공간이 넓을수록 미로의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만, 상가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 크기는 한계가 있다.

결국은 뚫릴 수밖에 없지.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처럼 보이는 곳을 걸어 들어가다가 무언가를 밟았다.

"으으으으으으으."

눈앞이 번쩍거리고 온몸이 찌릿 걸린다.

내가 그런 상태에서 회복 포션을 사서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 감전 트랩을 한번 밟아봐서, 그리고 평소에 회복 포션을 사 먹는 게 아주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도 반쯤은 흘리며 먹은 회복 포션 덕분에 죽음의 문턱을 넘지는 않았다.

"허억…. 허억…."

온몸에 느껴지는 격통,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정신.

그래도 죽을 고비는 넘겼기에 겨우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는 있었다.

욱신거리는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회복 포션을 하나 더 사서 마신 나는 그제야 몸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고통이 가신 곳에 차오르는 분노.

이 씨발…. 안 그래도 미로 때문에 짜증 났는데 거기에 감전 트랩이라고? 이 새끼들…. 진짜 악질이네.

곱게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이 새끼들을 어떻게 조지지?

마음 같아서는 불을 싸질러버리고 싶지만, 지하가 서점이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집 다 태울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야말로 주객전도다.

그리고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나에겐 내 방식이 있다.

다시 건물 바깥으로 나간다.

감전 트랩이 또 있을 수도 있으니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쓰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씨발…. 진작 이렇게 할걸. 그동안 살만하다고 까먹고 있었어.

상가 건물 바깥으로 나온 나는 마땅한 곳을 찾아 둘러봤다.

아까 처음 봤었던 편의점. 거기로 갔다. 거기라면 건물 내부가 전부 반경에 들어오니까.

편의점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회복 포션 덕분에 몸은 거의 나았지만 아직도 욱신욱신하는 느낌이 난다.

그런 욱신거림을 느끼며 조용히 기다렸다. 밤을 꼬박 새워서 아침이 올 때까지.

불면증과 욱신거림 덕분에 꾸벅 졸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분노를 삭이고 있을 뿐이었다. 장장 몇 시간을.

편의점 내부가 춥지는 않아서 몸이 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한 자세로 오래 있으니 몸이 굳는 느낌이다.

아침 일곱 시. 이 새끼들은 언제 일어날까? 트랩을 설치한 놈이 있다면 분명 일어나자마자 확인하러 올 텐데.

아…. 벙커의 여자들 깨기 전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힘들려나.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줘. 이 새끼들 다 쳐 죽이고 갈 테니까.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꼼짝없던 기척들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텀을 두고 탐지를 계속 돌렸다. 분명 내려오는 녀석이 있을 거야. 그 녀석이 어디로 내려오는지 확인해야 해.

어지러이 움직이는 기척 중에서 하나의 기척이 내 머리 위쪽 근처로 다가온다.

나를 지나 옆쪽으로 가는 기척. 그리고 무슨 소리가 들렸다.

드르르륵

이건…. 셔터 여는 소리? 셔터?

갑자기 셔터는 왜…. 아!

조용히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바로 옆에 있는 건물. 은행 ATM 기기들이 있는 곳.

그리고 거기엔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2층에 있는 은행으로 통하는 계단.

이 새끼들. 1층은 아예 통째로 눈속임이었구나? 1층에선 아무리 헤매도 다른 층으로 못가는 거였어.

기척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온다. 나는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벽에 딱 붙었다.

1층에 있는 은행 ATM기기 있는 곳은 건물 내부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와야 할 거다.

내 쪽으로 오든, 아니면 반대편으로 가든 일단 나오게 해야 한다. 괜히 노출했다가 뛰어 올라가서 문이라도 잠그면 골치 아파진다.

밖으로 나온 기척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여기 편의점 안에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아니…. 여기를 조금만 관찰하면 여기가 입구란 걸 다 알 수 있을 텐데…. 여기 숨어있는 걸 아는 방법이 있나?

아. 씨발. 만약 방법이 있다면 내가 위험한데? 피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편의점 앞으로 남자가 보였다.

방금 내려오던 그 기척. 나는 반사적으로 무효와 수면을 걸었다. 바로 쓰러지는 남자.

휴…. 씨발. 괜한 걱정을 했네. 이놈의 쫄보 근성은 진짜…. 어휴.

일단, 남자를 끌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나 올라가는 문이 잠겨있으면 이놈에게 물어봐야 하니까.

꼼꼼하게 테이프 질을 하고 은행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은행 문이 열려있다. 좋아. 나이스 하네.

1층에 저 지랄을 해놨으니 2층도 미로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무난한 상가의 모습. 좋아. 이러면 문제없지. 감전 트랩도 없을 것이고.

내려가서 1층에 있던 놈을 먼저 죽일까 했지만, 일단 들어온 이상 여기부터 다 털기로 했다.

잠이 깨기 전에 다 죽이고 내려가면 되겠지. 20분이면 여섯 명 정도야 얼마든지 쳐 죽일 수 있으니까.

방심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그 누구도 자신들의 터전에 침입자가 들어와 있다고 생각 안 할 거다.

그런 방심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게 하는 거다. 여기 두 명처럼.

식당 안에서 여유 있게 밥을 먹고 있던 남녀. 무효화와 수면을 맞고 그대로 식탁에 엎어졌다.

아직 조용한 거 보면 탐지가 있는 놈은 없다고 봐야지? 일단 죽인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밥은 다 먹게 할 걸 그랬나?

[21,427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8,52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보통 여자가 코인을 많이 쟁여놓고 있는데 얘들은 남자가 많이 있네. 희한한 놈들.

뭐, 이미 죽었으니 더는 신경 쓸 거 없다.

밑에 하나가 묶여있으니 앞으로 남은 놈들은 네 명. 저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끝내자.

탐지가 있어서 어디 있는지 뻔히 안 다는 건 상당히 좋은 일이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도 줄일 수 있고 기척을 보고 상대가 나를 눈치챘는지도 알 수 있잖아.

인터넷이 안 되는 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인터넷이 되고 커뮤니티라던가 이런 게 살아있었다면 탐지가 개사기 스킬인 걸 모두 알았겠지? 그리고 멀티 스킬이 가능하다는 것도?

그랬으면 지금처럼 이런 사냥은 불가능했을 거야. 정말 다행이야.

또 두 명. 또 커플이다. 여기는 커플 세상이야? 상가 구석 안쪽에서 아침부터 꽁냥거리는 녀석들.

한 5분만 더 기다렸으면 아마 섹스했을것 같다. 여자가 안 이뻐서 별로 보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재웠다.

[32,55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7,464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얘들도 남자가 훨씬 코인이 많네. 여자들을 놔두고 남자들만 밖에 나다니나?

앞으로 남은 건 3층의 두 명. 아까부터 기척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둘이 붙어있는 거 보니 자는 건가? 아직 안 일어났나? 아니면 아침부터 한판 하고 있나?

가보자. 가보면 알겠지.

가구매장. 그 안쪽에 큰 침대가 하나 있었고 거기엔 두 명의 여자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적당히 벌어져 있는 거리. 이 여자들이 레즈가 아니라면 이 사이에서 누군가 자고 있던 거 같다.

아마도…. 처음에 나왔던 그놈.

이야. 능력 있는 놈이네. 여자 둘이랑 한침대에서 자고.

여자들도 나름 괜찮게 생겼다. 그럼 그놈이 여기 대장인가? 그래 보이지?

예전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강간했을 만한 여자들이지만, 이제는 이런 여자들은 시시하다.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버려서 문제야. 이런 곳에서 정액을 낭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니까.

자는 여자들에게 수면을 걸었다.

자는데 죽으면 죽는지도 모르겠지? 나름 평온한 죽음이네.

[2,45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50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허허. 코인 보소…. 한 명은 왜 또 500이야. 설마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던 거야? 아까 그 남자 놈 생각보다 능력이 있었나 보다.

그럼 뭐해. 이제 곧 죽을 텐데.

좋아. 일단 정리는 끝났다. 아까 그놈 하나만 죽이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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