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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73화 (17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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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조용한 동네. 마음에 든다.

어딘가를 지나가는 길목도 아니고, 특별하게 여기를 목표로 올 만한 일도 없다.

이미 죽어버린 동네. 나에겐 그 어디보다 나은 동네다.

탐지를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탐지 쓰는 녀석이 벙커 100미터 이내로 들어올 일만 없으면 된다.

저 산에 자동 통조림 생성 기계가 있다는 소문 같은 게 돌지 않는 이상 벙커까지 들어오는 미친놈은 없을 것이다.

심리적 방어막이라고 해야 할까? 맘에 든다.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동네를 거닐어봤다.

바람 소리만 가득한 동네. 소음도 뭣도 아무것도 없다. 아. 있긴 있다.

가끔 컹컹거리며 돌아다니는 들개무리들.

저것들도 적당히 잡으면 식량이 될 텐데. 과연 세 여자가 들개고기를 먹으려 들까?

음…. 사치스러운 소리네. 배고프면 다 먹게 돼 있는데.

그래도 아직 들개무리를 잡아먹을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니까. 일단은 놔두자.

저놈들에게 수면을 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기도 쉽진 않으니까.

승규…. 그사람은 대체 감전으로 야생동물들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잡았지? 감전은 수면보다 반경도 짧은데.

어찌 보면 대단한 사람이야. 물류 센터도 잘 굴리고 있는 거 보면 대단해.

아. 멀티도 다녀오고 물류 센터도 한번 다녀와야 하는데.

언제 가지? 생각 좀 해보자. 여분의 MRE가 없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당분간은 코인을 전부 회복 포션 사는데 때려 박아야 한다.

뭐 세 여자가 그리 많이 먹는 편은 아니라서 음식 사는데 코인을 그렇게 많이 쓰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껴서 회복 포션을 사는 게 낫지.

탐지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상당히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편안해지는 만큼 걱정도 된다. 대체 이제 사람들을 어디 가서 찾지?

예전처럼 뜨문뜨문 한두 명, 서너 명 잡아서는 충당이 안 된다. 대량으로 학살할 필요가 있어.

결국,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다.

캠프, 그리고 캐슬.

어떤 미친놈들이 그렇게 모여서 살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이다.

이런 무질서가 만연한 혼돈의 세상에서 나름대로 질서를 세우고 굴리고 있는 거잖아.

나도 물류 센터를 만들어봐서 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물론…. 내가 다 만든 건 아니지만. 승규 그 사람이 대단한 거지.

결국은 먹을 것이 문제다. 식량.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느냐 없느냐.

배가 고프면 체제고 질서고 나발이고 그냥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유지가 됐다는 건 자급자족에 성공했다는 소린데.

물과 전기가 무제한인 세상이니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겠지.

비닐하우스로 일 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테니까.

무제한으로 전기와 물을 써가면서 말이지.

근데…. 땅이 버티나?

농사에 대해 문외한인 나도 지력이라는 것은 안다.

땅은 무제한으로 농작물을 길러주지 않는다. 지력이 쇠하면 더는 뭔가를 생산할 수 없을 거다.

비료 같은 것들을 쓰면 되긴 할 텐데…. 비료도 유통기한이 있지 않나?

아이씨…. 이런건 대체 어디서 알아야 하는 거야?

옛날 같았으면 인터넷 검색 10초만 하면 알아낼 수 있을 텐데.

아…. 도서관.

그래. 도서관이 있었지. 거기엔 적어도 그런 것들에 대해 적혀있는 책이 있을 거다.

인터넷의 발달로 활자에 가두어진 책들은 이미 죽은 지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 죽은 지식이 사람을 살리는 날이 오는구나.

도서관. 그래. 큰 도서관을 하나 알아두긴 해야겠다.

이 근처에는 없나? 아오. 지도. 지도도 필요하다.

답답하다. 정말로. 불과 3~40년 전만 해도 다들 스마트 폰도 없이 살았을 텐데.

어떻게 살았지? 어휴 답답해.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밖에 안 걸린다.

정말 작은 동네다. 아파트 단지가 열네 개. 초등학교가 두 개, 중학교, 고등학교가 하나씩.

인기척도 없고 사람이 사는 흔적도 없다.

이 동네를 정리한 놈들이 있을까? 아니면 서로 싸우다가 공멸했을까?

어쨌든 이렇게 싹 깨끗하게 정리해 놓은 거 보면 정리한 놈들이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말끔하게 해놨을 리가 없어.

아니면 컴퍼니, 그놈들 짓일까?

남양주는 여기서 멀지 않다. 결국은 여긴 따지고 보면 캐슬의 권역 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그쪽으로 끌려갔을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을 끌고 가는 게 가장 편할 테니까.

캐슬…. 캐슬….

컴퍼니…. 컴퍼니….

정종찬.

다시 만나보고 싶네. 지금 만나면 어떻게 될까?

그놈이 야외에서 다짜고짜 번개를 날린다면 통구이가 되는 건 그놈일 거다.

하지만 반사가 있는 녀석이다. 반사의 존재를 아는 놈이 그렇게 번개를 섣불리 쓸 것 같진 않다.

쓰면 병신인 거고.

그렇다면? 가속화를 쓰고 날붙이로 배때기를 찌르려나?

가능성 있다. 사람을 죽이는 데는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니까.

역시, 투명화를 배워야 해.

투명화가 있어야 움직이기가 편하다.

지금까지는 매복과 기습 위주로 행동했지만 어딘가를 습격할 때는 할 수 없는 방법이다.

결국은 결론이 이렇게 되네. 빨리 광역 스킬 무효화를 마스터 해야 한다.

돌고 돌아서 결국은 코인이다.

그리고 시간.

투명화를 배우기 전까진 기존의 작업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

한 땀 한 땀 소규모로 잡아 죽여야 한다는 소린데.

몇만씩 코인 가진 놈들이 얼씨구나 하고 뛰쳐나와 죽어줬으면 좋겠다.

그때 비즈니스호텔에서 만났던 그놈들처럼…. 얼마나 좋아? 비록 까딱하면 죽을뻔하긴 했지만.

아니면 백마촌 같은 곳. 아. 백마촌은 정말 개꿀이었는데.

어디 그런 곳 또 없나? 알아서 코인 가득한 놈들이 찾아오는 곳.

분명히 어딘가엔 또 그런 곳들이 있을 텐데.

사람이란 생각하는 게 다들 비슷비슷하니까.

있긴 있을 거다. 한번 찾아봐야겠어.

일단 전동 휠이라도 가져와야겠다.

뚜벅이로 걷고 있자니 너무 답답하다. 전동 휠에 길들어 버리니 걷는 게 답답해졌네.

다른 탈것 없을까? 오토바이나…. 아냐. 오토바이는 내가 싫다.

자신 없어. 도로 사정도 거지 같은데 타다가 삐끗하면 내가 뒤지니까.

비행 스킬. 역시 비행 스킬도 있어야 해. 아오. 뭐 이렇게 당장 할 수 없는 것들만 자꾸 생각나고 지랄이야.

동네는 안전하다. 그리고 여자들은 일어나려면 꽤 걸릴 거다.

가자. 가서 전동 휠을 가져오고 가능하면 차도 가져오자.

기왕이면 전기차가 좋은데. 세아가 일어나면 세아랑 차 좀 구하러 다녀와야겠다.

일단 그건 그거고 지금은 전동 휠부터 가지러 가자.

식량도 좀 가져오고.

추운 겨울에 몇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걷는 건 그다지 재미없는 일이다.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어도 손과 발의 감각이 없어진다.

특히 발. 이놈의 전투화는 다 좋은데 추위를 못 막는다.

정말…. 군인들의 고충을 이렇게나마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다니. 어휴.

무념무상으로 걸어서 멀티 근처에 도착했다.

이 동네도 역시 조용한 동네다. 물론, 내가 다 죽였지만.

고작 이틀만인가? 사흘만인가? 암튼 얼마 안 됐는데도 멀티에 오니 상당히 오랜만에 온 느낌이 났다.

사람 사는 흔적이 잔뜩 있는 멀티. 곧 여기도 비워야겠지.

일단 식량부터 배낭에 잔뜩 쑤셔 넣었다.

당장 여자들이 일어나면 밥부터 먹어야 할 테니까.

앞으로 벙커에 콕 박혀서 스킬 숙련하려면 제법 필요할 거다.

아오. 그냥 차를 끌고 갈까?

그게 낫겠다. 어차피 저 차도 가져가긴 해야 하잖아. 영철이가 선물해준 벤X.

무려 승희와 여름 바닷가까지 다녀온 놈이라고. 나름 대단한 놈이지.

아. 그러고 보니 내년 여름은 기대되네.

세 여자랑 바닷가에 갈 수 있는 거잖아? 이야. 벌써 즐거워지네.

내년에는 가게 되면 잔뜩 준비하고 가야지. 고기도 챙겨가고, 이것저것 잔뜩 가져가야지.

어휴. 벌써 놀 궁리만 하고 있네. 아직 겨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해도 안 바뀌었구먼.

차는 주기적으로 시동을 걸어놔서 그런지 아직 멀쩡하다.

기름이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그거야 물류 센터에 가면 얻을 수 있겠지.

전에 구해준 여자가 기름 생성 스킬이 있었으니 휘발유 정도는 잔뜩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래. 온김에 그냥 멀티에 있는 것들을 싹 가져가자.

이 추운 겨울에 여자들 데리고 다시 여기 오기도 쉽지 않다. 그냥 다 가져가자.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전부 챙겼다.

내가 승희에게 준 노트북, 게임기 같은 것들을 비롯해서 암튼 실을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다 차에 옮겨 실었다.

대부분이 승희 거고 미나와 세아의 물건은 거의 없다.

일단 뭐가 누구 것인지 모르니 다 실었다. 가져가기만 하면 알아서 챙기겠지.

생각보다 멀티에 있던 물건이 그리 많지 않았다.

참 소박하게 살았구나. 하긴 내 물건은 그리 많지도 않다.

옷가지와 자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에게 벙커는 안전하게 잠을 자는 곳이지, 안에서 뭔가를 하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아차차. 이걸 빼먹을 뻔했네.

나의 방주. 외장 하드.

결국, 아직 한 번도 개시를 못 했다.

음…. 이젠 여자 세 명과 함께 봐야 하는 건가? 어우. 그건 또 나름대로 민망한데?

뭐, 그래도 좋은 공부가 되겠지. 싫으면 할 수 없고.

그리고 또 하나. 성인용품 박스.

가져갈까 말까 고민된다. 이걸…. 쓸 일이 있을까?

모르겠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그래. 가져가야겠다. 세아 녀석 앞으로 까불면 이걸로 좀 혼내줘야겠어.

적당히 보이는 것은 다 실었다. 이제 멀티도 안녕이다.

어차피 이곳을 버리는 것은 아니니 언제든지 다시 쓸 수 있으니 안녕까지는 아니지만…. 다시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일단, 너무 멀다. 게다가 이 동네에 그렇게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 전동 휠까지 전부 트렁크에 실었다.

이젠 진짜 끝. 출발해볼까?

기름 차의 소음은 상당히 마음을 쫄깃하게 만든다.

사방에 있는 놈들이 이 소리를 듣고 나타날 때쯤엔 내가 이미 그곳을 벗어나 있을 테니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주 편하진 않다.

어차피 새로운 벙커로 가는 길은 도로 상태를 다 확인했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거다.

갑자기 웬 미친놈들이 떡하고 길을 막은 뒤, 차를 박살 내거나 할 일은 없겠지.

일단 물류 센터로 향했다.

기름도 받고 안나에게 전에 물어봤던 것도 확인해야 하니까.

그 장부에 있던 것들,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뭔가 털어먹을 것은 있을 거다.

확인해달라고 했으니 뭐라도 건질 수 있겠지.

그리고 MRE도 받고 다른 식재료도 잔뜩 털어와야지.

어차피 가면 알아서 챙겨주니까 털어올 필요까진 없지만.

왜 저번부터 자꾸 털어먹는다고 하지? 땅그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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