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66화 (16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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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

두번째 벙커에 도착했다.

"와. 여기도 집이 멋지네요."

승희의 감탄.

다행히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큰 충격은 받지 않았나 보다.

미나를 힐끗 보니 안색이 조금 어둡고 힘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아주 안 좋아 보이거나 하진 않는다.

하…. 씨. 이런 건 잘 못 하는데. 뭘 어떻게 해줘야 하나.

그냥 슬쩍 넘어간 세아가 고마울 지경이네. 물론, 저 아이도 분명히 힘들어했겠지.

이것 참…. 쓰레기가 되는 건 너무 쉬운데, 착한 사람이 되는 건 정말 너무 어렵다.

착한 사람이라니…. 내가 무슨 개소리를. 나 같은 놈이 무슨.

"아. 참고로 여기는 사람이 살았었어."

벙커 안에 들어갔고, 여자들은 안을 살펴본다.

어차피 똑같은 구조. 오래 볼 필요는 없다.

확인해야 할 부분만 바로 살피고 밖으로 나온다. 의외로 사람이 살았던 흔적에 대해서 신경이 많이 쓰이나 보다.

"집주인은요…? 죽였어요?"

세아의 한마디. 나는 변명처럼 말한다.

"아니. 와있더니 죽어있던데. 침대 위에 코인 1,500이 덩그러니 있더라. 근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 내가 죽였냐고 말하는 거 아니니."

"아니…. 오빠라면 그럴 거 같으니까."

"뭐, 반박은 못 하겠네."

사는 사람이 있었다면? 세아의 말대로 했을 거다.

죽이고 차지했겠지. 내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썼나.

"여기도 집 구경해도 되죠?"

"응."

세 여자는 집으로 들어간다.

솔직히 집은 달천동보단 여기가 더 좋아 보인다.

여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집구경에 여념이 없다. 아까보다 더 오래 걸리는 기분.

한바탕 구경이 끝나고 거실에 있는 소파로 모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정하고 가기로 해서 다들 한마디씩 한다.

"전, 아까 거기가 좋아요."

딱 부러지게 입장을 밝히는 승희.

"왜?"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대답한다.

"벙커 입구가 집 안에 있어서? 여기는 벙커 입구가 밖이라 집으로 들어오려면 야외를 거쳐야 하니까."

"단지 그 이유로?"

"거기는 집까지 연장선으로 보이잖아요. 여기는 벙커와 집이 분리 된 것처럼 보이고."

"뭐, 각자의 의견은 소중한 거니까. 다음은 누가? 미나?"

"전…. 솔직히 모르겠어요. 둘 다 장점이 너무 커서. 아까 거기는 승희가 말한 대로 집안에 입구가 있어서 좋긴 해요. 그거 생각보다 중요하거든요. 아마 승희도 그것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벙커는 답답해서 그렇지?"

"답답하다기보다는…. 아니네요. 답답한 게 맞긴 해요. 제가 어디 콕 박혀 있는걸 잘하긴 하지만, 오래 있으려면 야외 활동도 중요하잖아요. 여기보다 거기가 더 자유롭죠."

"맞아요. 저도 승희랑 같은 생각이긴 해요. 근데 여기도 분명 좋은 점이 있어요. 이 옆에 논밭이랑…. 이 앞에 있는 나무들. 이거 과수원이죠?"

미나의 질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아.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식량 걱정은 안 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언젠가는 자급자족을 해야 할 거예요. 그때를 대비하려면 가까이에 이런 논밭이랑 과수원이 있는 것은 좋죠. 그리고 여기 지대가 높잖아요? 길도 외길이고. 안전을 생각하면 여기도 좋아 보여요."

미나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비슷하달까? 자급자족과 방어. 생존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어느 게 우선이라고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들.

"그럼 세아는?"

"난 여기."

"이유는?"

"미나 언니가 말한 거 그대로. 길 하나만 막으면 외부에서 쉽게 못 들어오는 게 좋아 보여. 뒤에도 산이니까 비밀 퇴로 같은거 만들기도 좋고. 그리고 여기 동네가 작아. 사람이 없는 곳처럼 보이던데?"

"맞아. 이런 동네일수록 사람이 없지. 다시 이쪽으로 유입되는 경우도 거의 없고. 대신 생필품 하나 구하러 갈 때마다 멀리까지 나가야겠지."

"어차피 그것들이야 서서히 포기해야 하니까."

맞는 말이다.

생필품들, 공산품들. 영원한 것들이 아니다.

옷이나 플라스틱 제품들, 스테인리스 제품들…. 뭐 그런 것들이야 죽을 때까지 쓸 수 있지만,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다.

샴푸라던가 뭐 그런 것들…. 지금은 그냥 쓰고 있지만 언젠가부터는 못 쓸 거다. 게다가 가전제품 같은 것들도 결국 수명이 다할 테고.

"그럼 동률이네? 어떻게 할까."

"오빠는요? 왜 오빠 표는 안 해요?"

승희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가 입을 연다.

"나는 외부에서 침입하지 못하고 물과 전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

"그런 게 어딨어요."

"여깄다. 왜."

"아잇. 다들 너무 미적지근 한 거 아니에요?"

"내가 너무 고르기 힘든 곳을 찾았나? 하긴 그래서 나도 너희들에게 물어본 거긴 하지만."

다들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과연 어떻게 될까? 처음으로 의견이 갈려서 서로 날카로운 지적과 상대의 의견을 반박하는 날 선 대답을….

"그럼. 여기로 하죠."

의외로 승희가 바로 자신의 의견을 접었다.

"저쪽이 좋다며?"

"좋기야 저쪽이 좋긴 한데, 생각해보니 제가 방어와 자급자족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거 같아서요. 그래서 여기가 더 나은 거 같아요. 입구야 뭐 어떻게든 되겠죠."

"그래? 그럼 됐네. 여기로 하자."

너무 쉽게 결정되어 버렸다. 약간 허무하네.

의견 대립을 하고 싶지 않은 건가? 그런 느낌은 아닌데. 그냥 승희가 한 말 그대로라고 봐야겠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지.

"그럼 이사에 대해서 말인데. 솔직히 급할 건 없지만 그렇다고 꾸물거릴 필요는 없잖아? 당장 내일이라도 오는 건 어때?"

"그래요. 거기 오래 있을 필요도 없고.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데 굳이 미뤄둘 필요도 없죠."

시원시원한 승희. 미나와 세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한다.

"그럼…. 돌아갈까? 챙길 건 가져와야지?"

"바로요?"

"왜?"

"차라리 여기를 조금 정리한 다음 사람 살 곳으로 만들어 놓고 가죠? 굳이 지금 돌아갈 필요 있나요?"

미나의 말에 다들 바로 수긍한다.

역시 사람은 지성을 모아야 해.

"그러네?"

"그래서 말인데요. 일단 챙겨야 할 것들이 있어요."

"뭔데?"

내 질문에 미나가 작게 대답한다.

"침구."

"침구? 아. 이불이랑 베개 같은 거?"

"네."

"흠. 그렇지. 그거 중요하지."

당당하게 말해놓고는 얼굴을 붉히는 미나. 뭐지? 유혹하는 건가?

아…. 이거 이렇게 시그널을 주면 또 내가 참을 수가 없잖아.

"그래. 그럼 해 있을 때 챙길 것부터 챙기러 가자."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날이 조금 따듯할 때 움직일 걸 그랬나? 찬바람이 몸에 닿을 때마다 흠칫흠칫하게 된다.

으.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바쁜 겨울이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지. 이게 훨씬 더 좋지.

비교가 안 되게 좋잖아. 고작 춥다고 징징거리긴.

행정구역이 읍으로 되어있으니 우리가 나온 곳은 읍내라고 불러야 할 거다.

하지만 이름과는 다르게 어느 도시의 풍경이랑 크게 다를 점은 없었다.

다만 건물이 조금 낡은 것과 건물의 높이가 낮다는 것, 그리고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네요? 읍이라고 하면 되게 시골같이 느껴지는데."

미나의 말에 승희가 맞장구친다.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가 너무 세상을 몰랐나 봐요."

뭐, 나도 비슷하다. 나야 미리 와봤으니 알고 있던 거지만.

"아. 저기 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세아가 말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커다란 간판이 있었고 거기에는 이불, 침구, 커텐, 벽지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딱 우리가 찾는 가게네. 잘했어."

나는 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세아는 피하려 했지만 어림없었다.

"내가 꼭 복수한다. 진짜로."

"기대하고 있어."

"으으윽."

그렇게 세아와 장난치는 동안 승희와 미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문은 열려있었기에 부수고 들어갈 필요는 없겠네.

이런 병신같은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이런 이불가게는 약탈 당할 일이 없기에, 가게 안은 세상이 이 꼴이 나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곳.

마치 세상이 멸망하기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과연, 지금 나보고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돌아갈까?

그때로 돌아가고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돌아간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나는 지금이 좋다. 미친 소리 같지만 나는 지금이 좋다.

사람을 죽이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문명의 이기가 사라져서 좋다는 게 아니다.

뭐라고 단언해서 말할 수 없는 기분. 아마 여자 때문일까? 글쎄. 그것도 분명 커다란 이유가 되겠지.

"오빠."

"응?"

미나가 나를 불렀기에 쓸데없는 상념을 깨고 대답했다.

"이불은 얼마나 필요하죠?"

"각자 하나씩. 그리고 큰방에 있는 것들 하나씩 그럼 6개네."

"어? 오빠도 작은 방에서 자게요?"

"어…. 아냐?"

"오빠는 큰방에서 자요."

"왜?"

갑자기 내게로 다가와 귓가에 살짝 속삭이는 미나.

"그래야 밤에 몰래 가죠."

귀를 간질이는 미나의 숨결과 그 내용 때문인지 몰라도 내 물건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하…. 이것봐라 시그널에 이어서 도발까지?

이거…. 참을 수가 없는데. 그냥 확 여기에서?

아니다. 그건 오바야. 도발에 홀랑 넘어가서야 되겠어?

"흠…. 문 잠그고 자야겠다."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미나가 다시 한번 귓속말을 한다.

"세아 스킬이 뭐게-요."

"아…. 그렇구나.“

으…. 요망한 여자. 오늘따라 왜 이리 요염하게 굴지?

혹시…. 아까 사람 죽인 것 때문인가? 둔한 나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약간…. 자신을 도와달라고 외치는 기분이다.

그렇게 미나랑 대화하고 있는데 세아가 우리를 보더니 소리 지른다.

"아! 정말! 왠종일 기회만 되면 꽁냥거리네! 이불 펴줘요? 잠시 나가서 조금 있다가 와?"

미나는 아 뜨거라 하는 표정으로 총총 도망간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세아에게 다가갔다.

"왜…. 왜요? 또 머리 만지려고!"

머리에 손을 교차해서 방어 태세를 갖추는 세아.

"중단이 비었잖아."

세아의 가슴을 한번 살짝 움켜잡는다.

"흐갹!"

브라가 방해해서 온전히 가슴을 느끼진 못했지만, 세아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마구 때린다.

"변태! 말미잘! 아주 그냥! 어휴!"

"뭐야!? 무슨 일 있어요?"

승희가 헐레벌떡 다가와서 우리를 바라보고 물어본다.

세아가 고자질하듯 승희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승희는 세아를 보며 말한다.

"부럽다."

"으악! 뭐가 부러워! 같이 오래 있었다고 너도 변태가 된 거야?"

"아니…. 뭐 가슴이 어때서.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아. 모르겠다. 정말. 이 변태들이랑 어떻게 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가버리는 세아.

승희는 약간 눈을 가늘게 뜨고 내게 다가오더니 말한다.

"흠…. 살판났죠?"

"으응?"

"흥."

그러더니 몸을 돌려 가려는 승희.

미나도 세아도 안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승희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리고 옷 안으로 쓱 손을 밀어 넣었다.

브라 속으로 들어가는 손은 승희의 맨 가슴을 움켜쥔다.

"읏! 차가워요!"

작게 나보고 뭐라고 하지만 빼라고 하던가 저항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역시, 음란한 여자. 꼭지를 한번 만져주니 살짝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이 와중 에서도 느껴지는 거야?

"빨리빨리 고르죠!"

저쪽에서 미나가 외쳤고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뺐다.

승희도 황급히 옷을 정돈하면서 아쉬운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나와 부풀어 오른 물건.

크…. 어쩐다. 정말 오늘 밤은 참기 힘들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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