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64화 (16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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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

"사람을 죽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냐. 뭐 승희랑 세아는 해봤지만…. 그 후에 힘들었다고 생각해."

승희와 세아가 말이 없어졌다.

겪어보지 못한 미나는 그저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 있지. 시체가 남지 않으니까. 만약 시체가 남았다면 이 세상은 끔찍해졌을 거야. 이렇게 깔끔한 세상이 아니었겠지. 시체란 건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고. 특히나 뼈 같은 건 쉬이 사라지지도 않지. 아마 어지간히 살풍경한 모습이었을 거야."

그래.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사람들은 식량의 필요성을 상당히 덜 느꼈을 것이다.

존엄성이 사라진 곳에서 시체가 온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식인이 살인 보다 조금 더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배고프면 뭔들 하지 못할까?

죽으면 시체가 사라진다. 이게 이 세상의 남은 인간들이 미치지 않고 버티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몰라.

"그렇기에 죄책감이랑 죄악감이 덜하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놈들은 이 세상을 게임처럼 만들어 놨어. 죽이는 게 아니고 이 세계에서 탈락시키는 느낌으로. 그러니 정말 힘들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아. 죽이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서 로그아웃시킨다는 생각."

게임을 안 해보진 않았겠지. 설마 로그아웃이 뭔지도 모르진 않을 거 아냐.

"그렇다고 또 너무 가벼이 여기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되겠지? 아무튼, 그건 각자가 이겨내야 할 문제야. 극복하지 못하면 죽으니까. 죽이기 싫다고 죽어줄 수는 없잖아?"

잠시 침묵. 너무 깊게 생각할 시간을 줘선 안 된다.

심각성은 느끼지만 깊게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무슨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도 살인이 정당화되고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는 없으니까.

"장광설이 길었지. 어쨌든 그렇게 알아두기만 해. 그럼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보자. 죽이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스킬로 직접 죽이는 것, 그리고 스킬로 무력화시켜서 마무리 짓는 것. 나는 수면 스킬이 있어. 효과는 말 그대로 상대를 재우지. 상대가 반사가 있거나 불면증이 있지 않은 이상 안의 범위에서 스킬을 맞으면 자.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거지. 비슷한 스킬로는 마비, 기절 같은 게 있어. 단점은 꼭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

"너무 담담하게 말하니까 무섭네요."

미나의 솔직한 소감. 그런 그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긴 하지.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해."

"그래서요?"

"계속할까? 직접 죽이는 스킬은 효과적인 게 몇 개 없지. 가장 괜찮은 건 감전과 폭발. 나머지 공격 스킬은 쓰레기들이야. 나중에 가면 광역 스킬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으니 뭐라고 말할 수 없네."

"감전이면 말 그대로 전기에 감전되는 거죠? 폭발도 그렇고요?"

"응. 비슷한 스킬들이 있지만, 장단이 있지. 감전은 번개랑 비슷하지만, 번개는 야외에서만 쓸 수 있어. 정확히는 하늘이 보이는 곳. 감전은 대신 사거리가 짧지. 폭발은 마땅히 비슷한 게 없네. 있다고 하면 파이어 볼? 근데 파이어 볼은 내가 고급이나 마스터 스킬을 못 봐서 정확히 비교가 안 되네. 암튼 폭발은 살상력은 뛰어나지만, 아군이 섞여 있으면 쓰기 어렵지. 자신도 피해를 받을 수 있고."

"그럼 저희는 뭘 배워야 하나요?"

"내가 생각하는 건 지금까진 크게 세 가지야. 뭔가 더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봐온 조합 중엔 이렇게 세 개가 가장 나을 것 같아. 너희들이 그중에서 하나씩 고르면 돼. 하나는 투명화, 비행, 폭발. 다른 건 투명화, 비행, 감전, 마지막은 투명화, 괴력, 신속화."

"그때 본 그 녀석이 정말 인상 깊었나 봐? 계속 언급하네요?"

세아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괴력을 다시 보게 됐지. 신속화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괴력과 조합하면 그 정도로 좋을지 몰랐어."

"투명화는 알겠고…. 비행요?"

미나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다는 최대한 아는 것에 대해 말했다.

"비행은 나도 정확하게 못 봐서 뭐라고 확답할 수는 없어. 하지만 결국은 똑같이 스킬로 싸우게 된다면 결국은 거리 싸움이고 기동력 싸움이지. 비행은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보완해줘. 투명화한 상태로도 위협적이지만, 그 상태로 날고 있으면 상대는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불리할 때 빠지기도 편하고."

"흐음…."

내 말에 셋 다 생각에 잠긴다.

잠시 말없이 걷기만 하는 우리들.

어느새 거의 근처까지 왔다. 역시 잡담을 하면서 오니 시간이 빨리 가네.

잡담하면서도 탐지는 일정한 텀을 가지고 계속 돌린다.

이곳은 정리가 되지 않은 곳. 누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니 긴장을 놓칠 수는 없다.

"내가 괴력이랑 가속화 할래."

세아가 말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았다.

"그럴래?"

"응. 전에 이야기 듣고 생각해봤는데 그게 제일 나을 것 같아. 나는 몸이 작아서 지금까지 힘도 약하고 움직임도 빠른 적이 없었어. 이렇게 스킬로나마 한을 풀어야지."

"내가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괴력과 가속화를 고르게 되면 뒷마무리를 전담하게 될 거야. 감전으로 확실하게 죽지 않은 사람이나 내가 수면으로 재운 녀석들을 뒤치다꺼리해야 할 일이 많겠지. 즉, 직접 죽이는 일을 해야 해."

"괜찮아. 그 정도는 각오했어."

"그래? 대단한데?"

세아의 머리를 헝클였다.

아이 취급받는 걸 싫어하는 그녀는 머리를 헝클이는 내 손을 잡고 뿌리치려 하지만 내 힘을 이길 순 없다.

"거봐! 이래서 내가 괴력을 배울 거야. 두고 봐. 복수할 테니까."

"아이고 무셔라."

"우씨. 진짜다. 복수 할 거다."

그런 세아의 모습이 귀여워 승희와 미나가 웃는다.

살짝 째려보는 세아. 두 여자의 웃음이 쏙 들어간다.

"그래? 그럼 세아는 결정됐고, 승희랑 미나가 폭발과 감전을 고르면 되겠네."

"근데…. 그럼 감전이 먼저예요? 아니면 비행이 먼저예요?"

"뭐일 거 같아?"

미나의 질문에 나는 다시 질문으로 맞받아친다.

"당연히 공격 스킬!"

엉뚱하게 대답은 승희가 한다. 정답이지? 라고 물어보는 듯한 표정.

"맞아. 투명화와 공격 스킬만으로도 위력은 엄청나니까. 비행은 거기에 보조로 들어가는 거지 필수는 아냐. 비행 대신에 가속화가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군요. 그럼…. 제가 감전을 할게요."

"어? 통했네요. 난 폭발이 좋은데."

"그래? 다들 생각보다 잘 나뉘었네. 그럼 그렇게 결정하자고. 마침 벙커에도 도착했네."

내가 말하자 다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어휴. 그런다고 찾아지겠냐.

"이쪽."

내가 가리킨 집을 보자 다들 우와하며 입을 벌린다.

"이야."

"집 좋다."

"생각보다 좋은데요? 지금 벙커 있는 곳 집은 완전 폐가던데."

세아의 물음에 내가 대답해줬다.

"아. 그건 내가 부쉈어. 일부러. 잡놈들 꼬이지 말라고."

"아. 그런 거예요? 그렇구나."

집 안으로 들어가 비밀 통로를 보여주자 다들 눈이 반짝반짝한다.

여자들도 이런 걸 좋아하나? 재미있네.

벙커 안에 들어가자 다들 입을 벌리고 구경한다.

특히 승희는 뭐가 그리 좋은지 벙커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하긴 승희는 벙커 생활을 그래도 꽤 했으니 큰 벙커가 더욱더 맘에 들겠지.

"온수 체크 오케이! 수압 오케이! 에어컨과 히터 확인해보겠습니다!"

장난스럽게 외치는 승희. 미나는 그런 승희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주방 쪽으로 간다.

세아는 방마다 어떻게 생겼는지 이리저리 체크하는 모습이고.

역시 혼자 확인할 때보다 편하네. 나는 저렇게 꼼꼼하게 체크는 안 했는데.

"여긴 한 번도 사용한 흔적이 없었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물론 확인하는 그런 모습들은 참 좋아."

"오빠도 놀지 말고 확인해요! 모니터 룸 같은 거 다 확인 한 거예요?"

아. 그렇네. 모니터 룸을 그때 안 봤구나.

에휴. 이렇게 멍청해서야 원….

모니터 룸에 들어가 카메라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화면이 나오지 않는 것들은 없었다. 의외네. 이렇게 멀쩡하다니.

그 외에도 놀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이것저것 확인해보는 척한다.

제일 큰 방 두 개. 그곳으로 가서 침대부터 확인했다.

작은 방 네 개에는 싱글침대가 있지만, 큰 방 두 개에는 킹사이즈 침대가 있다.

좋구나. 여기에서 이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구조상으로 봤을 땐 안방 같은 개념이다. 큰방에 각각 화장실이 하나씩 있으니 씻기도 편하다.

음…. 역시 이런 것부터 생각하고 있네. 하긴 남자라면 정상이지. 아무렴.

"어차피 다른 곳도 여기랑 구조는 똑같으니까 잘 봐둬!"

각자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 나는 침대에 앉았다.

나야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벙커는 보안만 잘되면 된다.

침대가 있고 물과 전기만 문제없으면 상관없으니 그냥 앉아서 기다린다.

한참을 앉아서 기다리니 여자들이 하나둘씩 모였고, 가장 마지막으로 미나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다 봤어?"

"네. 괜찮은 거 같네요. 정말 지어놓고 한 번도 안 썼나 봐요."

미나의 대답에 승희와 세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맘에 들었는지 표정이 밝다.

하긴 이정도 벙커면 거의 호텔 수준이지.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딨겠어.

"그럼, 다음 벙커로 가볼까?"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기에 우리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벙커 밖에 나와 집도 이곳저곳 둘러보는 여자들.

"집도 봐도 돼요?"

"그래.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내 말에 아싸하고 혼잣말하며 위로 올라가 보는 승희. 미나와 세아도 집을 둘러본다.

오히려 이쪽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네. 하긴 그게 당연한가?

나는 1층에 있는 소파에 앉아 무료하게 밖을 보았다.

확실히 나랑은 보는 관점이 틀리다.

나는 벙커 밖의 거주지에는 관심이 없다. 벙커 밖은 오직 사냥터일 뿐이니까.

하지만 여자들은 그게 아닌가 보다. 하긴, 좁고 빛도 안 들어오는 벙커보단 이렇게 그럴듯한 집이 더 좋아 보이겠지.

안전과 보안에 대한 개념이 다른 거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좀 더 강박적으로 그런 걸 따지는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안전과 보안에 대해서는 타협하고 싶지 않다. 괜히 위치를 노출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어차피 주변의 주택가는 기척이 없으니 크게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 게다가 미나도 투명화를 배우게 되면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하지만, 그전까진 밖의 생활은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좋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어.

"이제 가요."

30분 정도를 앉아있으니 여자들이 모두 내쪽으로 모였다.

"어째 벙커보다 보는게 더 오래걸린다?"

"그럼요. 여기도 생활권이잖아요. 당연히 훑어봐야죠."

"미리 말하지만, 잠은 무조건 벙커에서 자야 해. 그리고 이 위는 될 수 있으면 나오지 않는 게 좋고. 나오는 건 나중에 너희들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을 때나 나와야 해."

다소 불만이 있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건 초장에 확실히 이야기해 놔야지.

"그럼 갈까? 다음 벙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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