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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하우스
"앞장서. 탐지 스킬 있는 여자 있는 곳으로 안내해."
"네."
힐녀가 앞장섰고 그 뒤를 따른다.
단지 내부는 참 희한하게 변해있다.
일단 보이는 것은 비닐이 쳐져 있는 닭장. 엄청 커다랗게 닭장이 쳐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엄청난 숫자의 닭.
"이만큼 키우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가능하지?"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근데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저희가 경작하는 논이랑 밭이 있어요. 거기에서 조달합니다."
"논이랑 밭이 있다고. 그렇군."
역시 물류센터랑 비슷한 방식이다. 성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급자족이 될 정도라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거겠지.
근데 쌀은 직접 농사짓는 것보다 그냥 코인으로 사는 게 더 쌀 텐데.
하긴…. 이많은 사람들을 유지하려면 사람을 어지간히 죽여야겠네. 그건 쉽지 않지.
보이는 족족 죽이려 했는데 단지 내부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아마…. 안내방송을 했을 거예요. 전투원들을 제외하고는 다 자기 집에 대피하도록."
"그래?"
뭐, 오히려 잘됐다. 뿔뿔이 흩어지는 것보단 각자 집에 콕 박혀있는 게 낫지.
"여기에요."
관리사무실로 날 이끄는 여자.
곳곳에 있는 바리케이드와 엄폐물들. 안내방송도 그렇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운이 좋아서 만은 아닌거 같다.
나름 치열하게 살아남았겠지. 그것도 오늘로 끝이지만.
탐지로 느껴지는 기척은 아까부터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기절과 마비라면 제압은 순식간이겠지. 게다가 그게 아는 얼굴이라면 방심하게 될 거고.
매혹을 당해봤다고 해도 그걸 알아채는 건 어렵다. 그게 최악이지. 매혹에 걸렸어도 평소와 다를 게 없거든.
힐녀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뒤따라 들어간다.
어차피 반사가 있으니 무서울 건 없지만 그래도 모르니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쓰러져 있는 남자 둘과 여자 하나, 그리고 서 있는 기절녀와 마비녀. 그녀들에게 떠 있는 매혹 시간.
좋아. 문제없네.
"이 여자가 탐지야?"
"네."
40대는 돼 보이는 아줌마였다. 어쩌다가 탐지를 골랐지? 어쨌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텐데. 아쉽게 됐어.
시간이 없으니 빨리 처리한다. 이들의 사연과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다 들어보려면 하루가 모자랄 거야.
다 들어볼 필요도 없고.
죽어버리면 끝나는 이야기다. 끝난 이야기에는 관심 없지.
[4,21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50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74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참…. 가난하다. 아까 그 사람들도 그렇고 이 사람들도 그렇고.
자급자족하지만 그리 넉넉하진 않았나 보다.
코인을 박박 긁어 쓰는 느낌이 나네.
아직 기척은 많이 느껴진다. 하나씩 둘씩 흩어져있는 기척들.
아마 각자 자기 집에 있겠지?
이제 하나하나 찾아가서 처리해야지.
"가자."
여자 셋을 데리고 아파트를 돌기 시작했다.
기척이 있는 집으로 가서 여자 셋에게 벨을 누르고 문을 열게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침입자가 생각보다 코인을 많이 줘서 음식으로 배급한다고 하니 다들 냅다 문을 열어준다.
익숙한 얼굴들이 저런 말을 하면 믿지 않을 수가 없지. 이 사람들이 뭘 알겠어.
그렇게 아파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정리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리하는 것보다 계단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더 오래 걸리고 짜증 났다. 씨발. 좀 낮은 데서 살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거기 갇히면 답도 없다.
사고가 나면 그냥 끔살인데…. 어떻게 타고 다니지? 이 사람들은 아직 타고 다니는 거 같은데.
적당히 낮은 층은 전부 다 돌았고 마지막 남은 24층에 사는 사람 두 명만 남았다.
근데 저긴 도저히 걸어갈 자신이 없다. 별수 없이 여자들 셋만 보내서 처리시켰다.
밑에서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더니 기척이 다섯에서 셋이 됐다. 뭐. 잘 끝났나 보네.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오고 여자들 셋이 내게 다가왔다.
재우고 죽였다.
방금까지 내 명령을 받고 움직이던 여자 셋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렇게 아파트 하나에서 사람들이 통째로 사라졌다.
[9,21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4,23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8,99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서른 명을 죽였는데 코인이 10만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빠듯하게 살고 있었나 보다.
봄까지 버틸 수는 있었던 거야? 의심이 생길 정도다.
아…. 닭이 있었지. 닭은 최고다.
잡아먹을 수도 있고 달걀이 나오잖아. 게다가 맛있고.
이제 먹이 줄 사람도 없는데. 저 닭들은 다 폐사하려나?
아깝네. 저대로 갇혀서 죽는 건 좀 아니지.
닭장 앞으로 가서 문을 활짝 열었다.
안에서 굶어 죽든 밖에 나가서 얼어 죽든 그건 뭐 알아서 할 테지.
운 좋은 놈들은 나가서 살아남을 것이고.
주변이 온통 닭 천지로 변하는 거 아냐?
방금 사람은 잔뜩 죽인 놈이 닭들이 죽는 건 아까워하는 게 상당히 웃기다.
정말 미친 거 같아. 제정신인 게 용하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다음 벙커로 이동한다.
위치는 여기서 조금 남쪽. 거리는 4km 정도.
그리 멀진 않다. 근데 남양주 근처인 게 조금 걸린다.
캐슬. 거기도 털러 가야 하는데.
언제 가지? 털어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캠프라는 곳도 가서 정리해야 하고, 만약 벙커를 새로 이사하게 되면 그 주변도 털어야 한다.
컴퍼니 놈들 잔당도 털어야 하고…. 털게 너무 많다. 뭘 자꾸 턴다는 거야? 도둑놈이야?
전동휠은 진짜 좋은 거 같다. 전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데다가 아무 데서나 충전할 수 있으니까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단점이라면 들고 다니기 조금 짜증 난다는 것.
어딘가 세워놓으면 찾으러 가야 한다는 것.
수납 스킬을 배우면 참 좋을 텐데. 그것만큼 좋은 스킬이 어딨어.
하지만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다. 수납은 적어도 투명화를 배운 다음이다.
근데 또 좋은 스킬들이 계속 나올 테지? 참 고민이네 정말. 스킬을 숙련하는 속도는 한계가 있다고.
걸어서 한 시간 거리를 20분도 안 돼서 도착한 나는 아까와 같이 주소를 찾는다.
이 동네는 조금 더 오래된 동네다. 일단 전봇대들이 지상에 나와 있어.
신도시와 구도시의 가장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전봇대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이렇게 전봇대가 있는 동네는 약간 불안하다.
아무리 전기가 무제한이라도 집까지 연결이 안되면 결국 의미가 없다.
전기는 콘센트에서 생성 되는게 아니니까.
관리 미비로 인해 전선이 끊어지거나 하면 상당히 귀찮아진다. 전기는 무섭다고.
달천동은 행정구역이 동인데 여기는 행정구역이 리다. 이이리. 뭔가 외치고 싶은 동네 이름.
저쪽보다 규모가 상당히 작다. 집도 적고 큰 아파트도 적다. 상당히 소박한 동네.
오히려 이런 동네가 좋다. 사람이 없을 확률이 높으니까.
봐봐. 지금도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 동네에 들어온 지 한참 됐는데 아예 기척이 없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사람의 흔적이 오랫동안 없으면 생기는 분위기.
사람은 뭘 하든 흔적을 남긴다.
그냥 한번 쓱 지나가는 거면 모를까 사람이 살고 있다면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여긴 그런 게 없다. 저 들개무리만 봐도 알 거 같네.
들개무리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놈들이다. 사람이 있으면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들개무리가 동네 한복판을 유유히 걸어간다. 아주 익숙해 보이는 게 평소 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다.
내 기척을 느끼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녀석들.
지금은 사람보다 들개가 더 무섭다. 괜히 자극하지 말아야지.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들면 내가 불리하잖아. 나는 넷밖에 상대를 못 한다고.
지금 내 상태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그거다.
물리적인 방어. 하. 이건 또 어떻게 극복한담.
집이 별로 없어서 주소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아예 주소에 산이라고 적혀있다.
그럼 결국 산에 있다는 소린데. 참 산 좋아하네….
초등학교를 지나 빌라와 주택들을 뒤로하고 완만한 경사를 오른다.
고즈넉해 보이는 성당 하나. 사람 손길이 오래 닿지 않아서 그런가? 더 멋있게 보인다.
그렇게 길 끝에 도착한 그림 같은 집 한 채.
여기도 집 좀 멋있네.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정말 맘에 든다.
눈 앞에 펼쳐진 과수원. 그리고 옆에 밭. 제법 커다란 창고 하나.
자급자족을 한다면 이만한 땅이 없어 보인다.
음….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벙커를 먼저 확인해야지.
집은 주변 분위기와 다르게 상당히 모던한 느낌이다.
주변만 좀 더 깨끗했다면 집이 더 멋있었을 텐데. 너무 너저분한 게 많네.
집 문은 열려있었다. 여기도 집 안은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었다고 생각되는 집. 뭐, 좋은 일이지.
여기는 굳이 집 안에 벙커 입구를 만들진 않았을 것 같은데…. 밖을 먼저 볼까?
비상시에 쓰는 벙커고 관리를 해야 하니 집이랑 멀진 않을 거다.
집 주변을 둘러본다. 입구가 딱 티는 안 나겠지만 그렇다고 꼭꼭 숨겨놓진 않았을 거다.
집을 한 두어 바퀴 돌다가 입구를 찾았다.
집 옆에 붙어있는 작은 창고, 그 바닥.
맘에 들어. 이런 분위기. 집 만든 사람이 뭘 좀 아네.
마스터키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음. 공기가 다르다. 여긴 사람이 사용했었나 봐.
공조가 돌아가고는 있지만, 완전 새것과 사용했던 곳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법이다.
안에 들어가니 달천동에 있는 벙커와는 똑같은 구조였다.
하지만 확실히 여긴 사람의 흔적이 있다. 집기들, 이불, 칫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음식, 그리고…. 코인 주머니.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코인 주머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건…. 벙커 주인의 흔적일까?
[1,50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500이라니. 딱 세 명분 코인이네.
집 안에 있는 흔적도 세 명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하필 코인도 1,500.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이 벙커의 주인은 이 침대 위에서 죽었을까?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있는 게 없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아무렴 어때. 비어있다는 게 중요하지.
됐다. 일단 확인할 수 있는 건 다했어.
이제 돌아가자.
이정도면 넷이서 살아가는 건 무리가 없을 거다. 달천동이든 이이리든 둘 중 하나는 좋아하겠지.
둘 다 장단이 있지만 그건 여자들보고 결정하라고 해야겠다.
직접 살 집인데 직접 보고 결정해야지.
집에 가는 길.
벙커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국토교통부 같은 데 가서 비밀 자료 같은 걸 보고 숨겨진 벙커 같은 걸 찾고 싶었는데.
아니면 수도방위사령부 같은 곳? 거기가 대통령 비밀 벙커 같은 자료가 있다고 들었는데.
문제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어딘지도 모른다. 이런…. 이래서 미필이란.
국토교통부는 세종에 있다. 자료 하나 찾자고 세종까지 가는 건 무리지.
뭐, 이정도 벙커면 충분하다. 내가 무슨 대통령 비밀 벙커까지 욕심내는 건 오바지.
집이 가까워질수록 슬슬 부담감이 밀려온다.
벙커를 찾으러 온다고 하면서 슬쩍 마음 한쪽으로 미뤄놨지만, 결국은 심판의 시간이 다가온다.
마치 기정사실처럼 다 같이 살 벙커를 구하고 다니긴 했지만….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내 희망 사항이고 헛된 꿈이 될 수도 있는 건데…. 쩝.
과연, 집에 돌아가면 여자 셋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까?
파멸의 시작일까? 아니면 극적인 대화합의 시대인가?
모르겠다. 큰 욕심을 부렸으니 큰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하겠지.
벙커가 가까워진다. 으…. 떨려라.
제발. 부디 제발 좋게좋게 흘러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