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59화 (15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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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하우스

이 동네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우진 않았나 보다.

아니면 나 같은 미친놈이 없었거나.

주택 단지 쪽을 벗어나서 한 아파트 쪽으로 가니 사람의 기척이 많이 느껴졌다.

뭐지? 정말 많이 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뭐가 이렇게 많아…. 아파트단지 내 여기저기에서 사람의 기척이 잡힌다.

공동체 같은 게 유지 되는 건가? 아니면 먹고살 만한 게 있는 건가?

서로 만나서 인사를 한 다음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아직 인간성이 남아있는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다른 곳도 그런가?

궁금해졌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궁금증은 못 참지.

옆 아파트, 그 옆 아파트. 앞뒤 다 돌아봤지만, 저 아파트만 사람이 있다. 뭘까? 뭐지?

시간은…. 아직 좀 있지? 그럼 한번 확인해봐야지.

아파트에 가까이 다가가니 이것저것 방어를 구축해 놓은 게 보인다.

입구를 막아놓은 건 아까도 봤는데 아파트 담장에도 뭐가 잔뜩 붙어있다.

철조망인가? 저런 걸 둘러놔도 의미가 있어? 그냥 사다리 하나만 있으면 넘어갈 수 있겠는데?

아니 애초에 아파트 외곽 담벼락에 철조망을 뭐하러 치는 거야?

그렇게 몰래 보고 있는데 다섯 명 정도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잠깐…. 이쪽은 문이 있거나 한 것도 아닌데? 바로 이쪽으로 온다고?

알겠다. 탐지가 있구나. 아파트 내부에 탐지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조직적인 방어체계가 있다.

이 아파트만 사람이 있는 이유가 있구나. 체계가 갖춰져 있어.

탐지가 있고 방어체계까지 갖췄으면 어중이떠중이들은 다 요격할 수 있겠지.

어쩐다. 지금 밀어버릴까?

시간. 시간이 문제다. 밀어버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근데 저녁 시간까지 돌아가야 하잖아.

첫날부터 지각하는 꼴은 보이면 안 되잖아. 빨리 끝내야해.

근데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박멸하지 못하면 상당히 귀찮아진다.

그리고 다가오는 녀석들이 다섯인 게 걸린다. 네 명이면 그냥 처리하고 시작했을 텐데. 이걸 어쩌나.

일단 오는 놈들을 보자.

남자 다섯이면 물러나고 여자가 하나라도 끼어있으면 밀어버리자.

탐지 스킬 가진 녀석이 직접 나왔으려나? 그러면 일이 편해지는데.

확인해보면 되지.

약간 뒤로 물러났다. 이동하는 나를 쫓아오면 탐지 스킬 보유자가 따라오는 거고 안 쫓아오면 나오지 않은 거겠지.

다섯의 기척을 주시한다. 나를 따라오진 않는 거 보니 탐지 스킬 있는 녀석은 아파트 안에 있나 보네.

자…. 그럼 조금 편하게 저놈들을 확인해볼까?

숨은 채로 내가 있던 곳으로 몰려오는 다섯을 확인한다. 남자 셋. 여자 둘.

좋네. 일이 쉬워졌어. 여자가 둘이나 있다니…. 특이하네.

다섯 전부 3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베드타운인 신도시 특징이 그렇지.

서울의 땅값을 못 버티고 근교로 퍼져나간 사람들. 특히 신혼부부들.

내가 있던 곳을 건성건성 살피더니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음…. 체계는 잡혀있는데 하는 짓은 엉망이네.

이래서 공동체가 안 좋은 거야. 자기 책임이 없으면 대충대충 하거든.

공동체가 성공하려면 명확하게 개개인에게 업무와 책임을 함께 줘야 한다.

저렇게 뭉뚱그려서 일을 시켜버리면 다 같이 놀아버려.

공산주의가 망하게 된 원인이라고. 이미 인류가 증명해낸 불변의 진리란 말이지.

조심스럽게 스킬 범위가 닿는 곳까지 다가간다.

빨리 투명화 배우고 싶다. 그럼 고생을 좀 덜할 텐데.

범위에 녀석들이 들어왔고 스킬을 썼다.

광역 스킬 무효화와 수면 세 번, 매혹 두번.

순식간에 상황은 종료된다. 좋아. 이제 다음엔….

"거기 두 명. 이리 와봐."

"네."

"네."

매혹에 걸린 여자 둘. 평범하고 흔한 30대 여자.

약간 살집이 있는 여자 하나랑 마른 여자 하나. 매력적인 부분이 하나도 없다. 그냥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자 1.2 정도.

"각자 스킬은?"

"기절요."

"마비요."

탐색조로 나온 이유가 있었구나. 아마 저 안에선 가장 강력한 스킬들 중에 하나겠지.

보통 여자가 잘 나오지 않는데…. 기절에 마비면 나올 만하지.

"너. 니가 대답해. 안에 총 몇 명 있지?"

"저희 아파트 안에는 지금…. 30명 정도 있어요."

"탐지 스킬 있는 사람 있지?"

"네."

"남자야 여자야?"

"여자요."

"그래? 그럼 그 사람 이쪽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어?"

"아뇨…. 나오지 않으려고 할거에요."

"그래? 그럼…. 보자. 안에 여자 중에 공격 스킬 가지고 있는 여자 더 있어?"

"공격 스킬이라고 하면 어떤…?"

"기절, 마비, 감전, 폭발 이런 것들."

"아뇨…. 없어요."

"매혹은?"

"있었는데 죽였어요."

"죽였어?"

"네."

하긴. 매혹은 배척당하기 쉬운 스킬이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독과 같은 스킬. 단독으로 다니던가 무리의 보스가 돼야 하는 스킬이다. 강력하긴 하지만, 밝혀지면 가장 먼저 배척당할 수 있는 스킬.

"그럼, 가서 주변에 얼쩡거리는 남자 하나 잡았는데, 너네랑 같이 온 남자들이 셋 다 쓰러졌다 그래. 부축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고 불러와."

"네."

"너도 가봐. 같이 가서 데리고 와. 둘 다 연기 잘하고."

"네."

저쪽에 탐지 스킬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 남자들이 죽는 순간 알아챌 거다.

당장은 죽일 수 없다. 여자들에게 말을 해놨으니 더욱 그렇지.

일단은 이놈들은 묶어 놓자. 그래야 수면을 쓸 수 있다.

테이프 질을 해서 상가 복도 안에 밀어 넣어놨다.

이러면 얼어 죽진 않을 거고…. 이젠 여자 둘이 다른 녀석들을 데려올 때까지 기다리자.

항상 탐지 스킬 있는 여자가 계속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다만, 그리 자주 쓸 수 있지는 않을 거다. 체력 회복 포션은 비싸서 나처럼 그렇게 벌컥벌컥 마실 수는 없을 테니까.

탐지가 만능이 아닌 이유다.

순전히 자신의 체력으로만 마스터 탐지를 연속으로 유지한다면 고작 7분밖에 못한다.

저쪽에 매혹이 없다면 저 여자 둘이 매혹에 걸렸다는 것을 알 방법이 없다.

스킬 광역 무효화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스킬 세 개씩 마스터 하는게 그리 쉽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중간에 매력적인 스킬이 많으니 세 개씩 마스터 한다고 해도 그 스킬을 고를 확률도 적고.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저 여자들이 매혹에 걸렸다는 의심을 하기도 힘들다.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아파트로 돌아간 두 명의 여자가 다른 사람들의 기척이 있는 곳으로 간다.

실시간으로 보고 있자니 재밌네. 과연 몇 명이나 불러올까?

한참 기다리니 다시 그녀들이 움직인다. 그리고 뒤따르는 사람의 기척. 어디 보자. 네 명?

좋네. 더 많이 와도 됐는데.

숨어서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가까워지는 사람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오. 여자 하나 추가네.

무효화와 수면 셋, 매혹하나.

여자가 하나 더 늘었다. 그냥 여자일 뿐이지 매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너, 스킬은?"

"힐이요."

다쳤다고 힐 스킬 있는 여자를 부른 건가. 공격에 도움은 안 되겠고…. 그래도 쓸모는 있지.

"탐지 쓰는 여자 주변에 사람이 더 있나?"

"네."

"몇 명이나?"

"두 명요."

"그 두 명 중에 반사 있어?"

"반사요?"

"반사 스킬."

"아뇨. 없어요."

"그럼 너희 둘은 가서 그 남자 둘하고 탐지 스킬 쓰는 여자 제압해. 가봐."

"네."

"네."

기절녀와 마비녀가 떠났고 나는 남자 셋을 다시 테이프 질 한다.

그리고 남자들을 한곳에 모아놨다. 이러면 다친 사람을 보살피는 느낌이 나겠지?

여자들이 탐지 스킬 있는 여자에게 다가갈 때까진 이놈들을 살려둬야 한다.

뭐, 테이프 질 해놨으니 상관은 없지만. 혹시나 모르니 긴장은 해야지.

여기도 괴력 같은 걸 가진 놈이 있을 수 있으니까.

공동체와 강력한 스킬의 상관관계는 참 웃긴다.

강력한 스킬을 가진 이는 결국 배척당한다.

스킬이 강할수록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자신의 위상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보상과 권리가 많아지면 모르겠지만, 그러긴 쉽지 않다. 그러면 그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강한 스킬 가진 사람이 가지는 보상에 대한 불만.

약하고 쓸모없는 스킬을 가진 이들이 가지는 시기나 질투, 혹은 불공평함에 대한 불만.

그것들을 얼마나 잘 조율하느냐가 상당히 관건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대부분 그런 걸 잘 못 한다.

불만은 누적되고 해소도 되지 않는다.

결국, 감정의 골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강한 스킬을 가진 자가 정말 착하거나 정말 대인배거나 정말 호구 새끼가 아닌 이상 불만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만이란 건 그리 오래 가지고 있기 힘들다. 펑하고 터지는 건 한순간이지.

힘 있는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지? 내가 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이 짓을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공동체고 나발이고 그냥 끝인 거지.

그래서 지금 이 세상에 공동체는 거의 두 부류 중에 하나다.

하나는 약한 놈을 다 쳐 죽이고 쓸모 있는 사람들만 모인 공동체.

하나는 강한 놈들이 약한 놈들을 확실하게 제어 가능한 공동체.

앞에 있는 것이 컴퍼니고 뒤에 있는 것이 캐슬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딱 전형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물류센터는 특이한 곳이다.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케이스다. 아예 주변의 위협을 모두 뿌리째 뽑아서 스킬과 상관없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네. 이제 슬슬 들어가 볼까.

지금쯤이면 제압했겠지? 뭐, 못했어도 상관없다. 나에게 신경을 못 쓰게 하면 그만이니까.

남자들을 하나씩 쳐 죽였다.

일곱 명을 죽였는데 겨우 2만 코인 정도밖에 안 들어왔다.

존나 거지들이네. 진짜.

"야. 힐러."

"네? 저요?"

"어. 너 스킬 힐이라며."

"아. 네."

"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너희가 다 죽인 거야?"

"아뇨. 정장 입은 남자들에게 죽었어요."

"정장? 아…."

이쪽도 컴퍼니 그놈들 영역인가? 이거…. 나름 귀찮아지겠는데.

"그놈들 자주 오나?"

"요즘은 뜸해졌어요. 근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와요."

그놈들 전력이면 이런 아파트 쓸어버리는 건 쉬운 일일 텐데.

솔직히 정종찬 그 새끼 하나만 와도 어지간해선 다 쓸어버릴 수 있잖아? 가속화에 반사에 번개라고.

아. 번개라 그런가. 건물 안에 있는 놈들은 잡기 힘들겠구나.

게다가 아파트라 함부로 따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한 건가? 하긴 탐지는 귀찮지. 조직적인 방어는 귀찮을 수밖에 없다.

"알았어. 자. 따라와."

"네."

빨리 끝내자. 빨리 끝내고 다음 집을 보러 가자.

그리 질질 끌 만한 곳이 아니다. 괜히 시간을 오래 쓸 필요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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