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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2시간에 걸쳐서 글에 있는 모든 '마테체' 를 '마체테' 로 수정했습니다.
다 찾아보니 67개나 틀렸더군요.
그간 찝찝하셨던 분들. 죄송합니다. 다시는 잘못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러브 하우스
아침.
아직도 아침에 움직이는 건 낯설다.
탐지가 생긴 이후에서나 낮에 돌아다녔기에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데, 아침은 오죽하겠어.
뭔가 아침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 깨끗해 보이고 산뜻해 보인다. 똑같은 차가운 바람도 이상하게 아침이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우중충한 나한텐 밤이 어울리지.
처음 가는 길이라 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디 헤매지 않고 가야 할 텐데. 아니 헤매는 건 그다지 문제가 아니다. 가다가 잡놈들을 마주치는 게 문제지.
어차피 크게 걱정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세상일이란 거 내 위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가장 걱정 되는 건 과연 주소만 보고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느냐가 문제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렵다.
내가 가는 곳은 서울에서 약간 교외로 빠지는 신도시 부근.
거리상으론 그리 멀지 않다. 지금 벙커에서 물류센터까지 가는 정도만 더 가면 나오는 곳.
길도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큰길만 따라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길이 없는 산길을 걷는 것도 아니니 그리 문제는 없다.
전동휠을 타고 대로를 달린다.
최고 속도가 15km/h 라는 건 한 시간에 15km를 갈 수 있다는 뜻이잖아? 그럼 이론상 풀로 달리면 30분이 안 걸린다.
하지만 뭐 이래저래 하면 더 걸리겠지. 언제나 최고 속도로 달릴 수는 없으니까.
페이스 마스크와 고글을 끼고 비니에 이것저것 방한 대책을 했지만,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 차갑다.
역시 거리와 속도가 문제가 아니야. 추위가 문제지.
가다가 얼어 죽겠네! 진짜. 이래서 겨울에 움직이는 건 싫어.
머리가 차가워지니 여러 생각이 든다.
세 명의 여자들.
대체 뭘 하고 있을까? 설마 밤새 이야기하고 있나?
나로서는 정말 뭘 하고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걸즈토크라니. 생각할수록 몸서리 처지네.
셋 다 그리 괄괄한 성격이나 막돼먹은 타입은 아니니…. 과격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만약 셋이서 의기투합한다면?
그래서 나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다면? 어휴. 소름 돋네.
대체 승희는 뭐 때문에 미리 보겠다고 한 걸까? 아니 지금 같은 상황이면 미리 보는 수준이 아니잖아.
오랜만에 소심한 쫄보의 마음이 뛰쳐나온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뭘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야.
그냥 아싸리 강압적으로 다들 굴복시켜버려?
아냐. 그러고 싶진 않다.
나는 섹스를 위한 파트너를 원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들을 원하는 거라고.
으. 미친 새끼. 여자들이라니. 여자도 아니고 여자들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네.
승희 정도만 해도 정말 어디서 찾기 힘든 여자다.
나이가 깡패라고 해도 승희는 스타일도 좋고 외모도 훌륭하다.
거기에 미나는? 아이돌이잖아. 더는 구질구질하게 설명이 필요 없다.
세아? 세아도 마찬가지지. 츤데레미소녀로리거유. 설명 끝.
여기에 안나까지 온다면…. 씨발. 내가 생각해도 어마어마하네.
나 같은 평범한 남자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여자들.
오랜만에 속으로나마 외쳐본다.
이 빌어먹을 세상 만세다! 씨발!
방금까지는 여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세 명과 함께 섹스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뭐 어때. 망상은 자유잖아.
망상에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해도 되잖아.
그리고 아마도…. 머지않아 가능한 일일 수도 있어.
물론 함께 사는 게 가능해져도 포썸을 하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문제는 내가 자지가 하나뿐이라는 거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딜도라도 들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머릿속에 입력된 자료가 없어서 망상도 힘드네.
망가에서는 종종 봐왔던 일이지만, 거긴 현실을 무시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
거기 주인공은 절륜해서 몇 번이고 싸는 거근대물이잖아.
현실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회복 포션을 먹어도 한계가 있단 말이지.
아. 모르겠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마침 표지판에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좋아. 목적지 근처에 왔다는 이야긴데…. 이제부터 주소를 찾아가야겠지?
달천동. 좋아. 동까지는 잘 왔어. 이제부터 도로를 찾아야 하는데….
이쪽이네. 생각보다 찾기 쉬울 거 같다. 도로명주소인지 나발인지 그걸로 바꾼 건 참 잘한 거 같아.
이미 망해버린 나라지만 잘한 건 잘했다고 해줘야지. 소주라도 한잔 부어줘야 하나.
번지수를 찾아가는데 점점 산 쪽으로 간다.
음…. 이거 맞아? 맞는 거겠지? 거의 다 와서 헤매고 싶진 않은데.
주택 단지로 들어온 거 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 거 같다. 문제는 이 근처 어디냐인데….
그렇게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데 탐지에 인기척이 걸렸다.
오우. 오랜만에 만나는 야생의 인간.
그동안 백마촌에 대기하면서 편하게 받아먹기만 했었는데.
어디. 동네 사람들 실력 한번 볼까?
기척은 세 명. 움직이지 않는다.
집인가? 집안에 처박혀있으면 귀찮은데.
아. 다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가는 걸까? 궁금해지네?
거리가 가까워질 때까지 전동휠을 타고 가다가 건물 한쪽에 놓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으니 금방 마주치겠지?
당연히 숨는다. 아무리 내가 유리하다고 해도 객기를 부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슬슬 육안으로 사람이 보인다.
남자 셋.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 서른 정도? 승규 형이랑 비슷한 나잇대인 거 같네.
추운지 몸을 한껏 웅크리고 가는 세 사람.
어디로 가는 걸까? 물어보고 싶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약수터에서 물 받으러 가는 건 아닐 텐데 말이지.
세 남자가 반경 안에 들어왔다.
그들이 어떤 사연이 있고 어떤 목적이 있는지는 알 필요 없어졌다.
죽으면 끝이야. 그런 것들을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무효화와 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매복과 기습을 하는 나를 막을 방법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한은.
맥없이 쓰러지는 세 사람.
그들의 생존은 여기서 끝이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 그저 운이 나빴던 거다.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일단 죽이고 시작하는 미친놈을 운 나쁘게 만났을 뿐.
마체테가 휘둘러지고 세 명의 남자는 길었던 생존일지를 덮었다.
[6,48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8,44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52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뭐야. 왜 이리 일관성이 없어?
희한한 일이네. 보통 코인 양은 비슷하기 마련인데.
뭐, 그것도 내가 알 바 아니다. 죽였으면 끝이지. 더는 관심 가질 필요 없어.
다시 주소 찾기로 돌아간다.
여기도 아니고, 여기도 아니고, 숫자가 점점 가까워지는 거 보니 여기로 가는 건 맞는 거 같은데.
주택 단지는 생각보다 컸다. 필지도 넓어 보이고 집들도 삐까번쩍하다.
용적률이 높은가? 높이도 다들 3층씩 된다. 좋은 곳인가 보네.
보통 이런 주택주거 단지는 신도시 개발하면서 필지 보상으로 받는 경우가 많은데….
다들 한탕 크게 하셨나 봐. 부럽다.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야트막한 산 밑에 찾고 있던 집이 있었다.
산 바로 아래라니. 그다지 내키진 않네.
산이랑 바짝 붙으면 벌레가 많다. 어차피 벙커일 테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여름에 밖에 나갈 때마다 상당히 성가시다.
그래도 인적이 드물다는 것은 좋다. 적어도 큰길가에서 한참은 떨어져 있으니까.
굳이 애를 써서 이 안쪽까지 들어오지 않는 이상 탐지에 걸릴 일도 없다는 거다.
여기 집에서 큰길까지는 대충 200미터는 넘어 보이니까. 이러면 나이스 하지.
재밌는 건 여기는 담장이 없다.
담장이 있어야 좋은데. 어차피 외진 곳이니 상관없나.
필지를 전부 쓰고 있는 건물. 어라? 그럼 입구는?
설마 먼저 벙커를 만들고 건물을 올렸나? 그게 되나?
자세한 건 모르겠다. 일단 입구를 찾아봐야지.
아무리 봐도 외부에는 입구가 없다.
내부에서 내려가는 건가? 이런 게 허가가 나나? 건축법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이거 원….
모르겠다. 일단 살펴보면 되겠지. 어차피 시공사가 같은 곳이니 방식은 비슷할 거다.
사진 같은 게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쯧.
집의 현관은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다.
창문을 깨고 들어갈 필요가 없어져서 다행이다. 번거로움이 줄었어.
뽀얗게 쌓인 먼지들. 안을 살펴본다. 상당히 좋은 집이다. 아니, 좋은 집인지는 모르겠고 멋진 집인건 알겠다.
지은 사람이 상당히 공을 들인 거 같은 집.
수많은 주택을 들어가 봤지만 이만큼 멋진 집을 본적이 없는 것 같아.
벙커는 기본적으로 지하에 있다.
지상에 있으면 그건 벙커가 아니지. 무슨 의미가 있어.
결국,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거다. 벽이든, 바닥이든 이곳에 있다는 것만 확실하다면 입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벽과 바닥을 꼼꼼하게 살핀다. 두드려보고 살펴보고 하나하나 찬찬히 살핀다.
결국, 안방 안쪽 드레스 룸에서 문을 찾았다.
걸려있는 옷들 뒤에 잘 가려져 있는 문. 두드려보기 전엔 문이라고 생각도 못 했다.
옷을 치우고 잘 살피니 당겨서 열 수 있는 문이었다. 어쩜 이렇게 잘 숨겨놨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공간과 바닥에 벙커 입구가 보였다.
상당히 신경 써서 만들었네? 아무리 봐도 벙커를 먼저 시공하고 그 위에 집을 지은 거 같다.
이러면 집 지은 데서 벙커 있는걸 다 아는 거 아냐? 하긴. 뭐 알면 어떻게 할 거야.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겠지.
벙커 입구 옆에 익숙한 뚜껑이 보인다.
뚜껑을 열자 보이는 패널. 친근한 패널이네. 마스터키를 가져다 대고 000000을 눌렀다.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 좋네.
벙커문을 열자 안에 가스스프링이 달려있어서 자동으로 천천히 위로 열렸다.
와. 좋잖아? 큰 사이즈 벙커라 그런지 이런 것도 되어있네.
벙커문 열 때마다 힘들었는데. 여기는 그러지 않아도 되네. 하긴 여기 문이 더 두꺼운 거 같다.
무게가 제법 돼서 가스스프링이 고장 나면 조금 빡칠것 같다.
그렇게 되면 여자들은 아예 문도 못 열거 같은데.
내가 있는 벙커보다 조금 더 큰 입구.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오오."
아늑하다.
벙커 안이 이렇게 아늑해도 되나?
게다가 넓다. 일단 거실이 있네? 아. 물론 나도 거실은 있지만, 거기는 거실이라기보단 뭐랄까…. 암튼 거실이라고 부르긴 조금 민망해.
10인용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방이 많다.
방이…. 어디 보자. 여섯 개? 큰 방이 두 개 있고 작은 방에 네 개 있다. 화장실은? 오우. 화장실은 네 개?
완전 좋네. 내가 있던 곳에 비하면 여긴 완전 궁궐이네.
안을 계속 둘러본다.
10인 벙커는 이렇게 좋구나. 진작 이런 데서 살걸.
괜히 좁은 곳에서 살았어.
웃긴 건 벙커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없다.
이 좋은 벙커를 만들어 놓고 왜 들어와 살지를 않았지?
가장 미스테리한 일이다.
내가 이런 벙커가 있었다면 그날 메시지가 보인 순간 바로 뛰쳐 들어왔을 거다.
충분히 시간이 있었을 텐데. 왜 쓰질 않았을까.
비축된 식량도 없고 쓴 흔적도 없고 뭐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만들고 까먹진 않았을 텐데.
그런 건가? 그 뭐냐. 영화에서처럼 만든 사람이 이사하면서 말 안 해줬나?
모르겠다. 어쨌든 나만 이득이지. 처음 온 곳부터 이렇게 말끔한 곳을 찾다니. 완전 개이득이네.
이정도 봤으면 됐다. 뭐라도 건졌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느긋하게 다음 곳도 가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