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49화 (14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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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투명화의 약점은 세 개야."

남자 세 명이 오려면 약간 시간이 있기에 세아에게 빠르게 투명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세아.

"먼저, 몸이 투명해질 뿐이지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시각에서만 벗어나는 거지 후각, 청각, 촉각에는 벗어날 수 없어. 결국, 완전한 은폐 엄폐는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방심하면 안된다는 거야. 근데 이건 그렇게 크게 걱정 안 해도 돼. 사람은 시각에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못 느끼거든. 게다가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여기 사람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은 잘 안 하지."

"네."

"너도 생각해봐. 지금 우리가 여기 숨어 있는데, 밖에 누군가가 투명화를 쓰고 우리를 훔쳐보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어?"

내 말에 세아가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치? 그러니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해. 상대방의 사각. 단지 시각의 사각이 아냐. 의식의 사각이지."

"아아."

"두번째는 어쨌든 존재가 남아있다는 거야. 무심코 휘두른 각목이나 범위 공격, 바람에 날아가는 쓰레기. 이런 것들에 다 맞는다는 거지. 투명화는 무적이 아냐. 조심해야 해."

"네. 그건 알고 있어요."

"굉장히 중요한 거야. 투명화는 발자국을 지울 수 없고, 비 오는 날은 누가 봐도 비 맞고 있는 너를 볼 수 있어. 눈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들을 고려해야 해."

"네."

남자 세 명은 상당히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곧 있으면 늘씬한 백인 여자를 밑에 깔아놓고 허리를 흔들 수 있을 테니 기분이 좋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기회는 없을 거다.

이곳은 지난 4년 넘게 살아남은 녀석들의 마지막 장소가 될 거다.

"마지막 하나는 탐지 스킬. 주변 인간 탐지라는 스킬이 있어.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지. 그 스킬은 투명화를 쓰고 있는 인간의 기척도 잡아낸다."

"아아…. 그렇구나."

"근데 다행인 건 탐지 스킬을 가진 사람이 굉장히 적어. 내가 봐온 바로는 거의 없다시피 한 스킬이야. 아니면 쉽게 만나기 힘들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봐. 하나는 첫 번째 스킬로 탐지 스킬을 골랐을 확률이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쉽게 죽었을 거라는 것. 또 하나는 탐지 스킬로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정말 대단한 놈이 돼 있을 거라는 것."

"말 그대로 주변에 인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거죠?"

"맞아."

"그럼 생존에는 유리한 거 아니에요?"

"그렇지. 대신 공격도 방어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그래서 혼자는 쉽지 않을 거야. 다만 무리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상당히 유리해지겠지. 근데 그러면 그놈은 성장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고. 이래저래 좋은 능력이지만 대성하기는 상당히 힘들지. 대신 두번째 스킬로 탐지를 골랐으면…. 상당히 위험해지지. 생존율과 공격 성공률이 대폭 올라가거든. 내가 그랬으니까."

"그렇군요."

"그래. 결국, 너도 배워야 할 스킬이야. 탐지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해. 이제 놈들이 보일 거야. 투명화 써."

세아의 모습이 사라졌고 나는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몸을 숨겼다.

백마촌의 입구 쪽으로 걸어오는 녀석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밖에 나다니는데 주변 경계도 안 하고 저렇게 웃고 떠든다고? 내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게 운이라고 생각되는 녀석들.

무효화와 수면이 차례로 사용됐고, 세 놈은 쓰러졌다.

세아가 투명한 상태가 되어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세 놈이 쓰러질 때 살짝 숨을 들이키는 게 들렸다.

그리 유쾌한 장면은 아닐 테니까. 익숙해지려면 조금 걸리겠지.

"세아."

"네?"

"가서 처리하고 와."

마체테를 허공에 내밀며 세아에게 말했다.

"내가?"

"응. 그리고 투명화 쓰고 난 다음에 물건을 잡으면 그 물건은 투명화가 안 돼. 그러니 이 마체테까지 투명하게 만들고 싶으면 투명을 푼 상태에서 마체테를 잡고 투명을 써야 해."

투명을 푼 세아가 나타나서 마체테를 받았다.

그리고 모습이 사라졌다.

음식점의 문이 열리고 탐지에 세아가 밖으로 나가는 게 느껴진다.

망설임 없이 남자 세 명에게 다가간 그녀는 잠시 멈춰있다.

탐지를 더 돌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본다.

의외로 금방 빛이 터져 나왔다. 번쩍, 번쩍, 번쩍.

세 번의 번쩍임 이후 조금 뒤에 다시 음식점 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내는 세아.

딱히 우울한 표정이나 절망적인 표정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안아줬다.

말없이 내게 안기는 세아.

"잘했어."

"사람을 죽이고 왔는데 잘했다는 칭찬을 받다니. 정말 개 같은 세상이네요."

"그런 개 같은 세상의 훌륭한 주민이 된 거지. 코인은 얼마나?"

"세 명 합쳐서 2만 정도요."

세아의 기분이 어떤지는 잘 안다.

정말 좇같지만…. 의외로 해방감이 느껴지는 기분이지.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지키고 보호했던 것들을 단번에 부숴버리는 느낌이니까.

그렇게 나는 자리에 앉아서 세아를 품에 안고 다른 놈들을 기다렸다.

품에 마음에 둔 여자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지 않잖아?

그렇게 열한시 쯤 되자 또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엔 네 명. 모여 다니는 조합은 세 명 아니면 네 명이 많다.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아마…. 두명은 적은 거 같고 다섯 명은 많은 거 같아서?

무슨 소리야. 병신같이.

목적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알아서 먹잇감이 다가오니까.

이번 놈들은 그래도 나름 경계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무효화와 수면은 경계나 방어를 한다고 막을 수 있는 콤보가 아니다.

어김없이 쓰러졌고 세아가 밖으로 나갔다.

한 번에 하나씩 처리가 쉽지 않은지 빛이 약간의 텀을 두고 번쩍인다.

세아를 위해 좀 죽이기 편한 무기를 준비해줘야 하나? 한 번에 죽이기 쉬운 무기가 뭐가 있을까?

"후우."

문을 열고 돌아온 세아는 자연스럽게 내 무릎 위에 앉는다.

그거 잠깐 나갔다 왔다고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다.

내 손을 세아의 뺨에 대서 차가운 얼굴을 녹여주자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내 손에 무게를 싣는다.

"코인 들어오는 게 엄청나네요."

"여기 특성상 코인을 모아서 오는 곳이니까. 음식을 들고 오는 놈들도 있긴 하던데…. 별로 못 봤어."

"하아. 이번엔 네 명으로 5만 코인이 나왔어요."

"이번 놈들은 어지간히 죽이고 다녔던 놈인가 보네."

"그쵸? 코인이 많다는 건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다닌 놈들이잖아요? 죽어 마땅한 녀석들이겠죠?"

강한 척하고 있어도 내면은 상당히 복잡할 거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합리화가 필요하지. '마땅히 죽여야 했다.'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나는 잘한 거다.'

"물론이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설령 지금까지 한 명도 안 죽인 사람을 네가 죽였다고 해도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

세아가 내 품으로 파고든다.

그래도 세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보잘것없는 나지만 그래도 기댈 사람이라도 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저 고민으로 많이 번뇌하고 절망했었다.

결국, 수년간 자라면서 주입받은 윤리의식과 도덕관념을 극복하지 못하고 죄책감과 괴로움에 자신들의 정신을 좀먹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초창기 이 세상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죽은 곳에 떨어진 코인 주머니를 땡잡았다고 집어들었던 사람들도 많았고.

재미있는 세상이다.

날것의 세상. 가식이 없는 세상.

진지함을 버릴수록 즐거워지는 세상….

새벽 두 시.

기척이 또 잡혔다.

이번엔 세명. 불쌍한 놈들. 왜 오늘 백마촌을 가자고 생각했니. 안됐다 정말.

"세 명 또 온다."

"오빠."

"응?"

"다음 스킬은 뭐 배워야 해요? 탐지?"

"글쎄. 탐지만큼 좋은 스킬은 없지. 적어도 내 사고 방식에선 그래. 생존과 공방 모두를 생각하면 탐지를 빼놓을 수가 없어. 하지만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니 조금 고민해봐."

"흐음. 이미 투명화가 있으니 공격 스킬을 따로 배울 필요는 없겠죠?"

"아니지. 기절 같은 걸 배우면 더 좋아지지. 몰래 다가가서 싹 기절시키고 쓱싹 처리하면 되니까. 아니면 감전도 좋고. 그건 아예 죽여버리잖아. 투명화를 먼저 추천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야. 공격 스킬에도 시너지가 생기니까."

"그렇긴 하네요. 확실히 투명화가 좋네."

"응. 내가 생각하기엔 무조건 투명화가 우선이야. 그거 하나만으로도 남들에게 절대적인 우위에 설 수 있어. 하다못해 벽돌로 대가리를 찍는 것도 가능하니까. 아니면 쇠파이프라도."

"흐음."

"이런 것도 좋지. 투명화, 폭발, 비행."

"와…. 소름 돋네."

"나도 생각만 해본 거지만…. 멋있을 것 같지 않냐? 스텔스 전투기랑 다를 게 없어. 솔직히 말해서 저 조합은 카운터가 거의 없어."

"그래요? 그거나 해볼까."

"저거의 카운터는 보호막이랑 금속화 정도? 탐지야 원래 투명화 카운터니까 어쩔 수 없고. 근데 보호막이랑 금속화는 원체 쓰레기 스킬이라 별로 위협이 안되니까."

그렇게 말을 하면서 백마촌 입구로 다가온 남자 셋을 무효화와 수면으로 재웠다.

내 손짓에 세아는 바로 문밖으로 나갔고, 빛이 번쩍였다.

"또 뭐가 있어요?"

"고작 세 번째에 너무 자연스러워 진 거 아니니? 이번엔 코인 얼마나?"

"셋이 합쳐서 2만 5천?"

"준수하네. 또 스킬 조합 뭐가 있냐고?"

"응."

다시 내 무릎에 앉는 세아.

이번엔 세아의 옷 안으로 손을 넣는다.

이젠 가슴을 만지는 것에 별다른 태클도 하지 않는 세아. 좋은 현상이야.

"음. 투명화, 괴력, 가속화."

"괴력이랑 가속화? 아침의 그 남자?"

"응. 아침에 당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 조합은 상당히 강력해. 특히 너처럼 힘이 약한 여자라면 그 효과는 몇 배로 증폭되는 거잖아? 네 외모만 보고 방심할 테니까. 물론 투명화 때문에 보지도 못하지만. 그리고 가속화."

가속화는 정종찬 그 새끼 때문에 미리 알고 있었지. 사실 오늘 아침에 산 것도 정종찬 그 새끼 덕분일 수도 있다.

한번 봤었기에 대응을 할 수 있었으니까. 고맙다. 씨발 놈아.

"가속화는 탐지의 카운터야. 투명화의 카운터가 탐지인데 그 탐지의 카운터가 가속화니까 어떻게 보면 투명화의 약점을 하나 지우는 거지. 아니다. 더 지울 수 있구나. 소리나 존재감 같은 것도 고속으로 움직여버리면 눈치를 챈다고 해도 오히려 그게 역정보가 될 수 있으니까. 어쨌든 가속화는 투명화와 상당히 조합이 좋아. 가속화 자체만 봐도 사기적이고. 문제는 분명 그만큼 페널티가 클 거로 생각하지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 배낭을 뒤적여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내가 여태까지 적어놨던 스킬들.

세아에게 보라고 건네줬다.

"필요하면 가기 전에 복사해가. 지금은 보고 있고."

"이게 뭐예요?"

"배울 수 있는 스킬 리스트."

"아하…. 알겠어요. 일단 볼게요."

그렇게 세아는 내가 준 종이를 읽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세아의 가슴을 계속해서 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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