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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세아를 품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뒤늦게 피로가 몰려온다.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낸 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거기에 두번이나 하는 건 역시 쉽지 않아.
아무리 회복 포션을 들이킨다고 하더라도 체력이 후달리는게 느껴진다.
아마 내가 불면증이 없었다면 이대로 세아를 끌어안고 잠들었겠지.
"피곤해요?"
내가 불면증인 걸 모르는 세아는 몸을 돌아누워 나를 안아준다.
가슴. 말랑한 가슴.
얼굴이 반쯤 가슴에 파묻힌다. 내가 가슴 좋아하는 걸 알고 이러는 거겠지….
"좀 자요. 보니까 밤새운 거 같던데."
세아의 가슴, 그리고 따듯한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처럼 들린다.
지독한 불면증 놈이 아직 버티고 있지만, 이걸 참아낼 수 있을까?
"400번…. 이면 회복 포션 20개…."
"아휴. 이런 상태에서도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상점에서 회복 포션을 사서 하나씩 침대 옆에다 쌓아뒀다.
몽롱한 상태에서도 이러고 있는 나를 세아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지켜보고 있을 뿐.
세아를 물류센터로 돌려보내고 멀티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이렇게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누군가에게 감지 될 가능성이 적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아무 데서나 긴장이 풀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세아를 믿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약점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잘하는 짓이 아니다.
하지만 밀려오는 피로를 막아낼 능력이 없다.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자연적으로 찾아온 수면의 기회를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은데…. 이래선 안 되는데….
내 기억은 그게 끝이었다.
불면증이 오랜만에 잠에 굴복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볼에 닿고 있는 감각은 아마도 세아의 머리카락.
손에 닿고 있는 감각은 아마도 세아의 가슴.
따듯한 방안과 벌거벗은 몸. 팔도 다리도 자유롭다. 적어도 뭔가 좇되는 상황은 아닌거다.
"일어났어요?"
등을 보이고 누워있다가 나를 향해 다시 돌아눕는 세아.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데 목소리는 확실히 세아다.
"내가 잤나?"
"그럼요. 죽은 듯이 자던데요? 근데 왜 자면서도 가슴을 주물러요? 진짜 신기한 사람이네."
"내가 그랬어?"
"네. 막 꼭지도 꼬집던데."
"그만큼 네가 좋은가 보지."
내 말에 세아가 피식하고 웃는다.
"하여간. 말이라도 못하면."
세아는 내가 잠든 게 그다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다르다.
나에게 있어서 잠은 고통이고 애증이다.
간절히 원하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찾아오지 않는 존재.
게다가 잠자는 시간은 무방비한 시간.
평소에 탐지를 그렇게 돌리고 반사를 키고 숨어다닌다고 해도 자고 있을 때 당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그렇기에 잠은 꼭꼭 숨어서 몰래 처리해야 하는 행위였다. 마치 자위 같은 거지.
승희에게는 이미 허락했다고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잠을 세아에게도 튼 것이다.
승희도 세아도 이게 어떤 뜻인지 제대로 모르겠지.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중요한 거다. 결국, 목숨을 내준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
나는 세아를 꼭 끌어안았다.
가느다란 허리가 팔에 쏙 들어오며 부드러운 몸이 내 몸에 밀착된다.
나에게 특별한 여자가 된 세아. 안기는 느낌이 아까와는 또 다르다.
"그거 알아요?"
"말을 안 했는데 당연히 모르지."
"아잇…. 정말!"
세아가 내 어깨를 살짝 때린다.
귀여운 녀석.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지.
"이거 봐요. 투명."
세아가 사라졌다.
분명 품에 안고 있는 느낌은 나지만, 세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세아를 끌어안고 있는데 내 팔이 보이는 건 참 신기한 경험이다. 놀랍네.
"잠금 해제 마스터 찍고 투명화 배운 거야?"
"네. 신기하죠?"
"그러네. 만져지는데 보이지는 않다니."
머리맡을 더듬어 리모컨을 찾았다.
거기에 전체등 버튼을 누르자 모텔 방안의 불이 모두 켜졌다.
하지만 역시 세아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불을 켠 정도로 투명화를 볼 수는 없지.
예전에 대학교에서 다빈이를 만났을 때 겪어본 것이긴 하지만…. 그거랑은 느낌이 다르다.
나는 세아를 더듬어 가슴을 만져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슴을 만지는 거예요? 정말…. 대단해."
"확인해보는 거잖아."
"아니 무슨 확인을 가슴으로…. 아! 거긴 왜 또!"
손을 밑으로 내려 세아의 안쪽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보이지 않아도 움찔하는 세아가 느껴진다.
그리고 분명 세아의 질 속에 손가락을 넣었지만 내 손가락이 보인다.
묘하게…. 흥분된다.
"왜 또 이렇게 되는 건데요! 하앙."
언제나 감각으로만 알고 있던 내 손가락의 모습인데.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잖아?
세아를 똑바로 눕혔다. 이런 거야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손가락을 빼고 어느새 빳빳해진 내 자지를 세아의 보지로 가져다 댄다. 역시 이것도 보지 않아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아! 진짜. 무슨 자고 일어나서 바로 또…. 읏."
그대로 자지를 밀어 넣었다. 귀두가 눌리는 모습, 자지가 무언가를 헤집고 들어가는 모습.
처음 보는 광경이다. 아니 이런 걸 누가 본 적이 있을까? 아. 있기야 하겠지. 투명화 쓴 여자와 섹스하는 건 내가 처음이 아닐 테니까.
인간의 상상력은 다들 거기에서 거기라 내가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은 어딘가에서 이미 실현되어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
특히 이런 섹스는 당연히 누군가 이미 해봤겠지.
"아읏…. 진짜…. 흑."
귀두의 옆부분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쓸리는 모습. 번들거리는 자지가 압박되는 모습.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몸을 흔들고 있지만, 그 감촉은 여실하게 느껴진다.
신기한 느낌이다. 어디서도 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
보이지 않는 몸과 귀를 간지럽히는 신음, 그리고 이리저리 쓸리는 나의 한창 붉어진 자지.
이렇게 새빨개지는구나. 피가 몰려서 그런 거겠지?
쾌락을 위한 섹스라기보단 뭔가 연구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에 세아는 착실하게 절정으로 향한다.
헐떡이는 목소리와 나른해지는 신음. 그리고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몸의 떨림.
사정감이 느껴졌기에 몸을 세아에게 바짝 밀착해서 깊게 사정했다.
세아의 몸 안에 사정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이걸 보고 싶었다. 과연 어떻게 되는지.
예상은 했지만, 세아의 몸 안쪽에 나의 정액이 잔뜩 뿌려지는 게 보였다.
세 번째 사정이라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정액의 모습은 똑똑히 보였다. 하긴, 정액이 투명화의 영향을 받을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은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아마 투명한 메스 실린더 안쪽에 사정하면 비슷한 모양일까?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요…. 보이는 것도 없으면서."
"네 몸속에 뿌려진 내 정액이랑 발기가 풀린 내 자지."
"진짜…. 변태인가 봐."
솔직히 이건 변태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네. 나도 내가 살짝 어이없으니까.
"이제 투명화 풀어도 돼."
"해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세아가 나타났다.
세아의 몸에서 물건을 꺼내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을 치웠다.
그렇게 해댔으면서 아직도 부끄러워 하는 거야? 신기한 여자라니까.
그런 세아의 입술에 키스한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혀를 받아들이는 세아의 입술.
그렇게 키스를 하고 가슴을 빨고 조금 더 뒹굴뒹굴하다가 일어나서 간단히 씻었다.
씻으면서도 세아는 투명화를 쓰고 샤워기를 몸에 뿌려보는 등 별별 행동을 다 했다.
나도 해보고 싶어서 물을 뿌렸다가 머리에 물을 튀겼다고 한소리 들었다.
하긴, 머리 말리는 게 그렇게 귀찮다는 걸 알았으니 한소리 하는 게 이해된다.
다 씻고 나오니 시간은 아홉 시가 다 되어간다.
백마촌으로 오는 놈들을 잡아야 하는데.
세아랑 같이 해야 하나?
원래대로라면 세아를 물류센터로 돌려보내고 혼자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세아도 경험해봐야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세아야."
"응?"
옷을 다 입고 세아에게 물어봤다.
"나는 지금부터 사냥을 할 거야."
"사냥요?"
물류센터로 돌아갈 줄 알았던 세아는 내 말에 깜짝 놀란다.
"그래. 따지고 보면 나랑 아무 상관 없는 놈들을 죽이고 코인을 얻는 거지. 나는 너도 같이했으면 좋겠어."
정말 쓰레기 같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세상이 이따위라고는 하지만 사람 죽이는 걸 같이 하자고 권유하다니.
하지만 나에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선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다.
물류센터에 먹을게 쌓여있고 자생이 가능해지는 상황이라 굳이 다른 이들을 죽일 필요가 없긴 하다.
하지만 결국은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은 온다.
그때는 주저하고 망설일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미리 준비 해야 한다.
세아는 그런 것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녀 역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며 살아왔던 사람이니까.
힘이 없어서 남을 해치지 못했을 뿐, 각오는 이미 오래전에 했을 것이다.
"알았어요."
역시나 굳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하는 세아.
나는 그런 세아를 안아주었다.
"투명화를 얻었다고 해도 지금 네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어. 내가 처리하고 마무리만 네가 하는 거야. 그리 걱정은 하지 마."
"네."
이미 아까 오전에 두 놈을 처리할 때도 세아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현주와 지혜랑 있었던 음식점.
그곳에 이젠 세아와 둘이 있게 되었다.
그때보단 지금이 훨씬 낫다. 적어도 세아는 내가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여기 있으면…. 사람들이 이쪽으로 올 거라고요?"
세아의 질문에 백마촌과 안나에 대해서 전부 다 이야기해줬다.
현주와 지혜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다소 생략된 부분이 많았지만, 어지간한 것은 다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세아는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이런걸…. 계속하면서 살아왔다고요?"
"대충."
"진짜 어마어마한 인생이네요. 오빠도."
"어마어마하긴. 그냥 사람 죽이는 살인마지."
"너무 그렇게 자신을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래. 나와 상관있는 한 사람을 위해 나와 상관없는 사람 천명을 죽여야 한다고 해도 별 감흥은 없다.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은 공평하다고?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10시가 조금 넘는 시간.
아직 백마촌의 상황을 모르는 손님이 등장했다.
"온다."
내 말에 조금 긴장하는 세아. 나는 그런 세아의 등을 쓰다듬어준다.
숫자는 세 명. 아마 셋 다 남자겠지.
대규모 스킬 무효화까지 생긴 이상 이제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