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46화 (14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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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괜찮아요?"

"응. 괜찮아. 세게 맞지는 않았어."

세아가 내게 뛰어와 부축해준다.

저 작은 몸으로 나를 일으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행위 자체가 고맙다.

그래도…. 스타일 구기네. 멋진 모습을 보여줘도 시원찮은데.

일어나서 나를 걱정하는 세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잠든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 골치 아픈 타입이네.

스킬은 아마도 괴력과 가속화.

무효화 한방에 괴력과 가속화가 전부 지워져서 일반 펀치 정도만 배에 들어와서 다행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내 배에 빵꾸가 났을 거다. 와. 식겁했네.

생각해보면 막강한 조합이다.

순수하게 물리력으로 승부하는 타입이잖아? 나와 상성이 안 좋은 부류다.

특히 제압해 놓을 수 없다는 게 상당히 귀찮다.

결국, 이놈에게 뭔가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뜻인데.

뭐로 구속해놔도 다 끊어버릴 거 아냐…. 쇠사슬 같은 게 있으면 몰라도.

괴력. 생각보다 좋은 스킬이다. 가속화. 역시 좋은 스킬이다.

전부 무효화 한방에 다 꺼지기 때문에 내가 유리하긴 하지만, 까딱 실수하면 내가 뒤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대.

이놈을 제압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스킬 사용 불가지대 정도? 근데 그건 없으니까.

포기하자.

방금도 이놈이 가속화를 걸고 나를 공격할 게 아니고 뒤로 빠졌다면 오히려 놓쳤을 수도 있어.

이런 놈은 빠르게 죽이는 게 차라리 나아.

"세아. 이리 와봐."

"어? 나?"

"이놈을 죽일 거야. 그리고 이놈에게서 나오는 코인은 너에게 들어가도록 할 거야."

"응…."

"그러니 이놈에게 가까이 붙어. 적어도 나보다 가까이 붙어야 해."

방금 상황을 보고 살짝 두려워하는 모습이긴 하지만 나를 믿는지 남자의 곁에 바짝 붙는다.

세아가 확실히 붙은 걸 확인하고, 나는 마체테를 녀석의 목에다가 휘둘렀다.

아무리 스킬이 좋아도 방심하면 끝이다. 참 허무하지.

남자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코인은 세아에게 빨려 들어갔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얼마나 들어왔어?"

"11만…."

"뭐, 그럭저럭 이네. 다음은 저놈."

"11만이 그럭저럭 이라고!?"

"스킬 두 개 이상 가진 놈이라면 코인을 모아 놓았을 확률이 높아. 모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니까. 암튼 다음 놈."

"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놈은 네가 해봐."

"내가? 으…. 알았어."

내 마체테를 받아서 장작 패듯 신중하게 목을 겨누는 세아.

혹시 몰라서 수면을 쓸 준비를 하고 지켜봤다.

세아가 잘못 휘둘러서 죽지는 않고 잠만 깨워버릴 수도 있으니까.

콰직!

마체테가 목을 찍는 불쾌한 소리.

역시 여자애라 그런지 힘이 모자란다. 단번에 즉사시키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치명상이 됐는지 남자는 끄륵거리며 팔을 허우적거린다.

"한번더."

"어??"

"피 튀어도 괜찮아! 어차피 사라지는 거 알잖아! 백화점에서는 깔끔하게 했으면서 왜 얼타!?"

내가 매섭게 외치자 세아는 다시 마체테를 찍었다.

결국, 빛이 되는 남자. 코인이 세아에게 빨려 들어간다.

"이번엔?"

"4만…. 정도."

"합쳐서 15만인가. 상당히 괜찮네. 너 전에 5만 정도 있었지?"

"어? 네…. 그 정도."

"지금 그럼 20만 됐겠네?"

"네."

"잠금 해제는?"

"네?"

"숙련도 말야."

"아. 92퍼센트요."

"92퍼센트. 많이 했네. 좋아. 일단 올라가자. 아니지."

"응?"

“잘했어.”

사람을 죽여놓고 칭찬하는 게 우습지만, 그래도 해준다.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

괜히 후회하고 흔들리고 반성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내가 등을 토닥여주니까 내게 안기는 세아.

그런 세아를 보고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씻고 싶다."

"엥? 씻으면 되잖아요?"

"아니. 물 받아 놓고 찰랑거리면서 너랑 씻고 싶다고."

"으. 그건 또 무슨…."

"나가자."

투덜거리는 세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전에 현주와 지혜랑 갔던 모텔. 거기 월풀이 좋았지.

월풀이 있는 모텔을 찾는 척 하며 몇 군데를 들렸고 자연스럽게 전에 갔던 그 모텔로 향했다.

약간의 연기를 하며 여기가 좋겠다고 말하곤 지난번에 했었던 월풀 방의 옆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여자랑 갔던 모텔을 여자를 바꿔서 또 오다니. 정말 쓰레기의 표본 같은 짓이네.

게다가 그 다른 여자들은 직접 죽였잖아.

막장이네 막장이야. 이런 거에 둔감해지는 나 자신이 점점 무서워진다.

욕조를 한번 닦고 물을 받았다.

세아의 표정을 보니 약간 의심하는 표정인 거 같은데 따로 내색은 하지 않는다.

근데…. 알아차릴 방법이 없잖아? 나만 입 다물면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생각할수록 세아에게 쓰레기 짓을 하는 거 같네.

뭐 이미 하수구 오물인데 구정물 한 바가지 더 붓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월풀에 들어가니 몸이 풀리는 기분이다.

게다가 품에 안겨있는 세아. 이전의 두 여자와 느낌이 다르다.

거짓된 관계였던 것과 그나마 진실한 관계.

느껴지는 따듯함이 비교가 안된다.

세아도 뜨거운 물에 몸이 풀리자 몸이 노곤해지는지 내게 착 달라붙어서 나른한 표정을 짓는다.

좋다. 역시 이런 기분인 거지.

"세아야."

"으응?"

화장실을 뒤덮는 뿌연 수증기 안에 있는 세아의 모습은 상당히 이쁘다.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어서 그런가? 더 어려 보이는 기분이다.

약간 죄를 짓고 있는 느낌. 누가 이 여자를 스물로 보겠어.

"스킬 말인데."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하던 세아가 약간 실망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착각인가?

뭔가 달콤한 말이라도 할 줄 알았나? 음…. 그런 데는 소질이 없는데 말이지.

그래도 스킬 이야기라니까 바로 관심을 가진다.

하려던 이야기나 계속해야지.

"말했듯이 스킬을 고급에서 숙련도 100퍼센트를 채우면 다음 스킬을 배울 수 있어."

"응."

"무슨 스킬들이 있는지 알아? 처음에 스킬 고를 때 본 거 기억나?"

"뭐…. 여러 개 있었어서 다는 기억 못 하죠. 인상 깊었던 거 몇 개? 비행이나 투명화나 번개나…."

"그래. 스킬 종류는 상당히 많아. 근데 내가 추천하고 싶은 건 크게 두 가지로 갈려. 공격계와 생존계."

"공격계? 생존계?"

"응. 말 그대로야. 공격이냐 생존이냐 그렇게 크게 갈리는 거지."

"오빠는 뭘 했으면 좋겠는데요? 적어도 나보다는 많이 알 거 아냐."

"그래.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내가 추천하는 스킬은 둘 중 하나야. 기절과 투명화."

"기절? 투명화? 기절은 기절시키는 것일 거고 투명화는 투명해지는 것일 거고."

"참 직관적인 스킬들이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근데 투명화는 알겠는데 기절은 왜요?"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스킬중에 가장 확실하니까. 감전이라고 공격 스킬중 가장 좋은 게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좀 별로야. 거리가 일단 기절보다 짧고, 반사 당하면 쓴 사람이 위험해지니까. 게다가 쓰면 상대는 거의 죽어서…. 그게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으니까."

"으음. 승규 아저씨가 감전이죠?"

"응. 쓰는 거 본 적 있니?"

"닭 잡을 때…? 한방에 전기구이가 되던데요."

"와…. 씨. 그건 좀 탐나네. 즉석 전기구이라니."

"맛있더라고요. 오랜만에 치킨 먹어서 정신없이 먹었죠."

"감전에 그런 숨겨진 효과가 있다니. 진심으로 탐나네."

"아무튼. 그래서요?"

"개인적으론 네가 그 두 개 중의 하나를 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둘 중엔 뭐가 나은데요?"

"둘 다 장단이 있지. 기절은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지. 대신 반사에 취약하고 상대를 기습해야 해. 투명화는 장점이 더 많지. 소리만 죽일 수 있으면 최고의 스킬이니까. 다만 탐지 스킬에 약하고 상대를 제압하려면 결국 물리적인 힘을 써야 하는 데 너는 힘이 약하니까. 조금 불리하지."

"으음. 어렵네요."

"원래 이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데. 본인이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거거든. 본인의 목숨은 본인이 챙겨야 하니까. 그렇게 고민한 다음에 나랑 이야기 하는 거면 몰라도."

"어차피 같이 살면 기왕이면 서로 상호 보완적인 게 좋지 않아요?"

"그렇게 나랑 같이 살고 싶어?"

"아잇…. 진짜!"

욕조의 물을 내 얼굴에 뿌리는 세아.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라니.

여자들이 죽도록 싫어하는 상황 아닌가? 정말 알 수가 없어.

세상이 이따위로 변하니 결국 그런 관념들마저 다 박살 나는 건가?

"상호 보완적이라. 그래 그것도 고려 한 거야. 시너지라고 하지? 근데 내 입장에선 너는 서포트지 딜러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 최전선에서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흐응. 왜요?"

"당연한 거지. 누가 아끼는 여자를 위험에 빠지게 하고 싶겠어."

나를 바라보는 세아의 눈빛이 마치 고양이 같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좋아하는 거 같긴 한데….

일단 내 품에 더 쏘옥 들어오려고 하는 거 보니 싫지는 않나 보다.

"흠. 그럼 투명화."

"괜찮겠어?"

"일단…. 멋있잖아요? 나는 지금 스킬도 잠금 해제고. 거기에 투명화면 은신이잖아. 기왕이면 특성에 맞춰서 도둑 트리를 타야지. 어라? 그럼 나 도둑년 되는 건가?"

"풉. 도둑년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렇네. 단검 하나 들고 다니면 딱 암살자네."

"오늘부터 단검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

"스킬 중에 그런 비슷한 스킬 있던 거 같은데. 뭐 고를만한 스킬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투명화가 제일 좋을 거 같아요. 가장 맘에 드네."

"그래. 그럼 그렇게 하고…."

나는 고민했다.

매혹 스킬의 존재. 어차피 알게 될 테니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다만 내가 매혹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비밀로 해야겠지.

내가 매혹 스킬을 가지고 있는걸 아는 순간 모든 관계가 의심당하고 부정당한다.

절대로 가지고 있는 티를 내면 안될 일.

"들어봐. 중요한 스킬이 하나 있어. 매혹이라는 스킬이야."

"매혹? 이름만 들어도 뭔지 알겠네요. 유혹하는 건가?"

"비슷한데…. 달라. 내가 알기론 매혹은 이성에게 쓸 수 있고 쓰면 걸린 사람이 건 사람에 대해 호감도가 최대가 돼."

"그게 유혹 아니에요?"

"뭐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달라. 매혹을 당하면 건 사람이 시키는 건 다 하게 되거든."

"와…. 그건 조금 무섭네요. 그럼 내가 매혹을 배우고 오빠한테 개처럼 기라고 하면?"

"그럼 네발로 열심히 기면서 멍멍 짖기까지 할걸?"

"어우. 진짜로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쓰는 여자를 봤거든. 직접 보기도 했고."

물론, 나도 가지고 있지. 그리고 저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세희 년이 쓰는 걸 봤으니까.

"헐…. 그럼 나 매혹할래요."

"...무슨 짓을 하려고? 그리고 나는 매혹 대책은 다 세워 놨어."

"어? 그래요? 뭔데요?"

"반사."

"반사? 말 그대로 반사? 무지개 반사?"

"...너 스무 살 아니지?"

"아 왜 그게 또 그런 쪽으로 넘어가는데요! 아무튼…. 반사면 매혹 안 당해요?"

"응. 매혹이나 기절이나 번개나 감전이나 뭐 아무튼 그런 건 다 반사할 수 있어."

"어라? 그럼 반사부터 배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투명화 쓰고 있으면 못 걸어."

"아하. 안보이니까 못쓰는구나?"

"응."

"그럼 오빠는 왜 투명화 안 배웠어요?"

"나도 이제 배워야지."

"흐응…. 근데 그럼 매혹이 제일 좋은 거 아니에요? 엄청 좋은 스킬 같은데? 몇 명까지 돼요?"

"마스터 하면 네 명."

"헉. 그럼 무적 아니에요? 좋은 스킬 가지고 있는 네 명을 매혹하고 다니면 스킬이 네 개 더 생기는 건데?"

"일단 매혹은 시간이 무제한이 아니야. 제한시간이 있어. 마스터 하면 두 시간."

"아…."

"그리고. 매혹은 부작용이 많아. 분명 좋은 스킬이긴 한데 부작용도 엄청나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랄까."

"아하."

그래. 매혹이 무적의 스킬임은 변함없다.

리스크가 오기 전에 다 잘라내 버리면 무적의 군단도 가능하지. 단기적으로 관리만 잘한다면 그보다 나은 스킬은 없다.

그렇기에 승희나 미나, 세아에겐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다.

감당하지 못할 힘은 아예 쥐여주지 않는 게 제일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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