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43화 (14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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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비즈니스호텔.

그리고 잠들어 있는 여자.

볼수록 신기한 느낌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감히 말하건대 이 여자를 싫다고 하는 남자는 없을 거다. 그정도로 완벽한 미모.

하지만 웃긴 건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다.

이 정도로 가슴도 크고 슬렌더면 완전 내 취향인데…. 섹스를 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하지…. 사랑받고 싶다? 아니다.

사랑이라고 하기보다는 이 여자가 나를 믿고 의지하게 하고 싶다? 그런 느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나에게도 이런 기분이었는데 말이지.

대충 그런 거다.

섹스가 남녀 관계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것.

이 여자의 보지에 자지를 넣고 흔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러면 뭔가가 부서지는 거다.

물론 몰래 하면 상관없긴 하겠지만 그러기는 싫다.

정상적인 관계를 쌓아가는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느낌?

그렇기에 서서히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쌓은 뒤 그걸 확인하는 것으로 섹스를 하고 싶다는 거다.

함부로 망가트리고 싶지 않은 관계.

아무튼, 나도 이런 건 익숙하지 않아서 딱 정리가 안 된다.

지금은 그냥 도와주고 싶다. 따로 대가나 이득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냥 돕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기분이 들것 같다.

이런 게 홀리는 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홀린 거야?

계속 지켜보면서 생각해봤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말은 할 수 있나?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러고 있는 거지?

일단 안전을 위해서 매혹을 걸까 하다가 말았다.

매혹…. 이제는 조금 꺼려진다.

진실한 관계로 시작 하고 싶으면 매혹 따위는 걸면 안 된다.

미나나 세아에게 빠른 관계 형성을 위해서 썼었고 다행히 부작용은 없었지만, 앞으로는 쓰지 않을 거다.

게다가 어차피 이렇게 자유롭게 가둬진 여자면 위협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다.

반사도 있으니 급습당할 리도 없고.

팔짱을 끼고 여자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고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리니 일어났다.

눈을 뜨고 그 이쁜 얼굴을 찡그리며 윗몸을 일으킨다.

그러더니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앉은 그 상태로 란제리를 벗기 시작했다.

"아냐아냐아냐."

내가 손을 흔들면서 고개를 가로젓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아니 미친…. 어떤 취급을 받았길래 옷부터 벗는 거야.

"옷 입어. 옷."

아이 씨발…. 알아듣긴 하나?

"어…. 한국말 할 줄 알아? Can you speak Korean?"

여자는 나를 보고 힘없이 말했다.

"조금….#@#@%^#$^#^#"

뒤에는 뭐라고 말했는지 전혀 못 알아들었다. 저거 어느 나라 말이지? 러시아인가? 씨발. 러시아어는 쥐꼬리도 아는 게 없는데. 근데 조금이라고 말한 거야?

"좋아. 그럼…. English? Can you speak English?"

"#@%@%@^#^#"

뭐라고 뭐라고 또 중얼거린다.

와 씨. 그래도 영어로 말하면 적당히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라도 채겠는데 저건 진짜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씨발 왜 영어도 못 하냐. 존나 답답하네. 그래도 한글이랑 영어 단어는 조금 알아듣는 거 같은데.

"이름이 뭐야. 이름. Name. What your name?"

"Name? 이름?"

"오! 그래. 이름. 니 이름."

"안나 @#@#^$%&$!$."

"뭐?"

"안나. 이름. 안나."

"안나?"

고개를 끄덕이는 안나.

"좋아. 안나. Follow me."

나는 다가가서 여자의 팔목을 잡았다.

깜짝 놀라는 여자.

나는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나를 따라오라고 손짓했고, 여자는 반신반의하면서 나를 따라왔다.

문 앞, 입구에 있는 자물쇠. 거기에 꼽혀있는 열쇠를 빼서 그대로 던져버렸다.

놀라는 표정의 여자.

"너는 자유야. You Free!"

"Free?"

"그래. Free. 자유!"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나는 그런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고 옆방의 문을 열었다.

내가 방문을 열자 놀라는 여자. 방에 들어가서 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여기 있던 놈 죽었어. 어…. Boss Kill. He is die."

"Die? $%^%!$!$#%^?"

아오…. 씨 자꾸 못 알아듣는 말 하지 말란 말야. 하긴, 나도 한국말 하고 있지. 답답하기는 서로 마찬가지겠네.

그렇게 한참을 손짓 발짓을 하며 서로 통하지 않는 말로 이야기 한 끝에 결국 그녀에게 현재 상황을 이해시켰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나를 끌어안으며 뭐라고 뭐라고 외치며 내 양쪽 뺨과 이마에 키스한다.

약간 축복? 그런 느낌인가. 되게 성스러운 느낌이네.

그리고 란제리에 팬티만 입고 있는 엘프 같은 여자가 이러니 나도 좀 성스러워졌다. 聖이 아니고 性이지만.

똘똘아. 지금은 아냐. 좀 참아.

우여곡절 끝에 옷을 입으라는 것까지는 해결했다.

옷을 입으니 한결 더 이뻐진 모습이다. 근데 말이 이렇게 안 통해서야 뭘 어떻게 살지? 진짜 답답하네.

마음 같아서는 본진으로 데려가서 살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한국어를 가르칠 자신도 없고 의사소통 할 때마다 이 지랄을 떨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약간 부담스럽다.

그래. 내 이 기분의 정체를 알아냈어.

부담스럽다. 그게 정답인 거 같다.

보기에 좋긴 하지만…. 곁에 두고 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래. 그런 거다. 쾌락은 좋아도 책임지고 싶지 않다.

또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풀어주거나 버리거나 죽이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남 주기는 아깝고 내가 먹자니 번거로운…. 꽁치?

이러면 뭐…. 결국 갈 곳은 한군데뿐이지. 나에겐 만능 해결사 및 짬 처리할 수 있는 물류센터가 있다.

내 은밀한 저장고, 혹시 모르니 키우고 가꾼 어장.

필사적인 손짓 몸짓으로 안나에게 머물 곳을 알려주겠다고 하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잔뜩 겁을 먹은 안나. 하지만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준다.

밖을 걸어가면서도 한껏 두려운 표정이다.

이렇게 이쁜 여자가 두려워하는 표정을 보니 마음이 아플 정도.

와씨. 미모만으로 사람을 이렇게 홀리냐? 대단하다 정말.

한참을 걸어 물류센터 근처에 도착한 나와 안나.

살아있는 나무로 감싸져 있는 물류센터를 바라보는 안나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이거…. 그림이 되는데? 숲으로 들어가는 엘프의 모습이야.

활만 하나 구해서 들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있으라고 해야겠다.

그럼 장르가 바로 판타지로 바뀔 거 같은데.

"형, 오늘은 또 왜 이리 아침 일찍부터…. 헐."

진영이가 안나를 보고 그대로 굳는다.

그래. 너의 그런 반응 인정한다. 서현이한테는 말하지 않을게.

진영이는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게 실례인 건 아는지 빠르게 표정관리를 했지만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는다.

"리더 불러."

"어…. 알았어요."

그다음은 비슷한 모습이었다.

유부남인 승규도 남자인 이상 별반 다를 게 없지. 똑같이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아이고 애 아빠야. 댁은 그러면 안 되지.

"진영아. 유정이 좀 불러줄래?"

"형수님이요? 알았어요."

무전기를 들고 뭐라고 하는 진영이와 다소곳하게 서서 주변을 보는 안나를 놔두고 나는 승규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온 여자 두 명. 그 기름녀하고 보호막. 잘 지내요?"

"어. 잘 지내지.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데 잘됐어. 게다가 기름 생성은 정말 기가 막히지. 유정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요. 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서로 파벌 나누고 싸움질 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조짐은 없어. 이런 세상에서 팔자 좋게 그런 짓 할 여력이 어딨겠어."

"그래도 주의해요. 여자들 그런 거 무섭다던데."

"그렇긴 하지. 근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그럼 됐고요. 그럼 갈게요."

"정말…. 너는 항상 네 용건만 보고 가는구나?"

"왜요? 그럼 안돼요?"

"아니 상관은 없는데…. 세아는 만나고 가라. 걔 뒷감당하기 쉽지 않다."

"무슨 뒷감당요?"

"니가 민주랑 소희 데려다주고 간 날 그냥 갔다고 며칠을 뚱해 있었어. 신경질도 잔뜩 부리고."

"걔가요?"

"그래. 그러니까 좀 만나고 가라. 여기 사람들을 위해서."

"그래요. 그럼. 아. 밖에 나갈 준비하고 오라고 해줘요. 안 그래도 볼일 있으니까."

"진영아. 세아도 나갈 준비하고 오라고 해줘. 성철이 왔다고 말해주고."

"네."

그렇게 세아를 기다리고 있는데 승규의 부인인 유정이 하율이를 안고 나왔다.

안나를 보고 놀라는 유정. 하긴 여자라도 저 미모가 놀랍긴 하겠지.

내가 데리고 와서 돌봐주게 됐다는 승규의 말을 들은 유정이 안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영어 못한데요."

내가 말해주자 뭔가를 하나씩 물어보는 유정. 뭐야. 영어가 아닌데?

유정의 말을 들은 안나가 갑자기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더니 빠르게 뭐라고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걸 들은 유정이 뭐라고뭐라고 대답한다.

"어? 대화하고 있어?"

"러시아 말인가 보다. 유정이 그쪽 말 할 줄 알거든."

"어? 그래요? 다행이네."

안나는 뭐라고 계속 말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유정은 그런 안나를 끌어안아 준다.

졸지에 사이에 끼게 된 하율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나의 등을 두드렸다.

하…. 이거 참…. 이상한 곳에서 눈물샘을 자극하네.

"내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여보."

승규에게 말하는 유정. 그러더니 나를 보고 말한다.

"매번 고생이 많아요. 음식 챙겨 놓은거 많이 있으니 이따가 꼭 가져가요."

내가 뭘 했다고 고생이 많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준다니 받아가야지.

승규의 아내인 유정은 올해 서른인데도 굉장히 어른스럽다.

물류센터를 잡음 없이 운영하는 것에는 유정의 지분이 아주 높을 거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대단한 거지.

어쨌든 아직 울고 있는 안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유정.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세아가 나왔다.

"그럼 좀 빌려 갈게요."

"그래. 알겠다."

"잘 가요!"

"뭘 빌려 간다는 거야? 내가 물건이야? 막 빌려 가게?"

투덜거리면서도 나를 따라 밖으로 나오는 세아.

입구와 조금 멀어지자 나는 세아에게 말했다.

"아. 빌려 간다는 말은 틀렸네."

"당연하지. 내가 물건이냐고. 왜 사람한테 그런 말을 쓰는 거야?"

"내건 데 내가 왜 빌려 가. 그냥 가져가는 거지."

내가 세아의 귓가에 속삭이자 세아의 얼굴이 빨개진다.

"이 변태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를 밀려 하는 세아.

나는 오히려 그런 세아의 팔을 잡아당겨 내 품에 안았다.

"뭐…. 뭐 하는 거야! 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누가 본다는 거야? 그리고 보면 어때?"

"아! 싫거든!"

그러면서 나를 밀어내지만, 손에 힘이 별로 안 들어있다.

귀여운 녀석. 하여간 하는 짓이 다 귀엽다니까.

어느새 나와 세아는 손깍지를 끼고 걸어가고 있게 되었다.

그렇게 걷다가 진영이가 설치해둔 CCTV 근처가 되니 갑자기 손을 뿌리치려는 세아.

나는 안 놔주려고 했지만 세아가 거의 난동을 부리다시피 해서 어쩔 수 없이 놔줬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몰라. 신경 꺼요."

그러더니 카메라가 있는 곳을 지나가니 다시 슬쩍 손을 잡는다.

미치겠네. 이런 귀여운 생물이라니.

밤을 새워서 피곤한 기색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세아를 만날 계획은 없었는데…. 오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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