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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
호텔이나 아파트같이 보안이 되어있는 곳은 번거롭다.
인간이 쉽게 돌파하기 힘든 방어력을 가진 데다가 카드나 비밀번호가 없으면 통과하기 힘든 구조를 가진 곳.
옛날부터 저런 곳에 처박혀 있는 놈들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스스로 밖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
지금이라고 다를 게 없다.
비즈니스호텔. 여기는 비밀번호도 없다. 방에 들어가려면 카드키가 있어야 하는데 카드키가 없으면 조용한 급습 같은 건 무리다.
프런트에 마스터키가 있을까? 있을 리가 없지.
여길 제법 오래 점거한 거 같은데 마스터키 같은걸 방치해 놓았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된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니까. 지금은 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일단 1층에 있던 놈 하나부터 처리한다.
탐지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조용히 다가가 스킬 광역 무효화로 혹시 있을 반사를 벗기고 수면으로 재운다. 마체테를 휘둘렀고 코인이 들어왔다.
[5,90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완벽한 시퀀스.
스킬을 쓸 때마다 생각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고 더는 반격당할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사람이 보이면 매크로 돌리듯 타탁 하고 쓰면 된다. 정말 맘에 든다.
이제 남은 건 네 명.
위에 있는 거로 봐선 방안에 들어있는 거 같은데…. 역시 현주 파워를 쓸 수밖에 없나?
밖에서 폭발 좀 날리면 쫄아서 튀어나오겠지? 게다가 지혜는 기절이다. 저 두 명의 조합으로도 사실 다 쓸어버릴 수 있어.
현주와 지혜를 끌고 위로 올라간다.
3층에 기척이 느껴지는 방 두 군데를 말해주고 둘에게 말했다.
"여기랑 여기. 안에 사람 있거든? 5분 뒤에 폭발로 요란하게 터트려서 두 놈 끄집어내고 제압해. 죽여야 하면 어쩔 수 없는데 될 수 있으면 기절로 제압만 해놔. 그리고 여기서 대기해. 알겠지?"
"응."
"네."
뭐…. 둘이라면 알아서 할 수 있을 거다.
만약 반격당해서 죽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근데 저 둘의 조합이 당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저들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멍청하진 않겠지.
나는 그렇게 지시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5층. 스위트 룸이 있는 곳.
방 두 개에서 각각 하나씩 기척이 느껴진다.
뭘까? 이해가 잘 안 갔는데 방 하나를 보고 알았다.
스위트 룸 문에 경첩이 박혀있고 자물쇠가 잠겨있다.
누가 봐도 안에 누군가를 감금해놓은 거다. 정말…. 화끈하네.
호텔 방문에다 이 지랄을 해놓다니 대단하다 정말.
이것만 봐도 대충 알 것 같다.
스위트 룸 안에 있는 게 보스. 이 감금 방에 있는 건 아마도 여자.
그것도 아마 상등품? 백마촌 같은 데서 함부로 굴리기 아까운 여자?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그거 말고는 따로 생각나는 게 없네.
뭐. 확인해보면 되겠지.
이제 곧 폭발이 터질 시간. 안에서 튀어나오면 바로 수면을 걸 수 있는 위치에 숨어 조용히 기다렸다.
자 이제 시간이 됐지?
쿵. 쿠웅쿠웅.
불길한 폭음소리와 몸을 흔드는 진동.
와. 무섭네. 건물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이 정도면 안 깨는 놈이 이상한 거지?
탐지로 지켜보고 있으니 기척 하나가 밖으로 나온다. 다른 기척은 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문을 열고 뛰쳐나오는 남자 하나.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배나온 아저씨. 그런 건 상관없다.
무효화에 수면 콤보가 들어갔고 남자가 쓰러졌다.
재빨리 달려가서 열렸던 문을 잡아보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아 문이 닫혔다.
아…. 씹. 귀찮네. 정말. 아니지. 이놈이 키는 가지고 있겠지? 밖으로 나오면 문이 잠기는 걸 뻔히 아는데 맨몸으로 다니진 않겠지.
남자의 몸을 뒤졌다. 남자를 뒤지는 건 언제 해도 끔찍하다. 남자 몸에 손이 닿으면 벌레를 만지는 기분이야.
주머니에서 카드키 두 장을 찾았다. 그리고 열쇠도.
하나씩 남자가 나왔던 문을 대봤다.
한 개는 반응이 없는데 다른 하나는 삐리릭 하며 문이 열린다. 오케이 이건 됐고.
이건 자물쇠 방문 카드키겠지? 이 열쇠는 저 자물쇠 것이고?
자물쇠를 열쇠로 열었다. 찰칵하며 깔끔하게 열리는 자물쇠.
카드키를 대봤고, 삐리릭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역시 맞군. 좋아 좋아.
어차피 보스는 수면에 걸려 있으니 이쪽부터 확인해본다.
안쪽, 살며시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를 봤다.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기척. 다가가니 어슴푸레 사람의 인영이 보인다.
혹시 모르니 무효화를 걸고 재웠다. 이러면 끝. 위협이 될만한 상황은 없어졌고.
어디 확인을 해볼까?
가까이 다가가 누워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생각했던 대로 여자다. 여잔데…. 엘프?
수면으로 재웠으니 깰 리는 없어서 방의 불을 켰다.
그러자 나타난 여자의 모습.
침대에는 엘프가 누워 자고 있다.
화사한 벌꿀 색 금발과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높은 콧대와 갸름한 얼굴.
얇은 란제리 하나만 입고 있어서 훤히 드러나는 큰 가슴과 잘록한 몸매. 귀는 뾰족하진 않았지만 마치 엘프 같았다.
세상에 이런 여자가 진짜 존재했나 싶을 정도로.
"와."
저절로 와 소리가 났다.
솔직히 말하면 미나보다 이쁜 거 같다. 이 엘프…. 아니 이 여자는 그만큼 엄청나다.
미나가 여자 중에서 가장 이쁜 사람이라면 이 여자는 그냥 이쁜 사람의 기준 같은 느낌?
보고만 있어도 지키고 아껴야 할 문화재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이런 여자가 있을까?
가만히 서서 여자를 바라봤다. 손대는 게 불경한 느낌이 들 정도인 여자.
근데 왜 일어나질 않지?
이 정도 소란이 있으면 일어나야 할 텐데.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답을 찾았다.
아주 익숙한 알약. 이건 수면제네.
나름 불면증 전문가라 어지간한 수면제를 보면 알 수 있다. 다 먹어 보기도 했던 것들이니까.
이건…. 조금 효과가 센 건데. 불면증이 있어서 먹은 건 아닌거 같고.
아니…. 본인이 먹은 건가? 아니면 이놈들이 먹인 건가?
뭐가 됐든 지금은 당장 일어날 리 없는 강한 수면제다.
잠시 생각해본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이는 건…. 인류의 손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죽이는 건 패스.
본진? 본진으로 데리고 가야 하나? 현재 비어있는 곳은 거기 밖에 없는데.
일단 고민은 조금 뒤에 하자. 지금은 마무리부터 해야지.
탐지에 느껴지는 3층에 네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넷 다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 보면 알아서 상황은 끝난 거 같다.
방에서 나와서 다시 자물쇠를 걸었다. 일단 이 여자는 여기 놓고…. 나머지들을 처리하자. 그게 우선이지. 어차피 감금되어 있으니 다른 것들을 다 처리 하고 와도 될거다.
보스인 녀석을 쳐 죽였다. 더는 필요 없지. 돼지 같은 새끼.
얼마나 잘 처먹었으면 이런 세상인데 아직도 이렇게 피둥피둥한 거야?
[21,428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코인도 많네. 돼지시키.
고맙다 새끼야. 이래저래 나에게 주는 게 많구나.
3층으로 내려가니 현주와 지혜가 웃으며 나를 반긴다.
기절해있는 두 명의 남자.
바로 쳐 죽였다. 더 살려둘 이유가 없다.
[6,98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3,52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좋아. 이제 백마촌은 끝났다.
주변 사람들에겐 참으로 아쉬운 소식이다. 이 좇같은 세상에서 즐길만한 오락거리가 하나 통째로 사라졌으니까.
물론 즐길만한 놈들도 전부 사라졌으니 아쉬울 필요는 없겠지. 그치?
이제…. 현주와 지혜의 차례인데.
"고생했어. 따라와."
현주와 지혜는 내 양쪽에 서서 팔짱을 꼈다.
그런 두 여자와 함께 일단 호텔을 빠져나왔다.
"우리 어디가?"
"또 경찰서에요? 거긴 싫은데…."
"거긴 안가. 내 아지트로 갈 거야."
"와!? 정말!?"
"아지트요?"
"그래. 그러니 조용히 하고 따라와."
두 여자는 싱글거리며 내게 달라붙는다.
뭐. 지금은 그러라고 놔두자. 마지막인데 그 정도는 상관없지.
멀티를 향해 걸어갔다.
싸한 새벽 공기. 인간이 모든 것들을 멈춘 이후 자연이 다시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이 급격하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 새벽공기.
신선하고 청량하다. 코로 들어온 차가운 새벽 공기가 내 뇌를 한번 싹 훑으며 깨끗하게 식혀주는 기분이다.
그래. 냉랭하게…. 마치 겨울의 새벽공기같이.
주택단지로 접어들자 현주와 지혜는 신기한 듯 주변을 계속 살핀다.
벙커가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집으로 들어가자 두 명은 어리둥절해 하며 나를 바라본다.
"여기 살아?"
"뭔가…. 기대했던 것과 조금 다르네요?"
나는 두 여자를 바라보고 웃었다.
내 미소를 보고 약간 표정이 굳는 두 여자.
"자라."
두 여자는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불쌍한 여자들. 잔뜩 이용만 당하고 결국은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니.
테이프를 꺼내서 두 여자의 눈과 입을 가리고 팔과 다리를 묶었다.
혹시라도 비명을 지를까 봐. 혹시라도 나와 눈이 마주칠까 봐.
그렇게 두 여자의 테이프 칠을 완료하고 마체테를 뽑아 목을 내리쳤다.
평소와는 다르게 당장 죽지 않을 정도로.
코인 주머니는 사람을 죽이면 생기고 바로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자동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건 실험을 해봐서 알아낸 결론이다. 누군가가 먹을 때까지 항상 그 자리에 계속 있다. 몇 날 며칠을 계속.
목에서 엄청난 출혈을 일으키며 꿈틀거리는 두 여자.
나는 코인이 빨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서 여자들을 지켜봤다.
마지막 가는 모습 정도는 끝까지 지켜봐 줘야지.
그게 쓰레기 같은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도리잖아.
고통 속에서 현주가 먼저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뒤 지혜마저 사라졌다.
두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코인 주머니.
나는 몸을 일으켜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곤히 자고 있는 승희.
따듯한 벙커 안에서 무방비한 모습으로 속옷만 입고 자고 있는 나의 여자.
"승희야?"
내 차가운 손이 닿자 승희가 화들짝 놀라 깬다.
"으아!? 아우. 놀래라…. 오빠 왔어요…. 우웅. 지금이 몇 시야…."
"일어나볼래? 옷 입고 밖에 잠깐 나가야 해."
"에!? 밖에요?"
정신이 번쩍 든 듯 화들짝 일어나는 승희.
승희는 똑똑한 여자다. 더 물어보거나 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옷을 입는다.
"아오…. 엄청 춥네. 이렇게 추운데 밖에서 고생하는 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따듯한 말 한마디. 그런 말 한마디에 몸이 사르르 녹는다.
그래. 이런 게 내가 승희를 곁에 두는 이유다.
저런 따듯한 말 한마디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나에겐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거니까.
"저기 코인 주머니 두 개 있지? 가서 먹어."
"어? 진짜네? 여기 왜 코인 주머니가 있어요?"
승희가 다가가자 코인 주머니 두 개가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
"히엑!? 이…. 이거 뭐에요? 3…. 34만?"
현주와 지혜가 각각 가지고 있던 17만 코인들.
이 정도면 두번째 스킬 배울 수 있는 코인은 마련됐다. 이제는 스킬을 뭘 고르게 할지 고민을….
"오빠."
나를 끌어안는 승희.
그녀의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 보인다.
그래. 아까도 말했듯 승희는 똑똑한 여자다. 이 상황만으로 모든 걸 파악한 거겠지.
"오빠가 어떤 사람이든 나는 오빠를 비난하지 않아요. 그러니 절대 그런 거로 신경 쓰지 말아요."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죄책감이 승희의 말에 사라졌다.
나, 혹은 내가 아는 사람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그 모순된 현실.
죄책감을 느끼는 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구석에 아주 조금 남아 불쾌하게 덜그덕 거리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래. 이제야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이 세계의 다른 모두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게 되었어.
더는 죄책감도 미안함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확실하고 무자비하게 나와 내 주변의 안전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그래. 고맙네. 그럼 이제 다시 들어가서 자. 나는 아직 할 일이 더 남았어."
"알았어요. 제발…. 몸조심해요."
"들어가."
승희는 내 손짓에 벙커로 들어갔다.
그런 그녀가 안전해지는 것이 확인되자 나는 다시 발걸음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