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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채굴
다시 아파트로 올라오자 두 여자가 자연스럽게 내게 몰린다.
매혹이 걸려있는 데다가 눈앞에서 복수도 해줬으니 나를 보는 시선이 평범할 리가 없다.
당장이라도 나를 쓰러뜨린 다음 물고 빨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표정.
나는 그런 시선을 무시하고 다시 앉으라고 말했다.
여자들은 소파에 앉았지만,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낌새만 보여도 언제든지 덮치고 싶어하는 모습.
물론 이런 게 싫진 않지만…. 지금은 아니다.
방금 한번 하기도 했고 물류센터로 보낼 여자들과 함부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괜히 좇 대가리 잘못 놀리다가 나중에 피곤해지는 건 사양이니까.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는데."
내 말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는 두 여자.
"갈 곳은 있나?"
있을 리가 없다.
둘이 같은 무리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꼴로 있던 거 보면 어떤 처지인지는 뻔하니까.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두 여자. 나는 그런 여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살만한 곳이 있어. 너희들이랑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이야. 거기로 가."
"네."
"알겠어요."
매혹에 걸렸으니 내가 하는 말에는 거절하지 못한다.
뭐, 가기만 하면 나름 잘 살겠지. 여자들이 살아남기에 거기보다 나은 곳은 없을 테니까.
그 뒤의 일은 승규가 알아서 할 거다. 거기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준비할 게 있으면 준비해둬. 밖은 추우니까 옷도 든든하게 입고. 여기 식량이랑 그런 것도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챙겨."
여자들이 준비하러 간 동안 나도 할 일이 있다.
현주. 저 여자를 묶어놔야 해.
여기서 물류센터까지 나 혼자라면 2시간 안에 충분히 왕복 가능할 것 같지만, 저 두명을 데리고 간다면 자신 없다.
게다가 사람 일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매혹이 풀릴 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냥 아예 묶어놓는 게 속 편하지. 다녀온 뒤에 다시 매혹 걸어버리면 되니까.
테이프로 팔과 다리를 묶고 입도 막아버린 다음 이불로 몸을 덮어줬다.
이러면 됐겠지. 깨어나서 조금 어이없겠지만 알게 뭐야.
거실에 나오자 준비를 마친 여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그녀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다시 밖을 나올 수 있게 된 여자들은 약간 감회가 새로운 느낌이다.
표정을 보니 당장이라도 눈물 흘릴 것 같은 표정.
"얼마나 감금돼 있었어?"
"3개월 정도요."
"전 한 달…."
"원래 있던 지역은?"
"소능동이요."
"전 성정동."
둘 다 옆 동네다. 여기서 내려가면 바로 나오는 곳들. 기왕 구해줬으니 그쪽 동네 사정들도 들어볼 겸 계속 질문했다.
"소능동은 사람이 많나?"
"사람요? 사람은…. 많이 없죠. 그래도 저희 동네는 그나마 사람이 많은 편이었어요. 구청에서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체계적으로 남은 사람들을 모아서 조직적으로 이끌었거든요."
"구청?"
"아…. 구청에서 나온 거긴 한데 그냥 그 사람이 구청에서 나왔을 뿐이지 기관 같은 데서 도와준 건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이 능력이 있던 거였죠."
"신기한 사람이네. 자기 살아남기도 바쁜데 사람들을 챙겼다고?"
"네. 다들 그분을 박 주사님이라고 불렀어요. 마흔다섯이라고 그랬는데 결혼도 안 한 분이셨어요. 그런데도 남 일처럼 생각 안 하고 사람들을 챙기던 분이었죠."
"이 세계랑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사람이고."
"근데 죽었어요. 아까 그쪽이 죽여준 놈들이 죽였어요."
"그렇군."
"그분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죽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박 주사가 신기한 사람이든 대단한 사람이든 나랑은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죽인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없진 않았을 테니까.
내게 사람은 그냥 두 부류로 나뉠 뿐이다. 물류센터로 보낼 사람과 죽일 사람.
그렇게 바뀐 지도 얼마 안 됐지. 그 전까지는 그저 죽일 뿐이었으니까.
죽은 사람, 죽일 사람의 이야기를 전부 들을 필요는 없다.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어. 그런 거에 빠져들고 사정 봐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인간의 삶은 짧지 않고 그 삶 속에는 다양한 것들이 녹아있다.
그 누구보다 공명정대하고 약자를 돕는 선인일지라도 뒤에선 유부녀들과 간통하고 있을 수 있는 거고 아무나 쳐 죽이는 악인도 뒤에선 지켜야 할 30명의 고아가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을 일체 무시한다.
그런 걸 판단할 능력도 안 되고 자격도 없잖아? 그저 공평하게 죽일 뿐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우다.
물류센터로 보내는 사람의 기준 같은 것도 정확하게 없다.
그냥 그때 기분에 따라서 달라진다. 랜덤이라고 해야지.
물론 여자의 비율이 좀 더 높고 유용한 스킬이면 우대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니다.
그냥 뒤탈이 가장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보내는 것일 뿐.
"성정동은?"
트랩녀가 내 물음에 대답한다.
"제가 있던 곳은 사람들이 그다지 없었어요. 다들 바로 교외로 빠졌거든요. 저희도 일찍부터 바로 농사짓는 거로 뛰어들었고…."
"농사를 지었어?"
"네. 부모님이 그래도 농사를 짓는 분이셨어 서…. 흑."
바로 울상이 되는 트랩녀.
이런 분위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예의상 물어봐야 하나.
"안 좋은 일을 당하셨나?"
"아까 죽은…. 그 새끼들이…. 흑."
보듬어 안아주고 싶지만, 매혹에 걸려있으니 내가 그렇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겠지.
나는 기름녀에게 눈치를 줬고, 기름녀가 트랩녀를 안아주며 토닥인다.
트랩녀가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준 덕분에 물류센터까지 더 다른 말을 하기 힘들었다.
말없이 걷기만 했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물류센터에 도착하자 어느덧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밤의 물류센터.
상당히 특이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곳.
안에서 나온 빛이 무성하게 자란 나무에 가려져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판타지스럽기도 하고 사이키델릭한 느낌도 드는 그런 모습에 기름녀와 트랩녀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긴, 저런걸 어디서 본적이 있을 리가 없지. 나도 볼 때마다 신기한데.
입구 근처에 다가가자 승규가 진영이와 밖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미래와 육안으로는 안 보이지만 투명화로 숨어있는 두 사람. 아마 마트에 처음부터 있었던 남자 놈 하나랑 미래랑 같이 왔던 남자애일 테지?
"놀랐잖아. 저녁에는 잘 안 오더니.“
웃으며 나를 반기는 승규.
"방비 수준은 괜찮네요. 근데 저쪽 길가에 있는 CCTV는 너무 눈에 띄던데요."
"아. 그래요? 그게 보였어요?"
CCTV 이야기를 했더니 진영이가 튀어나와 나에게 물어본다.
"너무 대놓고 길 쪽을 보고 있던데."
"그건 형이 민감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CCTV인지도 모를 텐데."
"아무튼, 위치를 바꾸긴 해야겠더라. 아니면 뭐로 좀 자연스럽게 숨기던가."
"알았어요. 참고할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진영. 이야기가 끝났다 싶으니 승규가 다시 끼어든다.
"그런데…. 뒤에 두 분은?"
"어….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지?"
"장민주요."
"강소희입니다."
"그렇데요. 새로운 신입이에요. 여기 장민주가 기름 생성. 강소희가 번개 트랩."
"스킬이야 뭐든 상관없지. 근데 두 분 다 꼭 필요한 스킬들이긴 하네. 반가워요. 저는 김승규라고 해요. 부족하지만 여기 리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잘 부탁해요. 난 가요."
"또 또 자기 볼일만 보고 휙 가버리려고. 기왕 왔으면 좀 쉬었다 가지그래?"
"그럴 시간 없어요. 할 일이 많아."
"어휴. 그래. 마음대로 해. 내가 뭐 널 잡을 방법도 없고."
세아를 보고 가고 싶지만 그럼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다.
자길 안 보고 갔다고 다음에 보면 삐져있겠네. 어휴 귀찮아라.
"형! 잠깐만!"
몸을 돌려 가려는데 진영이가 나를 불러 세운다.
"형 또 언제 와요? 저 나갈 일 있는데."
"내가 니 경호원이냐? 너 혼자 나가."
"안돼요. 혼자는 무섭다고요. 밖이 얼마나 위험한데 혼자 나가라는 거에요? 형이랑 가면 두세 시간이면 할 일도 제가 혼자 나가면 하루 이틀씩 걸린단 말이에요."
"몰라. 언제 다시 올지는."
"아 진짜. 맨날 그래놓고 금방 또 올 거면서."
"나도 내가 어떻게 움직이면서 살지 모르는데 그런 걸 어떻게 약속하겠냐. 그러니 확답 못 해."
"쩝. 알겠어요. 암튼 다음에 올 때는 저랑 같이 나갈 생각하고 와요."
"봐서. 간다."
"잘 가요! 제 말 잊지 말고요!"
저놈이 사내놈이 아니고 여자애였으면 조금 대우가 달라졌을까?
덜렁거리는 고추 놈이 저렇게 친근하게 굴어봐야 귀찮기만 하다….
차라리 쟤 여동생이 저렇게 굴었으면 모를까 남자 놈이…. 쯧.
그래도 저놈만큼 저 안에서 열정적으로 사는 놈은 없지.
설치해놓은 CCTV도 그렇다.
매번 이 길로 지나다니는 나니까 알아챈 거지 처음 오는 놈들은 생각도 못 할 거다.
근데 CCTV로 이 밤중에 나라는 게 확인이 되긴 하네…. 역시 기술력이 있으면 스킬을 커버할 수 있는 건가.
여자들도 떠넘겼으니 이제 다시 현주에게 가봐야지.
돌아가면 매혹도 풀려있을 것이고…. 아마 나를 보면 지랄을 하겠지?
매혹에 걸려있지 않으면 나는 그저 동료를 죽인 쓰레기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쓰레기를 좋다고 덮쳤으니 자기 자신도 혼란스러울 거다.
그건 머리가 좋을수록 더 심해지겠지.
매혹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분명 자신이 잠들었으니 내 스킬이 수면인 걸 알았을 거다.
그럼 혼란은 더 심해진다.
주변에 스킬이 두 개 있다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있으면 모를까, 아니라면 정말 이해를 못 하는 상황이 되는 거지.
그렇게 고장 나는 거다. 괴리감. 그 괴리감을 사람의 머리가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갈 때 걸렸던 시간에 비해 내가 돌아가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에 도착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문을 열자 나는 이상한 냄새.
이불을 걷어 들추자 지린내가 확하고 풍겨온다.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현주.
"뭐야. 그사이를 못 참고 지린 거야?"
"음!!!!음음음음!!!"
맹렬한 기세로 나를 향해 뭐라고 말하는 현주.
폭발은 목표를 봐야 하니 눈이 가려지면 스킬을 못 쓸 테지.
테이프로 눈을 가리고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줬다.
"개새끼야! 나쁜 새끼야! 나한테 무슨 짓 했어! 어!?"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해? 오줌 싼 건 너잖아?“
”야이! 개 씨발새끼야! 너 이것만 풀리면 내가 그냥….“
어우 냄새가 나서 여기선 못 있겠다. 안방에 있는 침대도 좀 그렇고…. 침대 또 없나?
다른 방에 가니 마침 침대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현주를 들쳐메고 그 방으로 가서 침대에 던져놨다.
생각보다 무게가 좀 되네. 건강한 여자라 그런가?
현주가 있던 방의 창문을 활짝 열고 방문을 닫았다.
이러면 냄새 좀 빠지겠지.
다시 현주에게 돌아오자 쉬지 않고 나에게 욕을 하는 그녀.
"똥은 안 마렵지?"
"이 씨발! 개새끼가!"
음. 내가 미쳤나? 욕하는 여자가 왜 이리 꼴리지?
무방비하게 벗고 있는 여자가 입으로는 온갖 쌍욕을 하고 있는 게 왠지 꼴린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 조임이 좋았잖아? 한 번 더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