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28화 (12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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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정종찬에 대해서 아는 걸 다 말해."

"정 차장님요?"

"아니 그래. 그것부터 좀 물어보자. 그 빌어먹을 차장이니 과장이니 하는 짓은 왜 하는 거야? 너도 대리라며?"

"네. 맞아요. 컴퍼니에선 스킬의 성능에 따라서 직급을 주고 있어요."

"하. 그럼 그건 누가 정하는데?"

"대표 이사요."

"지랄들을 하네. 그래서 그 대표 이사는 스킬이 뭔데?"

"그건 일반 직원들은 몰라요. 이사들만 알고 있어요."

"얼씨구. 지랄이 풍년이네 정말. 그래. 그렇다 치고. 컴퍼니? 회사 컨셉이라는 거지? 그 대표 이사는 본 적 있나?"

"네."

"나이 적당히 처먹은 아저씨인가 보지?"

"아뇨. 30대 중반의 남자예요."

"뭐 벤처기업이야? 어휴…. 그래. 그건 나중에 듣자. 일단 정종찬 이야기부터 하자고. 그 새끼는 왜 차장인데?"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번개 스킬이면 보통 과장인데 정 차장은 들어올 때부터 차장이었어요. 그래서 반말도 약간 있었는데 다들 금세 조용해지더라고요."

스킬이 세 개라면 그놈들이 말하는 차장 수준은 아닐 텐데. 내가 해봐서 알지만 이 짓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정종찬이 자신의 능력을 모두 숨긴 게 분명하다. 마지막에 가속화 스킬을 쓸 때 주변을 살핀 거 보면 대략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위의 놈들도 스킬이 두 개는 된다는 뜻이고, 스킬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안다는 소리니 쉽게 방심하진 않겠지.

"언제 들어왔는데?"

"한…. 반년 전이요."

"반년 전…. 혹시 정세희라고 아나? 20대 중반의 여자고 마녀라 불리기도 했는데."

"글쎄요. 처음 듣는데요."

"처음 듣는다고? 정종찬이랑 같이 들어온 사람이 없나?"

"네."

"그래?"

이상하다. 뭐지?

정리해보자.

정세희 년과 정종찬. 두 연놈의 행적에 대해서.

어디선가 열심히 살던 녀석들은 물류센터를 노렸다. 정종찬의 말이 허세인지는 모르지만, MRE를 얻은 거 보면 물류센터를 함락 시킨 것인지 잠시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빨간 조끼 놈들은 함락당한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암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어쨌든 그 후에 다시 쳐들어갔고 빨간 조끼 놈들의 베테랑들을 다 쓸어버리긴 했지만, 본인들도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면 그 이후의 행적은…. 정종찬이 두번째 스킬을 얻고 정세희의 손에서 벗어난 건가?

그런 다음 저 컴퍼니인지 나발인지로 들어갔고?

이상한 것투성이다.

정보가 너무 없다. 정확하지도 않고 추측이 너무 많다.

하아. 정세희 그년은 또 어디로 간 거야. 미치겠네.

정종찬 저 새끼는 왜 혼자 다니고 지랄인데.

세희년을 팔아먹었나? 아니면 이미 죽였나?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긴 하다. 혼자 다니는 거 보면 같이 있었던 놈들도 다 죽였을지도 모른다.

"너희는 상동에 뭐하러 온 거야?"

"사람들 잡으러 왔어요."

"사람을 잡아? 뭐하러?"

"그게 저희 일이니까요."

"그래. 그럼 그거나 물어보자. 컴퍼니는 뭐 하는 놈들이냐? 뭐 중소기업이야? 물건이라도 만드나? 대체 뭐 때문에 그런 귀찮은 짓거리를 하는데?"

"컴퍼니는 사람들을 모아서 캐슬에 일자리를 알선해줘요. 그리고 식량을 받죠."

"캐슬…. 은 또 뭐야. 씨발."

"캐슬은 컴퍼니의 최대 거래처입니다. 거대한 농장과 축산업을 하는 곳이에요."

"농장? 축산업?"

"네."

"결국, 사람 잡아다가 노예로 넘기는 거잖아?"

"사실 그렇긴 하죠."

"사람 관리가 되나? 그게 가능하다고?"

"노동하는 것은 쓸모없는 스킬을 가진 사람들 위주에요. 스킬이 좋은 사람은 중간 관리자가 되죠."

"하…. 난리 났네 아주. 그럼 컴퍼니와 캐슬의 규모는?"

"컴퍼니는…. 60명 정도 됩니다. 여덟 명이 죽었으니 이제 50명 넘는 정도겠네요. 캐슬은 저도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적어도 500명 정도는 돼요."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일을 거창하게 꾸밀 줄 아는 놈들이다.

500명이라니. 물류센터를 50배 정도 불려놓은 거잖아? 문제는 거기에 자유와 인권이 있냐는 거다.

"그래서 그건 잘 돌아가고 있는 거야?"

"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오히려 캐슬에 간 사람들이 만족하고 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미치겠네. 자청해서 노예가 된다고?"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렇죠. 거기에선 굶지는 않으니까요. 어느 정도 자유도 보장되고."

모르겠다. 그런 걸 만드는 놈들이나 거기에 순응하는 놈들이나 전부 이해가 안 간다.

만든 새끼는 지독한 이상주의자거나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을 잘 아는 놈이겠지? 지금까지 운영이 잘 되고 있다는 게 놀랍네.

"하아. 컴퍼니랑 캐슬의 위치는?"

"컴퍼니는 본사라고 되어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그곳으로 출근을 하진 않아요.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죠. 저희는 외근이라고 부르긴 합니다만. 필요한 일이 있을 때나 본사로 들어가죠. 컴퍼니의 본사는 강동구. 캐슬은 남양주에 있어요."

"강동구, 남양주…. 가지가지 하네."

피로감이 몰려온다.

물론 이런 걸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세상은 멸망했고 약한 사람들은 죄다 죽어 나갔을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에 특화된 놈들만 남을 거라는 거.

그리고 내가 이 동네는 어느 정도 정리했다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세상엔 나보다 더 미친놈들이 수두룩 할거고 저렇게 컴퍼니니 캐슬이니 하는 미친 짓도 서슴없이 하는 놈들이 널렸을 테니까.

하지만, 스케일이 커질 것은 예상했어도 너무 이렇게 갑자기 난이도가 훅 올라가는 것은 좀 지랄 같은데….

스킬로 직급을 가리는 놈들.

적어도 이 세상을 살면서 뭐가 중요한지는 아는 놈들이다.

병신같은 조폭들이나 체육센터의 어설픈 공동체 놈들보다는 체계가 잡혀있다는 거지.

근데 캐슬이라…. 씨발 이건 진짜 이름 지은 새끼 얼굴은 꼭 봐야겠다. 캐슬이면 성이잖아? 뭐…. 왕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

남양주의 왕이야? 조까라 나는 중동의 왕이다. 씨발.

힘이 부족하다.

고작 스킬 세 개 가지고는 살아남기가 힘들다. 지금도 봐봐, 정종찬 그 새끼 하나 못 잡고 꼼짝도 못 했는데.

아니…. 잡기는 개뿔. 걸리면 죽으니까 숨죽이고 숨어있었지.

적어도 어떤 놈들을 마주쳐도 잡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겨우내 승희와 야동을 보며 희희낙락할 계획을 세운 내가 한심할 정도.

정세희 그년에 대한 복수도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다.

복수는 생존이 보장됐을 때나 가능한 일이니까.

게다가 나는 딸린 식구가 많잖아. 승희도 미나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세아랑 물류센터도.

내가 정을 준 여자들, 그리고 만들어 놓은 작은 장난감.

누군가 와서 훅하고 짓밟고 가게 둘 수는 없다. 그럴 일이 없도록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

다시는 쫄보 새끼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꼼짝 않고 벌벌 떠는 일이 없도록.

여자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계속해서 얻어 냈다.

사소한 것들, 별거 아닌 것들…. 하나도 남김없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다 긁어냈다.

매혹에 걸렸기에 알몸으로 다소곳하게 앉아 물어보는 말에 전부 술술 이야기 한 은미.

얼추 모든 것을 다 적어 놓은 뒤 재웠다.

분명 살려놓으면 나중에 컴퍼니인지 나발인지 하는 새끼들을 공격할 때 쓸만하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분간 바쁠 테니 입은 한 개라도 줄여야 한다.

안타깝지만 죽이기로 했다.

죽이기 전에 한 번 범하고 죽일까 했지만…. 정액이 아깝다.

내 정액은 승희나 미나에게 쓰기 바쁘다고.

[23,40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코인도 많네. 하긴 여자들이 코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임신 걱정 없는 즉석 매춘이 가능하잖아? 물론 모든 여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들은 굳이 자신의 코인을 소모해서 음식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게 크다.

몸만 대주면 음식이야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착취만 안당한다면 말이지.

죽은 은미...불쌍한 녀석. 암튼 그녀의 말에 따르면 서울 전역이 얼추 이 동네랑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인구 천만의 도시. 거대한 도시가 텅텅 비어가고 있어서 사람들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리고 컴퍼니나 캐슬 같은 곳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결국은 그렇게 되는거지. 개인이 살아남기엔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는 거다.

어떻게든 무리를 짓고 사회를 만들고 힘을 합쳐서 살아가게 된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두번째 스킬을 찍은 놈들이 많아지기 전에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해야 한다.

어떤 스킬을 가진 놈이든 바로 쳐 죽일 수 있도록.

실수로 당해도 모두 대응이 가능하도록.

역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 빌어먹을 매혹부터 마스터를 해야 한다는 소린데.

물류센터에 있는 여자들의 처지를 봐줄 때가 아니다.

내가 살아야 거기도 산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야.

일단 본진을 다시 정리해놓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 겨울의 밤공기가 상쾌해서 폐 속을 씻어낸 것 같다.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건 탐지가 보급이 덜돼서 일 거다.

탐지가 많아질수록 상대와 싸우는 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반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탐지가 문제다.

내가 쓸 때는 더 없이 사기 스킬이지만, 당하게 되면 진짜 좇같을 테니까.

탐지에 대한 대응법…. 없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탐지 있는 놈들이 승희나 미나가 있는 곳으로 근처에 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발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깊이 100미터 이하로 내려가거나 인적이 아예 없는 곳 100미터 바깥으로 들어가야 한다.

뭐가 있을까.

산속? 조금 어렵다. 일단 살만한 곳이 없다.

아무리 생존을 위해서라도 삶의 퀄리티를 낮추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완벽한 보안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탐지에 발각되기 싫다고 하더라도 산속 판잣집에서 살 수는 없지.

지하 100미터가 넘는 건물이 있나? 100미터면 지하 33층 깊이인데. 그게 가능해? 지하수 나오겠네. 씨발.

그 정도면 방사선 폐기물장 아냐? 아니지. 방폐장은 좀 더 깊긴 하지.

벙커. 벙커가 좋은데.

탐지에 걸리기 힘든 외진 곳에 있는 벙커.

발견 당하더라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

아니지. 그것도 잠금 해제에 취약하잖아.

어떻게 됐든 사람들에게 발각당하지 않는 곳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후우. 쉽지 않네. 뭐가 있을까. 정말 대통령의 비밀 벙커라도 찾아야 하나?

휴전 국가였으니 벙커 관리를 소홀하게 하진 않았을 텐데.

정말 세아를 데리고 국정원 건물이라도 털어봐야 하나?

거기라면 정보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관리는 할 테니까 말이지.

일단 큰 틀은 정해졌다.

안전한 살 곳. 그리고 스킬 추가.

복수도 좋지만 그건 일단 뒤로 미루자. 복수 못 한다고 당장 피 뿜고 뒤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에휴. 오늘은 승희나 끌어안고 자야겠다.

푹 자고 내일부터 다시 달려야겠다.

평화로운 시간은 모든 위협을 다 쓸어버린 다음 느긋하게 누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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