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26화 (12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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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본인의 정보를 대는 것보다 남의 정보를 파는 게 훨씬 쉽다.

게다가 그게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면 남의 정보를 파는 건 좀 더 쉬워진다. 결국, 세상에서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기에 이 남자에겐 그에 관련된 내용은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어차피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알아서 인도해 줄 테니까.

자세한 정보는 여자한테 물어보면 된다. 거짓 없이 순순히 아는 것을 모두 말해줄 테니까.

굳이 이 남자에게 물어봐서 잘못된 정보일지 의심하는 것보단 그게 훨씬 편하지.

옛날 같았으면 고문이든 뭐든 별 지랄 염병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내일 정오에 동사무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부?"

"그래. 전부."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뭐야. 말이 틀리잖아?"

"아니. 이건 그 쪽에게도 중요한 일이야. 아저씨는 죽은 거로 처리 되어야 하잖아? 내일 그 자리에 나오지 마. 그래야 아저씨도 뭔가 복수를 할 거 아냐?"

"...일리 있군."

"그래. 나는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한다니까? 아저씨가 정종찬 그 새끼한테 복수를 하든 뭘 하든 상관없어. 나는 그놈에게 프로포폴을 받아야 하거든. 난 아저씨 이러고 있는 거 사진만 찍고 돌아갈 거야. 어차피 시체도 남지 않는 세상인데 죽었는지 어쨌는지 알게 뭐람? 그러니 내일 그 자리는 나오지 마. 알겠어?"

"알았다."

"자. 그럼 즐거웠어. 잘 가?"

남자를 재웠다.

진짜 살려둘 필요는 없지만 말하지 않은 것 외의 다른 것들을 아는 게 있을 것이다.

그걸 쫓아가는 게 훨씬 더 쓸만하겠지.

남자의 몸을 결박한 테이프들을 모두 뜯어주고 주머니를 뒤져봤다.

딱히 건질 건 없네. 뭐…. 기대도 안 했다.

그럼, 어디에 숨어 있을까나. 아. 씹쌔끼들 아지트 열쇠가 아직 있을 텐데.

가방을 뒤져보니 아직 있다.

나는 아지트의 문을 열고 들어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편히 누웠다.

수면이 풀리면 어디론가 움직이겠지? 그것만 따라가면 되니 일단은 여기 숨어 있자.

20분이 지나고 탐지를 돌리니 남자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바로 안 나가고 집안을 이리저리 살핀다.

생각보다 치밀하네? 근데 병신이 아닌 이상 그 집에 숨어 있을 리가 없잖냐.

남자가 집 밖으로 나왔다.

창가로 가서 몸을 숨기고 밖을 내다봤는데 기척으로는 느껴지지만, 모습이 없다.

설마 투명화인가? 그런 거 같네.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이는 거 보면 투명화밖에 없겠지.

어휴. 그럼 처음에 돌 던질 때 투명화를 쓰고 밖을 봤어야지.

스킬을 왜 아끼냐. 그런 방심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는 건데.

뭐…. 물론 스킬을 썼어도 탐지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겠지만.

적당히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탐지가 아니면 몇십 미터 뒤에서 쫓아오는걸 알아챌 리가 없지. 게다가 본인이 투명화니 미행당한다는 생각도 못 할 거고.

그럼…. 죽었다 살아나서 자유로워진 아저씨는 무엇을 할까?

어디 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주라도 한잔하려나?

아니면 당장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확인하러 복수의 칼을 빼 들까?

기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남자를 쫓아가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다.

뭐가 됐든 빨리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한참을 쫓아가니 탐지에 사람의 기척이 걸렸다.

두 명. 투명화 아저씨는 그 두 명이 있는 곳을 향해 곧바로 걸어가고 있다.

이럴 땐 나도 투명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편하게 써먹을 텐데. 그렇다고 배우자니 조금 아깝다.

반사가 조금 더 시급하긴 한데…. 그렇다고 투명화가 나쁜 건 아니란 말이지.

일단 이 빌어먹을 매혹만 마스터하면 뭐든지 마스터하는 건 금방일 텐데.

본의 아니게 정체가 되고 있네. 귀찮게시리.

투명화 아저씨가 두 명이 있는 쪽으로 가는 게 확실해졌으니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

조금 더 돌아서 먼저 두 명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뭐야. 동사무소네?

내일 정오라며? 음…. 저 두 명은 상주 인원인가?

일단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무리고…. 안쪽이 보이지도 않을 거 같은데.

소리라도 들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힘들 것 같다. 그래도 한번 시도해볼까?

두 명의 기척은 1층에서 느껴졌고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쉽게 접근하기가 힘들다. 아무래도 동사무소라 건물 자체가 상당히 개방적이라 몸을 숨길 곳이 없다.

게다가 투명화 아저씨는 곧장 이쪽으로 올 줄 알았는데 동사무소가 보일만 한 곳에서 한 건물로 올라갔다.

음…. 여기서 대기하는 건가? 내일 정오까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하네.

정종찬이 오면 지켜보고 있다가 쫓아갈 생각인가 보지?

그렇다면 나도 지금은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내일 정오까지 기다려야겠네.

주변의 건물을 살피고 동사무소가 잘 보일만 한 곳을 찾아봤다.

투명화 아저씨가 올라간 건물에서는 내가 안 보이고 나는 모든 곳을 볼 수 있는 곳.

대각선 맞은편 건물에 치과 건물이 하나 보였다.

저쯤이면 딱 맞겠네.

치과 건물은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다. 아니 입구인 유리문이 박살 나 있다고 해야지.

뭘 노리고 치과를 쳐들어왔을까? 뭐…. 내가 알 필요는 없지.

적당히 시야도 괜찮고 나쁘지 않다. 일단 여기서 내일 정오까지 있어야겠다.

투명화 아저씨가 저렇게 숨어 있을 생각을 했다면 저놈들 사이에 탐지는 없다고 봐야겠지? 탐지가 있었으면 저런 시도를 애초에 안 했을 거다.

아니면…. 모를수도있지. 탐지가 있는 것과 탐지가 투명화도 잡아낸다는 것을.

알게 뭐람. 잘 것도 아닌데.

안자고 대기하는 것은 내 전공이다. 지난 4년간 지겹게 해온 일이니까.

원장실의 의자가 상당히 푹신해서 맘에 들었다.

쪽잠을 잘 수 있으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텐데. 내게는 너무 사치 같은 소리네.

의자를 최대로 뒤로 젖히고 거의 누워있다시피 하며 눈을 감는다.

이러고 있어도 잠은 잘 수 없다. 오히려 잘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불면증에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를 못 하는 생각.

편안하게 잠이 들수 있는 대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자겠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심정을.

눈을 감고 최대한 잠자는 것과 비슷하게 해본다.

나름 터득한 유사 수면. 어쨌든 뇌랑 몸이 쉬기만 하면 되잖아?

아무런 움직임도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는 무념무상의 경지.

불면증이 만들어 준 쓸데없는 능력.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밤을 꼬박 보냈고 동이 터오고 해가 중천으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정오 근처가 되자 기척이 하나씩 잡혔다.

모두가 동사무소를 향해 똑바로 이동하는 모습들.

하나씩, 둘씩 모이더니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목표로 하는 이 대리도 혼자 걸어서 동사무소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미리 매혹을 걸어놓을 걸 그랬나. 혼자 움직일 줄을 몰랐는데.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마지막 기척이 동사무소로 다가왔다.

정종찬.

당당한 걸음으로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

드디어 찾았다. 씨발 새끼.

기생오라비 같은 놈. 드디어 꼬리를 잡았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정세희 그년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번에 놓치면 언제 또 잡을 수 있을지 몰라.

근데 정말 의외네. 컴퍼니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저놈들이 그대로 흡수됐다고?

그럴 성격의 놈들이 아닌데…. 이유를 알 수 없네.

뭐, 곧 알게 되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개새끼야.

중간보고 정도라고 생각해서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에서 오래 있다.

기척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동사무소 안에서 나올 생각도 않는다.

기다리기 지루한지 투명화 아저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사무소 근처로 이동하는 모습. 물론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저 아저씨는 어떻게 할까?

정종찬 그 새끼의 스킬은 나도 뭔지 모른다.

하지만 공격 스킬이라는 것은 안다. 정확히 뭔지 모를 뿐이지.

상성으로 봤을 때는 투명화 아저씨가 유리하다. 보이지 않으면 타겟형 스킬을 쓸 수가 없다.

게다가 투명화는 소리랑 기척만 없애면 언제든지 습격이 가능한 스킬. 숨어 있다가 그대로 벽돌로 머리만 찍어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종찬 그놈이 그렇게 시시하게 당할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치밀한 새끼고 머리도 좋은 놈이다.

어떻게 될지 상당히 궁금한데….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더 기다리고 있자 동사무소 안쪽에 있던 녀석들이 전부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기척을 느끼고 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일단 여자에게 먼저 매혹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일이 편해져.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녀석들.

세 명씩 뭉쳐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정종찬은…. 다른 남자 두 놈과 함께 내가 있는 쪽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걸 따라가는 투명화 아저씨.

여자는 남자 둘과 내가 있는 건물 옆쪽으로 지나갔다.

여자를 확보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저놈들의 정보를 모두 알 수 있어.

다들 흩어진 것을 확인하고 여자 쪽을 따라갔다.

빠르게 손을 써야 한다. 괜히 또 꾸물거리다가 정종찬을 놓치면 귀찮아진다.

그렇다고 일을 대충 할 수는 없다.

내 목숨은 하나니까. 함부로 굴릴 수는 없지.

여자가 껴있는 무리가 가는 쪽을 앞서 돌아가 숨은 뒤 수면 범위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수면이 반사되어 만약에 잠들더라도 발각이 되지 않는 곳.

엉망이 된 분식집 안쪽에 숨어서 그 앞을 지날 때 바로 세 명 다 재웠다.

다행히 셋 다 잠이 들었다.

좋아. 일단 순조로운 시작이야.

여자에게 매혹을 걸고 옆의 남자 둘은 죽였다.

[11,49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9,44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생각보다 가진 코인이 많다. 어지간히 죽이고 다녔나 보네.

여자를 뺨을 때려 깨울까 하다가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르면 안 되니 그냥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으…. 아파. 아파."

"일어나. 정신 차리고 대답해."

"네? 네. 일어났어요."

"너 스킬 뭐야."

"진동파요."

오. 투명화 아저씨…. 의외로 사실을 말했네.

"너희 무리에 반사 스킬 있는 녀석 있나?"

"제가 알기론…. 없어요."

"정종찬 스킬은 뭐야?"

"번개요."

번개? 병신이네. 별걱정 안 해도 되겠어.

"따라와."

아직 다른 남자 셋은 탐지 범위에서 나가지 않았다.

일단 그놈들도 빠르게 정리해야지.

"가서 저 세 명 이쪽으로 불러와."

이 대리는 빠르게 뛰어가서 남자 셋을 불러세웠다.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셋. 그러더니 이 대리를 따라 이쪽으로 다가온다.

몸을 숨기고 있던 나는 바로 세 명을 재웠고 빠르게 처리했다.

[8,42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9,98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1,447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씨발…. 어지간히 죽이고들 다녔네. 부자 녀석들이야 아주.

"가자."

탐지를 벗어난 정종찬의 무리.

그사이에 빨리도 걸어갔네. 뭐가 그리도 바쁜지.

포션을 하나 마시며 빠르게 녀석들이 걸어갔던 방향으로 뛰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탐지에 기척이 느껴졌다.

근데…. 왜 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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