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19화 (119/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방주

간단히 식사하고 한참을 누워 있던 세아는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말했다.

"이제 좀 괜찮은 거 같아. 가요."

"무리하지 않아도 돼.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아냐. 괜찮아요. 해요."

그러더니 회복 포션을 쭉 들이키고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신발을 신고 나간다.

어쩔 수 없이 그런 그녀를 따라 나가 계속 작업을 시작했다.

11층을 지나고 또 한 병. 그렇게 계속 층마다 한 병씩.

아무리 생각해도 코인 낭비긴 하지만, 세아의 숙련도 증가도 되니까 그리 손해는 아니겠지.

그렇게 16층까지 마친 세아는 다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거봐. 무리하지 말라니까."

"아. 이거…. 왜 이래."

스킬을 쓰는 것은 체력을 깎아서 쓰는 거고 스킬에 따라 체력이 깎이는 비율은 다르지만 어쨌든 녹초가 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마치 전력 질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달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것보다 조금 상태가 안 좋아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버리고 어지럼증에 구토까지 올라오니까.

거기에 회복 포션을 먹으면 그런 힘든 상태가 싹 사라지지만 기분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정교하고…. 예민하다.

"안 되겠다. 쉬자."

다시 세아를 안아 들었다.

품에 쏙 들어오는 체구.

세아는 마치 아이처럼 내게 꼭 끌어안겨 있다.

"으…. 난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하네."

"아냐. 내가 확실히 말렸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지."

"됐어요. 이상한 소리 하고 있어."

아까 쉬었던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세아를 눕혀주고 다시 의자에 앉으려고 하자 세아가 나를 향해 말한다.

"아…. 그…."

"음? 왜. 필요한 거 있어?"

"잠깐 이리 와 봐요."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에게 다가가자 자신의 몸을 꾸물거리며 벽 쪽으로 붙이더니 자신의 옆을 가리킨다.

"여기 누워요."

"누우라고? 좁을 텐데?"

침대는 1인용 싱글침대라 그리 크지 않다. 세아가 작아서 어떻게 누울 수는 있겠지만 아마 꼼짝도 못 하고 있어야 할 거다.

"누우라면 좀 누워요…."

어쩔 수 없이 옆에 눕자 세아가 힘겹게 내 팔을 당기더니 내 팔을 베었다.

그러면서 굳이 말 안해도 되는데 한마디를 붙인다.

"베개가 없으니까…."

그냥 솔직하게 팔베개해달라고 해도 되는데 꼭 저렇게 말하네.

하여간 귀여워 죽겠어.

정말 지쳤는지 세아는 금세 잠이 들어버린다.

숨 쉬는 횟수를 세어보니 확실히 잠든 것 같다. 이래 봬도 수면에 관해서는 박사는 아니어도 석사 정도는 될 거다.

딱 봐도 자는지 자는 척인지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을 정도.

그래도 아직 깊게 잠들진 않았을 테니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나 참…. 이러고 있으려니 고문이네.

함부로 만지기도 좀 그렇고.

수많은 여자를 재우고 강간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참 웃기다.

뭐 어쩌겠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나도 내가 옳다고는 전혀 생각 안 하니까.

적당히 깊이 잠들면 열어놓은 방이나 뒤져봐야겠다.

세아 옆에서 잘 수는 없으니까.

세아에게 무슨 일을 당할 리는 없겠지만 그건 아직 무리다.

내가 곁에 두고 잠들 수 있는 여자는 아직은 승희뿐이야.

한 시간 정도를 지켜봤다.

이 정도 됐으면 깊이 잠들었을 테니 슬슬 나도 내 일을 해야지.

살며시 팔을 빼려는데 세아가 움찔하더니 내 옷을 잡는다.

깬 거 같지는 않은데…. 잠결에 잡은 건가?

내 옷을 잡은 세아의 모습이 굉장히 애처로워 보인다.

드센 척하고 다니며 츤츤거리는 여자지만 속은 상당히 여린 여자.

요즘 세상에 그녀만큼 상처 있는 여자야 흔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상처가 보잘것없거나 무시해도 될 것은 아니다.

남들도 다 아프니까 자신의 아픔 정도는 감수하고 참아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개논리잖아?

아픔은 절대적인 거지 상대적인 게 아니다.

다들 아프니 너도 그 정도 아픈 건 참으라고 말하는 새끼가 있다면 그 새끼는 좀 패야 한다.

나 같은 놈보다 더 악질적인 놈이다. 그런 놈들하고는 상종해선 안 돼.

빨리 죽여버리는 게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이야.

혹시나 깨지 말라고 세아에게 수면을 쓰고 내 옷을 잡은 손을 살짝 풀어줬다.

그리고 팔베개를 했던 팔을 빼냈다.

베개는 찝찝하다니 어쩔 수 없지. 나는 내 후리스를 벗어서 돌돌 말아 그녀의 머리에 괴어줬다.

적어도 20분은 누가 옆에서 뺨을 때리지 않는 이상 깨지 않겠지.

그런 세아를 두고 아까 봐둔 방을 하나씩 돌기 시작했다.

오피스텔이라 그런지 데스크톱 PC를 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열려있는 200개 정도 되는 방에서 데스크톱 PC가 있는 방은 10개도 안 됐다.

옛날에는 데스크톱 PC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게 기본이었는데…. 참 세상 많이 변했어.

근데 과연 여기 야동이 있을까? 있으면 좋겠는데.

세상이 스트리밍의 시대가 되어버려서 야동을 저장해 두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게 아쉽다.

그래도 있긴 있을 거야. 없을 리가 없어.

역시. 있다.

데스크톱 10개 중의 4개에서 야동을 찾았다.

방주까지는 아니어도 고르고 고른 엄선 작인 듯 몇 개씩은 있었다.

하긴. 명작은 모아둬야지. 함부로 지우는 게 아니야.

외장 하드도 하나 찾았다.

데스크톱 가진 놈 하나가 전문적인 딸쟁이긴 했나보다. 외장 하드에도 적당히 야동이 들어있다.

휴지끈이 긴 배우신 분이셨나보다. 적당히 훑어봐도 분류부터 고수의 냄새가 난다.

역시. 방주는 존재했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바로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뭐 야동으로 논문을 쓸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노트북들도 하나씩 뒤져봤다.

생각보다 노트북에는 건질 게 없다.

하긴, 들고 다니는 노트북에 야동을 넣고 다니는 건 약간 찝찝하긴 하지.

대신 노트북에는 영화들이 많이 있었다.

영화 좋지. 시간 보내는 데는 딱 맞잖아.

노트북들을 엄선해서 3개를 챙겼다.

하나는 내 거, 하나는 승희 거, 하나는 미나 거.

미나와 승희의 노트북에는 영화를 잔뜩 넣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그녀들이니 이런 거라도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겠지.

세아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그녀에게 다가가 지켜봤다.

그리고 수면을 걸어줬다. 깨지 말고 푹 자라고.

이게 수면 스킬의 장점 중에 하나다. 안정되고 깊은 꿀잠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

4년 넘게 써본 사람의 별 다섯 개짜리 리뷰니 믿고 추천할 수 있지. 암.

적당히 영화까지 전부 옮긴 나는 노트북과 외장 하드, 충전기, 여분의 HDMI 선과 다른 선들을 내 배낭에 잘 넣어뒀다.

내일까지 할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다.

PC랑 노트북 같은 것은 나중에 진영이 데리고 와서 필요하면 쓰라고 해야지.

이런 쪽을 잘 아는 거 같으니 쓸모가 있을 거야. 물류센터에서도 영화 같은 거 틀어서 다 같이 보게 해도 좋고.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있나. 문화생활도 하고 그래야지.

원래 먹고살 만하면 슬슬 딴짓에 눈 돌리게 돼 있으니까.

작업을 마치고 다시 세아의 곁에 누웠다.

후리스를 치우고 다시 내 팔에 머리를 괴어줬다.

그러자 세아가 몸을 말고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추운가? 방이 그렇게 춥진 않은 거 같은데.

나는 괜찮지만, 세아에겐 추울 수 있으니 내 후리스를 펼쳐 덮어줬다.

워낙 작은 몸인 데가 몸을 말고 있어서 후리스를 덮어주니 발까지 전부 다 덮였다.

세아는 작은 햄스터 같다.

아니…. 치와와인가? 성깔은 치와와가 맞는데. 근데 치와와는 내가 싫다. 귀엽지도 않고.

생각해보니 햄스터도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뭐가 있지?

그래. 고양이로 하자. 성깔도 그렇고 하는 짓도 딱 비슷하네. 귀엽기도 하고.

고양이라. 고양이 코스프레를 시켜볼까?

츤데레 로리 거유에 네코미미 까지? 미쳤네. 속성을 대체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야?

이정도면 너무 설정 과다 아냐? 웃기네 진짜.

근데 코스프레를 시켜보면 귀여울 것 같긴 하다.

뭐 거창한 코스프레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양이 귀 머리띠 같은 것만 해도 충분하지. 그런 거야 어디든 구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애널에 끼는 고양이 꼬리?

어우. 그건 좀 쉽지 않네. 일단 내가 애널에 관심이 별로 없으니….

러브젤 같은 게 있으면 시도는 해볼 만한데. 빌어먹을…. 러브젤이 없는 세상이라니. 대용할만한 게 뭐 없나?

식용유 같은 거라도 써봐야 하나? 씨발. 뭘 해봤어야 알지.

근데 뭐랄까. 별로 알고 싶은 느낌이 아니다.

애널은 나도 있으니 언제라도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는 거잖아? 가서 딜도를 넣어보면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근데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아니 하기는커녕 상상만으로도 불쾌하다.

그래서인지 여자들의 애널도 별로 크게 관심이 안 생긴다.

넣기 좋은 보지가 있는데 뭐하러 애널에? 이런 느낌이랄까.

정확히 말하면 보지에 넣기 바쁜데 굳이 거기까지? 가 맞겠지.

모르겠다. 섹스가 질리는 날이 오면 애널도 심도 있게 시도해볼 수 있을지도.

과연 섹스가 질리는 날이 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밖이 푸르스름하게 변해있다.

이렇게 누워서 잡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은 생각 외로 빨리 지나간다.

예전에는 이런 시간이 정말 고통스러웠었는데.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밖을 보며 원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팔을 베고 곤히 자는 귀여운 여자를 곁에 두고 고양이 코스프레를 시킬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때와는 다르긴 하지.

굳이 세아뿐만이 아니더라도 승희도 있고 미나도 있으니까.

아. 미나…. 걔는 뭘 입혀도 이쁠 텐데.

코스프레를 시키려면 미나에게 시켜야겠다. 뭐가 있을까.

메이드 복? 아. 좋네. 생각만 해도 좋네. 오피스룩? 그것도 좋지.

버니걸 같은 고전적인 코스튬을 입혀도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런 비슷한 옷들을 많이 입어본 아이돌이니까. 충분히 잘 어울릴 테지.

어디서 구하지? 이거…. 또 해봐야 할 목표가 생겼네.

승희하고는 야동을 보면서 연구하고 미나에겐 코스프레를 시키고 세아에게는…. 음.

됐다. 세아는 그냥 존재 자체가 유니콘이야. 굳이 뭘 안 시켜도 되겠지.

저 성깔에 뭘 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고.

근데…. 또 츤츤거리면서 시키는 건 해줄 거란 말이지. 그게 또 좋은 건데.

고양이 귀 정도부터 시작해보자. 원래 작은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시키는 거잖아?

세아가 몸을 꿈틀거리길래 바라봤더니 눈을 반짝하고 떴다.

마치 그 모습이 졸다가 무슨 소리가 들려 눈을 뜬 고양이처럼 보여서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내뱉었다.

"고양이…."

"엥?"

자고 일어난 여자한테 다짜고짜 고양이라 그랬으니 세아가 저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간다.

쟤 눈에는 내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