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17화 (11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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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승희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좋게 말하면 스마트 팜. 나쁘게 말하면…. 뻘짓.

아니, 뻘짓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한가. 아무튼, 벙커 안에 남아도는 공간을 이용해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덕분에 승희를 위해 근처 도서관에서 스마트 팜에 관련된 책들을 잔뜩 가져다 날랐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들을 구해왔다.

뭐라더라? 무슨 조명이랬는데. 고연색성 조명? 암튼 그런 걸 구하느라 한참을 싸돌아다녔다.

물론 그 대가는 몸으로 다 받아냈지만.

승희와 있을 때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하는 거 같다.

뭐 정해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식사를 준비하려고 서 있을 때나, 씻을 때, 자기 전, 자고 일어난 아침, 같이 게임을 하다가 내가 억울하게 졌을 때, 그냥 뜬금없이.

그냥 눈이 맞으면 바로 하게 된다.

아마 이런 게 신혼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지 뭐.

한가지 불만인 것은 섹스가 단조롭다는 거다.

물론 야동처럼 아크로바틱한 섹스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패턴이 너무 단조롭다.

정상위, 아니면 후배위.

다른 체위들은 시도해 봐도 쉽지가 않다. 공부라도 해야겠어.

인터넷만 된다면 야동이라도 보면서 따라 해 볼 텐데. 빌어먹을. 인터넷이 안되는 게 이렇게 원통한 적은 처음이네.

혹시 누군가 외장 하드에 잔뜩 야동을 모아놓은 방주라도 하나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예전에 커뮤니티 사이트 같은 데서 이야기 나왔던 거 보면 충분히 있을법한데.

아. 맞다. 세아가 있었지.

모든 잠금장치를 풀 수 있는 만능열쇠. 그래. 세아가 있으니 한번 시도해 봐야겠어.

"나갔다 올게."

"조심히 다녀와요. 오늘은 들어와요?"

"아니. 오늘은 힘들지 싶다. 며칠 걸릴 수도 있고."

"힝. 또 나를 혼자 두고 나가는 고야?"

애교 섞인 목소리로 눈을 깜빡이며 말하는 승희.

나 참. 그렇게 귀여운 척하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아? 당연히 좋아하지.

"왜. 한번 하고 갈까?"

승희의 옷 안으로 쓰윽 손을 넣는다.

"아잉…. 나간다면서요?"

그렇게 말은 하지만 거절하진 않는다. 요망한 계집애.

벽을 짚고 선 승희의 바지를 벗기고 허벅지 안쪽에 발기된 물건을 비빈다.

뒤에서 끌어안으며 가슴을 주무르고 젖어오는 음부에 삽입하며 서로의 절정을 끌어올린다.

신성한 의식같이 진행되는 서로의 몸짓.

내 만족감의 결과물은 승희의 몸 안에 깊게 뿌려지고 승희 역시 달콤한 신음으로 화답한다.

"너 왜 이렇게 이쁘냐."

한번 싸고도 아직 물건을 넣은 채로 승희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인다.

손에 느껴지는 그녀의 곡선이 너무나 아름답다.

특히 밑가슴에서 배로, 그리고 하복부로 이어지는 몸의 선.

보는 것도 좋지만, 손으로 만지고 있을 때 더 즐겁다.

이대로 나가지 않고 반나절은 더 뒹굴고 싶을 정도로.

나를 돌아보며 눈웃음을 짓는 승희.

안돼. 이러면 승희의 계략에 휘말리는 거야.

요망한 것. 그렇게 넘어갈 수는 없지.

승희의 몸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손을 억지로 회수하고 화장실로 가서 간단히 아랫도리만 씻었다.

다시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승희가 아예 옷을 다 벗더니 내게 팔을 두른다.

"정말 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은 완전히 요망함 맥스네. 괘씸한 녀석.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은 나는 승희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꺄하하하."

내 불의의 기습에 바닥에 쓰러져서 꺄르륵 웃는 승희.

"으디 사람을 유혹하고 있어. 넌 돌아와서 내가 단단히 혼내줄 거야."

"아오 간지러. 갑자기 그렇게 간지럽히기에요? 그리고 지금 혼내도 되는데."

누운 채로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만지며 다리를 꼬는 승희.

다리를 꼬고 있으니 그사이에 얼핏 보이는 음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러내놓고 있는 것보다 더 자극적인 모습.

와. 아주 작정하고 유혹하네.

"흥. 안 넘어간다. 다녀올게."

"힝. 아깝다. 이걸 참네.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와요."

쿨하게 나가려다 못내 아쉬워서 승희에게 다가가 힘껏 가슴을 한번 빨았다.

그리고 가슴 옆에다가 진하게 키스 마크를 남겼다.

어디 자랑할 곳도 없지만, 내 것이라는 표시를 확실하게 남긴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가시나. 점점 더 야해진단 말야.

승희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삶의 활력소. 삶을 살아가는 이유. 이 좇같은 세상을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

나의…. 소중한 여자.

전동 휠을 타고 물류센터로 향한다.

세아도 타야 하니 전동 휠 한 개를 더 배낭에 매달고 유유히 도로를 질주한다.

역시 수납 스킬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 될지는 모르지만 수납 스킬은 여러모로 유용할 거다.

편의성과 활용도로는 그만한 스킬이 없을 텐데. 스킬 만든 새끼들이 제정신이기만 하다면 말이지.

빨리 매혹을 마스터 해야 할 텐데….

지금 매혹은 고작 15퍼센트.

아직 4천 번을 넘게 더 써야 하는데…. 어휴 귀찮아 죽겠네.

귀찮고 지겹고 번거롭다.

스킬 숙련을 올리려면 꼭 물류센터로 가야 한다는 게 너무 귀찮다.

회복 포션을 벌컥거리면서 스킬을 쓰는 것도 허무하다.

사람의 목숨을 허공에 마구 뿌려대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자연회복만으로 스킬을 올리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대략 200일은 있어야 하니 그것도 쉽지 않고.

모르겠다. 서두르긴 하되 조급해하지는 말자.

내년 봄이 오기 전에 마스터 한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이제 겨울이니 그리 큰 위협은 없을 테니까. 음…. 없겠지?

전동 휠을 타고 10월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왔어요?"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진영.

"어. 별일 없냐?"

"네. 딱히 없죠."

"세아 좀 불러줄래. 나갈 준비 하고 나오라고 해."

"아. 세아요? 알겠어요."

무전기를 들고 안쪽에 연락한 진영이는 나를 보며 물어본다.

"근데 세아는 왜요? 어디 가게요?"

"문 열 곳이 필요해서."

"아하. 확실히 세아 스킬은 사기죠. 덕분에 저희도 못 열고 있던 창고 하나도 열었고."

"못 열고 있던 곳이 있었어?"

"정확하게 말하면 창문으로 드나들던 창고가 하나 있었어요. 앞뒤 문이 엄청 큰 자물쇠로 잠겨있어서 창문보다 큰 물건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래서 안에 있던 지게차도 꺼낼 수 있게 됐죠."

"그렇군."

"근데 어디 문 열게요?"

"있어. 그런 게."

"참. 비밀이 많은 형이야."

그다지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데도 항상 살갑게 구는 녀석. 저런 성격은 어떻게 하면 만들어지는 거야? 진짜 궁금하네.

세아는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진영이는 한 번 더 안쪽에 무전을 했지만 '기다려'라는 대답만 들었다.

뭐 하는 거야 대체. 드럽게 꾸물거리네.

남자 둘이서 멀뚱멀뚱 서 있기가 뻘쭘해서 나는 진영이에게 말을 걸었다.

"최근에 사람 나타난 적 있냐?"

"아뇨. 저희 여기 온 다음에 외부에서 사람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렇긴 하겠지. 그래도 경비 서는 걸 게을리 하지 마."

"네. 당연하죠. 아. 그런데 혹시 세아랑 나가시는 거면 다시 데려다주러 오실 거죠?"

"어."

"그럼 랜선 같은 거 구해주실 수 있어요?"

"랜선?"

"정확하게 말하면 UTP 케이블인데….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봉지에 담겨있는 3m나 5m짜리 선 말하는 거야?"

"네. 그건데. 그건 선을 잘라서 만들어 놓은 완성품이고요. UTP 케이블이라고 해서 막 300m씩 상자에 담겨있는 거 있거든요?"

"아. 뭔지 알아. 왜? 뭐에 쓰려고?"

"세아 덕분에 CCTV 프로그램 admin 계정을 열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손을 보면 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래? 그런 것도 되나?"

"네. 해보니까 될 거 같아요. 서버를 안 쓰고 오프라인 모드로 한 다음 유선으로 이어버리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UTP 케이블이랑 단자랑 압착기가 필요하긴 한데."

"니가 필요한 게 대충 뭔지 알 거 같다. 알았어. 구할 수 있으면 구해오마. 전선 파는 가게 뒤지면 있겠지?"

"네. 맞아요. 전선, 공구, 산업용품 막 그런 거 파는데 있을 거예요."

"그래. 돌다가 보이면 구해오마. 아니면 다음에 나랑 한번 같이 나가던가."

"아. 그럴까요? 차라리 그게 낫겠네. 그때 필요한 거 한 번에 쫙 쓸어오면 되니까."

"그게 낫지. 둘러보고 필요한 거 있으면 적어놔. 한번 나갈 때 전부 구해올 수 있게."

"알겠어요. 아. 저기 세아 오네요."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털레털레 걸어오는 세아.

누가 봐도 동네 편의점 가는 고딩이다. 아니…. 중딩?

한껏 귀찮은 표정을 하고 내 쪽으로 온 세아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왜 귀찮게 부르고 그래요."

"보자마자 또 투덜거리네. 시끄럽고 따라와."

"아니 어딜 가는지 알아야 따라가든 말든 하죠. 내가 그쪽이 가자면 네이 하고 따라가야 해요? 뭐…. 꼭 같이 가달라고 하면 따라가 줄 수는 있지만."

아…. 거 가시나 진짜 누가 츤데레 아니랄까 봐.

진영이는 그런 세아의 반응에 오히려 자기가 더 초조해하는 모습이다.

저 녀석은 나를 좀 대단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너무 충성심이 높다고 해야 하나?

고작 한번 구해준 것뿐인데 말이지.

세아에게 매혹을 걸었다.

어차피 걸어도 겉으론 크게 차이는 안 나겠지만 그래도 말은 잘 듣겠지.

매혹을 쓰는 게 탐탁지는 않지만, 적당한 용법으로 적절하게 쓰기만 하면…. 괜찮을 거다.

무엇보다 세아와 나는 악감정이 없으니까. 남용만 하지 않으면 되겠지.

"그냥 가자면 잔말 말고 가자. 이거 타고 따라와. 탈 줄 알아?"

배낭에 매달려 있던 전동 휠을 내려 세아 앞에 놨다.

세아는 저번에 타봐서 그런지 전동 휠에 냉큼 올라탔다.

"좋냐?"

"뭐…. 가져왔으니 타는 거죠."

그러면서 신나는 표정으로 전동 휠을 움직이는 세아.

하여간…. 저 츤데레. 말하는 거 봐.

"그럼 간다. 고생해라."

"네. 형. 다녀오세요."

세아는 어느새 전동 휠을 타고 저 멀리 갔다가 돌아오고 있다.

내가 오는 것을 보더니 멈춰서 나를 기다린다.

"뭐 별거 아니네."

"그래. 잘났다. 그럼 조심히 따라와라."

내가 앞장서서 앞으로 나아가자 세아가 바로 뒤따라온다.

그렇게 우리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세상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막대한 보물, 세상이 멸망하기 전 남겨진 위대한 유산.

있을지 없을지 확신은 없지만,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그 전설의 방주를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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