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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야?
"내가 왜?"
건방진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서서히 삐질 거리는 표정으로 변한다.
"...요."
"네가 열일곱이든 스무 살이든 어쨌든 간 나보다는 어려. 게다가 초면인데 그렇게 막 반말해도 되는 거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
"너?"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아요!"
"말했잖아. 나는 너를 살려주고 있어.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기도 하고.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내가 너한테 존대도 해야 해?"
그동안 매혹을 쓰면서 본 효과를 생각하면 아직도 저렇게 뻗대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동료를 모두 죽인 남자한테도 살갑게 굴 정도로 사람을 개변시키는게 매혹이다.
그만큼 이 녀석의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둔하다고 해야 하나….
뭐 그것도 슬슬 하나씩 벗겨지고 있는 것 같지만.
"알았어요…."
"그래. 착하다.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어린이지."
"어린애 취급은 하지 마요!"
"근데, 그것도 웃기지 않냐? 네가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너는 어려 보인다고."
"나…. 나도 알아요! 그리고 기분 나빠하는 거 알면 그렇게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요!"
"어려 보이는 거에 대해 왜 그리 기분 나빠 하지? 보통 어려 보인다고 하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 진짜 나이가 어린애한테 어린애라고 하면 발끈하겠지만 너 스무 살이라며. 그럼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잇!"
반응이 웃기다.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모습.
화내자니 정말 어리다는 것을 증명해버리는 꼴이고, 화를 안 내자니 속이 쓰리겠지.
"그래. 나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 그런 건 넘어가자. 성인이라는데 성인 대우 해줘야지. 어린애 취급 안 하마."
"왠지 더 기분 나빠…."
"근데 남자는 왜 그렇게 혐오하고 증오하는 거야? 몹쓸 짓이라도 당했냐?"
"무슨! 그런 말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해요!!!"
"야. 니가 당했어?"
"네?"
"니가 당한 거냐고. 아니면 니 주변에서 당한 거야? 말해봐."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후…. 들어봐. 한 여자가 있어. 너도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걸그룹 맴버야. 걔는 4년 동안 소속사랑 매니저랑 연습생들에게 감금당해서 강간당했어. 내가 그 쓰레기들을 다 쳐 죽이고 그 여자를 구해줬지. 근데 그 여자는 남자를 증오하거나 혐오하진 않아."
내 이야기를 들은 세아는 충격적인지 입을 가리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
"또 있어. 조폭에게 납치당해서 돌림빵 당한 애들도 있고, 오빠가 보는 앞에서 강단 당한 여자애도 있어. 그 외에도 많지. 세상이 이따위로 됐으니 여기저기에서 미친 짓거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자행되고 있다고. 근데 그 걔들이 다 남자들을 증오할까? 아니야. 자신을 그렇게 했던 놈들을 증오하지. 엄한 남자들을 증오하진 않아. 근데, 넌 어때? 왜 모든 남자들을 증오하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세아.
이런. 천천히 간다고 해놓고 갑자기 급발진해버렸네.
이래서 나는 안된다니까.
머리가 나빠서 그런가…. 왜 항상 이런 식이지.
"나는…. 그게…."
"아. 그녀들이랑 너랑 다른 점이 있을 수는 있겠다. 그녀들은 결국 다 복수를 했지. 증오의 대상이 물리적으로 사라졌어. 내가 다 죽였거든. 넌 어때? 복수의 대상이 남아있나? 있으면 말해봐. 내가 물리적으로 지워줄 테니."
결국,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해야지. 괜히 복잡하게 머리 쓰지 말고.
"복수를…. 해준다고요?"
"그놈들이 살아있으면."
"진짜로?"
“그래. 네가 남자들을 증오하는 건 복수할 힘이 없어서야. 증오하는 것은 힘이 없어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도와줄게. 도움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 그러니 말해봐. 일단 누군지는 알아야 들어주지."
"여기서 멀어…. 요."
"어딘데."
"고공동."
"뭐야. 그리 안 머네. 한 시간이면 가겠구만."
"여기서 고공동까지 어떻게 한 시간 만에 가요!?"
"충분해. 그리고 인원은?"
"도망쳐 나올 때는…. 일곱 명이 있었어요. 지금은 몇 명인지 몰라요."
"그게 언젠데."
"1년 조금 더 됐어요…."
"뭐야. 그럼 지금 가도 다 죽고 없을 수도 있네."
"그놈들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어요."
"그거야 니 생각이고. 혹시 거기에 반사 스킬 있는 놈 있냐?"
"네? 반사요? 아니요…. 없어요."
"그럼 탐지는?"
"탐지? 탐지가 뭐에요?"
"주변 인간 탐지."
"그건 처음 들어보는 스킬인데요. 효과가 뭐에요."
"말 그대로. 주변의 인간을 탐지해 내는 스킬."
"그런 거라면 없는 것 같아요."
"됐어. 그럼. 가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 세아가 부랴부랴 침대에서 일어나 나를 따라온다.
"아니! 무슨 계획이나 그런 것도 없이 갑자기 간다는 거예요!?"
"잔말 말고 따라와. 아. 이쪽 먼저."
나는 전동 휠을 찾아 창고의 숙직실에 넣어놨다. 혼자 타고 가기도 애매하고 가다가 멈추면 짐 덩이만 되니까.
"너도 그 짐 필요 없는 거면 여기다 놓고 가라. 움직이는 데 방해되니까."
당황해 하면서도 이래저래 말을 잘 듣는 세아.
롱패딩이나 그 외 잡다한 것들을 빼서 침대 위에 올려놓고 한결 가벼워진 배낭을 등에 멘다.
"가자. 따라와."
나를 못 미더워하는 것 같지만, 매혹에 걸려있는 세아라서 어쨌든 간 내 말은 따른다.
내가 앞장서서 성큼성큼 가니까 깜짝 놀라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세아.
"아니! 누가 있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막 가요!"
"됐어. 주변에 아무도 없어. 그냥 좀 얌전히 따라와라."
고공동 까지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내 뒤를 따라오면서도 한껏 불안한 표정을 짓는 세아.
평소에 안 오던 곳으로 접어들었지만, 주변엔 사람의 기척이 없다.
역시 도심에서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니까.
그래도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 20분 정도 걸었을 때 드디어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은 넷. 죽일까? 아니면 피해갈까.
죽이는 걸 보여줘도 상관은 없겠지만 굳이 힘을 뺄 필요는 없지.
나는 그 네 명을 피해가기로 하고 마주치지 않는 쪽으로 길을 살짝 틀었다.
탐지가 있으니 가능한 짓. 그렇게 몇몇 무리를 더 피해서 고공동에 도착했다.
"진짜…. 한 시간 만에 왔네."
"이제 어딘데."
"아. 이쪽요."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일수록 마음이 열리며 매혹의 효과가 점점 적용된다.
모든 남자에 대한 증오를 굳이 벗겨낼 필요는 없다.
거기에서 나만 빠져도 상관없지. 그래야 내가 세아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테니까.
복수는 굉장히 유용한 감정이다.
복수에 눈이 멀면 다른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 되니까.
지금 세아는 복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것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졌다.
그렇게 모든 감정을 복수에 쏟았다가 그것이 성취되는 순간, 완전히 내 매혹이 적용되겠지.
"여기에요."
"뭐야. 백화점?"
"네. 그놈들은 여기에서 쭈욱 있었어요. 지금도 아마 여기 있을 거예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아까 일곱이라고 했나?"
"네."
"맞네. 마침 안에 다 있나 보다."
"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보면 알아. 따라와."
어느새 목소리 톤이나 말투에도 독기가 많이 빠져있다.
아마 자신도 그런 변화를 못 느낄 정도겠지.
세아를 지탱해주던 분노와 공포, 두려움이 서서히 벗겨지면서 매혹에 잠식되는 거다.
이제, 그 마무리를 해야겠지?
탐지에 걸린 녀석들은 마침 세 명과 네 명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맙네. 알아서 나뉘어 있고.
탐지도 없고 반사도 없는 놈들….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1년 전 정보가 아직도 그대로일 리는 없을 테니까.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가 모두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를 들어 올리면 시끄럽겠지?
일단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어차피 이런 백화점은 출입구가 한두 군데가 아니니까.
"이거 문 열어봐."
직원들 출입 통로같이 생긴 문 앞에서 세아에게 말하자 빠르게 스킬을 써서 문을 연다.
크. 좋네. 역시 쓸만한 스킬이야.
네 명. 이 녀석들부터 처리하자. 몇 층이지? 대충 5층이나 6층 정도 되는 거 같은데.
계단을 찾아 걸어 올라가는데 뒤 따라 오는 세아의 표정이 잔뜩 굳어있다.
아마 이곳에 돌아와서 예전 생각이 났나 보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겠지.
그러니 저렇게 심각한 표정인 거고.
6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조용히 다가간다.
무엇을 하고 있는데 저렇게 열중하고 있는 거야?
보니까 저들이 있는 곳은 한 식당이었다.
밥을 먹고 있나 보네. 그래. 맛있게 먹어라. 그게 최후의 만찬이니까.
백화점에 있는 음식점답게 벽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안쪽이 다 보였다.
밥을 먹다가 그대로 얼굴을 처박고 쓰러지는 네 명.
세아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본다.
"자."
마체테를 건네주자 당황한 듯 어찌할 줄을 몰라 한다.
"죽여야지? 그게 복수지."
하지만 금방 표정이 바뀌고 진중한 얼굴이 됐다.
"여기, 목. 이 부분을 전력으로 내리쳐야 할 거야. 실수해도 괜찮으니 계속 내려쳐. 죽을 때까지."
세계가 이 꼴이 될 때까지 사람 하나 제대로 죽이지 못하고 살아온 여자.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대단한 거다.
나같이 다른 이들의 고혈을 빨며 살아온 게 아닌, 세계와 싸우면서 살아남은 생존력.
부족한 신체 능력을 최루탄 같은 것으로 커버하며 자신의 스킬과 비상한 머리, 훌륭한 판단력만으로 살아 남은 거다.
존중해 줘야 할만한 능력이고 대단하다고까지 생각한다.
콰작!
한이 깃든 여자의 복수는 매섭다.
힘이 부족할 것 같았는데 깔끔하게 한 번에 한 녀석을 해치웠다.
"좋아. 나머지 셋도."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쉬운 법이다.
정확하게 마체테를 겨누고 목을 찍어대는 세아.
남자들 넷이 모두 처리됐고, 세아는 약간 멍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 안 끝났어. 아직 셋이나 남았잖아. 긴장 풀지 마."
"네. 알았어요."
다시 또렷해진 목소리. 좋아. 좋은 상태야.
이제 다음 층으로 가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