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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야?
아오. 눈 매워. 숨도 막히고.
뭔진 몰라도 대충 최루탄 같은 건가 보다. 이거 너무 괴롭네.
창고 옆에 있는 화장실에서 물을 틀고 흐르는 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런 건 비벼서 닦아내려고 하면 안 된다 그랬던가? 암튼 흐르는 물로 좀 씻어냈더니 좀 살 것 같다.
정말…. 뭐 저런 계집애가 다 있냐.
다짜고짜 최루탄이라니.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야?
밖으로 나와 쓰러져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작은 키, 작은 몸. 아무리 봐도 성인으로는 안 보인다. 가슴도 작고 몸도 왜소하잖아. 이걸 어떻게 성인으로 봐.
괘씸하긴 한데, 그렇다고 죽이고 싶진 않다.
잠금 해제라는 스킬을 쓰는 사람은 처음 봤으니까.
전에 스킬 목록에서 스킬 이름을 봤을 때 그냥 자물쇠나 이런 걸 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은 했었다. 보통 게임에서도 그런 용이니까.
근데 전자식 잠금장치도 열어버린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아이는 세상에 모든 집이나 건물들은 전부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잖아? 굉장히 유용한 스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는 아닌 스킬.
스킬 가진 사람을 옆에 두고 있는 게 딱 좋은 정도?
어려 보이는데도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점, 나름 유니크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대범함.
성격은 좀…. 드세 보이긴 하던데 그 정도야 뭐 상관없고.
얘는 물류센터로 보내야겠다. 살려둘 가치가 있어.
어쩐다.
위협이 되진 않지만 설득하는 게 귀찮다.
매혹을 쓰는 건 꺼림칙하지만 어차피 물류센터에 있으면 크게 상관없겠지.
미나처럼 잘 조절해서 쓰면 문제 없을 거야.
일단 매혹을 걸어 놓고 창고 건물을 돌아봤다.
별로 깨끗하진 않지만, 숙직실 같은 방이 있다. 침대만 있으면 되니까 상관없지.
적당히 먼지를 털어 누울만한 상태를 만들어 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쓰러져있는 여자애를 안아 들었다. 굉장히 가벼운 몸. 거짓말 조금 보태서 무게가 별로 안 느껴질 정도의 몸이다.
참나…. 이런 몸으로 잘도 지금까지 살아왔구나.
여자애를 침대에 눕혀놓고 배낭도 침대 옆에 놓았다.
이제 곧 수면이 풀릴 테니 의지를 하나 가지고 와서 침대 옆에 놓고 앉았다.
세팅은 적당히 끝났고…. 이제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인데.
매혹을 걸어놨으니 호감도는 만땅일 테고. 적당히 유도만 하면 되겠지?
"으음..."
여자애가 일어났다. 눈을 끔뻑거리더니 벌떡 하고 제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났냐?"
"뭐야! 나한테 무슨 짓을 했어!"
"무슨 짓은…. 니가 나한테 했지. 다짜고짜 그런 걸 던지면 안 되지. 눈 따갑고 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다."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자신의 몸을 만져보며 이곳저곳 확인하는 소녀.
"아무 짓도…. 안 했어?"
"무슨 소리야?"
"고자야? 아니면 게이야? 어떻게 아무 짓도 안 하지?"
"어휴. 넌 좀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거 같다."
"뭐야…. 진짜 안 했네. 너 남자 맞니?"
"근데. 넌 왜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자꾸 반말이냐? 대체 몇 살이냐? 한 열다섯 되냐?"
"이익…. 열다섯이라니! 난 스무 살이야!"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어떻게 니가 스무 살이야."
"시끄러워! 왜 나이가지고 지랄이야!"
아마도 자신의 왜소한 몸 때문에 콤플렉스라도 있는 거 같다. 매혹이 걸려있는데도 굉장히 까칠하게 구네.
"알았어. 좋아. 스무 살이라고 믿어줄게. 근데 왜 다짜고짜 공격한 거야?"
"니가…. 남자니까."
"그럼 내가 남자지 여자냐? 아니면 남자는 무조건 공격부터 하고 보는 거야?"
"남자 놈들은 다 쓰레기라고! 여자만 보면 자지 세우고 자빠뜨릴 생각만 하잖아!"
"어…. 네 말이 틀린 건 아닌데. 모두가 그런 건 아냐. 그렇다고 먼저 그렇게 공격하면 쓰나."
...내가 할 말은 아니네. 보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진짜 웃긴다. 코미디가 따로 없네.
"시끄러워….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음흉한 속셈을 말해봐."
남자에 대한 증오가 굉장히 심하다. 매혹이 걸려있는데도 이 정도라니.
대체 무슨 삶을 살았길래 이렇게 들개 같은 모습인 거야? 아니지. 이게 이 세상에서는 정상적인 모습인가?
"너. 스킬 잠금 해제지?"
"그래! 그게 뭐!"
"그게 뭐라니. 나는 네 스킬에 관심이 있어서 그래."
"헛소리 하지 마…. 너도 결국 몸이 목적이잖아."
"하아. 미치겠네. 야. 너 이름이 뭐냐. 나는 권성철이다."
"왜 이름을 물어보고 지랄이야? 엉? 누가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대?"
...매혹 걸린 거 맞지? 분명 머리 위에 시간이 줄어들고 있으니 매혹이 걸려있는 건 맞는데.
보통 매혹이 걸리면 무슨 짓을 했건 매혹 건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되어있는데.
얘는 뭐야…. 그 정도로 남자에 대해서 증오가 깊은 거야?
아니면 이거 극한의 츤데레인거야? 그런 수준이 아닌데?
"야. 우리 좀 편하게 말 좀 하자. 내가 지금 너를 배려해서 꼼짝도 안 하고 여기 앉아서 친절하게 대해주잖냐. 보통은 테이프로 묶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이 아이는 제법 똑똑해 보인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어디까지 튕겨도 되는지와 어디까지 투덜거려도 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하는 걸 보면 결코 선은 넘지 않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금을 밟고는 있지만.
내 말을 들은 녀석은 퉁명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세아다. 윤세아."
"좋아. 윤세아 양. 편하게 세아로 부를게. 네가 스무 살이라고 했으니 믿겠어. 사는 곳이 있거나 일행이 있어?"
"그런 건 대체 왜 물어보는 거야?"
"물어보는 말에 대답부터 좀 해줄래? 다 설명해줄 테니까?"
매혹은 작동하고 있다.
워낙 남자에 대한 적대감이 심해서 그런 거 같다. 매혹을 억누를 정도의 적대감이라니…. 어느정도인지는 실감이 안 나지만.
어쨌든 매혹에 걸려있다면 결국은 내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급할 것 없이 천천히 하자.
겹겹이 세워져 있는 마음의 벽을 단숨에 부숴버리는 충격 요법도 좋지만,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것도 좋겠지.
"없어. 사는 곳도, 일행도."
"그럼 떠돌아다니면서 잠금 해제 스킬을 이용해서 먹을 걸 구하고 다니는 거야?"
"그래."
"솔직히 말하면 네 스킬이 탐나. 그래서 나는 너를 곁에 두고 싶어."
"무슨 개소리야? 수작질 한번 더럽네. 진짜."
"아. 내가 말을 잘못했네. 내 곁에 두는 게 아니지. 네가 머무를 만한 곳이 있어. 여자가 훨씬 많은 곳이고 돼지나 닭도 키우고 텃밭도 가꾸는 요새 같은 곳이야. 그리고 적어도 거기에 가면 굶을 필요는 없어."
"무슨 농담을 그렇게 거창하게 하지?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어디 금송아지도 있다고 말해보시지?"
"너 정말 스무 살 맞아? 말투로 봐서는 무슨 아저씨 같은 말투인데?"
"신경 꺼! 내가 이런 말투 쓴다고 뭐 보태준 거 있어?"
정말 살아온 행적이 궁금해지는 여자다.
매혹에 걸려있으니 거짓말은 못할 텐데…. 정말 스무 살 인 거야? 아니지. 남자에 대한 증오감으로 매혹이 억눌려서 나이 정도는 속일 수 있나?
일단 뭐…. 나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스무 살이라고 치자.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해서 얻을 이득이 뭐가 있어?"
"몸이겠지! 남자들은 여자를 그런 식으로밖에 안 쓰잖아!"
"아…. 진짜. 나는 네 몸에 관심 없다고. 네 스킬이 탐난다니까?"
"웃기지 마…. 다들 그런 식이지. 아니라고 말해놓고 결국에는 올라타서 헐떡거리고 싶은 생각밖에 없잖아."
"하아."
내가 한숨을 쉬자 세아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왜 한숨이야? 들켜서 찔리냐?"
"세아야."
"친하게 이름 좀 부르지 말아 줄래?"
"아. 쫌 틱틱 거리지좀 마라. 왜이리 짜증 나게 구냐? 너 내 스킬이 뭔지는 아냐?"
"기절 같은 거겠지. 순식간에 날 쓰러뜨렸으니까."
"그래. 기절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너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어. 아니. 스킬이 아니어도 너 정도는 힘으로 제압도 가능하고. 내가 널 강간할 생각이었으면 이미 수십 번도 더 했겠다.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니?"
모르는 게 아니다.
저 여자는 안다. 아마 지금 속으로 엄청나게 혼란스럽겠지.
남자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
그리고 매혹 때문에 그걸 덮어버릴 정도로 솟아나는 나에 대한 갈망과 애정.
두 가지가 충돌하고 있기에 저렇게 갈등하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저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거다. 겁먹은 개가 요란하게 짖는 것처럼.
"알았어. 틱틱거리지 않을게."
좋아. 한풀 꺾였다.
아무리 의지가 대단하다고 해도 스킬을 이길 수는 없다.
지독한 불면증도 결국은 수면 스킬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세아도 매혹을 이길 수는 없을 거다.
"좋아. 네 스킬에 대해서 말해줄래? 잠금 해제에 대해서."
"뭘 어떻게 말해주면 되는데."
"스킬 등급이 어떻게 돼?"
"등급이 뭐야. 고급 그런 거?"
"어. 고급 잠금 해제야?"
"맞아."
좀 고분고분해졌다. 그래. 하나하나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아까 보니까 비밀번호나 카드키로 열리는 전자식 잠금장치도 열던데, 그건 처음부터 열 수 있었어?"
"아니. 중급부터."
"중급부터? 그럼 처음에는 못 열고?"
"어."
"그럼 처음 스킬 일 때는 그냥 열쇠로 여는 것만 열리고?"
"어."
"중급일 때 전자식 잠금장치도 열었으면…. 고급은? 고급 되고는 뭐가 달라졌어?"
"핸드폰 액정 화면."
"엥?"
"모든 전자기기의 비밀번호들. 내가 알아낸 건 그것밖에 없어."
"그런 게 된다고? 지문인식이나 홍채인식 이런 것도 되나?"
"어. 그냥 다 열 수 있어. 스킬만 쓰면."
"와…. 대박이네."
"대박은 무슨. 고작 도둑년일 뿐인데."
"아니지! 네 스킬이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거잖아! 게다가 모든 전자기기의 비밀번호? 야. 너는 네 능력을 쓰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야! 어…. 예를 들면 정부 청사 같은데 들어가서 컴퓨터를 켤 수 있으면 거기 저장되어있는 정보들을 다 볼 수 있는 거잖아?"
"그런 걸 봐서 뭐 하려고. 쓸모없게."
"쓸모없긴! 쓰기 나름이지! 너라면 대통령의 비밀 벙커 이런 것도 어딨는지 알아낼 수 있고 찾아가서 들어갈 수도 있는데?"
"오…."
"게다가 정부에서 쌓아놓은 비축 식량 같은 거나 그런 것도 찾을 수 있을 거고."
"너…. 되게 똑똑하다? 난 왜 지금껏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지?"
"암튼. 네 스킬은 그 정도로 좋은 거야. 게다가 희귀하잖아. 아마 잠금 해제 같은 걸 고르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굉장히 특별한 스킬이라고."
"하…. 살다 살다 이 스킬을 이렇게 좋게 봐주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그리고."
"그리고?"
"너. 나이도 어린데 자꾸 반말하지 좀 마라."
내 말에 세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