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04화 (104/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바다

"일어났어요?"

눈을 뜨고 눈앞에서 알몸으로 누워 있는 승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마나 놀랐냐면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오고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내가 그 심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은 건 평상시에 표정을 잘 안 짓는 덕분인 것 같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약간은 표가 났는지 승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잤어?"

"잤냐고요? 잘 자던데요? 근데 내가 깨운 거 아니죠? 일어나려고 했던 거죠?"

맙소사.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스킬도 안 쓰고 잤다고? 불면증인 내가? 게다가 그것도 다른 사람 앞에서?

"나 배고파요. 밥 먹어요. 밥. 밥. 밥."

내 경악스러운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승희는 천진난만하게 밥을 외친다.

아예 밥으로 허밍을 하며 알 수 없는 노래까지 부른다.

일단 상점에서 코인으로 음식을 샀다.

적당하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꺼내자 승희가 식사 준비를 한다.

그제야 조금 내 상태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잤다.

정말로 쿨쿨 잤다. 평범한 사람처럼.

사나흘은 못 자고 괴로워하다 기절하듯 끔찍한 기분으로 잠든 게 아니고 정말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마치 내 몸을 좀먹고 있던 불면증이 없는 것처럼.

만약 나 혼자 있을 때 그랬다면 진심으로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 앞에서 잤다.

아무리 승희 곁이었다고 하지만 내 몸을 무방비한 상태로 몇 시간이나 노출했다는 거다.

죽어도 몇십 번은 죽었을 수 있었던 상황.

만약 승희가 나에게 숨겨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먹어요. 준비 다 됐어요."

"어? 어…."

"왜 그래요? 뭐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알몸으로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는 승희.

그래…. 승희가 나를 해칠 이유가 없지. 내가 죽으면 식량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의 이야기다.

사람 많은 카페에 돈이 잔뜩 들은 지갑을 실수로 두고 왔다가 무사히 찾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

"아냐. 먹자."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을 못 차린다.

영 깨작거리고 있으니 승희가 나를 보며 말한다.

"배 안 고파요? 든든하게 먹어야 또 물놀이하죠!"

나는 먹던 것을 내려놓고 승희에게 물었다.

"승희야."

"네?"

"왜 나를 가만뒀지?"

"에엥?"

"그동안 당한 게 있었잖아. 절호의 찬스였잖아? 근데 왜 가만뒀어? 나를 테이프로 묶어서 제압하고 마음껏 조롱하며 고문하다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는데?"

나도 내가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왜 승희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난…. 제정신이 맞긴 한 거야?

"와. 이 오빠 진짜 변태였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난 승희는 의자에 앉은 내 무릎 위에 올라탔다.

"자. 제정신이 아닌거 같으니까 정신 좀 차려요."

그러더니 내 머리를 꼭 끌어안아 자신의 가슴에 파묻는다.

승희의 심장박동 소리가 내 귀에 전달되고 풍만한 가슴이 내 얼굴에 기분 좋은 감촉을 전달한다.

"한 번만 더 그런 헛소리 하면 나도 정말 화낼 거예요. 대체 어제 내가 한 말은 어디로 들은 거야?"

알몸인 승희는 상당히 야한 자세지만…. 선정적이라곤 하나도 느끼지 못하겠다.

아니…. 오히려 성스러운 느낌이다. 아이를 품은 어머니 같은 모습.

그 마음과 온기가 느껴지니 마음속에서 뭔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이 났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 뒤, 망가지고 부서져만 가던 무언가가 처음으로 치유된 것 같은 기분.

아아. 그녀는 스킬만 힐이 아니었구나.

그냥 그녀의 존재 자체가 나에겐 힐이었구나.

내가 승희를 확대해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변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뭐가 됐든 나를 좋은 쪽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미안."

"미안한 거 알면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나 참. 아침부터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듣네. 빨리 밥이나 마저 먹어요. 물놀이하러 갈 거예요."

순순히 승희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래. 저런 승희를 아직도 믿지 못하는 내가 비정상인거지.

드디어 나는 그녀가 나에게 있어서 특별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세상에 흔하디흔한 여자가 아닌 정말로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

음식을 마저 먹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전용 해변으로 가기 전에 리조트 안쪽에 있는 커다란 마트로 먼저 가서 쓸만한 것들을 찾았다.

"와! 튜브! 캠핑용 돗자리! 꺄아! 이것 봐요! 오리 튜브! 나 이거 할래요! 오오오. 여기 에어 페달도 있어!"

마트에는 놀이 용품이 제법 많이 있었다.

아마 모친 출타한 양심 없는 가격에 팔고 있어서 재고가 이렇게 남았겠지?

알게 뭐람. 우리는 돈을 낼 필요가 없는데.

그 외에도 에어 보트나 물안경 같은 것도 있어서 보이는 대로 집어 왔다.

어차피 다 공짜인데 이것저것 가릴 필요가 없지. 다 해봐야 하지 않겠어?

덕분에 한참을 에어 페달을 밟으며 땀을 왕창 흘렸지만, 재미있게 가지고 노는 승희의 모습을 보니 힘든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튜브에 누워 양산을 쓰고 바다에 동동 떠 있는 승희.

아…. 저러고 있으면 뒤집지 않을 수가 없잖아.

"어…. 눈빛 뭐에요? 오빠?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다 알거든요? 어어…. 오지 마요?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악! 꺄아아."

물에 빠진 뒤 내게 복수하겠다고 덤벼들었지만, 승희의 힘으론 나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

오히려 두어 번 정도 더 나에게 물로 내 던지어져 진 승희가 나를 보며 복수의 칼날을 간다.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할 내가 아니지.

승희는 계속 나를 쓰러뜨리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은 포기했다.

후후. 아직 멀었다. 아가야. 좀 더 근력이 필요하겠구나.

한참을 그렇게 신나게 놀고 파라솔이 세워진 돗자리에 나란히 누워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걸 뭐라 그러지. 돗자리 말고…. 폴딩 매트? 하여간 푹신푹신하기도 하고 크기도 커서 상당히 맘에 든다.

이거라면…. 여기서도 가능할 것 같은데?

"어어? 뭐해요? 그거 잡아당기면 수영복 벗겨져요."

"벗기는 건데?"

"아잇! 뭐야. 진짜로 알몸으로 놀라고요?"

"아니. 알몸으로 좋은 거 하려고."

어제는 모래 때문에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장비가 있으니까 오늘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수영복을 벗기려 하자 승희는 입으로는 싫다고는 하는데 크게 거부하지는 않는다.

"으…. 정말로!"

탁 트인 바다 앞 눈부신 백사장에서 알몸이 된 나와 승희.

그 기묘한 해방감이 한껏 흥분을 가져다준다.

잔뜩 발기해 있는 내 자지를 힐끔 본 승희가 묘한 미소를 짓더니 자지에 그대로 입에 문다.

"으엑. 짜!"

바닷물 때문에 짠맛이 나는지 잔뜩 인상을 쓰는 승희.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번을 빨아서 침을 뱉어내더니 본격적으로 내 자지를 빨아대기 시작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가슴을 출렁이며 내 자지를 맛있게 빨고 있는 승희의 모습은 원초적이고 자극적이다.

게다가 입으로 하는 것도 제법 실력이 늘어서 어떻게 해야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지 알고 있는 그녀는 순식간에 나를 사정하게 만들었다.

"후후. 어때요? 이제 못 당하겠죠?"

의기양양한 모습의 승희. 귀엽고 건방지다.

나는 그런 승희를 눕히고 똑같이 갚아줬다.

남자처럼 사정하지는 않지만, 허리가 들썩이는 거 보면 그녀도 순식간에 절정을 맛본 게 틀림없다.

"1 대 1?"

"으으…. 진짜…."

고작 동점 골을 넣었다고 만족할 수는 없지. 바로 역전 골을 향해서 공격을 전개한다.

자지는 이미 다시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몸에 묻었던 바닷물이 말라 피부가 약간 따끔따끔했지만, 나와 승희가 이어질 부분들은 서로가 충분히 핥아줬기에 바닷물 같은 것은 남지 않았다.

"으읏. 하앙."

많은 것이 농축되어있는 짧은 신음.

진짜 기분 좋은 듯한 느낌과 음탕함, 더 해달라고 조르는 것 같은 느낌과 사랑스러움.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하는 섹스는 평소보다 더 큰 쾌감을 안겨준다.

종종 야외에서 섹스를 해보긴 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개방된 곳에서 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더 그런 느낌이 든다.

폭풍 같은 섹스가 끝나고 나는 승희를 끌어안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네?"

"멋지지 않아? 수평선?"

"수평선이 왜요?"

"봐봐.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둘 다 푸르다고 표현을 하지만 실제는 색이 다르잖아? 수평선은 그 푸름을 구분 짓는 선이야."

"와…. 오빠 국문과 같은데 나왔어요? 느낌 있는데요?"

"나? 나는 화학과인데."

"엑? 화학과요? 그 비커 같은데 액체 같은 거 끓이면서 스포이트로 실험하는?"

"뭐…. 비슷하긴 한데 사실 그렇게 오래 다니진 못해서. 고작 반년 다니고 세상이 이렇게 됐으니."

"흐응. 그렇구나. 난 중학교 졸업도 못 했는데."

"아…. 그렇게 되나?"

"네. 억울하죠. 최종 학력이 초졸이라니…. 맙소사."

"그게 또 그렇게 되네. 안타깝다."

"뭐…. 상관있나요. 어차피 졸업장이 목숨 하나 더 늘려주는 것도 아닌데."

"하긴. 그래. 가방끈이 생존에 그렇게 크게 도움은 안 되니까."

잠시 찾아온 정적.

"오빠."

"응?"

"오늘 돌아갈 거에요?"

"글쎄. 기왕 왔는데 그렇게 빨리 가긴 아쉽지?"

"그쵸? 하루만 더 있다 갈래요?"

"원하면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도 돼."

"오…. 정말요? 근데 너무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아요. 자외선 차단제 같은 것도 없어서 바다에서 그렇게 오래 놀지도 못하니까."

"하긴. 그렇긴 하다. 너 상당히 많이 탔어."

"풉. 오빠는 안 그런 줄 알아요?"

"그러게. 내가 할 소리는 아니네."

"내가 아까 리조트 마트에서 뭘 챙겼는지 볼래요?"

그러더니 봉지 하나를 가져오는 승희.

"이게 뭐야? 아아. 불꽃놀이??"

"네. 나 오늘 밤에 이거 할거에요. 이게 하고 싶었어."

"그래. 뭐 상관없지."

"어? 괜찮아요? 난 요란해서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괜찮아. 주변은 안전하니까."

"네?"

"아. 아냐. 어차피 여긴 전용 해변이고 뒤에 건물들이 막고 있으니 다른 곳에서 안보일 테니까. 상관 없을 거란 이야기지."

"아아."

"근데 이건 밤에 해지고 해야 하잖아."

"그렇죠. 지금 할 것은 아니죠."

"그럼, 어디 다른데 좀 다녀올까?"

"다른데요?"

"응. 이 근처에 내가 아는 좋은 곳이 있어서. 보여주면 좋을 거 같아서."

"오! 당연히 좋죠! 어딘데요?"

"가보면 알아."

"그래요? 그럼 빨리 가요."

서둘러 몸을 일으키는 승희.

해변에서 나신으로 서 있는 게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승희를 헤벌레 하며 바라보다가 한번 핀잔을 듣고 옷을 입으러 방으로 돌아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