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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처음 한 명으로 느껴졌던 기척이 두 명이 되었다.
그리고 세 명, 네 명…. 자꾸 늘어난다.
뭐지? 씨발? 숫자가 많은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있는 건물로 다가오는 기척은 어느새 열을 넘어섰다.
아니…. 고작 두 명 잡는데 열 명이 넘게 온다고? 이게 무슨 상황이야. 좇같네?
매복을 할 숫자가 아니다. 이건 나가서 요격을 해야 한다.
승희는…. 전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되겠지.
일단 승희를 재웠다.
잘 자고 있지만, 괜히 일어나서 나를 돕느니 어쩌니 하는 것보단 차라리 조용히 자고 있는 게 낫다.
급하게 종이에다가 '절대 나오지 마. 여기 숨어 있어.'라고 휘갈겨 쓴 뒤 승희의 손에 쥐여줬다.
그리고 방 카드키를 뽑아 주머니에 넣고 나와 방문을 닫았다.
이러면 쉽게 열지는 못하겠지. 저들이 마스터키라도 들고 있지 않은 이상.
...생각해보니 마스터키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라면 저렇게 당당하게 밀고 들어올 리가 없어.
카드키를 부숴버릴까? 아니다. 지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다.
먼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 그리고 저들이 누구인지, 인원 조합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탐지 거리가 길어서 실시간으로 위치를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어느새 건물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
숫자는…. 열넷.
씨발…. 뭐하는 새끼들이지? 나는 서둘러서 입구 쪽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
어두워서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충 알만했다.
제일 젊어 보이는 사람이 40대 중반은 될것 같은 남자다.
구성원 대부분이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다.
이 동네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 아니면 관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
뭐가 됐든 상관없다. 어차피 우릴 노린 이상 다 죽여야 할 놈들이니까.
그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서 위쪽으로 올라오려 하고 있다.
올라올 수 있는 계단이 세 군데인가? 그럼, 엘리베이터는?
이런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방법은 아니지만, 허를 찌르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지.
하지만 버튼을 눌러도 엘리베이터는 모두 1층에서 꼼짝도 안 한다.
씨발.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완벽하게 갇혔다.
아마도 저들은 우리가 몇 층에 있는지 뻔히 알고 있겠지?
멀리서 망원경 같은 거로 봤으면 얼마든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일단은 저들이 셋으로 나뉜 게 다행이다.
하나로 뭉쳐있으면 아무리 지랄을 해봐도 밀릴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지.
다섯. 다섯. 넷으로 나뉘어 위로 올라오고 있는 녀석들.
우리가 있는 곳은 9층. 높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이런 일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운이 좋았어.
일단 빠르게 소리를 죽이고 6층으로 내려갔다.
저들은 탐지가 없다. 장담할 수 있어.
탐지가 있다면 셋으로 나뉠 리도 없지. 내가 움직였을 때 반응도 있었어야 했고.
네 명이 올라오는 쪽 계단 비상구 옆에 숨어서 그들이 올라가기를 기다린다.
매복과 기습, 각개격파.
그리고 탐지로 인한 실시간 위치 확인.
곤란한 상황이긴 하지만 질 순 없지. 댁네가 얼마나 사람을 잡아 죽였는지는 몰라도 나본단 덜할걸?
네 명이 계단을 걸어 올라와 내가 숨어 있는 곳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나갔다.
조용히 얼굴만 내밀고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반사가 없어라. 제발. 제발!
네명을 모두 재웠다. 좋아. 다행히 반사는 없었네. 일단 네명은 해결 됐고.
깡마른 노인 둘에 비교적 젊어 보이지만 그래도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 그리고 동남아 여자 하나.
다들 낫이나 부엌칼 같은 것들을 들고 있다.
씨발. 흉흉하네. 무기들이 너무 원초적인 거 아냐?
여자가 하나 끼어있는 건 좋은 일이지.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으니까.
노인 둘과 남자를 바로 쳐 죽이고 동남아 여자에게 매혹을 걸었다.
[3,21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194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7,114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이런 여자에게 매혹을 거는 건 찝찝하긴 했지만 써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매혹이 걸린 여자의 뺨을 세차게 몇 대 때려서 깨웠다.
"아…. 아파. 그만 때려."
"너희 같이 온 사람 중에 반사 스킬 있는 사람 있냐?"
"반사…. 없다. 그런 스킬 없어요."
"좋아. 너. 가서 같이 온 사람들을 죽여. 멍청하게 무작정 돌진하지 말고 아무 핑계를 대서라도 근처에 붙은 다음 공격하란 말이야. 알았어?"
"응. 알았어요."
여자는 엉성하게 대답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다.
"9층으로가. 그리고 가장 먼저 발견한 녀석들을 죽여. 가."
여자를 보내고, 나는 7층을 가로질러 중앙 쪽 계단으로 올라오는 다섯 명에게 다가갔다.
이미 7층을 지나 8층을 올라가고 있는 다섯.
남은 다섯은 아직 6층에 있다. 저쪽은 연령대가 높은가? 올라오는 속도가 느리네.
조용히 중앙의 다섯을 쫓아가며 탐지를 돌리니 아까 동남아 여자가 다섯에게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9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 비상구 문 뒤에서 바깥의 상황을 탐지로 살핀다.
"으악!"
"뭐야! 기철댁! 미쳤어!?"
"잡아! 이년 왜 이래!?"
조용히 비상구 문을 열어 상황을 살핀다.
한 명이 낫에 찍혀 피를 철철 흘리고 있고, 남자 셋이 동남아 여자를 제압하려고 바둥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40대 아줌마 하나.
몸을 숨긴 채 남자 셋을 재우고 아줌마에게도 매혹을 걸었다.
씨발…. 진짜 걸고 싶지 않은데….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남자들 다 죽여."
아줌마와 동남아 여자는 들고 있던 무기로 남자들을 다 찍어 죽인다.
순식간에 정리되는 상황.
그런 아줌마와 동남아 여자에게 다음 지시를 내린다.
"저 끝에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가. 가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까이 붙은 다음 공격해. 가."
평소에 어떻게 사냥을 했는지 몰라도 어설프기가 짝이 없다.
경험은 있지만, 그리 능숙한 것 같진 않다. 하긴 이런 일이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겠지.
어떤 미친놈들이 이런 세상에서 바다로 놀러 올 생각을 하겠어.
남은 인간은 다섯. 저 여자 둘이 다섯 중 하나만 제압해도 나머지는 내가 처리 가능하니 이제 문제 될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한층 내려가 복도 끝으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뛰어갔다.
"얼래? 왜 둘이 이쪽으로 와?"
"아악! 뭐야! 이 여편네들이 왜 이래!"
"잡아! 아니, 손에 무기 뺏어!"
이쪽은 남자가 넷, 40대로 보이는 덩치 큰 아줌마가 하나.
남자 둘이 하나씩 여자를 제압하고 덩치 큰 아줌마가 재빨리 무기들을 치운다.
쉽네. 뻔한 결말이다. 남자들은 잠들었고, 덩치 큰 아줌마는 매혹당했다.
씨이발…. 아무리 그래도 아줌마를 둘이나 매혹하다니. 존나 찝찝하네.
"남자들 다 죽여."
자신들의 남편이나 시아버지, 옆집 이웃, 오래 봐온 친구일 수도 있을 텐데, 여자들은 망설임 없이 무기를 휘두른다.
이로써 남자들은 모두 처리했다. 이제 남은 건 여자들 차례.
"너희 인원이 이게 다야? 더 남아있거나 후속대가 있나?"
"없어요."
"그래? 그럼 다 자라.“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 들을 걸 들었으면 빨리 재워버려야지.
남겨진 인원이 더 있다면 찾아가서 뿌리까지 뽑아버렸어야 했는데…. 번거로운 일은 없어졌네.
다행이야.
쓰러진 여자들을 망설임 없이 찍어 죽였다.
[21,645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9,54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3,10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열네 명을 잡아 죽인 것 치고는 코인 양이 별로 안 된다.
쩝. 뭐…. 내가 코인 벌려고 죽인 건 아니니까.
어쨌든 무사히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매혹이 없었더라면 힘들뻔했어.
다시 조용해진 호텔.
이 주변이 이 인간들의 구역이었다면, 적어도 우리가 머무는 동안은 더 습격이 있지는 않겠지.
다시 방으로 돌아가니 승희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 쥐여준 메모를 도로 가져가 잘게 찢어서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승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잖아?
인간의 어두운 부분이나 추한 부분을 굳이 더 보여줄 필요는 없다.
이미 봐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가능하다면 앞으로는 좋은 것만 보게 해주고 싶다.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도, 그냥 그렇게 해주고 싶다.
사람을 죽이고 나면 몸에 피 한 방울 남지는 않지만, 왠지 찝찝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씻게 되는 것 같다. 이것도 강박증의 하나겠지.
비록 묻어있는 것도 씻겨 내려가는 것도 없지만, 열심히 몸을 씻고 나서 속옷만 입은 채 승희의 옆에 누웠다.
잠을 잘 생각은 없다.
누군가를 옆에 두고 자는 건 무리다. 아무리 승희라 하더라도 그건 힘들지.
어차피 하루. 잠을 안 잔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까 그냥 참을 생각이다.
몸이 조금 피곤하겠지만, 그건 포션으로 버티면 된다.
돌아갈 때 운전이 문제지만, 불면증 환자라 적어도 졸음운전은 안 하겠지.
밤은 아직 길다.
나는 자는 승희를 뒤에서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잠은 안 올 테니 승희의 온기나 느끼면서 긴 밤을 버텨봐야지.
괜히 가슴을 주무르면 깰까 봐 그냥 얌전히 끌어안고만 있었는데 승희가 나를 향해 돌아보더니 내 품에 쏙 안겼다.
얘 안 자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숨소리가 느리다.
잔뜩 풀어진 얼굴로 자는 모습을 바라보니 갖가지 생각이 다 든다.
좋겠네. 편안하게 잘 수 있어서.
계속 보고 있으면 부러움에 질투가 날 것 같아서 그냥 눈을 감고 내일 할 일이나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