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94화 (9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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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

"둘 다 1층에 가 있어. 내가 내려갈 때까지 올라오지 말고. 쓸만한 거 있나 살펴보고."

나연이와 정아는 내가 무엇을 할지 뻔히 알지만, 내 말을 거역할 수 없다.

조금의 불만도 내비치지 못하고 1층으로 내려가는 두 사람.

알몸이 된 아이돌과 단둘이 남은 나는 문부터 닫았다.

"음…."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몸이다.

보기만 해도 자지가 벌떡 설정도?

가슴을 만져보니 폭신함이 다른 느낌이다. 느낌인가? 아니면 정말 그런 건가? 모르겠다. 암튼 엄청 좋네.

젖꼭지도 귀엽고 보지도 모양이 이쁜 일자인 데다가 색도 귀여운 핑크색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이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아까 그놈들이 수도 없이 박아댔을 텐데 마치 아직 한 번도 남자를 겪어보지 못한 몸처럼 깨끗해 보인다.

음…. 역시 한번 넣어 봐야겠지?

이런 좋은 여자를 보고 섹스를 안 하면 당연히 손해 않아?

그렇게 바지를 벗으려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론상으로 생각만 해놓고 아직 해보지 않은 작업.

실험을 해봐야겠다.

거짓으로 만든 호감도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어떻게 작용이 되는지.

매혹이 한 시간이라는 것은 참 좋은 일이야. 수면 20분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 여기서 벙커까지는 걸어서 30분이 안 걸리니 충분히 가능하겠어.

미나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고 잠에서 깰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수면에서 일어난 미나.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얼굴을 붉힌다.

"어…. 누구…?"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끼어들었는데, 쓸데없는 짓이었나?"

"아! 아니에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정말로 감사해요. 흑…."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미나.

아마도 그동안 억눌리고 참아왔던 설움이 폭발한 듯 울기 시작한다.

잠자코 눈물을 그칠 때까지 기다린 나는 조용히 말을 걸었다.

"잠시 비켜줄까?"

"흑…. 아니에요. 괜찮아요. 진정됐어요."

지금 미나는 매혹이 걸린 상태다.

그리고 본인은 매혹이 걸려있는지를 모른다. 그녀의 시선으로 봤을 땐 나는 거의 백마 탄 왕자님처럼 보일 거다.

깨어있을 때 매혹이 걸렸다면 갑자기 생긴 나에 대한 감정에 대해 나중에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녀에겐 그런 게 없다.

자고 일어났는데 자신이 처해있던 끔찍한 상황을 모두 해결해준 남자.

게다가 본인이 걸린 매혹 때문인지 모르는 미나는 내가 무척 매력적으로 보일 거다.

첫인상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지.

"무슨 상황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그…. 흑…."

"아니. 힘들면 괜찮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그럴 리가 없지. 매혹에 걸린 사람이 말하는데 거절할 리가 없다.

"아니에요. 저는…. 송미나라고 해요. 예전엔 아이돌이었어요."

"아이돌? 걸그룹?"

내가 모르는 척을 하자 약간 무안하다는 듯 말한다.

"네…. 나름 유명했었는데…. 모르시나요? 페어리나인이라고…."

"미안. 내가 그런 쪽엔 관심이 없어서."

"아니에요. 죄송해하실 게 있나요.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아무튼…. 전 아이돌이었고 저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소속사 직원들이랑 연습생들이에요."

"너를 강간하고 있던 녀석들? 아…. 미안.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네."

"흑…. 괜찮아요. 사실인걸요. 세상이 위험하니 자신들이 지켜준다고 해놓고는…. 저를 그렇게…."

"됐어. 말하기 힘든 부분은 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걱정하지 마. 그놈들은 다 죽었으니까."

"네? 정말요!?"

"그래. 남자 일곱. 맞나?"

"네! 맞아요! 정말…. 다 죽었나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 몸짓, 말투 하나하나가 그녀에겐 황홀한 모습일 것이다.

모르고 당하는 매혹은 이래서 무서운 거야. 강제로 콩깍지를 씌우게 되니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걸그룹이라면 여러 명 아닌가? 왜 혼자 있지?"

"그게…. 저희는 이름처럼 아홉 명으로 이뤄진 걸그룹이었어요. 근데 세상이 이렇게 되고 언니 네 명은 바로 떠났어요. 아마 그 언니들은 소속사 사람들이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았나 봐요. 근데 그 당시 아직 미성년자인 저희는 함부로 떠나는 게 너무 무서워서 남아있었고…. 지금 이렇게 됐죠…."

"아홉에서 넷이 떠났으면 다섯이 남아야 하는 거 아닌가?"

"넷은…. 죽었어요."

"저런. 어쩌다가?"

"말을 안 듣는다고, 건방지다고, 쓸모없다고, 못생겼다고…. 이유야 다양했죠."

"왜 반항하지 않았지? 스킬을 고를 수 있었을 거 아냐?"

"매니저랑 소속사 사람들이 저희들이 몸을 지키려면 방어 스킬이 좋다고 말해서…. 아니면 부상을 치료해 주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해서 저희는 다 그런 쪽으로 스킬을 골랐어요. 저는 질병 치료를 골랐고요."

정말…. 순진한 애들이었구나. 하긴 미성년자고 세상이 흉흉하게 변했으면 그럴 법도 하지.

"그때 미성년자였으면…. 지금은 몇 살 인거야?""

"저…. 지금은 스물둘요."

"고생이 많았겠네."

"흑…."

억울하게 당했던 건 이해가 가지만, 울음이 너무 많다.

걸그룹 정도면 멘탈이 강해야 하는 거 아냐? 너무 유리멘탈인데.

하긴…. 4년동안 강간당했으면 어쩔 수 없나.

근데 이놈들도 웃기네. 나름 걸그룹 정도면 함부로 죽이기 아까운 애들이었을 텐데 왜 막 죽인 거야?

"그만 울었으면 좋겠어. 운다고 뭐가 달라지지는 않잖아?"

조금 쌀쌀맞게 말하자 미나가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불안해진다.

매혹에 걸린 이상 미나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의지해야 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조금만 매정하게 말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겠지.

그래서인지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미나.

이쁘네. 당장 덮쳐버리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참자. 뜸을 들여야 밥이 맛있게 되니까. 지금 나는 중요한 실험 중이니 쓸데없는 짓을 할 필요가 없지.

"너를 구속하고 있던 녀석들은 모두 사라졌어. 갈 곳은 있나?"

"네?? 가…. 갈 곳이요?"

"자유가 됐으니 하고 싶은 거나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거 아냐?"

내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는 미나.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금 미나의 심정은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이쁜 건 충분히 알고 있는 여자다.

게다가 주변에서 떠받들어지는 데에 익숙한 직업이었으니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능숙할 리가 없다.

갈 곳? 있을 리가 없지. 있다고 해도 혼자서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거고.

"그게…."

"음? 쉿! 조용히."

"네?"

나는 미나에게 다가가 입을 막았다.

그리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가만히 멈춰서 소리를 듣는 척했다.

그저 능청스러운 연기였지만, 심각한 내 모습에 덩달아 숨을 죽이고 꼼짝 않는 미나.

게다가 매혹을 건 당사자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데다가 자신을 만지고 있으니 얼굴이 빨개지는 게 보인다.

"수상한 소리가 들리는군.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 주변을 살피고 올 테니까. 괜히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여기에서 조용히 있는 게 좋아."

내 말에 이불을 코까지 뒤집어쓰고 꼼짝 않는 미나.

씨발. 존나 귀엽네.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을 홀리는 느낌이야.

매혹은 내가 걸었는데 내가 반하겠네.

"다시 올 테니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

그렇게 말한 나는 다시 매혹을 리필하고 방을 나섰다.

마지막 말은 명령이나 다름없으니 미나는 여기서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을 거다.

밑에 내려온 나는 나연이와 정아에게 손짓하고 밖으로 나갔다.

미나가 있던 방 창문 쪽에서는 안 보이는 쪽으로 움직여서 주택이랑 멀어진 나는 빠르게 본진으로 향했다.

일단은 이 두 명을 다시 본진에 돌려놔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움직이기 편해지지.

그리고 미나를 세뇌하기도 편하고.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여 본진에 나연이와 정아를 넣어 놓고 음식을 잔뜩 챙겨줬다.

어차피 방 안에 있는 냉장고에 MRE가 가득한 데다가 전자레인지도 있으니 굶지야 않겠지만 제법 오래 안 올 수도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챙겨줬다.

"오래…. 걸려?"

내 행동을 본 나연이가 나를 보며 아련한 말투로 물어본다.

정아 역시 그런 나를 보며 내색은 하지 않지만 비슷한 심정인지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매혹에 걸려서 하는 반응치고는 굉장히 애틋한 장면이다.

그렇다고 이런 거에 마음이 약해질 내가 아니지만.

"신경 쓰지 마."

차갑게 한마디 남기고 방을 나와 문을 잠근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여자들에게 그리 깊게 정을 줄 필요는 없다.

저 여자들은 그저 세희를 잡기 위한 장기 말일 뿐이니까.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이상 엄한 곳에 감정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다시 부지런히 미나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서두른 덕분에 매혹이 풀리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탐지를 돌려보니 주변 역시 깔끔하다.

좋아 좋아. 잘 되어가고 있어.

2층으로 올라가 문에 노크하자 안에서 '히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 참…. 콩깍지는 내가 쓰였나 보네. 저런 소리도 귀엽냐.

"나야. 들어간다."

안에 들어가니 미나는 옷을 입은 채로 방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네. 괜찮은 거야? 쟤?

"무서웠어요!"

나를 보고 바로 와락 안기는 미나.

몸에 닿는 미나의 몸의 굴곡이 그대로 느껴진다.

나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미나를 밀어냈다.

그러자 자신도 왜 나를 끌어안았는지 몰라 하며 당황해 하는 미나.

조용히 매혹을 리필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죄…. 죄송해요. 너무 무서워서 그만…."

나는 약간 시선을 피하며 미나에게 말했다.

"생각해봤나? 어디로 갈지?"

"저…. 저는 갈 곳이 없어요."

"그럼 이 집에 있어."

"그건 안돼요! 여긴 너무 무서워요! 좋은 기억도 없고요!"

다시 나에게 엉겨 붙고 싶어 하지만, 내가 곤란한 모습을 보이자 주춤거리며 불안하게 서 있다.

자신도 왜 자꾸 나에게 안기고 싶은지 모르겠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심장이 왜 빨리 뛰는지도 모르겠고.

아마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운명의 사람 같은 생각이 떠오를 거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초조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얼굴에 드러나는 미나.

"곤란하네."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자 그녀는 한층 더 초조한 모습을 보인다.

매혹 시전자에게 버려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지금 그녀는 이 장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니다. 오직 나에게 버려지는 게 무서워 저러는 거지.

"그 떠난 언니들은 어디로 간지 모르는 거야?"

"네…. 연락 못 한지 한참이나 지난걸요…."

"짐작 가는 곳도 없고?"

"네…. 흑."

또 울기 시작하는 미나.

으…. 아무리 이쁘고 사랑스러워도 우는 여자는 질색인데.

"울지마. 체력 떨어져."

훌쩍이며 열심히 울음을 참는 미나.

슬슬 미끼를 던질 때다.

"그럼…. 내가 아는 안전한 곳이 있는데, 거기 잠시 머물겠어?"

바로 전에까지 훌쩍이던 미나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네! 부탁이에요! 잠시만…. 이라도 좋으니 조금만 도와주세요."

"어쩔 수 없네. 그럼 준비해."

상황, 대화 내용, 표정이나 말투까지 전부.

나중에 그녀가 혼자서 곱씹을 때 위화감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나에 대한 평가가 후해질 테니까.

지금까지는 아주 잘 됐으니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제 미나를 아파트로 데리고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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