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87화 (8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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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

"여기야?"

"여기에요?"

물류센터에 도착하자 선발대랍시고 따라온 지연과 서현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어본다.

"근데 니들은 왜 따라왔냐."

"난 짐이 별로 없으니까."

"저도…."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승규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조금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방어하기가 쉽지 않네. 마트보단 나은 거 같은데. 그래도 너무 넓다."

오자마자 방어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는 승규를 보며 역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전투 식량부터 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역시 그를 리더로 한 건 옳은 선택이었어.

"따라와요.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요."

"소개해줄 사람? 뭐야? 누가 있어?"

컨테이너로 가서 연서와 미연 자매를 꺼내주고 소개해줬다.

생각보다 빨리 온데다가 낯선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여전히 경계하는 모습이었지만, 승규의 친절한 말에 나름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음…. 역시 맘에 들어. 믿고 맡길 만하네.

"그러니까. 식물 조종이랑 성장으로 물류센터 외곽의 담장을 전부 둘러버리라고?"

"네. 어차피 이정도 식량이 있으면 당분간 나갈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닭도 키운다면서요? 게다가 물류창고의 이정도 공간이면 작은 텃밭도 가능할 거 같은데요. 입구를 막고 주변을 전부 식물로 둘러서 막아버려요. 방어에 최적화 되게."

"저기…. 두 분 이름이?"

"전 류연서에요. 얘는 류미연."

"연서 씨랑 미연 씨. 알겠어요. 두 분이 듣기엔 이 사람 말이 될것 같아요?"

"아까 한번 해보긴 했어요…. 될것…. 같기는 해요."

아까는 매혹에 빠져있을 때고, 지금은 아니라서 그런지 나를 보는 자매의 표정이 조금 복잡해 보인다.

잔상처럼 남아있는 호감. 그게 무서운 거다. 억지로 만들어진 호감은 매혹이 끝나도 자신의 감정을 속인다.

기절 스킬에 당한 다음 두통이 오고 마비 스킬에 당한 다음 팔이 쩌릿거리는 것처럼 찾아오는 후유증.

하지만 그 후유증이 너무 크다는 게 다르지만.

"알겠어. 마침 유진이도 성장 스킬이 있으니 좀 더 빠르게 가능하겠지."

"그것 때문에 이 생각을 한 거예요. 그리고 따라와요."

냉동창고로 가서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자 그제야 승규는 입을 벌리고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이게…. 두 창고나 더 있다고?"

"그렇데요. 자세한 건 저 자매에게 이야기 들어요. 나름 반년이나 이곳에 있었으니까."

승규는 연서 미연 자매에게 다가가 뭔가를 물어봤고,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과연 이들이 여길 지켜낼 수 있을까?

물류센터를 노릴만한 녀석들이 모두 자멸했다는 것은 맞긴 한 거 같다.

빨간 조끼 놈들이 어느 정도 강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지켰다는 건 결국 근방에서 그보다 더 강한 세력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빨간 조끼 놈들도 세희 년과 충돌해서 서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결국 망했다.

남은 건 세희 년의 잔당 정도. 그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많이 너프됐다고 봐야지.

아무리 식물로 물류센터를 봉쇄한다고 해도 그게 만능은 아니다.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를 잔뜩 받는 것도 문제가 많다. 당장 예로 빨간 조끼 놈들이 그랬으니까.

결국은 소수 정예로 전력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 위해선 각자 강력하고 쓸만한 스킬을 더 얻는 게 중요하다.

알려줄 수밖에 없겠네. 스킬 마스터와 두번째 스킬에 대해서.

근데 스킬을 마스터 해도 배울 수 있는 코인은 있나? 턱도 없을 것 같은데.

아마 세상에 스킬 마스터를 한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두번째 스킬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그들도 스킬을 찍어보면 비용을 알 수 있을 거고 30만 코인이 가장 좋은 스킬인 걸 알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게 끝이다. 30만 코인은 애 이름이 아니니까.

스킬 만든 새끼들…. 생각보다 머리가 좋다.

그냥 언제든 사용하기만 하면 숙련도가 오르는 생활 스킬은 마스터를 한다고 해도 코인이 없을 거다.

코인을 얻기 쉬운 전투 스킬은 결국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항상 노출되게 만든다.

숙련도와 코인. 두 개의 조건을 모두 만족 시키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게다가 코인은 전혀 거래되지 않을뿐더러 포션이나 식량으로 소비도 해야 한다.

나름 밸런스를 잘 잡아놨어. 개나 소나 더블 스킬, 트리플 스킬을 얻기 힘들게 만든 구조야.

사람을 죽여야 강해지는 시스템, 죽일수록 생존이 유리해지는 세상.

근데 그런 새끼들이 설명도 하나 없이 이렇게 불친절하게 만들어 놓은 건 이유가 뭐야?

"나 좀 봐요."

"어?"

나는 승규를 불렀다.

아직도 나는 그와 거리를 줄이지 못한다.

고작 신뢰만으로는 당장이라도 나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과 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도 이런 나를 이해하는지 이런 거로 불편해하거나 하진 않는다.

나는 스킬에 대해서 전부 이야기해줬고 이야기를 전부 들은 승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두번째 스킬…. 그리고 코인?"

"네. 물류센터를 봉쇄하는 것과 함께 그쪽이 해야 할 일이에요. 그쪽은 감전이잖아요? 게다가 코인도 적당히 있을 거 같은데."

"그렇긴…. 하지. 마스터도 얼마 남지 않긴 했어. 30만 코인까지는 없지만."

"잘 알아서 판단하고 여기에서 그쪽의 왕국을 만들어요. 내가 원하는 건 두 가지에요. 필요할 때 전투 식량을 얼마든지 줄 것. 정세희에 대한 정보를 줄 것."

“왕국이라니. 내가 무슨 왕이야?”

“왕이 싫으면 공화국이라도 세우던가요. 뭐가 됐든 그런 체계를 만들라는 이야기죠.”

"알겠어. 그리고 전투 식량은 걱정하지 마. 전부 네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근데 정세희는 누구야?"

"있어요.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 매혹 스킬을 가진 여자. 그년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절대 그년의 반경 안에 남자가 들어가면 안 돼요. 특히 그쪽 같은 스킬이 매혹에 걸리면 동료고 가족이고 뭐고 자기 손으로 다 지져 죽일 테니까."

"...대체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던 거야."

"글쎄요. 멸망한 세상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 거죠. 지극히 정상적인 삶이에요."

"스킬 숙련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결국은 코인이 문제네."

"그건 알아서 해요. 거기까지 내가 해결해줄 문제는 아니니까. 해결해줄 방법도 없고."

"그래. 이만큼 해준 것도 감지덕지하지."

"그럼 난 할 말도 다 했고 할 것도 다 했으니까 갈게요."

"벌써?"

"당분간은 이 주변에 있을 위험은 내가 다 처리할 거에요. 그러니 물류센터를 요새화시키는 것부터 빨리 서두르세요."

"알았어."

"가요."

"그래. 아무 데서나 죽지 말고."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염병할 세상에 딱 어울리는 덕담이네.

해줄 건 다 해줬다. 아니 아직 주변 정리가 남았으니 다 한 건 아닌가.

어차피 주변 정리도 정세희 그년을 찾기 위해 겸사겸사하는 거니까.

희주의 말로는 에코백이 물류센터 근처까지 갔었다고 했으니 이 주변을 둘러보면 뭔가 있긴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남아있으리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전력을 많이 잃은 세희 년이 어디로 갔을까? 아무리 매혹 스킬이 있어도 인원 충원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매혹을 직접 써보니 알았다. 매혹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매혹이 상시 유지가 된다면 모를까, 매혹이 풀리는 순간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은 본인이 된다.

잡스킬을 가지고 있는 어중이떠중이를 주변에 데리고 다니진 않을 거다.

그럼 매혹이 풀렸을 때 그들을 제어할만한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체 그년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여태까지 그런 게 가능했던 거야? 다른 의미로 대단하네.

나로서는 시도조차 못 할 일이다. 그런 불안한 삶을 산다는 것.

완벽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니까.

모르겠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그냥 주변만 깡그리 정리하면 되는 거야.

일단 베이스캠프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모텔은 전국 어디에도 있으니 물류센터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모텔을 하나 정해서 들어갔다.

참 좋은 나라야. 세상이 망했어도 이정도 인프라가 남아있다는 건.

상당히 많은 일이 있던 하루였다.

회복 포션을 하도 처마셔서 몸에 피로는 안 느껴지는데 정신이 피곤하다.

누군가 머릿속을 박박 긁고 있는 느낌이다. 두통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생각해보면 세상 어딘가에는 지금 이 세상을 더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전기와 물이 무제한인 데다가 식량만 자급자족할 수 있다면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농사를 짓는 폐쇄성이 짙은 시골 마을…. 그런 마을이면 오히려 얼씨구나 하고 자체적으로 잘살고 있을 것 같은데.

예전과 같은 삶은 아니라도 삶을 연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 같단 말이지.

또 없나? 사람들이 모여있을 만한 곳?

스킬은 직접 음식을 생성하진 않는다. 술은…. 음식이라고 볼 수는 없지. 술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

기름. 기름도 역시 마찬가지. 식용유를 생성한다고 식용유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스킬중에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성장 스킬이라고 생각한다.

닭에 성장 스킬을 써서 급속 성장시킨다고? 괜찮은 방법이다.

동물을 급속 성장시키면 스킵 된 성장 기간만큼의 먹이가 필요 없어지는 거니까.

성장 스킬도 하루에 20번은 쓸 수 있다면 들이는 에너지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많아지는 거잖아.

자가 생산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긴데. 그럼 그건 세상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 의도한 일일까?

아니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일까?

어쨌든 저 무리는 성장 스킬 가진 사람을 둘이나 보유하게 됐다.

게다가 넉넉한 식량으로 시간도 충분히 벌었다.

유지만 할 수 있다면…. 저곳은 상당히 발전할 여지가 있겠지.

슬슬 한계다. 자야겠다.

부디 세희 년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나도 조금 편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생각이 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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