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86화 (8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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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

냉동창고에 가득하게 쌓인 MRE. 내가 이들을 감시 했을 때 밖으로 한 놈도 나오지 않은 이유가 밝혀졌다.

창고에 음식을 그렇게 그득하게 쌓아놓고 있는데 나올 필요가 어딨겠어.

먹고 살 걱정이 없는데.

과연 마트에 있는 사람들이 여길 관리할 수 있을까?

물류센터는 아웃사이더인 나도 알만큼 핫플레이스다.

다들 그 악명이 너무 높아서 못 건드는 거였지 실상을 알아버린다면 개나 소나 다 덤벼들게 뻔하다.

고민이네….

물류창고와 나연이 희주는 공통점이 있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들이다. 욕심을 부리다간 화가 되는 것들.

끝까지 움켜잡고 있으면 오히려 피곤해질 것들.

저 정도 식량이면 한참은 식량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비전투원이 대부분인 마트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지켜낼 수가 있냐는 거다. 아무리 봐도 무리인데.

만약 마트 사람들이 여기를 지킨다고 하면, 나 혼자서도 돌파할 수 있을 거다.

말 그대로 비루한 방어력. 답이 없을 정도.

그래도…. 해본다. 저 자매들의 스킬을 보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마트에는 성장 스킬을 가진 여자가 하나 더 있잖아.

"연서."

"응?"

"너랑 네 동생,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살라고 하면 살 거야?"

"당연하지. 네가 하는 말인데 당연히 따라야지."

아…. 매혹이 걸려있는데 이런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매혹이 끝난 다음 물어봐야 하나?

"연서."

"응?"

"내가 없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이런 질문이 가능한가? 모르겠네. 과연 뭐라고 대답하려나?

"음…. 너를 빼고 생각하라는 거지?"

"그래."

"그다지 나가고 싶진 않네. 적어도 여기 있으면 굶어 죽을 일은 없으니까."

동생의 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침 잘됐네. 둘 다 깨워 놓고 생각한 것을 한번 해봐야겠다.

나연이와 희주의 수면을 리필하고 연서의 매혹도 리필한 뒤 동생인 미연이에게도 매혹을 걸었다.

조금 지나자 미연이가 부스스 일어나 나를 바라봤고, 상큼하게 웃는다.

씨발. 이쁘네…. 일단 조금 만질까?

"둘 다 이리 와봐."

나는 내 앞에 자매를 둘 다 앉게 한 뒤 둘의 옷 사이로 손을 넣었다.

양손에 만져지는 다른 여자의 가슴.

씨발…. 좋네. 뭔가 인생에 승리한 기분이야.

둘 다 한 번씩 박아주고 싶지만, 상황이 그럴 상황은 아니니 나중으로 미룬다.

이들을 안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벌써 그때가 기다려질 정도야.

떨어지기 싫어하는 손을 가슴에서 떼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미연아? 성장 스킬 말인데."

"네."

"너도 말 편하게 해라."

"응."

"일반 나무 같은 것을 엄청나게 두껍게 자라게 할 수 있어?"

"한 번도 해본 적은 없는데…. 해볼까?"

"해보자. 이리 와봐."

나는 두 여자와 함께 물류센터 외곽에 있는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성장 써봐."

"성장!"

나무가 순식간에 자랐다. 마치 누가 잡아 늘인 것처럼 불쑥 커져 버린 나무.

"오. 되네."

"그러게."

"그럼 연서? 조종은 어느 정도 되는 거야?"

"음…. 이렇게? 조종!"

나뭇가지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구불거리며 움직인다. 그래. 예전에 짱개들이랑 싸우던 놈 중에 저런 게 있었지.

"줄기는 못 움직이나?"

"줄기? 잠깐만. 줄기는 해본 적이 없어서."

나무의 두꺼운 줄기가 조금씩 옆으로 휘었지만,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음. 이게 다야?"

꼿꼿하게 서 있던 나무는 약간 구부정하게 굽은 것처럼 모양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다이나믹하게 변하진 않네.

"응. 이정도밖에 안 되네."

조금 애매하긴 한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주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니까.

"여기 안에 사람을 가둬놓을 만한 곳이 있어?"

"응. 있어. 지금은 안 쓰고 있지만."

"어디야. 안내해봐."

연서와 미연이가 나를 안내한 곳은 한 컨테이너였다.

컨테이너가 세 개쯤 붙어있는 건물 같은 거였는데 창문은 X자로 용접되어있어서 빠져나올 수는 없게 되어있다.

게다가 안에는 어이없게도 화장실이랑 세면대도 있었고 문도 밖에서 잠글 수 있게 돼 있다.

"뭐야. 이거 너무 본격적인 감옥인데?"

사람 가둬놓기는 기가 막힌 곳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네.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잘 들어. 나는 여기에서 살 사람들을 데리고 올 거야. 너희가 도망은 안 간다고 했지만, 혹시 몰라서 너희를 이 안에 잠시 가둬 놓을 거야.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가 있어. 알겠어?"

"응. 당연하지."

"알았어."

지금이야 둘 다 매혹이 걸렸지만, 이들이 매혹이 풀리면 어떻게 될까? 자신들을 가둬놨다고 나를 원망할까? 모르겠네.

"나는 너희를 죽일 생각이 없어. 그리고 너희가 여기 오는 사람들이랑 불편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게다가 나는 너희랑 섹스도 하고 싶어."

매혹에 걸려있으니 어떤 개소리를 해도 다 받아들일 것이다. 역시나 얼굴을 붉히는 두 사람. 지금이야 이렇지만, 매혹이 풀리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 들어가 있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상점을 열어서 음식을 적당히 사서 컨테이너 안에다가 넣어놨다.

적어도 이틀 치는 되는 양이니 굶지는 않겠지.

연서와 미연을 컨테이너 안에 들여보내고, 밖에서 빗장을 걸고 내렸다.

굳이 자물쇠로 잠그지 않아도 안에서는 열 수는 없다. 누가 와서 이들을 풀어줄 것 같지도 않고.

어차피 자물쇠도 없어서 잠글 수도 없으니까.

두 여자를 일단 조치해놨으니 이제 남은 것은 다른 두 여자다.

아오. 귀찮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하지만 이건 필요한 일이다.

저 많은 전투 식량을 지키려면 꼭 해야 하는 일.

나는 나연이와 희주에게 가서 매혹을 걸었다.

아직 수면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다시 자매를 보러 가볼까? 어떤 반응이려나?

"어때? 안은 괜찮아?"

창문 안쪽을 보고 말하니 연서와 미연은 나를 보고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경계와 의심.

매혹으로 막연한 신뢰가 사라지자 역시 그들은 나를 두려워한다.

"아까 내가 했던 말은 다 기억하지?"

"그냥…. 가면 안 돼? 지금은 너무 머리가 복잡해."

그래. 이런 식이다.

매혹에 걸렸을 때의 일들을 기억 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이 날 것이고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서로 충돌하며 혼란스러움을 느낄 거다.

자주 봐서 알지. 저런 모습들.

세희 그년이 밥 먹듯이 한 짓이니까.

"내가 너희에게 했던 말은 다 사실이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잠자코 거기 있어. 그럼 다녀온다."

나연이와 희주에게 돌아온 나는 그녀들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

수면 시간이 끝나자 바로 일어나서 나에게 안겨 오는 두 여자.

"함부로 안기지 마. 내가 안으라고 하기 전까진."

마치 먹이통에 가득 찬 먹이를 앞두고 저지당한 멍멍이처럼 전전긍긍하는 두 여자.

아무리 생각해도 매혹 이건 미친 스킬 같아.

"가자."

매혹을 계속 유지하기는 귀찮아서 일단 본진에 두 여자를 가둬놨다.

한사코 자신들을 두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그녀들이었지만, 조용히 하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다.

어휴. 매혹이 있으니 여자들을 수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정말 드럽게 귀찮다. 할 짓이 못돼.

드디어 혼자가 되어 홀가분해진 나는 느긋하게 탐지를 돌리며 마트로 향했다.

여자들이랑 있던 게 얼마나 됐었다고 혼자 있는 게 이렇게 편하냐.

입구로 가니 또 소주가 있었고, 나를 알아본다.

"어?"

"왜 맨날 너만 경비를 서냐?"

"그야 제가 입구 경비니까요. 어차피 돌아가면서 교대로 하는 건데요 뭐. 승규 형님 불러올까요?"

"그래. 다 불러와."

"다요?"

"어."

소주는 뭔가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트의 사람들이 잔뜩 내려왔다.

왠지 저번이랑 똑같은 광경 같은데…. 데자뷰인가?

아, 이번엔 저번이랑 다른 게 있긴 하네. 지연이도 있으니까.

나를 보고 복잡한 표정을 짓는 지연이를 애써 무시하고, 나는 승규와 거리를 두고 말했다.

"한 명이 없는데요?"

"동현이는 잠깐 뭐 좀 찾으러 갔어, 금방 올 거야. 근데,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동현이가 누구지. 이름을 말해봐야 나는 누가 누군지도 몰라.

"이사할 준비 하세요."

다짜고짜 내가 말하자 승규를 비롯한 모두의 표정이 해괴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바뀐다.

"이사?"

"네. 거리가 꽤 되니까 차를 써서 빠르게 움직이는 게 나을 거에요. 어차피 주변은 내가 다 털었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고."

"아니, 갑자기 웬 이사야?"

"물류센터라고 들어봤어요?"

내 질문에 승규는 들어봤는지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이들은 처음 들어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거긴…. 왜?"

나는 배낭을 뒤져 MRE 하나를 꺼내어 승규에게 던졌다.

"이게 뭔지 알아요?"

"뭐야. 전투 식량이잖아? 이건 어디서 났어? 이거 나름 맛이 괜찮은데. 아. 이건 못 먹어본 거네."

"잘 알아요?"

"글쎄. 잘 안다고까지는 아니지만, 뭔지는 알지. 다른 종류는 먹어도 봤고."

"그거 유통기한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음…. 내가 들은 결론 5년? 근데 10년도 먹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냉동창고에 들어있으면요?"

"나도…. 모르지. 더 오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물류센터에 그게 몇백 상자 넘게 있어요. 더 될 수도 있고."

내 말에 승규의 눈이 잔뜩 커진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전투 식량' '몇백 상자'라는 말에 놀라워한다.

"아니…. 맙소사. 그래서 다들 물류센터를 차지하려고 들었던 건가? 설마. 그럼 우리랑 같이 그 물류센터를 접수하자고? 안돼. 우리는 전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어. 그런 삼엄한 곳을 공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누가 공격하재요? 나는 이사하라고 말한 건데."

"어?"

"이미 내가 다 죽여놨어요. 거긴 지금 비어있어요. 그러니 빨리 이동할 준비나 해요."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어처구니없게 바라본다.

이거 무슨 괴물 보는 듯한 표정이라 기분이 별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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