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85화 (8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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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

일단 탐지를 돌린다.

모든 것의 시작은 탐지다. 주변을 확인하고 어떠한 위협도 없는지 확인하는 게 만수무강의 지름길이지.

여기 모여있는 나연이와 희주, 리더와 여자 넷 외에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연아. 저 아줌마랑 덩치 기절시켜."

나에게 아줌마 소리 들은 여자가 발끈하려 했지만 이미 기절해버렸다.

나는 이쁘장한 여자 둘을 재우고 나연이와 희주에게 말했다.

"이제 나는 이 여자들한테 정보를 얻기 위해 스킬을 써야 해. 그러니 너희는 잠깐 자고 있게 할 거야. 괜찮지?"

"당연하지."

"알았어."

"희주 반사 풀어."

"해제."

"둘 다 여기 벽에 기대앉아."

매혹의 좋은 점은 이거다. 무슨 말을 해도 순순히 따른다는 것.

나연이와 희주를 재우고 자고 있는 이쁘장한 여자 하나에 매혹을 걸었다.

이제 깨우면 되긴 하는데…. 왜 수면은 해제가 없을까. 귀찮아 죽겠네.

뭐. 덜 귀찮아지는 방법은 있다. 상대가 이쁘장한 여자일 때만 가능한 방법.

입고 있는 빨간 조끼를 벗겼다.

으…. 정말 꼴도 보기 싫네. 아. 나도 아직 입고 있잖아? 빨랑 벗어버려야지.

봄이 돼서 좋은 것은 여자들의 옷이 가벼워졌다는 것. 그래서 벗기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적당히 마른 몸, 적당히 있는 가슴. 가슴은 언제나 옳다. 만져도 만져도 또 만지고 싶은 신기한 부위.

옆에 앉아서 한 5분 정도를 몰입해서 만지니 여자가 꿈틀거리며 일어난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잠에서 깬 여자는 나를 보더니 그대로 와락 안긴다.

"좋은 건 알겠는데, 떨어져 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서 떨어져 다소곳하게 앉은 여자.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저렇게 나를 바라보니 조금 야한 생각이 들긴 한다.

"자. 이제부터 너에게 질문을 할 거야. 아는 대로 전부 말해."

"네."

나이도 나보다 많아 보이는데 왜 존댓말이야. 웃기는 여자네. 매혹 때문인가?

"이름이랑 나이."

"류연서요. 스물여덟이에요."

"나보다 나이 많으니까 존댓말 하지 마. 스킬은?"

"네…. 아니. 응. 스킬은 식물 조종."

"식물 조종? 근데 아까 왜 공격할 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어."

"보다시피…. 여긴 식물이 없잖아?"

"이미 자라있는 식물만 조종 가능한 거야?"

"응. 그리고 식물이 있었다고 해도 공격은 안 했을 거야."

"왜?"

"나도 반쯤은 억지로 잡혀있는 거라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일행들이 있었는데 나쁜 놈들한테 죽었어. 근데 여기 사람들이 그 나쁜 놈들을 다 죽여줬거든. 고맙긴 했는데 함께할 생각까진 없었어. 근데 이 사람들이 혼자는 위험하다고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반쯤은 강제로."

만약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미친년 시나리오 쓰고 자빠졌네…. 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매혹에 걸려있다.

온전히 저 말을 다 믿어도 된다는 뜻. 정말 좋은 스킬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럼 이놈들이 다 죽었다고 해도 크게 악감정 같은 건 없는 거네."

"응. 사실 조금 무섭긴 했어. 자꾸 몸을 노리고 있어서. 다행히 자기들끼리도 견제하느라 아직 무사할 수 있었지만."

"희한하네. 견제한다고? 그냥 우르르 몰려와서 강간하는 게 아니고?"

"여기는 파벌이 되게 강해. 원래 있던 맴버들이 많이 죽고 외부인원들을 받아들였는데, 외부인원이 원래 있던 맴버들 보다 많아지게 되면서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고. 내가 온 뒤로도 그랬고."

이제야 대충 이해가 갔다. 이놈들이 왜 한꺼번에 뭉쳐서 덤비거나 방어하지 않고 소규모로 와서 들이박고 뒤졌는지.

그리고 왜 물류센터씩이나 되면서 이렇게 방어가 허접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기존 베테랑들의 사망 이후 어중이떠중이들을 영입하면서 질적 하락이 생긴 거구나.

"좋아. 그럼 다음 질문…. 식물 조종 같은 건 대체 왜 고른 거야? 무슨 생각이었어?"

나는 그동안 여자들에게 정말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오늘에야말로 이런 쓰레기 같은 스킬들을 왜 고르는 건지 그 심리를 조금이나마 알 기회가 온 거다.

"그…. 나는 플로리스트라서…."

"플로리스트? 꽃집? 직업이 그거라서 단순하게 식물 조종을 골랐다고?"

"어…. 그런 거지. 식물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금 아니까. 그리고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나도 후회하고 있긴 해."

그래. 대충 다 비슷한 느낌이구나. 이정도로 될 줄은 몰랐다는 것.

하긴. 다들 그렇긴 했지. 힘을 합쳐서 외부의 적과 싸울 생각은 했어도 이렇게 서로 죽고 죽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알았어. 됐고. 넌 온 지 얼마나 됐어?"

"반년 정도."

"왜 다들 여기 물류센터를 노리는지 이유 알아?"

"아…. 그거? 당연하지. 나도 오고 알았어. 내가 더러워도 여기서 남아있는 이유기도 하고. 네 바로 앞에 있잖아."

여자는 자신의 옷을 추스르며 나에게 눈웃음 짓는다.

작정하고 꼬시려는 몸짓 같아서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매혹 씨발…. 존나 무서운 스킬이야.

"뭔 개소리야? 이유가 너 때문이라고?"

"아니, 나 말고 내 뒤에."

연서는 자신들이 서 있던 커다란 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창고를 살펴보니 위에 냉동이라고 쓰여 있다. 냉동창고?

"대체 여기 뭐가 있길래?"

"직접 보면 되지."

연서는 익숙하게 냉동창고 문을 열었다.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는데도 싸늘한 공기가 나를 덮쳐온다. 연서도 추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우니까 방한복 입어야 하지만, 밖에서 잠깐 보는 건 괜찮아. 문 열고 안에 봐봐. 들어가진 말고."

지게차도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문 말고 옆쪽에 작은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안쪽의 엄청난 크기와 거기에 잔뜩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고 이게 뭐?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상자에 쓰여 있는 글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알파벳 세 글자.

얼마 전에 봤기에 저게 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MRE…? 설마? 이 안에 있는 게 전부?"

"아니. 이런 게 두 개 더 있어."

"...뭐라고?"

"이런 냉동창고가 두 개 더 있다고. 물론 둘 다 잠겨있긴 하지만."

이제야 이해가 갔다. 왜 다들 물류센터를 차지하기 위해 지랄 염병을 했는지.

미군 전투 식량이 이런 대형 냉동창고로 세 개라니. 어느 정도 양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여긴…. 뭔데 이런 게 이렇게 잔뜩 있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예전에는 다들 이걸 노리느라 혈안이 됐었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다 서로 죽이고 아무도 남지 않았지만. 이 사람들 말고."

웃긴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야. 다들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결국엔 공멸하게 된 거야?

"외부에서 쳐들어온 건 언제가 마지막이야?"

"삼 개월쯤…. 아까 이야기 나온 정세희…. 그 마녀."

"정세희? 쳐들어왔다고?"

"응. 그때 서로 많이 죽었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너희한테도 뚫린 거고."

"그래서? 그년은 어떻게 됐어?"

"물러났어."

"어디로 간지는 알아?"

"몰라. 상재씨랑 진철이가 쫓아갔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했어."

"그건 또 누구야."

"그런 사람들이 있어. 탐색조라고 해야 하나? 밖에 나가서 사람들 영입해오는 팀. 그 사람들은 나름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씨발. 내가 잡아 죽였던 그놈들인가 보네. 뭐. 내가 주둥이 까지 않는 이상 알 리는 없겠지만.

근데…. 뭔가 이상하다.

뭔가가 서로 안 맞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연서가 알고 있는 내용이 조금 달라.

근데 연서가 말하는 것이 틀릴 리는 없다. 그녀는 나에게 매혹을 당했고, 거짓을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녀는 여기에서 반년을 머무르며 지켜본 사람이다. 모두 그녀가 직접 겪은 일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게 잘못 된 거라는 건데.

정종찬. 그 새끼가 말한 게 구라였나?

그 새끼는 자기들이 물류센터를 먹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었는데. 연서의 말로는 뺏긴 적이 없다.

그냥 씹쌔끼들 한테 허세 부린 건가?

아니지. 근데 캐리어에 MRE를 잔뜩 담아서 씹쌔끼들하고 거래를 했잖아?

그럼 그 MRE는 어디서 구한 거야? 여기서 가져간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이해를 못 하겠네.

대체 어디에서 무슨 지랄을 하고 있는 거니? 정세희 씨발년아?

뭐…. 일단 들을 내용은 다 들었다. 더 디테일하거나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지만, 굳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있었던 일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류센터는 내가 먹었고 정세희의 행방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결국…. 원점이네.

"연서."

"응?"

"여자 중에 죽이면 안 될 사람 있어?"

"죽인다고? 안돼! 내 동생이 있어! 미연이. 미연이는 안돼."

"동생? 누군데?"

연서는 자신의 동생이라는 미연이에게 달려가 보호하듯 끌어안았다.

아. 저 이쁘장한 다른 여자가 동생이구나.

자매가 다 이쁘다니. 쉽지 않은 일인데.

어? 이러면…. 그 전설의 자매 덮밥도 가능한 건가? 모든 조건이 다 갖춰졌는데?

이것 참…. 살다보니 이런 기회도 얻게 되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씨발. 나도 양심 없네. 착하게 살았다는 말이나 처하고 있고.

"동생은 스킬 뭐야?"

"성장…. 미안."

"됐다. 나한테 미안할 게 뭐 있냐. 니들이 고른 스킬인데."

"근데…. 그래도 나랑 같이 있으면 나름 쓸만해…. 미연이가 식물을 확 키워서 내가 그걸 조종하면…."

"식물이 있어야 그걸 하지. 이런 건물 안에서는 쓸모가 없잖아."

"그렇긴 하지…."

"알겠고. 그럼 이 아줌마랑 덩치는 상관있는 사람 아니지?"

"네. 저 둘은 죽어도 돼."

그렇게 말하는 연서의 말에 왠지 서늘함이 서려 있다.

역시 여자들은 무섭다니까.

나는 아줌마와 덩치를 바로 찍어 죽였다.

[1,43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80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어휴. 가진 코인 양이 왜이리 안쓰럽냐.

나는 여자들을 죽이고 바로 리더에게 향했다.

"이놈 원래 리더 아니지?"

"응...전에 있던 리더는 3개월 전에 죽었어. 마녀가 쳐들어왔을 때."

"그래 그럴 거 같았어. 이딴 놈은 리더를 하면 안 돼. 다 같이 죽게 만드는 지름길이야."

마체테가 휘둘러지고 리더도 빛이 되었다.

[3,42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결국, 코인은 얻은 게 별로 없네. 죄다 희주가 먹어치워 버렸어.

뭐….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으니까. 굳이 아까워할 필요는 없지만.

이제 물류센터를 어떻게 처리하냐가 문제인데….

어쩔 수 없네. 마트에 있는 사람들을 옮길 수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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