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81화 (8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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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

"여기, 이것 좀 봐주십시오."

"또 뭐야? 아. 죽었다 살아난 서버네? 오…. 2단계도 10명이 됐어? 1단계는 29명…. 재밌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보자…. 조금만 더 분발하면 훨씬 재밌어지겠는데…. 3단계 돌려라. 아니다. 그냥 다 돌려라."

"아. 스킬 제한 다 풀어줍니까?"

"아니이. 순차적으로 풀리게 하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프로그램이 정식판이 아니고 베타인데 정식으로 돌립니까?"

"아냐. 그냥 베타로 놔라. 인제 와서 정식 돌리면 재미없지. 하던 대로 놔둬."

"알겠습니다."

5월이 되었다.

밖은 완연한 봄이 되었고, 인간이 없어진 도시를 녹색 물결이 뒤덮는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자연의 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자연은 집요하고 끈질겼기에 인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도시는 자연에 그 일부를 조금씩 조금씩 빼앗긴다.

날씨가 따듯해졌기에 그간 하지 못했던 것들을 잔뜩 했다.

"아흑. 오빠. 좀 더. 으읏."

벙커 밖 저택 마당에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하는 야외섹스는 상당히 색다른 쾌감을 안겨줬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승희의 나신.

그리고 야외에서 마음껏 내지르는 신음은 더욱 자극적이다.

나는 한껏 밀려오는 절정을 느끼며 헐떡이는 승희의 안쪽에 잔뜩 사정했다.

"후우."

천장이 없는 곳, 태양 아래서 섹스하는 게 이렇게 자극적일지 몰랐다.

일탈, 개방감, 비일상…. 그런 데서 오는 스릴이 무시 못 할 정도의 쾌감을 준다.

어두침침한 지하벙커의 조명보다는 밝은 태양 빛이 승희의 벗은 몸을 조금 더 야하게 만들어 준다.

싱그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몸.

그런 몸을 안으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지.

"하아. 하아."

돗자리에 누워서 숨을 몰아쉬니 승희가 내 품에 안겨 온다.

신기한 기분이다. 세상이 이 꼴로 변한 이후, 가장 즐거운 시간이 아닐까?

"오빠."

"응?"

"말도 안 되는 말이긴 한데. 여름에 바다에 갈 수 있을까?"

"바다?"

"응. 바다."

"글쎄. 힘들겠지."

"그렇지?"

"너무 태평한 소리 하는 거 아냐?"

"그러게. 내가 너무 철없는 소리를 했네."

눈을 감고 따듯한 햇살을 만끽하는 승희.

나는 그런 승희를 보며 생각했다.

바다라.

승희랑 바다를 가면? 좋기야 하겠지. 세상이 이렇게 변했어도 바다는 변함없을 테니까.

벗고 있는 승희의 모습이 가장 이쁘긴 하지만 수영복을 입고 있는 승희도 이쁠 거다.

때로는 적당히 가리는 게 더 야할 수도 있는 거고.

게다가 바다는 그 바다만의 낭만이 있다. 게다가 나는 여자와 바다를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미처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이 슬쩍 마음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바다라.

서해 정도는 문제없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기왕 갈 거면 동해가 좋다. 제주도를 가고 싶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의외로 쉽게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고속도로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마음껏 차를 끌고 갈 수 있겠지.

나에겐 차가 있으니까. 그것도 벤X로.

기름…. 기름이 문제인데. 기름이야 돌다 보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거다.

혹시 모르니까 트렁크에 잔뜩 싣고 가면 되겠지. 음…. 생각보다 할만한데?

"가보자."

"응?"

"가보자고. 바다."

"정말?"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시도해보지 뭐.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와아!"

나를 꼭 안는 승희. 이것 참…. 희한한 기분이네.

보통 영화 같은 거 보면 이러다가 큰 사고 같은 게 벌어지던데. 괜찮을까 몰라?

그렇게 느긋하고 평화로운 날들이 지나갔다.

아직 식량은 넉넉하기에 본진의 두 여자를 살려놓고 있지만, 이제 날씨도 좋겠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된 거 같다.

두번째 낚시를 해볼 시간이야.

본진에 와서 여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싱그럽고 활기찬 승희를 보다가 두 여자를 보니 음침하고 우울해 보인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두 여자.

이제 그녀들은 싸우지도 않고 서로 소리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생존만 하고 있을 뿐. 저들은 살아있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누구부터 할까? 둘 다 내놓는다고 둘이 같이 다니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니 둘 다 내보내기는 무리고…. 어쩐다.

생각 없이 스킬 창을 열어봤다.

그리고….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전율했다.

빈 스킬 선택 칸.

수면과 주변 인간 탐지 스킬 밑에 빈 스킬 선택 칸이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맙소사! 갑자기? 이게 왜?

뭔가 조건을 충족시킨 걸까? 내가 무엇을 했지? 뭐가 조건이었지? 아냐.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쓸 게 아니다. 스킬을 선택하는 게 급선무다.

떨리는 마음으로 빈칸을 눌렀다.

촤르륵 하며 뜨는 스킬 이름들.

오오오. 씨발. 행복하다. 드디어 나오다니.

그렇게 스킬 목록을 쭉 내리는데 뭔가 다른 게 느껴졌다.

처음 본 스킬들이 있다?

적어놨던 종이…. 어딨지? 아. 멀티에 있구나.

급하게 멀티로 가서 종이를 가져왔다.

혹시 모르니 승희에게 음식도 잔뜩 주고 왔다. 돌아오는 게 길어질지 모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당부도 해주고 왔다.

적어놓은 스킬과 목록에 있는 스킬을 비교하며 새로 추가된 스킬들을 살펴본다.

주변 동물 탐지…. 미쳤나? 이런 건 대체 왜…. 테이밍? 이건 그거야? 동물들을 꼬시는 거? 이건 나름 쓸만하겠네?

어…. 생각해보면 인간 탐지 카운터인가? 들개나 이런 거 꼬셔서 공격시키면 기습당할 수도 있겠는데?

와씨…. 동물한테 수면이 걸리는지 빨리해봐야겠네. 아직 안 해봤는데.

시야 공유? 이건 또 뭐야. 천리안? 이건 또 뭐야. 설마 진짜 멀리서 볼 수 있는 스킬이야?

뭔 거지 같은 스킬들이 잔뜩 생기냐. 존나 골때리네.

수납? 설마 이거 그건가? 전설의 인벤토리? 와…. 미쳤네. 이건 좀 엄청 끌리는데.

변신? 변신??? 진짜 변신하는 거야? 미치겠네…. 별 스킬이 다 있네.

그 외에도 몇 개가 더 있었지만, 눈여겨볼 것은 저 정도뿐이었다.

공격이랑 방어 스킬은 시원찮아 보이는 것들이다. 번개 구체, 소규모 동결, 마그마 샷…. 씨발. 이런 걸 대체 왜 찍냐고.

천리안과 수납. 굉장히 끌리긴 한다. 하지만 탐지가 있으니 천리안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

수납…. 아. 이거 정말 고민되네.

인벤토리, 아공간…. 이건 완전 꿈의 스킬이잖아. 도라X몽 주머니라고! 상태창을 열 수 있다면 인벤토리도 여는 게 기본 아니냐고.

결국, 여러가지를 생각해봤지만, 미리 생각해둔 매혹으로 결정했다.

테이밍도 솔직히 엄청 끌리긴 하는데…. 의심 없이 상대방을 공격하기엔 이보다 좋은 스킬이 어디 있어.

뱀이라도 한 마리 찾으면 대박이잖아. 아니지 동물원을 가야 하나? 호랑이를….

잠깐. 세상이 이렇게 되고 동물원은 어떻게 돼 있지? 설마 지금 어딘가엔 호랑이가 야생으로 나와서 신나게 야스하고 새끼 까고 있는 거 아냐?

쉬벌…. 존나 땡기네.

테이밍으로 호랑이 끌고 다니면 개간지잖아. 호랑이 정도면 가오충 해야지. 아니면 코끼리라던가….

오메. 코끼리 미쳤다. 곰도 좋고. 사자…. 사자는 별로야 안 멋있어.

아니면 막 몇 미터짜리 거대 뱀 같은 거 꼬시면 나도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마법사가 되는 거야?

갑자기 이 세계가 너무나 재미있어졌다.

미치겠네. 존나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어.

문제는 나도 완벽하게 은밀한 사냥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거다.

생존 스타일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 되네.

일단 추가된 스킬들도 전부 옮겨 적고 난 뒤, 스킬 창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매혹. 적어도 후회는 안 할 텐데.

게다가 숙련도 올리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승희가 있으니까.

한 시간 정도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결정했다.

일단 매혹이다. 매혹을 찍고 물류센터부터 조진다.

조지고 나서 생각해보자고.

['매혹' 스킬을 배우는데 30만 코인이 소모됩니다. 배우시겠습니까?]

망설임 없이 예를 눌렀고, 스킬 창 밑에 매혹이 생겼다.

자. 생겼으니 바로 써봐야지?

나는 일단 나연이에게 매혹을 썼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그녀의 머리 위에 20:00라는 숫자가 뜨고 바로 19:59로 바뀌었다.

지속시간이구나. 20분이라는 거지.

짧다. 짧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나연? 일어서."

주저함 없이 일어나는 나연. 소름 돋네. 말하는 즉시 바로 행동하다니.

"나연? 춤춰봐."

나연이가 이상한 춤을 흐느적거리며 추기 시작했다.

뭐야 저 춤은. 저것도 춤이야?

"나연아. 디스코 춤춰봐."

이번엔 어설프게 디스코를 추기 시작했다. 음…. 그래. 저걸 디스코라고 부를 수 있으면 나도 내 얼굴이 연예인급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안되는걸 억지로 하게 할 수는 없구나.

내 명령과 나연이의 이상한 행동을 본 희주가 두려운 얼굴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너…. 너희 뭐야? 왜 그래!?"

나는 희주에게 매혹을 써보려다가 아차 싶었다.

만약 희주가 반사를 켜고 있으면? 매혹도 반사되나?

그럼 내가 희주에게 매혹을 당하게 되는 거고…. 희주가 나보고 문을 열라던가 스스로 자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행할 것이다.

씨발…. 좇될뻔했네.

이래서 사람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한다니까.

"나연아. 희주한테 기절 써봐."

"기절."

망설임 없이 희주에게 기절을 쓰는 나연.

희주는 반사를 안 걸고 있었던지 그대로 기절했다.

"오. 왜 반사를 안 걸고 있었지? 뭐, 나야 좋지."

나는 기절한 희주에게 매혹을 걸었다.

그러자 나연이에게 걸려있던 매혹이 풀리고 희주의 머리 위에 매혹 시간이 생겨났다.

"뭐…. 뭐야!?"

매혹이 풀리자 자신의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듯 당황해 하는 나연.

나는 그런 나연이에게 다시 매혹을 걸었다.

나연이의 머리 위에 다시 시간이 생기고 희주는 그대로 기절해있다.

숙련도는 1.2퍼센트가 올랐다. 한 번에 0.4퍼센트. 다른 거랑 똑같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매혹의 스킬에 만족하면서 숙련도를 올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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