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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상동 외곽으로 향한 씹쌔끼들은 고급 주택가로 향했다.
담장이 최소 3m는 돼 보이는 동네.
내 벙커가 있는 곳도 나름 비싼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여긴 거기보다 더 좋아 보인다.
집들 상태도 생각보다 좋고 무엇보다 기척이 몇 개 더 있었다.
신기하네? 이 씹쌔끼들이 닥치는 대로 죽이는 건 아니었나 봐?
공생 관계인가? 아니면 같은 일당?
어쨌든 씹쌔끼 일곱은 한 집으로 들어갔다.
능숙하게 대문을 따고 들어가는 걸 보니 여기가 그들의 아지트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보안이 좋다. 담장이 높고 틈이 없어서 침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골때리네.
적당히 허술한 곳에서 살지 왜 이리 까다로운 곳에서 살고 지랄이야.
장기전으로 가야 하나?
쉽지 않겠는데…. 일단은 주변을 돌아보자. 뭔가 방법이 있겠지.
다행히 옆집은 비어있는 데다가 문이 열려있었다.
담장을 넘어가면 침투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비루한 몸뚱이로 가능할지 모르겠네.
사다리 같은 거 없나? 이 집도 크니까 사다리 정도는 하나 있지 않을까?
비어있는 집을 돌아봤다.
정말 잘사는 집이었나보다. 집이 엄청 크다. 안쪽은 약간 엉망이 되어있긴 하지만, 잘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다리가 집 안쪽에 있지는 않겠지.
집 바깥을 둘러보니 창고 같은 게 있었다.
다행히 잠겨있지 않아 안쪽을 보니 사다리가 있긴 있었다.
흔히 공사 같은 걸 할 때 볼 수 있는 A형 사다리가 아니고 좀 짧고 약해 보이는 사다리지만 이 정도면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다리를 들고 씹쌔끼들의 집이 붙어있는 담장으로 갔다.
탐지를 돌려보니 2층에 두 명, 두 명이 있고 1층에 셋이 모여있었다.
음…. 섹스라도 하고 있나? 뭐든 흩어져있으면 좋은 거지.
사다리 덕분에 담장은 올라갈 수 있었는데 내려가려니 존나 무섭다.
게다가 여길 내려가면 다시 나오기가 힘들다. 어떻게 하지? 지금 바로 가나?
장기전을 노리는 게 나으려나. 이렇게 무작정 침투하는 게 승산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집에 불들이 꺼지기 시작했다.
1층에 있던 세 명도 각자 하나씩 흩어지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자려 하는구나. 이제 곧 동이 틀 텐데…. 무슨 어둠의 자식들이야?
하긴 이것도 내가 할말은 아니구나.
밤새도록 미친놈들처럼 불을 지르고 왔으니 지금 잠들면 금방 곯아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내가 자신들을 따라왔다는 생각 같은 건 꿈에도 못하겠지.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지금 해야겠다. 일단 들어가 보자.
만약 안 된다고 하더라도 집이 크니까 어디 숨어있을 만한 곳은 있을 거다.
사다리를 타고 담장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담장에 매달려서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조용히 내려왔다.
바닥에 착지할 때 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랐지만, 탐지를 돌려보니 놈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탐지는 최고야. 이게 없었으면 난 아직도 찌질하게 방구석에서 잘 나오지 않고 처박혀서 살았겠지.
물론 지금도 찌질하고 쫄보인건 여전하긴 하지만.
강박적으로 탐지를 돌리며 집을 둘러봤다.
한집에 인간이 많이 살면 관리가 미흡해질 수밖에 없다.
공동 책임은 무책임이라고 했다. 누군가 꼼꼼하게 관리를 하지 않는 이상 어딘가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말 웃기게도 주방으로 이어지는 듯한 문이 열려있었다.
이것 봐. 이렇다니까.
나 같은 놈 하나만 있어도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을 텐데.
문을 안 잠그고 잔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주방으로 바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다용도실인 것 같았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 곳. 여기 문이 잠겨있지는 않겠지?
다행히 열려있었다. 병신같은 놈들. 너네는 죽어도 할 말이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하게 발을 내디디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집이 어지간히 커서 부엌만 해도 한 열 명은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부엌에서 바로 이어지는 거실 소파엔 한 놈이 코를 골면서 자고 있다.
시야에 보이는 순간 끝이지. 녀석에게 수면을 썼고 바로 다음 녀석들을 찾아봤다.
1층에 있는 방 두 개. 각자 하나씩에서 자고 있다.
방 하나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는데 문이 잠겨있다.
잠가놓은 건가. 씨발 안에서 딸이라도 치다 자나?
일단 이놈은 놔두고 다른 방으로 향했다. 얼씨구? 이놈도 문을 잠그고 자네.
존나 귀찮네 진짜. 왜 문을 잠그고 자고 지랄이야.
나 같은 놈이 침투해서 막 죽일 수가 없잖아. 씨발.
일단 소파에서 자는 놈을 바라봤다.
테이프 질을 해야 하는데…. 테이프 뜯는 소리가 너무 클 거 같다.
게다가 2층을 가려면 이놈을 수면 상태로 놓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하지.
다른 놈들이 많이 있으니 그냥 죽여버릴까?
이놈만 알고 있는 정보가 있으려나? 아이 씨발…. 고민이네.
일단 이놈은 자고 있으니 2층을 먼저 보자. 2층 상황을 먼저 보고 판단하는 게 났겠어.
이 녀석들의 스킬을 모르는 게 조금 찝찝하다.
지들 집이니 트랩 같은 것을 함부로 깔아놓지는 않았을 테니 걱정은 안 하지만 스킬을 모르니 막 움직이기가 어렵다.
한 놈의 스킬이 기름 생성인 건 의외였긴 했다.
잘도 그런 놈이랑 같이 다니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놈들도 그렇게 쓰레기 스킬일 리는 없겠지.
특히 여자들. 스킬이 쓰레기였다면 그렇게 함께 다닐 수가 없었을 거다.
전력이 되니까 데리고 다니는 거겠지.
둘 중에 하나 이쁘장한 애가 있었는데. 쩝. 맛볼 수 있으려나?
2층, 각각 두 명씩 들어있는 두 개의 방.
먼저 한쪽의 방문을 열었더니 의외로 문이 열렸다.
오. 나이스.
그리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남자 놈 두 명이 있었다.
뭐지? 나는 남녀가 한방에서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두 놈을 재웠다. 그리고 다른 방으로 갔다.
여기도 방문이 열렸고 남자 두 놈이 있었다.
얼래? 이게 뭐야. 그럼 1층에 잠긴 방이 각각 여자 방이야?
내가 너무 이놈들을 색안경 끼고 보고 있었나.
당연히 남녀 남녀로 가슴이나 주무르면서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음…. 내가 너무 이놈들을 문란하게 생각했네. 이렇게 건전한 놈들이었다니.
두번째 방에 있는 남자 두 놈도 재웠다.
이제 1층 소파에서 자는 놈은 자연 수면으로 돌아갔을 거지만 상관없다.
안 자고 있었으면 모를까, 자고 있었으면 문제 될 건 없지.
방문을 닫고 남자 두 놈을 테이프 질 했다.
그래야 마음 놓고 1층을 털지.
생각보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돼서 짜릿한 기분이 든다.
드디어 이 미친놈들을 정리할 수 있다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
아니야. 아직 긴장을 풀지 마. 1층의 세 명이 남아있으니까.
웃는 건 끝나고 해도 괜찮아. 아직은 웃을 때가 아니야.
2층에 있는 남자 놈들 네 명은 전부 테이프 질이 끝났다.
신나는 기분. 즐거운 마음.
1층으로 내려와 소파에서 자는 놈을 다시 재웠다.
그리고 탐지를 돌리면서 마음껏 테이프 질을 했다.
깨든지 말든지 상관없어졌으니까. 알아서 잠긴 문을 열고 나오면 오히려 좋지.
요란하게 테이프 질을 마무리 할 때쯤 방 하나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오오. 좋아 좋아.
나는 거실 구석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방문 쪽을 바라봤다.
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게임은 끝이다. 안에 있는 여자가 무슨 스킬을 가졌든 재우면 끝이니까.
여자가 나왔다.
이쁘장한 여자 말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여자.
그냥 평범한 여자다. 못생긴 건 아닌데 좀 싸가지 없게 생겼다.
뭐, 상관없지. 어떻게 생겼든 무슨 상관이야.
수면 스킬을 썼다.
...????
왜 안 자?
분명 수면 스킬을 썼는데 잠을 안 잔다.
스킬을 쓰면 픽하고 쓰러져야 하는데 멀쩡하다. 뭐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 자신에게 수면을 썼을 때 실패한 적 외에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던 수면 스킬이다.
빠르게 머리속에서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저 여자가 나 같은 불면증일 경우. 그렇다면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럼 연달아서 잘 때까지 걸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다른 건?
있다. 다른 경우.
반사.
한 번도 당해본 적은 없지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지난번 대학교 기숙사에서 아줌마가 가지고 있던 스킬.
얼음 파동인지 얼음 회오리인지 암튼 주변에 전부 피해를 주는 스킬은 반사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목표로 되는 스킬만 반사가 되는 게 아닐까 했던 그 스킬.
가정해본다.
저 여자는 반사를 켜놨고, 내가 수면을 써서 내 수면이 반사됐는데 나는 불면증이라 수면 한번에는 잠들지 않았다.
충분히 가능한 일. 그리고 내가 반사된 수면을 저항하지 못했으면 그대로 당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게 생각하니 등줄기가 오싹했다.
이만큼 해놓고 허무하게 뒤질뻔했어.
문제는 저 여자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거실 쪽으로 오고 있다는 거다.
소파에서 자는 놈을 테이프 칠해놨으니…. 힐끗 보기만 해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남자놈들은 다 제압을 했지만, 여자가 하나 더 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스킬을 모른다. 2대1이 되는 상황만큼은 막아야 해.
저 여자를 제압해야 한다. 적어도 소리는 못 지르게 해야 다른 여자가 깨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씨발. 석궁이라도 장전해 놓을걸. 그냥 쏴버리면 되는데.
조용히 심호흡하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막 소파 남이 테이프 질 당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여자를 그대로 덮쳤다.
쿠당탕.
"읍!!!"
다른 건 몰라도 소리를 지르게 해서는 안 된다.
뒤에서 끌어안으며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두 손으로 내 손을 떼어내려 하고 입으로 내 손가락을 막 물었지만 나는 코와 입을 전부 덮어버리고 그대로 질질 끌고 여자의 방으로 끌고 갔다.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지만 체격의 차이와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여자는 힘으로 안 되는 걸 알고 나를 마구 때렸지만 아파할 새가 아니다. 빨리 이 여자를 해결해야 해.
어떻게든 방안으로 끌고 들어온 나는 팔로 여자의 목을 감았다.
씨발…. 영화에서는 이러면 기절하던데! 구라쟁이 새끼들!
여자는 캑캑대면서도 계속 발버둥을 쳤다.
기절해라. 개년아. 쫌!
하지만 여자는 계속해서 발버둥 친다. 이 방법으로는 불가능 한 거 같다. 씨발 수면이 안 된다니 이런 병신같은 경우가 다 있어.
그대로 여자를 내동댕이치고 발로 배를 걷어찼다.
"커억."
씨발 소리 칠 수 있으면 쳐봐라.
이미 소란은 벌어졌으니 빠르게 제압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탐지를 켜보니 다른 방의 여자는 아직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나는 다시 여자의 배를 발로 찍은 뒤 테이프를 꺼냈다.
배에 느껴지는 고통에 꺽꺽 소리를 내며 말을 못 하는 여자의 몸을 안아서 테이프 끝을 잡고 돌려버렸다.
반항하긴 했지만, 테이프는 생각보다 질기다.
두 바퀴 정도 몸에 감기자 여자는 팔이 구속됐고, 몇 바퀴가 더 감기니 금세 꼼짝도 못 하게 됐다.
"도와줘! 나좀 도와..."
힘겹게 목소리를 냈지만, 배의 고통 때문인지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 여자의 입에 테이프가 칠해졌고, 결국 여자는 입이 틀어막혔다.
급하게 둘둘 감아버려서 모양은 엉망이지만 어쨌든 제압은 했다.
"후우."
씨발…. 그냥 쳐 죽일걸. 이게 무슨 고생이야.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하나가 남았으니까.
이 지랄을 했는데도 아직 방에서 꼼짝 않고 있는 여자.
대체 무엇을 하고 있길래 나와보지도 않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