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70화 (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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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이틀 감시 후 하루 휴식 코스로 총 다섯 번째.

2주째 감시하고 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뭐 하는 새끼들인지 궁금하다. 2주 동안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2주 동안 안 나와?

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아니면 정문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하. 이거 돌겠네. 대체 뭐지?

분명 따로 출구는 없었는데. 존나 이상하네.

머릿속으로 가설을 열심히 세워봤다.

일단 가장 그럴듯한 것은 내가 죽인 탐지 스킬이 껴있는 삼인조 그놈들이 유일한 탐색조고 나머지 놈들은 밖에 나올 마음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놈들이 저렇게 짱박혀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30명이라며. 30명이면 하루에 먹어치우는 양도 어마어마한데 식량 조달을 안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차라리 다른 출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낫다.

이제는 마치 내 방처럼 느껴지는 원룸.

창가에 앉아 틈틈이 탐지를 돌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다.

물류센터는 늘 정신 없고 싸움이 빈번하며 무리와 무리가 항상 전쟁 중인, 그런 무법지대로 알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롭다.

내가 상상했던 건 이런 모습이 아닌데….

서로 싸울 때 상황을 봐가면서 균형을 맞추며 양쪽의 숫자를 줄이는 게 최고인데…. 이건 아니다.

방비가 철저한 성에 단기로 돌진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만용이지.

일단 오늘 밤만 한 바퀴 더 돌아보고 돌아가야겠어.

밤이 올 때까지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후 네 시에 자연스럽게 입구 경비가 교체된 것 말고는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지루하네. 진짜.

어둠이 찾아오고, 충분히 시야가 가려질 즈음 방을 나섰다.

탐지를 돌리며 축대 밑을 돌아봤다.

꼼꼼하게 돌아봤지만, 여전히 이상은 없다.

펜스와 바로 바짝 붙은 곳이라 건물들 안쪽에 몇 명인가 기척이 잡혔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네.

그렇게 한 바퀴를 다 돌아보고 나니 허무했다.

이게 다야? 정말로? 진짜 출구가 없어?

아…. 진짜 궁금하네.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 정말.

하지만 일단은 여기서 철수하기로 했다.

뭐 어떻게 손을 대볼 방법이 없다.

다른 놈들이랑 싸우고 있어야 조끼랑 도끼로 이간질이든 유인이든 하지.

이러면 뭘 어떻게 하냐고….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길다.

2주나 투자했는데 얻은 게 없다니…. 허무하다.

시작부터 뭔가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

아니…. 정말 신기한데? 2주다. 이틀도 아니고 2주.

2주 동안 그 많은 인원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말이 되나?

30명이라 잡고 하루에 두 끼만 처먹는다고 해도 60인분이고 14일이면 840인분인데.

음식 840인분이 애 이름이냐고.

뭔가 근본적인 부분부터 잘못된 게 틀림없다.

그 빨간 조끼 삼인조가 구라를 쳤던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이 생겼던가.

아. 머리 아파. 일단 됐다. 좀 천천히 하자.

날씨가 풀릴 때까지는 신경을 꺼야겠어.

지난 2주 동안 이틀 감시 하루는 본진, 이틀 감시 하루는 멀티를 반복하며 두 집 살림을 했다.

승희야 뭐 많이 사근사근해져서 멀티로 가면 기분이 좋았다.

애교 있게 안겨 오는 승희와 섹스하는 것도 즐겁고, 섹스 후에 서로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것도 나름 좋다.

하지만 문제는 홍지연 이년이다.

나에게 굉장히 적대적이다. 왜 그럴까?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내가 어지간히 깐족거리기도 했고, 성인용품으로 장난을 하긴 했다지만 그 정도 수준의 적대감이 아니었다.

노려보는 눈빛이나 틈만 나면 나를 공격하려고 드는 모습이 너무 귀찮다.

힘들고 지치는 수준은 아닌데, 굉장히 거슬린다고 해야 하나.

승희처럼 바이브레이터랑 딜도로 녹이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원망과 증오가 숨어있다. 굉장히 기분 나쁜 느낌.

집까지 걸어오면서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다 보니 결국 이유를 알아낸 거 같다.

지연이는 투명 듀오를 죽인 나를 원망하고 있나 보다.

그들을 그냥 밥 벌어 오는 남자 1, 2로 생각한 게 아니었던 거 같다.

음식을 얻기 위해 몸을 판 게 아니었었어. 내가 잘못 생각 한 거야.

그냥 그녀 나름대로 그들이랑 같이 사는 방법을 강구해낸 것이다.

공격 스킬도 가지고 있는 데다가 머리도 좋은 여자라 혼자 나가서 음식을 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거다.

투명 듀오를 부려먹으려고, 혹은 귀찮아서 그런 짓을 한 게 아닌 거 같다.

대충 그렇게 생각해보니 얼추 모든 게 이해가 갔다.

음…. 그러면 안되지. 마음속에 증오가 남아있는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도 지울 수 없다.

결국, 그녀는 나와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죽여야겠네.

그녀를 살려두고 감시하며 생기는 번거로움이 몸을 취하면서 얻는 즐거움을 넘어섰다.

게다가 스킬도 그렇고 증오도 그렇고, 나와는 함께 갈 수 없는 여자다.

죽여야겠어. 그렇다고 내가 마체테로 찍어 죽이고 싶지는 않다.

그럼 다른 방법을 써야지.

본진으로 돌아왔다.

문에 난 창으로 지연을 봤다.

자는 그녀. 다시 한번 그녀를 보며 생각을 해본다.

쩝. 그래. 어쩔 수 없어. 포기하자.

일단 나도 잠을 잤다. 잠을 자야 뭘 하든 하니까.

12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나니 몸이 찌뿌둥하다.

아무리 불면증이라지만 이틀 밤을 새우고 하루 쉬기를 반복하니 몸이 빠르게 박살이 나는 느낌이야.

거의 정오가 다 된 시간.

밖에 나가서 방 앉을 보니 지연이는 우두커니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지연아."

내가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 투명 듀오를 죽인 내가 미운 거니?"

"닥쳐!"

앙칼진 목소리.

절대 부드러워질 것 같지 않은 목소리다.

"그래. 알겠다. 수고했어."

내 말에 지연은 나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바로 잠이 들었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쓰러져서 자는 지연. 이쁘장한 얼굴, 큰 가슴, 괜찮은 몸매.

이정도의 여자를 죽이는 것은 너무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함께 있는 것이 시간 낭비야.

옷을 입히고 남는 배낭 하나에다가 적당한 식량을 넣어줬다.

아파트에서 가져온 그녀의 짐도 전부 배낭에 넣었다. 장난삼아 쓰지 않을 딜도 하나도 배낭에 넣었다.

그렇게 적어도 얼어 죽지는 않게 옷을 껴입힌 나는 그녀와 배낭을 들고 벙커 밖으로 나왔다.

"어휴."

존나 무겁다. 존나 무겁긴 한데 어쩔 수 없다. 일단은 옮길 수 있는 곳까지 옮긴다.

본진에서 상동으로 가는 방향. 수면 시간을 한번 초기화하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

쉬었다가 다시 짊어지고를 반복하며 20분을 더 간 나는 지연을 문이 열린 빌라 1층에 내려놓고 배낭도 옆에 놨다.

"자. A급 미끼를 누가 무나 볼까?"

수면 스킬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재빨리 나와서 몸을 숨겼다.

부디 일어나서 상동 쪽으로 가줬으면 좋겠는데.

잠깐을 기다리니 지연이 빌라 밖으로 나왔다.

배낭을 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 찬바람을 맞아 추운지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맞이한 자유에 갈팡질팡하는 모습.

어쩌다 보니 자유는 얻었지만,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몸을 움직인다.

다행히 상동 방향으로 가는 지연.

나는 잠시 지켜보다가 적당히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쫓았다.

탐지가 있기에 그녀를 놓치거나 할 리는 없다.

갑자기 미친 듯이 뛰어가거나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쉽게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는 지연.

어딘 줄은 알고 저렇게 가는 건가?

큰길이 나올 때까지 직진한 지연은 망설임 없이 길을 건넜다.

음. 뭐지? 진짜 길을 알고 있는 건가?

이대로 큰길을 건너면 모습이 들킬 테니 적당히 멀어지길 기다렸다가 조금 돌아서 길을 건넜다.

길 건너는 상동의 중심가. 술집이 잔뜩 몰려있는 곳.

탐지를 찍어봐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나와 지연뿐.

지연의 걸음은 망설임이 없다. 스킬에 대한 자신감인가? 아니면 될 대로 돼라?

그렇게 그녀는 한 모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굉장히 자연스러운데? 가봤던 곳인가?

따라 들어갈 필요는 없기에 나는 모텔 건너편 골목에 숨었고. 탐지를 돌려보니 지연은 1층에서 잠시 있다가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 안에 들어갔기에 탐지 텀을 조금 늦추기로 하고 곰곰히 생각했다.

혹시 민지처럼 자살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한 1분 뒤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탐지를 돌렸다.

다행히 3층 정도에서 기척이 잡힌다.

"휴."

나는 왜 안도를 하고 지랄인 걸까.

나도 정말 웃기는 놈이다.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어.

한참 뒤에 탐지를 돌려도 지연은 계속 3층에 있었다.

저기를 자신의 거점으로 삼는 건가? 그다지 좋은 판단은 아니지만, 다행히 주변에 아무런 기척은 없으니 나름 나쁘지 않을지도.

드르륵! 퍽! 쾅!

창문 하나가 열리더니 뭔가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그리고 세게 닫히는 창문.

바닥에 뭐가 떨어졌나 슬쩍 보니 내가 넣어놓은 딜도였다.

배낭에 있는걸 확인하고 있나 보다? 생각보다 일찍 발견했네.

음. 여기서 오래 있으려나? 그럼 나도 임시 거처를 찾아야 하는데.

일단 모텔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는 쪽을 돌아서 옆의 모텔로 향했다.

바로 2층으로 가서 지연이가 있는 모텔 쪽이 보이는 방이 몇 호실인지 확인했다.

212호. 여기가 좋겠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212호 키를 찾았고 다시 올라와 212호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방.

먼지가 조금 쌓여있을 뿐 머무는 데는 문제 없어 보인다.

자…. 그럼 나도 슬슬 준비해볼까?

그렇게 나의 길고 긴 낚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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