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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돈을 줍는 기분
일단 몸을 숨겼다.
내가 일부러 소리라도 내지 않는 이상 나를 발견할 방법은 없으니까, 유리한 건 나야.
탐지를 계속 유지한다. 그런데 한 놈이 아니다.
셋. 그렇구나. 하긴 나같이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런 대낮에 혼자 다닐 리가 없지.
이쪽으로 다가오는 세 명.
근데 움직임이 이상하다. 나를 향해 직진으로 다가오는 거 같은데?
나는 골목에 모습이 절대 드러날 수가 없는 원룸 빌라 1층 안에 숨어있다.
모습도 소리도 절대 들켰을 리가 없다.
근데 나를 향해 바로 온다고?
느낌이 쎄하다. 뭔가가 있어.
움직여야 하나? 확인해 봐야 한다.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노리고 오는 것인지.
저들의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않았기에 나는 옆 골목으로 움직였다.
골목이 많은 곳이라 다행이다 시야에 걸리지 않게 움직일 수 있어. 이정도 거리면 소리도 안 들릴 테고.
두 블록 정도 더 가서 몸을 숨겼다. 이번엔 엉망이 된 단독주택 안으로 들어와서 집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려있어서 다행이야. 탐지도 좋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대낮에 이러는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 주변이 환한 게 상당히 낯설었다.
하지만 장점은 확실히 있었다. 상대가 환하게 보이니까.
집 2층에서 몸을 숨기고 탐지가 느껴지는 쪽을 살펴봤다. 역시나 똑바로 내 쪽으로 다가오는 세 놈.
시야에 그들이 보였다. 남자 셋. 복장이 상당히 특이했다. 셋 다 똑같은 손도끼를 들고 있고 똑같은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한 놈이 정확하게 내가 숨은 곳을 손도끼로 가리켰다.
씨발…. 저새끼 탐지구나.
등골이 쭈뼛 섰다. 탐지의 위력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개씹사기스러운 스킬.
게다가 일행 두 명…. 똑같은 조끼와 손도끼. 적어도 급조된 팀은 아니라는 거다.
이런 짓을 손발을 맞추며 제법 해왔다는 뜻이다.
씨발씨발씨발.
이런 상황을 한 번도 생각 안 해본 게 아니다.
탐지의 스킬이 개사기인 만큼 상대가 이 스킬을 가지고 있을 때도 대비해야 했으니까.
벙커는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우연히 발견하기도 힘든 곳이다.
하지만 유일한 약점이 탐지다. 범위 안에서 탐지를 쓰면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다.
주변 정리를 빡쎄게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이 동네 자체를 죽은 동네처럼 만들어 놔야 깊게 안 들어오니까.
나처럼 코인이 넘쳐나서 포션을 계속 먹지 않는 이상 탐지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아무도 없는 동네에서 탐지를 계속 쓰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했다.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탐지는 그만큼 개사기야.
좋아…. 이제부터는 심리전이야. 숨바꼭질의 시간이다.
내가 가진 패는 두 가지다.
스킬이 두 개라는 것. 그리고 저들이 셋이라는 것.
탐지남의 탐지가 첫 번째 스킬인지 두번째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들은 흩어질 수가 없다.
흩어지는 순간 탐지는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피아 식별을 할 수 없는 탐지. 그렇기에 저들은 절대 흩어질 수 없다.
그리고 탐지남에게 정보를 계속 구두로 받아야 하는 두 명 역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결국, 포위망을 구성하거나 하는 방식은 불가능하다는 말.
그리고 저들은 내가 스킬이 두 개인지 모른다.
이건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내 행동 하나로 저들에게 방심을 줄 수 있고 역으로 내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도망갔다.
'나도 탐지가 있다. 니들의 움직임은 훤히 보고 있다. 잡아볼 테면 잡아봐라.'라는 식으로.
저들이 내가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들의 반응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저들이 신나서 쫓아오면 저들은 두번째 스킬의 존재를 모르는 거다.
상대가 한 명인데 스킬이 탐지다? 그럼 신나서 거리를 좁히는 게 당연하니까. 스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테니.
근데 저들이 계속해서 신중히 쫓아오면? 그건 정말 공포다.
스킬을 두 개 이상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 절대 방심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나는 천천히 몰이 사냥당하겠지.
제발 무지성으로 쫓아오길 바라며 도망갔다.
소리를 죽이고 시야에 노출되지 않게 조심하면서 혼신의 연기를 하며 도망갔다.
자! 니들이 발견한 나는 스킬이 탐지라고! 스킬로 한방에 당할 염려가 없어! 그러니 나를 잡아! 어서!
세 녀석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오오. 감사합니다. 멍청한 새끼들이라 감사합니다.
스킬 마스터 한 놈들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망가는 속도를 조금씩 늦췄다.
골목골목으로 필사적으로 숨는 액션은 보여줬지만 결국은 거리가 줄어들게끔.
그렇게 서로의 얼굴이 보일 때쯤, 저쪽에서 크게 외쳤다.
"이봐! 도망가지 마! 할 말이 있다! 우린 너를 죽이지 않아!"
이게 무슨 개소리지? 요즘엔 개소리를 신기하게 하네.
하지만 궁금하긴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리다가 뒤돌아섰다.
내가 멈추자 그들도 멈춰서 숨을 고른다.
"허억. 아우. 왜 이리 빨라. 이봐! 도망가지 말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봐! 우리는 너를 죽이지 않아."
"허억. 허억. 그걸…. 허억. 어떻게 믿어!"
"너! 스킬 주변 인간 탐지지?"
나는 그저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씨발?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으로.
신나는 듯 계속 말하는 남자.
"우리도 탐지 스킬 있는 사람이 있어서 잘 알아. 우리는 너와 같은 사람들을 팀에 모으고 있어. 탐지 스킬은 아주 뛰어나! 그리고 혼자서는 살기 힘들지. 우리 팀으로 와라! 그럼 훌륭한 대우를 받으면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어!"
오호라. 이것 봐라. 머리가 돌아가는 놈들이 있네?
남자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이거…. 굳이 고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술술 정보를 말해줄 것 같은데.
"티…. 팀?"
"그래. 팀. 우리는 총 30명이 넘는 사람들로 팀을 이루고 있어. 너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어. 그러니 우리와 함께하자."
와…. 뭐 하는 새끼들이지? 제정신인가? 이런 세상에서 무리를 모아서 산다고? 그것도 30명이 넘어? 진짜?
"탐지 스킬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착취당한다던데요…."
한껏 주눅 든 목소리와 살짝 관심이 있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남자는 신나서 계속 이야기한다.
"아냐! 이 친구도 탐지 스킬이지만 이렇게 우리랑 잘 다니고 있잖아. 진철아. 너 착취당하냐?"
"이봐. 우리는 그런 거 없어. 나도 너처럼 혼자 다니다가 여기에 합류했어. 그리고 지금은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고. 그러니 너도 함께하자. 남 같지 않아서 하는 소리야."
자…. 이제 갈등하는 표정 좀 보여주고….
"저분만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럴 수도 있고."
"아니야. 안 그래. 지금은 탐지가 진철이밖에 없어서 조금 무리하고 있지만, 네가 온다면 둘이 교대로 탐색하면 돼. 그럼 훨씬 편해질 거야. 이봐. 잘 생각해봐. 탐지 스킬은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때 효과가 커진다고. 앞으로는 그렇게 도망 다니지 않아도 돼."
"30명이 넘는데 탐지가 혼자면…. 그게 혹사당하는 거 같은데요. 착취랑 다를 게 없고."
"그러니 네가 와서 도와달라는 이야기지. 후회하지 않을 거야."
술술 잘도 말해주네. 탐지는 쟤밖에 없다는 거지?
저 남자의 말 중에 가장 웃긴 건, 저 남자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거다.
하긴, 탐지가 다 같이 공유되는 게 아니고 정보를 말로 전달받아야 하는 스킬이니 협박이나 착취는 하기 힘들겠지.
그래서 저렇게 정성을 들여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거고.
만약 내가 스킬이 탐지만 있었다면 저들의 제안에 혹했을지도 모르겠다.
손해 보는 부분은 없었으니까.
"...30명이나 살 수 있는 곳이 있나요?"
"당연하지. 혹시 물류센터라고 들어봤어?"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물류센터 이야기가 나오네?
"거긴…. 설마 거기 있는 거예요?"
"그래. 들어본 적이 있구나?"
"거기…. 정세희라고 있지 않나요. 제 나이 또래 여자고 매혹 쓰는 여자인데."
내 말에 남자의 눈이 게슴츠레해진다.
"너…. 마녀를 어떻게 알지?"
"마녀?"
"그래. 그 망할 년. 너 그년이랑 한패냐?"
"한패냐고요? 장난해요? 한대 패줘야 하는 년입니다. 한패라니요."
내 말을 들은 남자가 잠시 멈칫하더니 큭큭하며 웃는다.
"한패…. 한대 패줘…. 큭큭큭. 야. 센스 있네. 라임 좋아? 목걸이라도 걸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그년이랑 적대적인가요…?"
"하. 적대적이냐고? 그년이랑 적대적이지 않은 곳이 있을까? 그 씨발년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게 몇 갠데? 우리뿐만이 아냐. 손해 본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요? 얼마나 있죠? 하긴…. 그 썅년 하는 짓으로 봐선 안하무인이라 적을 만들 수밖에 없긴 한데…."
"이봐."
"네?"
"그쪽 원한이 조금 있는 거 같은데. 우리에게 합류해라. 그럼 자세한 정보도 공유해주고 복수도 함께 할 수 있어."
아…. 더는 안 알려주겠다 이건가.
상관없지. 이미 알고 싶은 건 다 알았으니까. 이제 정리해볼까?
"그…. 거기 팀 이름은 뭐예요?"
"우리? 투쟁연대."
...지랄났네.
세 놈을 재웠다.
씨발 빨간 조끼 입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
이름 끔찍한 거 봐라…. 그런 센스니까 내 드립에 웃지.
어쨌든 고마운 놈들이다. 갑자기 나타나 나에게 많은 정보를 준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여러가지랑 코인도 줄 것이다. 정말로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놈들의 조끼를 벗겼다. 그리고 손도끼도 챙겼다.
주머니도 뒤져봤다. 이럴 줄 알았어. 출입증이라고 적혀있는 카드키가 나왔다.
그리고 접힌 종이랑 잡다한 물품들.
일단 한곳에 다 몰아넣었다. 물류센터 이야기가 나온 이상 다 뒤져서 확인해 봐야지.
이제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처음으로 만난 탐지 스킬 사용자. 의외로 생각했던 게 잘 먹혔다.
아직 스킬이 두 개가 될 수 있다는 걸 다들 모를 때 신나게 써먹어야 하는데….
마체테가 망나니의 칼처럼 휘둘러졌다.
[11,33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9,565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9,76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탐지 스킬이 있던 놈들이라 그런가? 코인이 쏠쏠하네. 뜻밖에 횡재야.
치킨 배달하는 곳이 있으면 치킨이라도 시켜 먹고 싶은 심정이네.
아…. 괜히 생각했다. 씨발.
세상이 이따위로 망했어도 누군가 치킨집을 연다면 그 집은 성역이 되지 않을까?
어떤 새끼도 그 안에서는 싸울 수 없는 거지.
알아서 스킬도 못 쓰고.
만약 진짜 있다면 진짜 상주하면서 난동 피우는 놈들 제압하는 거 도울 수 있을 거 같다.
하아…. 지랄말자. 지랄 말고 기분도 좋으니 빨리 가서 승희나 안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