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8화 (2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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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

잠들어 쓰러진 덩치 큰 남자의 몸을 뿌리치고 나온 여자.

자신을 덮친 덩치 남을 보더니 철근 남도 한번 힐끔 봤다.

그제야 방금 넘어진 충격이 올라오는지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잠시 제자리에 서 있던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지만 뭐 보이는 건 없을 거다.

그러더니 바로 코인부터 챙기러 간다.

캬. 그래. 챙길 건 챙겨야지.

자신만 남기고 열댓 명이 죽었는데도 챙길 건 확실히 챙기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암. 이런 족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정도 판단력은 있어야지.

자. 길게 할 수는 없지만 고민할 시간이다.

누군가 보고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 타이밍이다. 이대로 여자가 이곳을 떠버리면 남자 열…. 몇 명이었지? 암튼 대량의 남자들에게 모인 코인과 팔팔한 여자가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

지켜보는 놈이 병신이 아닌 이상 저 여자를 보내줄 리가 없다. 게다가 철근 남이랑 덩치 남이라는 뽀너스도 있는데.

자…. 움직여라. 움직여라.

여자는 국제교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왜 들어갔지? 도망가야 하는 거 아냐? 이 상황에 건물로 들어간다고? 뭐지?

안쪽에 길이 있나? 아…. 학관으로 통하는 지하통로가 있던가? 그래. 있던 거 같다.

국제교육관은 와본 적 없지만 학관에서 국제교육관으로 가는 길이 있었던 거 같다.

만약 저 여자가 학관을 통해서 도망간다면 조금 골치 아파질 수 있는데….

그렇지!

남자 둘이 튀어나와 여자를 쫓기 시작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 역시 이 지랄 염병을 떨어놨는데 꼴랑 철근 남이랑 덩치 남 둘만 보고 있었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 남자 둘을 뒤쫓아 한 남자가 또 튀어나와 조용히 쫓아가는 것도 보였다.

좋아. 이 정도면 다 나왔겠지? 지금도 나오지 않으면 먹잇감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마지막에 튀어나온 남자는 철근 남과 덩치 남을 보더니 망설이는 것 같이 보였다.

현명한 선택이야. 불확실한 2대1보단 차려진 먹잇감 둘은 챙겨가고 싶겠지.

남자는 가방에서 망치를 꺼냈다.

제법 큰 망치인 데다가 머리에 테이프까지 꼼꼼하게 칠해놓은 정성을 보아하니 이런 짓이 아주 익숙해 보인다.

전력을 다해 팔을 휘둘러 덩치 남의 머리를 찍자 덩치 남이 바로 사라졌다.

유유히 코인을 챙기고 철근 남에게 가는 망치남.

망설임 없이 철근 남도 처리한 망치 남을 내가 바로 재웠고 그대로 쓰러졌다.

나는 망치 남에게 가서 마체테를 휘둘렀다.

[23,11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와. 씨발? 뭐지? 남자 세 명분인데 코인이 2만이 넘어?

누가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던 거야? 하긴 셋 다 허접해 보이지는 않았지.

어차피 지금은 사이좋게 삼도천을 건너고 있겠지만.

서둘러 국제교육원 안으로 들어갔다.

앞에 남자 두 놈이 여자를 쫓고 있으니 빨리 따라가야 하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어디지?

"꺄아아악!"

찢어지는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커다란 강의실 같은 곳 안쪽. 나는 살며시 다가가 열린 문 쪽으로 거울을 꺼내 살폈다.

여자를 붙잡고 있는 남자와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있는 다른 남자.

안 그래도 짱개 윗대가리한테 강간당했던 여잔데, 또 당하게 생겼네.

남자 하나는 여자의 팔을 붙잡고 가슴을 주물럭거리고 있고, 다른 한 놈은 자신의 바지를 내렸다.

여자는 아까 강간당하고 있었어서 그런지 치마를 올리자 바로 보지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런 여자에게 바로 자신의 물건을 냅다 찔러넣는 남자.

"아파! 아프다고! 씨발 놈아! 아! 하지 마!"

셋 다 재웠다.

저렇게 소리 지르면 근처에 있는 발정난 새끼들을 죄다 모을 거 같아서.

셋이 한 뭉텅이로 포개져 쓰러져있는 것을 보니 꼴이 참 우스웠다.

여자의 보지 안에 자지를 넣고 자는 새끼나, 가슴 주물럭거리다 자는 새끼나….

이게 바로 딱 요지경이네.

남자 놈들을 밀어내고 여자를 한번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 꼴을 보니 성욕이 싹 가셨다.

망설임 없이 세 연놈에게 마체테를 휘둘렀고, 한 놈씩 죽일 때마다 금색 주머니가 옆에 사람에게 빨려 들어간다.

결국, 마지막에 하나 남은 코인 주머니.

[42,31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4만? 4마아안? 미쳤네. 아주.

물론 뒤진 놈들이 거의 스물에 육박하긴 했다지만 4만이라니.

아까 2만 정도까지 합치면 엄청난 수익이네.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하하…. 이것참. 사람을 그렇게 쳐 죽여놓고 뿌듯함이라니. 에휴. 씨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은 최대한 몸을 숨겼다.

혹시라도 모르니까.

막말로 다빈이가 지금까지 투명화로 숨어있다가 뒤에서 녹슨 못 박힌 각목으로 찍을지도 모르잖아?

약간 강박증에 가까운 이런 성격이 나를 여태껏 살 수 있게 해준 이유다.

쫄보에 강박증. 나 같은 놈에게 딱 맞는 단어들이네.

시체가 없어진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시체가 남아있다면,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되지만 이렇게 다 사라져버리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맘에 드는 시스템이야.

죽일 때마다 시체가 남는다면 내 성격상 그거 처리하느라 머리가 빠개졌을 텐데.

거울을 꺼내 밖을 내다본 나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복도로 나갔다.

이제 학관쪽으로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이 정도 모험이었으면,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한 거 같아.

텅 빈 밤의 학교를 나다니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어렸을 땐 귀신이나 유령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튀어나올 것을 무서워했다면, 지금은 사람이 튀어나올까 봐 무섭다.

사람만큼 무서운 게 없는 세상이니까.

차라리 귀신이나 유령이 나왔으면 반가울 것 같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다는 건 초자연적인 힘도 있다는 뜻이니까.

혹시 알아? 초능력 같은 걸 쓸 수 있게 될지도?

얼래…. 생각해보니 내가 쓰는 수면도 따지고 보면 초능력이라고 봐야 하는구나….

나는 이미 초자연적인 힘을 쓰고 있는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귀신이나 유령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이쁘고 몸매 좋은 처녀 귀신이면 좋겠네.

지하통로를 통해 학관으로 오니 이제야 낯익은 길들이 보여 움직이기가 수월해졌다.

1층에 있는 식당을 보니 살짝 배가 고파졌다.

아. 여기 경양식 싸고 맛있는데. 다시 먹을 수 있는 날은 안 오겠지?

그렇게 조용하게 움직이는데 바깥에서 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죽은 듯 구석에 숨어 살펴보니 한 무리의 남자들이 학관 밖에서 학교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짱개? 또?

문제는 숫자가 많다. 하나, 둘, 셋…. 열둘.

뭐야? 어디 가는 거야? 아…. 설마 아까 국제교육관에서 있던 짱개들 일행인가?

확실하진 않지만, 일행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저들은 따로 독자적인 무리 같아 보이는 느낌.

쭈그려 앉아 숨어있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듯한 가설이 떠올랐다.

아까 국제교육관에서 있던 짱개들은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들을 무릎 꿇리고 있던 모습과 여자를 강간하고 있던 윗대가리, 그리고 도열해 있던 짱개들.

이놈들을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닐까?

씨발. 무슨 지들이 삼합회야? 아주 남의 나라에서 느와르를 쳐 찍고 있네.

아니지. 저딴 새끼들을 보고 느와르라고 불러주면 느와르에 대한 모욕이지. 그냥 일진 놀이잖아.

어차피…. 흔적은 없다.

목격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었다면 방비를 할 테지.

게다가 열둘을 나 혼자서 뭘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냥 이대로 숨죽이고 있다가 돌아가야겠다. 골치 아파.

이 정도 한 것도 나로서는 오바야.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고도 험했다.

아마도 수면 스킬을 너무 써댄 탓에 지친 것 같다.

코인도 겁나 많이 벌었으니 회복 포션을 하나 더 빨아볼까 하다가 관뒀다.

집까지 거의 다 와 가니까. 그냥 빨리 가서 씻고 자고 싶다.

집에 거의 다 올 때쯤 방심했는지 위험에 맞닥뜨릴 뻔했다.

내가 씹새끼들이라 이름 붙인 무리.

남자 다섯에 여자 둘인 무리가 내 벙커가 있는 저택 앞쪽 골목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씨발. 뭐지? 설마 내 종적이 들켰나?

이 모양이 된 세상에서 담배를 어디서 구했는지 맛있다는 듯 담배를 쪽쪽 피우며 침을 뱉고 있는 씹새끼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저렇게 대놓고 있지는 않았겠지.

유인하든 매복을 하든 했을 거다. 저들은 나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아닐 거야. 제발.

다행히도 내 걱정은 걱정으로 끝났다.

다섯 명의 남자들이 씹새끼들한테 다가왔고 서로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남자 다섯 중의 하나는 나도 아는 새끼였다.

정종찬. 세희 년의 친위대라고 할 수 있는 새끼. 그리고 화학과 동기.

"어휴. 여왕님 곁에서 멀리도 나오셨네?"

씹새끼들 중 리더인 놈이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종찬은 웃으며 말했다.

"구했어?"

"물론."

씹새끼 리더는 고개를 까딱했고, 씹새끼 중 남자 하나가 에코백 하나를 종찬에게 줬다.

"와. 완전 친환경이네? 이런 데다 주고."

"왜? 다음엔 이쁘게 포장지라도 싸서 주리?"

"됐어. 야. 이거 확인해봐."

종찬 옆에 있던 남자가 에코백을 가져가더니 안쪽을 확인해본다.

"오케이."

"그래? 봐봐."

남자가 뭔가를 꺼내서 종찬에게 확인을 시켜줬고, 종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남자가 씹새끼 리더한테 끌고 왔던 캐리어를 건네줬다.

"이야. 캐리어 값도 줘야 하나?"

"지랄."

씹새끼 리더와 일당들은 캐리어를 열려다가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종찬에게 말했다.

"비번은?"

"3827"

캐리어가 딸깍 하고 열렸고, 씹새끼들은 안을 보더니 '오오' 하는 탄성을 냈다.

아...씨발. 이쪽에서는 뭐가 뭔지 하나도 안 보이잖아.

"됐냐?"

"오키오키. 캬. 쿨거래 좋았다. 네고 없이 깔끔한 쿨거래. 이래서 너희를 좋아한다니까?"

씹새끼 리더의 말에 종찬이 그저 말없이 웃는다.

저 나쁜 놈…. 사내새끼 주제에 뭐가 저렇게 재수 없게 웃어.

씨발…. 그러니까 세희 년이 저놈이랑 떡 쳤겠지만.

"간다. 다음에 연락은 늘 하던 대로 하면 되냐?"

"물론물론. 근데 너희 요즘 어디로 갔냐? 근방에서 안 보이던데?"

리더의 질문에 내 귀가 쫑긋해진다.

위치…. 위치를 이렇게 알 수 있다고?

"왜? 놀러 오게?"

"뭐…. 놀러 가면 좋은 거 있냐?"

"죽이진 않겠지."

종찬의 말에 씹새끼들의 표정이 살짝 안 좋아진다.

그런 낌새를 눈치챈 리더는 눈짓으로 무리를 진정시키고 종찬에게 말한다.

"무서워서 못가겠다야."

"우린 물류센터에 있을 거야. 심심하면 놀러 와."

자신감이 넘치는 종찬의 말에 다들 약간 기가 질린 느낌이다.

"씨발. 결국, 거길 갔냐? 니들도 대단하다 정말. 알았다. 담에 보자고."

리더는 일행들에게 손짓했고, 캐리어를 챙긴 씹새끼들은 종찬의 무리를 견제하며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다.

종찬 역시 그런 그들을 끝까지 바라보더니 결국 다른 쪽으로 사라졌다.

"후아..."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고 한참 주변을 살피다가 조용히 벙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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