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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다빈을 보내고 나니 괜히 보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몰래 짱돌이라도 들고 와서 뒤에서 내리치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나를 따라와서 벙커로 침투한다던가….
에휴. 이래서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돼.
자꾸 드는 잡생각을 버리고 세희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
이 근처에서 사람이 많은 곳이 어디일까?
벙커를 반경으로 그리 멀리 나가질 않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
전기도 살아있는데 왜 유투x같은 건 안 되는 거야?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자연과학관을 나왔다.
어디로 가지….
이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오랜만에 학교로 왔는데 더 둘러볼까.
그냥 돌아가기는 약간 아쉬웠다.
약간 욕정도 생겼고.
이럴 거면 그냥 아까 다빈이랑 하는 거였는데.
꼭 지나간 다음에 이런 식이네…. 병신 새끼.
자연스럽게 학교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있을 만한 곳이 어디가 있을까. 중도? 학관? 기숙사?
기숙사. 좋은 생각이다.
아무래도 사람은 익숙한 곳에서 살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아까 본 짱개놈들이 생각났다.
그 새끼들도 여기 뭐가 있으니까 왔겠지? 아. 그러고 보니 다빈이는 여기 왜 온 거지? 그걸 안 물어봤네.
기숙사 쪽은 가로등이 전부 나가 있어서 어두컴컴했기에 움직이기는 편했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바닥에 유난히 유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차 사고라도 났나? 라고 생각하다가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전부 깨져서 어두운 가로등, 바닥에 유난히 많이 뿌려진 유리 조각.
내가 하던 짓이잖아.
나는 그대로 길가의 화단 쪽으로 몸을 숨겼다.
일단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야 해. 누군가 지켜보고 있거나 숨어있을 거야.
한참을 쭈그려 있었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래도 긴장을 풀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가로등, 유리 조각 그다음은?
이쪽을 바라보는 뭔가가 있을 텐데…. 어두워서 보이질 않는다.
기숙사에 누가 있긴 한 건가? 이미 오래전에 떠났고, 이건 예전에 해놓은 흔적이 아닐까?
일단 다시 조심히 소리가 나지 않게 도로로 돌아가서 유리 조각들을 살펴보니 확연하게 깨진 지 얼마 안 되는 유리들이 있었다.
이건 분명히 사람이 있는 거네.
그런데…. 이렇게 입구부터 누가 오는지 확인을 한다고? 그러려면 인원이 꽤 필요할 텐데.
일단은 돌아가는 게 맞다.
멸망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쫄보라면 돌아가서 이쪽은 신경 안 쓰는 게 맞다.
근데 나는 현명하지 않단 말이지.
화단을 넘어 옆쪽 길로 빠졌다.
학교 내부에 있는 기숙사라서 그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 을 텐데 막혔네.
그럼 뒤쪽으로 가볼까.
기숙사 외벽을 따라 돌아서 뒷문 쪽으로 갔지만, 거기도 막혔다.
이 정도 대비는 해놨다는 건가.
고민고민고민.
무리해서 들어가 볼 필요가 없는 곳인데.
이렇게 틀어막아 놨으면 궁금하긴 하단 말이지.
대체 뭘 꼭꼭 숨겨놨길래 이렇게 철옹성을 지어놨는지 말이야.
음…. 그 루트가 아직 쓸 수 있는지 모르겠네.
기숙사 옆에 붙어있는 교수동.
교수동 2층에서는 창문을 열고 기숙사 담벼락을 넘을 수 있는 곳이 있다.
학교 다닐 때 기숙사 사는 놈들이 밤에 문 닫히면 넘어 다니던 곳.
다행히 아직 갈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여길 지키고 있는 놈이 있냐는 건데.
기숙사 사는 놈들이라면 이 루트를 모를 리 없을 거고.
창문을 열어 기숙사 담벼락 쪽으로 갈 수 있는 난간을 보았다.
발자국 같은 건 없이 먼지가 쌓여있는 모습.
안 쓴 지 오래됐다면 이쪽을 감시할 리가 없겠지? 모르겠다. 그냥 정문으로 조심해서 들어갈까?
아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이리로 가자.
담벼락을 넘어 기숙사 안쪽에 착지할 때까진 아무런 낌새는 없었다.
혹시나 모르니 그대로 어둠 속 구석에 최대한 몸을 숨기고 숨어있어 봤다.
아무도 안 오는 거 보니 이쪽은 감시가 없는 거 같은데…. 아. 다빈이의 투명화가 정말 부럽네.
기숙사는 들어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볼까.
당연히 여자기숙사지. 뭐, 어차피 둘 다 가볼 거긴 하지만.
천천히 여자기숙사 쪽으로 갔는데 어디선가 소음이 들렸다.
뭐지? 뭐가 또 이벤트가 있어?
오늘 무슨 날이야? 왜 이리 소란스러워?
기역자 모양으로 되어있는 기숙사 안을 돌다 보니 안뜰 쪽에서 비명과 고함이 들린다.
여자기숙사는 2층이 입구고 안뜰은 1층에 있어서 내려다볼 수 있기에 창문에 머리만 살짝 내밀어서 안뜰을 봤다.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대충 거의 다 남자였다.
비명도 남자고 고함도 남자고 짱개어도 남자고….
아 씨발 저 짱개놈들.
결국은 이게 문제였구나. 오늘 짱개들이 이쪽을 돌아본 거였어.
하필 그것도 나랑 같은 날에.
일단 여기 있으면 내가 발각될 것 같지는 않긴 한데….
밑의 상황은 짱개가 많아 보인다. 숫자로 봤을 땐 짱개 8명? 상대하는 건 누군지 모르겠지만 한국말이 들렸으니 한국인이라 치고 5명? 아. 이제 4명 됐네.
한 명이 빛으로 변해 코인이 되었다.
그리고 또 불덩이 같은 게 하나 날아가 다른 한국인한테 맞았다.
와. 저거 파이어 볼이야? 정말 쓸모없어 보이네.
전에 잡혔던 여자가 썼던 얼음 화살이랑 비슷할 정도로 쓰레기로 보인다.
맞고 안 죽었잖아?
게다가 몸에 불이라도 붙으면 그걸로 어떻게 될 테지만, 불덩이는 그냥 몸에 펑 하고 맞고 사라져버렸다.
저래서야 살상 능력은 똥이네. 망 스킬이야.
다른 사람들도 뭔가를 쓰는 거 같은데 파이어 볼처럼 확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뭔가 번쩍번쩍 하는 거 같기도 한데. 여기서 보기엔 잘 모르겠네. 아. 저건 이제 알겠다. 발로 차니까 전기 같은 게 나가네.
썬더킥이라고 해야 하나? 대체 저딴 스킬은 왜 고르는 거야?
한국인들을 도와주고 싶지만, 누가 누군지 정확하게 타겟이 힘들다.
게다가 아직은 내 모습이나 스킬을 저들에게 노출하고 싶지 않다.
저들을 도와주면 좋기야 하지만 내 목숨이 소중하니까.
한참을 구경하다 보니 결국은 짱개 7명과 한국인 한 명만 남았다.
그리고 그 한국인도 결국은 죽었다.
남은 건 짱개 7명. 한 놈이 뭔가를 지시하더니 다른 놈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 이거 좀 상황 거지 같네?
설마 여기를 다 뒤지는 건가? 뭐 찾는 게 있는 건가? 일단은 모르겠다. 저들이 오기 전에 숨어야겠어.
열리는 방문 하나로 들어가니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여자 방이었다.
살았긴 했지만, 여기를 떴는지 그다지 중요한 물건은 남지 않은 상태.
일단은 방 안에 숨어서 소리에 집중했다.
어쨌든 3명 이하면 내가 질 리는 없으니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복도 끝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금 뒤 다시 쾅! 하는 소리.
혹시 복도 끝에서부터 문 하나씩 따고 확인하는 거야?
나는 문을 열고 거울을 꺼내 복도를 살펴봤다.
내 예상대로 칼을 든 남자 놈 하나가 문을 발로 차고 안을 살펴본 뒤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는 모습.
밖으로 나와서 쾅! 하고 다음 방문을 발로 찼을 때 바로 재워버렸다.
그리고 빠르게 남자 쪽으로 가서 남자의 몸을 끌어당겨서 방안으로 들어왔다.
으…. 짱개 새끼. 좀 씻고 다니지.
물도 무제한으로 나오는데 왜 안 씻고 다니는 거야.
일단 꼴 보기 싫어서 바로 죽이려다가 마체테를 멈췄다.
죽이면 빛이 나잖아? 그래선 안 되지.
조용히 문을 닫고 짱개를 가야 할 곳으로 보내줬다.
[3,987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흐음. 평범하네.
혹시 밖에서 누가 더 오는지 소리에 집중했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다시 문을 살짝 열었다.
아까 짱개는 총 일곱. 이제 남은 건 여섯.
구획 별로 나눠서 뒤져보는 것 같으니 이 새끼들을 다 죽이려면 산개해있을 지금이 기회겠지?
여자기숙사는 총 5층. 일단 위층부터 가보기로 했다.
한 층을 올라가니 여기서도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새끼들은 종족 특성이 소란피우기인가 봐. 조용히 하는 꼴을 못 보네.
코너 쪽에서 소리가 가까워지기에 거울로 살펴보니 아까 그놈처럼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볍게 재우고 방안으로 가서 문을 닫고 쳐 죽이고 코인을 획득한다.
[2,545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다섯. 한 층에 하나씩이면…. 아직 위층에 두 놈이 더 있나?
다행히 내 예상이 맞았고, 두 놈을 문제없이 더 잡았다.
남은 건 셋.
역시 사람은 좋은 스킬을 골라야 해.
내가 지금까지 봐온 스킬 중에서 수면 스킬 만큼 남에게 기습하기 좋은 스킬을 본 적이 없다.
있다고 해봐야 세희의 매혹 정도?
그게 동성도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쫌 무섭네. 남자에게는 쓸 수 없는 스킬이잖아?
그리고 다빈의 투명화 정도? 아. 예전에 사람 귀에서 피나게 만드는 놈도 있었는데. 그건 무슨 스킬인지 모르겠다. 진동 뭐 그런 건가?
암튼 이제 남은 세 명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놈들은 어디에 있을까? 여자기숙사는 다 확인했는데…. 1층에 있나?
아니면 남자기숙사? 뭐가 됐든 남은 세 놈이 자기 일행이 없어졌다는 걸 슬슬 눈치챌 때가 됐는데.
나는 몸을 움직여 일단 남자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여자기숙사 2층에서 중통을 지나면 나오는 남자기숙사 1층.
산비탈에 지어놓은 기숙사라 층수가 제 맘대로다. 여기 건물은 총 4층. 이 위에 하나씩 있으려나?
2층으로 올라가자 역시 쾅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는 짓이 똑같네 똑같아.
하긴 그놈의 국민성이 어디로 가질 않겠지.
빠르게 처리하려고 가는데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악!"
이건 뭐야. 여자 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