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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1화 (2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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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밖으로 나와서 바로 집으로 안 돌아가고 숨어서 체육관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아마 민지, 그년 때문이겠지. 혹시라도 자살이라도 할까 봐.

씨이발. 별 쓰잘대기 없는 걱정을 다 하네.

나라는 놈이 얼마나 알량한지 가늠이 안 된다.

이딴 병신 같은 짓이나 하고 앉아있고.

"으흐흐흑."

한심한 생각이 들어 자리를 털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체육관 안쪽에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해서 창문 안쪽을 훔쳐보니 아직도 알몸인 서현이 누워서 울고 있었다.

서럽게, 원통하게 울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들어가서 위로해줘야 하나?

근데…. 내가 위로한다고 위로가 되나?

아니, 내가 무슨 권리로 들어가서 위로를 하지? 내 머리는 빠가사리인가?

그저 잠자코 서현을 지켜보았다.

한참을 울고 오랫동안 훌쩍이더니 부스스 몸을 일으킨 그녀.

무감각한 표정으로 옷을 입었고 어디론가 들어갔다.

혹시? 하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브루스타를 들고 왔을 뿐이었다.

냄비와 라면을 가져오고 끓이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배가 고파서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살겠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아직도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내가 너무 웃긴다고 생각했다.

오지랖이라...부린 김에 더 부려볼까?

나는 샴푸가 떨어져 있었던 곳으로 가서 봉지를 들었다.

샴푸, 칫솔, 스타킹, 손톱깎이, 비누에 구강청결제.

구강청결제라니. 나 참.

그대로 봉지에 넣어 체육관으로 돌아와 그녀가 나올만한 문 앞에 두었다.

에휴. 이게 무슨 짓인지.

그렇게 봉지를 놓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가고 있는데 얼마 가지 못해서 체육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숨겼고 다행히 서현은 나를 보진 못한 거 같다.

조용히 놓고 왔는데 어떻게 알고 나왔지?

서현이 문 앞에 놓인 봉지를 보고 안을 살펴보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

그렇게 안을 뒤지더니 털썩 주저앉는 소리도 들린다.

"흑…. 철민아…."

또다시 우는 서현. 대체, 언제까지 울 셈인지.

하지만 이번엔 그리 오래 울지는 않았다.

울음을 그치고 봉지를 드는 소리, 그리고 체육관 문이 닫힌다.

그렇게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지나간 한 달. 계절이 추워지고 있었다.

전기가 쌩쌩한 덕분에 추위가 와도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 작년도 재작년도 그리 문제는 없었다.

다만, 밖에 나가기가 드럽게 귀찮아진다.

밖에 나다니는 사람도 적어지고 내가 나가기도 힘들어지는 시기.

작년 겨울엔 어떻게 했더라? 아…. 그래 그 세희 썅년 때문에 고생했구나.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졌다.

세희 그년…. 얼굴 한번 봐야 하는데.

말 나온 김에 그쪽이나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정세희.

대체 그년은 어디로 갔을까?

평소와 같은 준비에 잠바를 추가한 나는 조용히 밖을 나섰다.

시월치고는 날씨가 꽤 차갑다. 아니, 원래 시월은 이렇게 추웠나?

잠바를 더 따듯한 걸 입고 올 걸 그랬나? 좀 움직이면 괜찮아지려나?

어둠을 틈타 골목으로 그림자로 움직인 나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좋은 추억보다 안 좋은 추억이 더 많은 곳.

예전에는 여기에서 아지트를 차리고 무리 짓던 녀석들이 제법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서로 쳐 죽이기 바쁜 세상이니까.

아무리 세상에 남겨져 있던 음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고, 자발적으로 음식을 생산하지 않는 한 결국에는 남겨져 있던 음식도 한계에 이른다.

그렇기에 통조림이 대단한 거지. 현대 과학 기술의 승리다. 씨벌.

이렇게 한 곳에서 우르르 모여서 생활하는 것은 메리트가 별로 없다.

끊임없이 식량을 조달해야 하니까.

결국, 생활반경이라는 게 있는데 우르르 몰려서 살다 보면 주변 반경에 있는 모든 음식이 동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반경을 넓히던가, 아니면 옮기던가.

보통은 옮기는 게 정상이다.

무리의 인원이 많으면 거점을 옮기는 것도 유리하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자기가 구축해놓은 나와바리에 새로운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무리 짓고 사는 놈들은 더더욱.

대학교에서 모인 무리라고 해봐야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 말고는 유리할 게 아무것도 없는 놈들이고, 기존에 세력을 만든 녀석들은 조폭이나 조합, 상인회 뭐 그런 식으로 무리 짓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부딪치면 젊은 애들이 깨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스킬이 많은 것을 바꿨다.

젊은 애들일수록 스킬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으니까.

게다가 한 번씩은 이런 상상을 해본 놈들이 수두룩하고 소설이나 만화로 잔뜩 봤었기에 젊은 애들은 스킬을 굉장히 유용하게 썼다.

덕분에 이 일대는 지하상가를 먹고 있는 조폭들 말고는 소규모의 대학생 무리가 가장 위험한 세력이 되었다.

그런 대학생 놈들이 빠져나간 대학교.

강의실, 종강, 도서관…. 전부 불은 켜있지만 남아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단은 세희의 흔적을 찾으러 온 거니 자연과학관으로 이동했다.

화학과의 여왕벌이었던 세희.

곱상한 외모와 긴 생머리, 남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몸매와 자신의 몸매를 어필할 수 있는 옷들을 입고 다니던 그년.

남자투성이의 공대에서 여신 소리 들으며 영악하게 여왕벌 짓을 했던 년.

남중 남고 공대 루트를 탄 온 호구 같은 남자 놈들을 신나게 벗겨 먹던 싸가지 없던 년.

보고 싶다. 쌍년아.

호구 17이 네년을 다시 보고 싶어 한다고. 근데 넌 어딨니?

자연과학관으로 올라가는 언덕은 너무 노출되어있기에 뒤쪽에 있는 생명과학관으로 돌아서 이동했다.

이쯤에 동방에서 애들이 꽤 있었는데. 설마 지금은 없겠지.

혹시나 몰라서 동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만연, 테니스동, 댄스동, 밴드부…. 텅텅 비어있는 동방들.

사람의 흔적이 끊긴 지 꽤 되는 것 같다.

인간의 건축물은 인간의 손길이 끊기면 바로 자연에 먹혀버린다.

이쪽은 아무 흔적이 없는 게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괜히 마주치면 귀찮게 피하던가 죽여야 하니까.

아니지, 세희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니 피하거나 바로 죽이면 안 되는구나.

생명과학관을 지나 자연과학관 뒷문으로 향했다.

이미 다 부서진 지 오래된 유리문을 지나 오래된 건물로 들어간다.

퀴퀴한 냄새와 음침한 복도.

오래된 건물이라 높이도 낮고 복도도 좁아 더욱더 끔찍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발걸음을 죽이고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는데 2층을 올라가자마자 조용한 소음이 들렸다.

한껏 소리를 죽이고 시시덕거리는 소리 그리고 입이 막혀 읍읍거리는 여자 소리.

많이 들어봐서 잘 아는 소리다.

나도 많이 해봐서 아주 익숙한 소리.

조용히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걸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소리는 물리과 실험실 있는 쪽에서 들리고 있었고 거울을 꺼내 안을 살펴보니 어둠 속에서 남자 셋이 배낭을 뒤지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입이 무언가로 틀어막힌 채 알몸으로 손이 뒤로 묶여있는 한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비록 입에 막힌 것 때문에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진 않고 있었지만.

근데 왜 눈은 안 가렸지? 여자 스킬이 공격 스킬이 아닌가 보지?

무슨 상황인지 대충 파악한 나는 남자 셋을 재우려고 했는데 그때 남자 하나가 다른 남자들에게 뭐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email protected]$!$!$"

나는 그대로 남자 셋을 재웠다.

그리고 그대로 가서 남자 하나를 찍어 죽였다.

[7,22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씨발 짱깨 새끼. 코인도 많네.

또 다른 남자 둘을 찍어 죽이려는데 여자가 내 쪽을 보며 필사적으로 읍읍거리는 게 들렸다.

"뭐야. 뭐라는 거야?"

계속해서 필사적으로 소리 지르는 여자.

"아이씨. 이거 입을 풀어줄 수도 없고. 뭐라는지 궁금하긴 한데. 잠깐 기다려봐."

나는 테이프를 꺼내서 여자의 눈을 가렸다.

자신의 눈을 가리자 다시 읍읍거리는 여자.

눈을 다 가린 나는 입에 들어있던 것을 빼줬고 그녀는 내게 숨을 토하며 말했다.

"하아. 하아. 저 씨발 새끼들 죽이지 마. 내가 죽이게. 후우."

표독스러운 목소리.

나는 그녀의 입에 있던 게 뭔지 봤고, 그제야 그게 여자 팬티인 것을 알았다.

표독스러울 만 하네.

"너 스킬 뭐냐?"

내가 물어보자 어이없어하는 여자.

"스킬?"

"내가 널 풀어주려면 니 스킬이 뭔지는 알아야지."

"정말 풀어주게?"

"이 짱개 새끼들 니가 죽인다며? 그 상태로 죽일 수 있어?"

"아이씨…. 그러네. 스킬 알려주면 나 풀어줄 거야?"

"스킬 들어보고."

"투명화."

"써봐."

"투명."

여자의 몸이 사라졌다.

와씨. 신기하네. 투명화라니. 나도 가지고 싶던 스킬이었는데.

"알겠어. 다시 나타나."

"나, 알몸인데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리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안돼. 불안해서."

”해제.“

여자의 몸이 나타났고, 그녀의 알몸이 다시 적나라하게 보여졌다.

"잠깐만…. 너 투명화 다시 해봐."

뭔가 실험할 게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 여자가 나를 공격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왜…."

"해봐."

"투명."

여자가 사라졌지만 거기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확실히 기척은 느껴졌다.

손을 뻗자 여자의 몸이 만져지기도 했고.

"어? 뭐해. 어딜 만지는 거야?"

"어디긴 니 얼굴이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알았어."

이 여자는 조금 웃기네. 조금 전에 강간당한 거 같은데 왜 이리 멀쩡한 거야?

"잠깐만 그러고 있어봐라."

그리고 나는 보이지 않는 여자를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라."

아…. 투명해서 자는지 안 자는지를 모르겠네.

나는 손을 더듬어 여자의 얼굴이 있던 쪽을 만졌다.

맨손에 만져지는 얼굴의 감촉.

"야. 자냐?"

내가 얼굴을 만져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정말 자는 거 맞아?

몸을 슬슬 쓸어내려 목과 어깨가 만져지는 것을 느끼고 손을 앞쪽으로 향했다.

보드라운 제법 큰 가슴이 만져졌는데도 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투명화가 되었어도 수면 스킬이 제대로 들어간다는 것을 안 이상 이 여자가 무서울 것은 없다.

"그래도…. 더 확인해볼까?"

나는 여자의 몸을 쓸어내리며 허리를 지나 엉덩이 쪽으로 손을 향했고, 여자의 음부 쪽에 손을 가져갔다.

"에이. 이게 뭐야?"

뭔가 축축한 게 만져졌기에 손을 보니 하얀 액체 같은 게 묻어있었다.

"아, 씨발? 짱깨 좇물이야?"

더러운 기분에 쓰러져 자는 짱개의 옷에다가 손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비볐다.

아직도 기분이 더러워 주변을 살피자 다행히 물리과 실험실이라 그런지 실험실 안에 수도가 있었다.

박박 손을 씻고 나서야 다시 여자의 앞으로 온 나는 여자를 강제로 깨울까 하다가 그냥 그대로 두고, 짱개놈들 둘의 팔과 다리를 테이프 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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