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8화 (1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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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년

예지가 죽은 지 열흘.

폐인처럼 방에 틀어박혀 사는 삶.

예지의 죽음 후, 내 삶은 뭔가가 망가졌다.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오래 만난 여자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대단한 여자도 아니었는데.

그저 얼굴 반반하고 몸매가 좋은 그런 여자였을 뿐인데.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부숴버렸나보다.

마음 한구석이 뻥 뚫려서 메꿔지지 않는다.

씨발…. 빌어먹을 년.

아무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성욕도 없었고 의욕도 없었다.

오로지 수면욕만 있을 뿐이었지만, 수면욕이 있다고 그 씨발 좇 같은 잠새끼는 내게 한번을 제대로 온적이 없다.

"자라."

억지로 불러도 오지 않는다.

"자라."

씨발 새끼. 오늘도 지랄이네.

"자라. 자라. 자라. 자라. 자라. 자라. 자라. 자라. 자라. 자라. 자라."

몇 번을 불러야 겨우 거들먹거리며 나타나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겨우 잠들게 한다.

씨발 새끼. 좇 같은 새끼.

쾅쾅쾅쾅쾅쾅

얼마나 잔지 모르겠다.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19시간? 오랜만에 많이 잤네.

몸을 일으켜 문을 두드리고 있는 민지의 방앞으로 향했다.

"닥쳐!"

소리를 지르자 쾅쾅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수면이고 뭐고 귀찮아서 그대로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민지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렇지, 이 여자는 나를 처음 보지.

"왜 시끄럽게 구는 거야?"

만약 민지가 격투기의 대가라도 되어서 이대로 내가 수면을 쓰기도 전에 나를 습격한다면, 나는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딴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귀찮다는 표정으로 민지를 바라봤다.

민지도 내가 모습을 보일 거라는 생각을 못 했는지 깜짝 놀란 모습이다.

"먹을걸…. 줘야죠."

"하루 치씩 주잖아? 아직 하루도 안 지났는데 왜?"

"무슨 소리에요. 오늘치 안 줬어요."

민지의 말에 뭔가 이상함이 있다.

나는 그대로 나가 시간을 확인했다.

19시간…. 맞는데?

그런데 날짜가 이상했다. 뭐지? 왜 하루 더 지나있지?

설마 나는 19시간 잔 게 아니고 43시간을 잔 거야?

자각하고 나니 배가 고픈 게 느껴진다.

무슨 몸뚱이가 이 모양이야? 뭐, 슈뢰딩거의 고양이야? 시간이 지난걸 알기 전까진 배고픈지 안배고 싶은지 확정이 안 된 거야?

나는 뭔 개소리를 하고 있냐.

나는 민지의 방문을 열어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씨발? 좇됐나?

조심스럽게 민지의 방 쪽으로 향하니 아직 안에서 인기척이 난다.

나오지 않았어? 안 도망갔어?

몰래 안을 보니 민지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나 보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들어가자 화들짝 놀라는 민지.

"야."

"네?"

"너 요리할 줄 아냐?"

"요리요?"

"할 줄 아냐고."

"네…."

내 질문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민지.

"나와."

당황해하는 민지는 주춤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된 민지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는 그런 민지를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부엌이라고 해봐야 식량 창고 안에 있는 인덕션과 개수대, 약간의 조리기구가 전부긴 하지만.

"먹을 것 좀 만들어봐. 재료는 아무거나 써도 돼. 기왕이면 유통기한 빠른 것부터 쓰고."

그렇게 말하고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민지가 부른다.

"저…. 저기요?"

"왜?"

"괜찮나요? 그렇게 절 혼자 두고 가도?"

민지는 식칼을 힐끔 보더니 나를 보며 말한다.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책임은 안 지지만."

그렇게 말하고 돌아 나오다가 뭐가 생각나서 그녀에게 한마디 더 했다.

"기왕이면 빨리 되는 거로 해. 배고프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맛있는 냄새에 뱃속이 동한다.

부엌에서 나는 냄새. 설마, 이거 밥 냄새야?

잠자코 기다리려 했는데 참을 수가 없어서 홀린 듯 부엌으로 향했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푸고 있는 민지와 인덕션에서 끓고 있는 알 수 없는 찌개.

이게 정말 내가 알던 부엌이 맞나 싶었다.

"아. 부르려고 했는데…. 밥이랑 찌개 해놨으니 먹어요. 그리고 내 식량 줘요."

"너도 먹어."

"네?"

"너도 먹으라고."

민지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듣더니 그릇에 자신의 밥도 펐다.

그렇게 작은 탁자에 앉아 마주 보고 밥을 먹기 시작한 민지와 나.

찌개는 그냥 이것저것 넣은 잡탕 찌개였는데 이상하게 맛이 있었다.

게다가 가장 의아한 것은 밥.

"어떻게 밥을 했지?"

"쌀이 있던데요?"

"쌀이 있었다고? 안 썩었어?"

"유통기한 남았던데요?"

어떻게 쌀이 있지? 아. 예전에 상점에서 뭐가 있나 궁금해서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신기해서 사본 기억이 있는 거 같다. 근데 그게 언제였지? 그게 유통기한이 남았다고?

"전기밥솥은?"

"있던데요?"

난 대체 뭐지? 이 벙커에서 있은 지 꽤 됐는데 방금 처음 이곳에 들어온 여자보다 아는 게 없냐.

"맛있네."

내 말에 민지가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먹은 쌀밥과 찌개.

그것도 하루를 넘게 비어 있던 몸에 들어가니 진심으로 맛이 있었다.

예지를 잃고 우울했던 감정들이 싹 씻겨나갈 정도로.

예지를 잃다니. 무슨 여자친구인 줄 알겠네. 미친 새끼.

"잘 먹었어."

밥을, 그것도 맛있는 밥을 먹었더니 몸이 나른해진다.

이대로 늘어져 자버릴 수 있을 정도.

43시간을 자고 일어나 놓고 다시 잔다고? 그것도 불면증인 내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이대로 자다가 민지의 손에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수면 스킬 없이, 죽은 듯 잠을 자는 게 아닌 달콤한 잠을 잘 수 있다면.

"내 식량 줘요."

배가 불러서 그랬을까? 아니면 눈앞에 있는 민지가 알몸에 하얀 잠옷 한 장만 입고 있어서 그랬을까?

나는 그대로 민지에게 다가가 키스했다.

처음엔 본능적으로 거부하려던 민지는 아직 '약속' 중이란 걸 깨달았는지 몸을 빼려던 것을 멈췄다.

내 혀를 받아주지만, 그것은 육신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적으로는 거부하지만 살기 위해서 육신만 동조하는 느낌.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저 밥을 먹고 배불러지자 튀어나온 욕정을 풀고 싶을 뿐.

키스하며 민지의 하늘하늘한 네글리제를 벗겼다.

알몸인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계속 키스를 한다.

내가 만지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여자.

아랑곳하지 않는 나는 그대로 민지를 안아 그녀의 방으로 갔다.

침대에 민지를 내려놓은 나는 정신없이 그녀의 육신을 탐했다.

가슴으로 보지로 입으로…. 정신없이 빨아대며 핥고 꼬집고 깨물었다.

미동도 없이 마치 시체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민지.

하지만 상관없다.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한다.

가슴을 유린당하고 몸 구석구석을 애무 당한 민지의 보지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젖어 든다.

그런 민지의 다리를 벌리고 거칠게 물건을 밀어 넣는다.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고 흔들고 흔든다.

신음을 참고 몸이 반응하는 것을 참고 있는 민지를 보며 거침없이 자지를 뿌리 끝까지 밀어 넣는다.

"윽."

끝내 참지 못한 외마디 신음이 입 밖으로 나왔고 그 신음은 기폭제가 되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내 자지를 밀어 넣고 쑤셔 넣고 찔러넣는다.

허리를 흔들고 가슴을 주무르고 민지의 몸을 돌려 뒤에서 쑤신다.

달덩이 같은 엉덩이를 꽉 부여잡고 흘레붙은 개처럼 헐떡인다.

사람의 섹스가 아닌 짐승의 교미.

암컷의 기분 따윈 생각하지 않는 수컷의 배설.

내 자지는 민지의 질 속에 한참을 쌓아놨던 정액을 꾸역꾸역 토해냈다.

"후우."

목석처럼 엎드려 있는 민지를 놔두고 부엌으로 향한 나.

눈에 보이는 대로 음식을 집고 민지의 방으로 가 우르르 바닥에 내려놓았다.

최소 열흘 치는 되어 보이는 식량.

내가 나갈 때까지 내 쪽으로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 민지.

난 그렇게 문을 닫고 나온 뒤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그 후로 9일.

난 민지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녀와 약속한 한 달이 되었다.

문에 난 창을 열어보니 민지는 그저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녀를 재운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의 잠옷을 벗겼다.

여자의 알몸이지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처음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옷을 하나씩 입히기 시작했다.

속옷과 윗옷, 바지, 양말, 신발.

그리고 그녀의 배낭과 남자친구의 배낭.

준비를 마친 나는 모니터 룸에 가서 주변을 살폈다.

깊은 새벽, 모니터 안은 움직임 없이 조용하다.

민지의 방으로 돌아가 그녀에게 수면 스킬을 다시 리셋시키고 그녀를 들춰 매고 낑낑거리며 사다리를 올라간 나는 겨우겨우 저택의 안방으로 향했다.

처음 만났던 그 장소.

안방에 있는 침대에 민지를 눕혀놓고 다시 벙커로 돌아와 배낭 두 개를 가져와 민지의 옆에 놓았다.

이로써 이 여자와의 인연도 끝이다.

어디 가서 죽든지 아니면 다른 남자들에게 끌려가서 노예처럼 살던지 내 알 바 아니다.

그냥, 인연을 끊고 싶을 뿐.

내 손으로 그녀의 몸에 마체테를 박아넣으면 끝나는 일이지만, 그건 용납할 수 없다.

그녀는 나와 약속을 했고 충실히 이행했기에 그녀에겐 다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렇게 민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려 벙커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니터 룸에 앉은 나는 말 없이 뚫어져라 화면을 바라본다.

그녀가 어디로 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봐둬도 되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수면 시간이 끝났을 텐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8대의 모니터는 저택 주변을 꼼꼼히 감시하고 있기에 건물 내부는 아니더라도 주택 외부는 사각지대 없이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움직임이 없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건가? 아니면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가?

인연을 끊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때려치우자 씨발."

그대로 내 방으로 돌아간 나는 또 나에게 수면 세례를 날린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시간과 날짜를 살폈다.

11시간.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

이정도면 민지는 충분히 이곳을 떴으리라.

모니터 룸으로 간 나는 카메라를 새벽으로 돌렸고 빠른 배속으로 카메라를 돌린다.

부는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던 나무는 빠른 배속에선 미친 듯이 춤을 춘다.

한 바퀴를 다 돌렸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

씨발, 불길한 예감. 이런 일은 한 번도 빗나가지 않고 적중하는 빗나간 예감.

불길하고 좇 같고 더러운 염병할 예감에 나는 그대로 벙커 밖으로 나가 저택으로 향했다.

누가 볼지도 모르지만, 신경 쓰지 않고 저택으로 달려가 안방으로 향했다.

없다.

민지는 없다.

그리고 있었다.

배낭 두 개와 금색 주머니.

그리고 침대에 알 수 없는 것으로 쓰여 있는 '죽어'라는 두 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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