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813화(822) (813/813)

813 주도 패시지

「저쪽이에요!」

이름리아는 전혀 혼재답지 않게 생기발랄한 처녀처럼 피에 젖은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환인을 안내했다.

뒷모습만 보아도 무척이나 기쁘고 행복해하는 느낌이 전해져온다.

그러나 몇십 분 전만 해도 이름리아는 형태를 잃고 혼재를 넘어 멸재로 영락하려 했었다.

환인은 그 이유를 자신에게 있다고 판단했었는데, 신성을 얻어 아신이 되며 덩달아 자신과 계약 관계로 묶여있는 영혼들이 한층 강한 영력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는 영적 신성 그 자체. 영혼은 환인의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가시화 상태가 될 정도다.

거기에 계약을 맺은 영혼들은 계약이라는 연결점이 통로가 되어 그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영력이 지금도 계약 영혼들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건 혼재인 이름리아도 마찬가지.

그전까지는 이성과 복수심이 간신히 수평을 이루며 혼재화가 더 진행되지 않았지만, 환인에게서 흘러넘치는 신성의 영기가 그녀에게도 스며드니 혼재의 기운 또한 강해졌고 혼재화도 마찬가지로 급격히 진행되었다.

그나마 혼옥 상태일때는 감정과 기운이 억눌러져 최악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환인이 그녀를 소환한 순간 그러한 제약이 풀리고 흘러넘치는 힘에 더해 감정 또한 격해지며 급격히 멸재화가 진행되었으니.

그녀의 상태를 멀쩡하게 되돌린 것은 환인의 말 한마디였다.

‘참아라.’는 한 단어.

단순한 말이 아니다. 영적 신성에 도달한 아신의 신언과 강제력이 섞인 한 마디는 영혼에게 강력한 이성 유지 및 억제 장치와 다를 바 없다.

여기까진 환인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그라도 짚어내지 못한 게 있었다.

영혼이 녹아내리는 멸재화 상태에 돌입하면 혼재는 여러 가지 정신적 감정의 극치를 느끼게 되며 그건 일종의 오르가슴과 비슷하다는 것.

강제력과 신언으로 확산하던 영체는 다시금 인간 형태로 되돌아갔지만, 그건 퍼진 진흙을 주물럭거려 형태를 잡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한마디로 지금의 이름리아는 얕은 절정의 쾌감을 무한히 느끼고 있었다. 영체가 확산하던 도중 강제로 형태가 고정되어버려 그 감정의 극치도 덩달아 고정되어버린 것이다.

비유하면 남자가 사정할 때 느끼는 수준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고 그녀의 영혼을 자극 중이다.

육신이 있다면 신경이 그러한 감각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일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름리아는 현재 영체 상태.

그녀가 느끼는 감도는 절대 줄어들지 않으며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

만약 이름리아가 남자 경험이 있었다면 문제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태생이 성적으로 담백한 플뢰인데다 고위 귀족이라 몸가짐 또한 살해당할 때까지 정숙했던 이름리아다.

자신이 절정을 무한히 느끼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한 채 감정이 고조된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환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문제 될 것은 없겠지.

육체가 없으니 신경이 쾌락을 이기지 못해 쇼크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잠시 후면 그녀는 복수를 이뤄 성불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라.』

천년로로 나온 환인은 이름리아를 따라가다 이형종 영령에게 지켜지는 지하율을 깨웠다.

공간 이동 술법진은 4대 교단이 지키는 중이다. 처벌을 받아야 할 귀족들도 정령력의 마킹이 끝났으니 도주를 우려해 공간 이동 차단 결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영령을 해방하고 베헤마 유생의 등에 선 그녀를 깨워 사태 진행 경과를 들려주자 왈칵 성을 내며 환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날 안 깨우고 그 개새끼들을 다 쳐 죽였단 말이야?! 아저씨 이거 진짜 에반데!”

『진정해라. 핵심 주범 셋은 아직 살아있으니까.』

“……누구누군데?”

『타비아누스, 볼레보스, 유제트.』

“타르반시올은? 아저씨 손에 죽었어?”

『그래. 그 셋은 특별히 마련한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처리할 예정이니 볼레보스와 유제트는 그 후에 네 마음대로 해라.』

유제트와 볼레보스라면 투르시온 왕가의 절대 명령권자 0순위와 1순위.

타비아누스도 만만치 않게 개짓거리를 벌인 투르시온의 공주란 걸 지하율도 알고 있지만 직접적인 원한은 없다.

분노가 조절된 지하율은 슬그머니 잡고 있던 멱살을 풀고 미안해하며 옷깃을 정리해주고 물었다.

“제대로 안 듣고 화내서 미안해. 그런데 타비아누스는? 아저씨가 오나홀로 삼을 거야?”

『…….』

환인이 진심으로 경멸을 드러내자 지하율이 재빨리 손을 저었다.

“농담이야! 알았어. 볼레보스하고 유제트 그 개자식만 내 손으로 죽일 수만 있다면 난 괜찮아.”

『그래.』

다시 걷기 시작하는 환인을 쫓아가던 지하율은 자신이 결계를 펼친 뒤에 벌어진 일을 좀 더 소상히 듣고 싶었다.

환인이 해준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 줄 요약 수준이어서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했던 거다.

하지만 아저씨는 어딘가 피곤해 보이고 속에 분노도 느껴져서 귀찮게 캐물었다간 좋은 꼴 못 볼 거 같은데.

“형님,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슴다!”

……마침 적당한 애들이 왔다.

지하율은 환인을 찾아온 김철수를 붙잡고 내막을 캐묻기 시작했다.

그게 진짜 귀찮았던 김철수였지만, 이 로리할망구와 다퉈봤자 기분이 저조한 형님을 화나게만 할 뿐이라 아는 만큼만 설명해주며 환인의 뒤를 따라갔다.

“……해서 환인 형님이 엄청 화낸 거야.”

“진짜 인간 부스러기 새끼들네……. 너희는 그 사람들 구조하고 다녔고?”

“구조라고 해봤자 몇 명 안 돼. 우리가 나온 뒤로 정리했는지 방랑자 관리국도 없어졌더라. 멋모르는 외국인이 막 지랄하긴 하던데…….”

부유한 저택에서 케이지 안의 햄스터처럼 호의호식하던 외국인 몇 놈은 이 생활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욕지거리를 내뱉었었다.

예전의 둘이었다면 김철수와 김영수도 참지 않고 똑같이 지랄하다가 주먹다짐까지 갔겠지만, 환인과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 덕분에 정신적으로 제법 성숙해진 둘은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고 그들의 이해를 끌어냈다.

“…….”

뭔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입을 다문 지하율의 모습에 김철수가 그녀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 치며 물었다.

“로리할망. 더 궁금한 거 없음?”

“뒤진다 진짜.”

주먹에 푸른 불길을 뒤덮고 으르렁거리는 지하율에게 살짝 쫄았지만, 이내 김철수는 자신이 지하율에게 지랄 못하는 것처럼 지하율도 형님이 무서워서 지랄하지 못할 거란걸 믿고 물었다.

“그래서 로리할망…… 아아! 아줌마는 어쩔 건데?”

“뭘 어쩌긴 어째?”

“우린 니오네브레스에 남을 건데 아줌마는 어쩔 건지 궁금해서. 만약 남을 거면 가끔 연락이라도 하고 지내자고.”

형님이라는 구심점으로 잠깐이지만 이렇게 모인 인연이잖아. 그런 의미에서 한 말임을 눈치챈 지하율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아저씨하고 지구로 돌아갈 거야. 너넨 남을 거라고? 가족은 어쩌게.”

“우린 가족 없음. 가족의 탈을 쓴 개새끼들 뿐이라서. 그나마 가 족같은 게 저새끼고.”

“……하긴. 여기도 힘이랑 능력하고 빽만 있으면 살기 좋으니까.”

저 두 놈도 인생사가 평탄하지 않음을 깨달은 지하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칫, 잇소릴 내곤 김철수의 면상에 주머니를 집어 던졌다.

“가져.”

“아 진짜……?”

코에 정통으로 맞은 김철수는 짜증을 내려다 주머니를 열어보곤 눈을 부릅떴다. 옆에서 안에 든 걸 같이 본 김영수도 헉하고 놀란다.

못해도 수백 닢은 되어 보이는 휘황찬란한 금화와 보석들.

“작은 누님!”

“작은 누님!”

“아 지랄하지 마! 내가 왜 늬들 누님인데!”

진심으로 질색하는 지하율에게 김철수와 김영수가 간신처럼 웃으며 손바닥을 마구 비볐다.

“이런 용돈을 주시는데 당연히 누님이죠! 사랑합니다, 작은 누님!”

“작은 누님 최고!”

“아니 진짜……. 누님이면 그냥 누님이지 작은 누님은 또 뭐야?”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는 지하율에게 김영수가 헤헤 웃었다.

“큰 누님하고 누님들은 따로 계시니까요?”

“…….”

아저씨 여자들을 말하는 건가? 김철수와 투닥리던 지하율은 어느샌가 꽤 부유해 보이는 저택에 도착했단 걸 눈치채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보니 여길 온 이유를 모른다. 척 봐도 왕족들 소유의 별장 같은 장소인데 좆같은 새끼들은 다 족쳤다고 했으니까…….

저 혼재를 따라온 거 같은데 뭐지.

“야. 김영, 여긴 왜 왔는지 알아?”

“아마 저기 혼재 아가씨 복수 때문일걸요?”

“복수?”

“엘위드리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지하율이 자초지종을 듣는 사이 환연이 환인의 품 안에서 저택 내부 상황을 알려준다.

「환인. 이름리아하고 네가 온 거 보고 도망가려고 하는데?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나봐.」

『전부 여기로 끌고 올 수 있겠나.』

「응.」

앞에서 대화가 짧게 오간다 싶더니 나이 들어 머리색이 옅어지는 플뢰족 남녀 일곱이 땅에서 튕겨 나오듯 내동댕이쳐져 땅을 구른다.

=크억!=

=어헉…!=

=아아악!=

어딘가 모르게 마른데다 눈 밑도 퀭하고 기력도 느껴지지 않아 병자처럼 보이는 기색.

그 때문인지 몇 바퀴 구르지 않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어지러워하거나 팔뼈에 금이 갔는지 팔을 잡고 괴로워한다.

그러는 것도 잠시, 뒤늦게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이름리아를 발견하곤 경기를 일으켰다.

=히이익! 아, 아가씨!=

=공녀님……!=

「쿠후후. 에스토카 장로님, 아이마리스 장로님, 그리고 장로회의 다섯 장로님, 모두 오랜만이에요. 그간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마치 악몽이 뒤쫓아와 따라잡힌 것처럼 버둥거리며 겁에 질린 플뢰들의 모습에 지하율은 속에서 쓴물이 올라온다는 표정을 지었다.

환인이 다녀간 이후로 나름 세계정세를 알아본 그녀였다. 그의 계획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갱신된 지식은 필요하니까.

그런 그녀를 살짝 놀라게 한 사건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엘위드리스 성제 습격 사건이었다.

김철수 이야기에 따르면 저 혼재 여자는 엘위드리스의 공녀고, 결론적으로 저 장로들의 배신으로 끔찍하게 살해당해서 혼재가 되었으니 복수심이 만만치 않겠지…….

「아이참~. 어째서 제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절 보고 싶지 않으셨던 거예요? 저는… 일곱 분을 정말…… 정말로 애간장이 끊어지도록…… 보고 싶었는……데에에!!!」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다가 지옥에서 악귀가 올라온 것 같은 절규가 터진다.

시뻘겋고 시커먼 눈동자로 피와 악기를 줄기줄기 흘리고 검붉은 혼재의 아우라가 검은 태양처럼 일렁이니 김철수와 김영수는 오금이 저린다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지하율의 뒤에 숨는다.

“…….”

지하율은 기막혀서 덩칫값도 못 하는 둘에게 어이없어하는 시선을 보내다 혼재의 귀기를 마구 흘려대는 여자를 눈에 담았다.

얼굴이 찢어지고 일그러져 악귀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인간의 선을 넘지는 않는다.

저 정도라면 멸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아저씨가 손을 썼나?

「「어째서 엘위드리스를 배신했지!?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어어!!」」

=히이익. 오, 오해, 오해입니다! 우, 우리는 배신한 게 아니라…!=

「「거짓마아알!!!」」

절규와 함께 악마의 주둥이처럼 쩍 벌어진 이름리아의 입에서 지옥의 구렁텅이에서나 볼 수 있을듯한 검붉은 안개가 장로들에게 쏟아졌다.

=끄아아아아~!!=

=카아악! 카아아악!?=

=사, 살려… 갸아아아악!!=

이름리아가 줄기줄기 흘리는 귀기 서린 절규에 그대로 노출된 장로들의 영혼색이 점차 적색 계통으로 물들어간다.

그럴수록 장로들도 성대가 찢어질 정도의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손톱으로 제 살을 찢어 움켜쥐고 뺨을 긁어 살을 파헤쳤다.

『…….』

환인은 몸을 돌려 근처 정원길의 벤치로 걸어가 앉았다.

정말 조금, 지쳤다.

환연은 그런 장로들과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는 환인을 번갈아 보다 환인에게 말했다.

「저렇게 놔둬도 돼? 인간들이 미쳐가는 거 같은데.」

『저렇게 분노를 드러내고 있지만 조금 과하게 흥분한 것뿐, 이름리아는 제정신이다.』

「……저게?」

그의 대답에 환연, 지하율, 두 김씨가 동시에 이름리아를 돌아본다.

장로 하나의 얼굴을 틀어쥐고 입에 시뻘건 혼재의 숨결을 쏟아붓고, 혼재의 숨결을 강제로 받아들이는 장로의 사지는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이며 눈을 까뒤집고 피눈물과 쌍코피를 흘리며 온몸을 비트는 중이다.

무슨 혼재가 아니라 이블팩션의 돌연변이 개체가 마인화해서 도심에 출현했다고 생각할만한 광경.

하지만 온통 적색으로 물들어가는 일곱 장로의 영혼과 달리 그녀의 영혼색은 장로들을 만나기 전과 차이가 없었다.

입은 거짓말을 할지언정 영혼색은 절대 거짓을 꾸며낼 수 없으니 이름리아는 제정신이라는 이야기.

K̶͎̤̰͎̜̗̬̖̊̐͂́̌̎̏̋̅͝ŷ̵̨̡̛̯̪̺̲̤̔͌a̶̡͙̦̝̮̻̰̟̥̳͚͒̉͋́a̷̡̛̜͕̖͈͖̦̭͈̥͕̭̾̆á̸̞̞͍͖́͛͆̊̈̑a̵̍̋̏̽̑̽͑̓̚͜͠͠a̶͔̗̘̜͙̼̽͂͆̄̓̄̓̄̾̀͒̌͜͝k̶̨̞̭͎͖̰̫̙͓̊͐̈́́͌͌͊́̓̄͐̕͘͜͝!̴̢̹͙̠̼̱̠̬́͒́̄͒̾͗͠!̶̭̖̪̻̯͇͕̇͗̿͝!̶̭͔̳͚̖̹͇͉͓͔͍͗̉̊̈́̄͝͠

끄어아아가가가각……!

아가각, 끄끄거거걱……!

환인은 장로들을 하나하나 공들여 타락시켜가는 이름리아를 바라보다 자신의 손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나저나 역시라고 해야할지, 심핵력의 회복 속도가 대폭 늘었다.

신식 적흑령주를 쏠 때 심핵력을 20% 가까이 소모했지만 소모한 심핵력이 회복되는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결명회 연루자들을 처리할 때도 영혼 추출을 쓰며 심핵력과 영기를 제법 소모했는데 영기는 1초에 1%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심핵력은 이미 다 회복된 상태.

니오네브레스에서 에너지는 종류가 다양하다.

모든 에너지의 근본이자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위상력을 비롯해서 영기, 영기의 상위 개념인 영력, 정령력, 정령력의 상위 개념인 환령력, 선력, 도력 이외에도 지하율이 다루는 미지의 에너지원에 정신력과 기력도 에너지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에너지원이 동등하진 않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등급이 나뉘는데 이중에서도 선력과 영기가 제법 상위에 속하지만, 이 두 가지 에너지도 심핵력에 비하면 하급이다.

심핵력, 미궁이 에너지원으로 삼으며 세계 이치마저 일부 비틀 수 있는 에너지.

그리고 그런 심핵력이 변화하여 형성되는 신력.

『…….』

웅— 황금빛의 기운이 손바닥에 맺혀 일렁이자 환연이 홀린 듯이 그의 팔에 매달려 기운을 쳐다본다.

그런 그녀를 쓰다듬어주고 팔에서 살짝 떼어낸 뒤 의념을 가했다.

콰아아아———!!

그 의념에 심핵력은 위상력으로 변모하는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 물리적인 광풍을 일으키며 세상에 퍼져나갔다.

“헐…….”

갑자기 밀어닥친 위상력의 광풍에 잠시 떠밀린 지하율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똥그래진 눈으로 환인을 쳐다본다.

이쪽을 바라보는 지하율의 시선을 무시하고 환인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방금 감각을 되새겼다.

심핵력을 고작 0.1%정도 모아 위상력으로 전환했을 뿐인데…….

‘전환율은 대강 17,800배인가.’

10%가량을 방출해 변환시키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지를 평탄화시켜버릴 정도의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환인, 방금 뭐였어? 릴이 지금 미쳤다는 말만 반복하는데?」

『심핵력을 하위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해봤다. 아무래도 심핵력만 온전히 다룰 수 있어도 신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 같군.』

「그 말은 심핵력을 정령력… 아니, 환령력으로 전환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래.』

환인은 자신의 대답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환연을 보고 피식 웃으며 실낱같은 심핵력을 뽑아 환령력으로 전환했다.

좁쌀보다 작게 뽑아 전환했는데 환연만큼이나 커다래진다.

그 기운을 꽃에 물을 뿌리듯 환연의 몸에 뿌려주자 환연은 겨울에 참새가 목욕하는 것처럼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걸 보며 작게 웃음 짓던 환인은 불시에 주먹을 꾹 쥐며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이실리테와 안느의 기술과 능력 구조가 지나가며 그에게 깨달음을 전해준다.

『……이래서 신이라고 하는 건가.』

「응?」

환령력의 샤워에 최상의 컨디션이 되어 머리카락이며 몸을 쓸어내리면서 단장하던 환연이 응? 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그의 등 뒤로 나타난 빛의 검 수십 자루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그거 다중 검기……?」

다중 검기뿐만 아니다. 성술의 빛도 그의 주변에서 피어나고 여러 가지 속성력 또한 각 속성으로 구현된다.

「꺄하하하.」

「아하하하하!」

「꺄아~.」

거기다 갑자기 무수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각 정령들.

‘아차!’

사이사이 상급 정령도 보이고 최상급 정령도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려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환연은 화악— 몸을 성인 사이즈로 키워 환인을 끌어안다시피 그의 머리를 품에 안고 눈을 부라렸다.

「저리 가지?」

「…….」

「안 가? 지금 나랑 릴하고 싸워보겠다는 거야?」

「……….」

환연이 어림잡아 10체가 넘는 최상급 정령의 기운에 고양이처럼 으르릉거리고 있을 때, 지하율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에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아까 이상한 짓으로 근방 위상력 농도를 폭증시키더니 저건 또 뭐야.

이름리아가 장로들을 산채로 혼재화 시키는 것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 지하율은 비틀거리며 환인의 앞으로 걸어가 묻는다.

“아, 아저씨. 방금 그거 뭐였어? 어, 어떻게 다른 직업 능력을 쓰는…… 건데?”

『하다 보니 되는군. 아신이라면 다 이 정도는 하는 거겠…….』

“절대 아니야.”

『…….』

“돌아가신 스승님이랑 동료들, 친구들의 이름에 맹세코 그건 절대 아니야…….”

……실수했나?

정색하며 기운 빠진 듯 중얼거리는 지하율의 행동에 환인은 심핵력으로 하던 실험을 재빨리 치우고 하늘을 힐끔 보았다.

신이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겠지.

「하아아….」

일곱 장로에게 복수를 끝마친 이름리아는 외형이 180도 가까이 변했다.

피처럼 시뻘겋고 갈라져 부스러지던 피부는 평범한 살색으로 돌아왔으며, 결정화되어 하나로 뭉쳐지던 데다 불길한 적색이 스며들던 머리카락도 희게 물들어 바람결에 살랑인다.

다만 악마의 눈처럼 노란색으로 변이를 일으켰던 한쪽 눈은 심하게 변이된 여파인지 다른 눈과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 외에는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다.

피와 악의에 젖어 저주처럼 그녀의 몸을 휘감던 드레스는 흰색과 적색, 흑색이 어우러진 드레스로 변모했고 쩍 벌어져 속이 들여다보이던 명치의 붉은 상처는 적흑의 문양처럼 변질되었다.

정체불명의 모호한 색기를 피우는 백발적안의 미녀, 하지만 허리 뒤로 드레스가 비현실적으로 펄럭이며 등 뒤로는 연적색의 아우라가 불길처럼 일렁이고 거기에 피처럼 붉은 양 눈동자는 그녀가 아직 혼재의 힘을 지녔다고 알려준다.

무엇보다 그녀의 몸 주변을 떠다니는 검붉은색의 기묘한 점.

그것이 죽인 장로들의 혼을 뭉쳐 만든 영옥靈玉임을 알아본 환인이었지만, 별다른 내색 없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은 다 풀었나.』

「네에. 전부 주인어른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신 덕분이에요.」

…주인어른?

『그러면 더는 이승에 미련이 없겠지. 맺은 계약을 해지해주겠다. 그리고 성불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받아들여 승천해라. 내세에는 행복해지도록 작게나마 기원해주지.』

그의 말에 이름리아는 팔짱을 풀고 희미한 미소를 띠며 그의 앞에 부복했다.

「주인어른. 저, 이름리아 윌든 엘위드리스는 성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주인어른께서 베풀어주신 자비로 기적을 체험하여 인혼이 되었으니, 이대로 혼이 소멸하는 그 날까지 주인어른을 모시고자 합니다. 허락하여주시길 간청합니다.」

『…….』

계약의 여파인가 아니면 영력이 흘러 들어가 일어난 변화인가. 인혼人魂이라는 자신의 존재성까지 확립하다니.

대답 없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환인과 그런 환인을 공허가 깃든 얼굴로 올려다보는 이름리아.

“저거 봐. 또 여자 늘리네. 순 바람둥이야, 바람둥이. 영제가 아니라 난봉제라니까.”

그리고 뒤에서 속닥거리며 그를 씹는 지하율.

아까부터 슬쩍슬쩍 긁는 지하율을 환인이 성난 얼굴로 노려보지만, 재빨리 뒤돌아서서 안 보이는 척 시치미를 뗀다.

『……좋다. 지구에서 집사 같은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 대공녀로 떠받들어졌던 너라면 경험을 살려 어느 정도 할 수 있겠지. 네 실력을 볼 때까지 성불은 미루겠다.』

「분발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보필하겠습니다.」

그 결론에 간신히 최상급 정령들을 쫓아낸 환연이 그의 어깨에 매달려 묻는다.

「뭐야, 진짜 데려가게? 대현자 말대로 또 여자 늘려?」

『이름리아에게 감정은 희미하니 말 그대로 집사처럼 쓸 뿐이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성불시켜 하늘로 올려보내고 다른 집사를 구하면 그만.

환연은 흠, 하고 몸을 일으켜 다소곳이 선 무표정의 이름리아를 쳐다봤다.

뭐 환인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믿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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