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주도 패시지
환인은 투르시온 왕실의 중요 인사 대부분을 쓸어버린 뒤 타르반시올을 찾으면서도 못내 찝찝함을 느꼈다.
가장 큰 이유라면 타인의 계획, 혹은 의도하지 않은 개입으로 계획을 급히 수정하는 방식은 그의 성미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인도 자신이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계획도 하나의 커다란 틀을 세운 뒤 손에 넣는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계획의 추진을 실시간으로 갱신하거나 변경해서 이어간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정도를 넘었다.
이를테면 실행권, 우선권의 유무다.
원래 그의 목적은 아신에 발을 살짝 걸친 상태에서 아드네빌라를 구출한 뒤 배를 타고 몰래 패시지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패시지에 침투해 있는 하얀 늑대들을 움직여 소리소문없이 패시지에 스며든 다음, 하얀 늑대들이 수집해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투르시온 왕실 가문과 결명회 일당의 얼굴과 가능하면 영혼색까지 확인한다.
시간의 공백 없이 결명회와 연관된 놈들부터 투르시온까지, 한꺼번에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무의미한 사상과 찝찝한 원한의 발생을 최대한으로 억누를 수 있으니까.
후환을 생각하지 않게끔 싹 다 목을 치는 방법도 있지만 사건 해결 이후의 영도와 영혼사의 평판을 생각해서라도 그건 해서는 안 될 일.
아무튼 그러는 와중에 아신의 입장을 이용, 르아웬을 장기 말 삼아 땅신 교단의 교황에게 접근해서 내부 뿌리를 점검하고 미리아스툼 가문의 현 가주인 엘레델, 안느의 오라비와 접촉하여 친 성제 파벌까지 만들 계획이었다.
안느의 우르거 혼혈이란 불명예도 그 과정에서 해소될 예정이었다.
이 모든 단계의 실행이 완료되면 김철수와 김영수를 침투시켜 타비아누스를 납치, 결명회의 정체와 놈들의 계획 전말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다음 지하율과 연락해 거신 인형을 소환한다.
거신이 역장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동시에 위협시위용 신식 혼령주 넷을 도시의 동서남북에 터트려 패시지에 막대한 혼란을 부추긴다.
영향권 내에 든 사람은 전부 실신, 영향권 바깥에서는 혼돈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할 터.
끝으로 혼란을 틈타 여휘와 접촉을 시도하고 환연의 정령으로 감시중이던 결명회, 투르시온 인사들을 연인들과 영령군 스물을 동원하여 제거하는 것이…….
‘계획한 위험 요소를 최대치로 억누르는 방식이었는데.’
능력이 강한 자들은 자신과 연인들이, 비교적 약한 자들은 환연이 감시시킨 정령으로 기습한다. 심핵력을 정령에게 나누어주면 일정 시간 매우 강력해지기에 가능한 계획이다.
상위급 정령사라 할지라도 심핵력을 주입받은 상급 정령의 기습을 받으면 최상급 정령의 공격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
그 말은 상위급 정령사 이하, 6급 직업자 이하는 속수무책이라는 이야기나 다를 바 없다.
그렇게 결명회와 투르시온의 핵심 인사를 제거한 뒤에는 하얀 늑대들이 수집한 자료 및 타비아누스에게 뽑아낸 정보로 투르시온과 결명회의 잔당을 마저 색출해 일망타진하는 것.
큰 뿌리를 뽑은 뒤 땅속에 묻힌 잔뿌리는 4대 교단과 영도에게 맡기는 것으로 자신의 목적은 달성이었는데 현실은 엉망진창이다.
빌어먹게도 자애신에게 끌려가 강제로 신격을 이룬 뒤부터 계획이 다 꼬였다.
예상치 못한 가장 큰 변수는 역시 자신의 진정한 신격화가 각 교단에 알려져 그 반동으로 돌발 행동이 벌어진 것이다.
신격화가 아닌 이유로 교단이 움직였다면 정치적 압박 카드 정도로만 활용되었을 거다. 견제와 긴장감 조성 정도로 마무리 지어졌을 거라는 이야기다.
실상은 제 발 저린 교단이 교단 병력을 총동원해 성전을 선포했다.
말이 교리검증이지 성전 선포와 다를 게 뭔가.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신의 직계 기관인 종교 단체와 싸우려 들겠냐는 거다.
교리검증 선언은 벌집을 들쑤시는 행위였다. 그것도 수년 동안 켜켜이 쌓여 괴물의 항아리처럼 변한 말벌 집을.
그리고 반쯤 주먹구구식으로 하다 보니 역시나, 구멍이 나버렸다.
타르반시올을 놓친 것이다.
정령으로도 발각되지 않는 중이고 영령군도 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교단이 회의실로 징발해서 그에게 내어준 고급 음식점의 홀.
환인은 자신의 의도대로 성안에서 무사히 구출된 하얀 늑대들 조직원이 제공한 조사표를 읽으며 결명회가 어디까지 뻗어나가 있는지 확인하다가 탁, 책자를 덮었다.
시선을 돌려 구석을 바라보자 여전히 알몸의 타비아누스가 친부와 조부 옆에서 오도카니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타비아누스, 투르시온의 공주는 전형적인 연구자였다. 자신의 관심 분야 외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 연구자.
결명회의 운용 방향은 대략 알지만 회원이 누구인지는 잘 몰랐다. 기껏 해봤자 포르미살드 왕가와 옴바드 왕가, 알콰닌 왕가가 투르시온과 밀접하다는 것 정도?
그 이하 귀족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었으며 그건 결명회 사건의 원흉인 그녀의 조부, 유제트와 부친인 볼레보스도 마찬가지.
다행히도 환연이 투르시온 왕실 대저택의 지하 연구실에서 결명회의 연표와 연혁 및 기록 일지 등을 대거 찾아내어 그 자료를 바탕으로 죽일 자와 살려둘 자를 마킹 중이다.
여기서 죽이는 것은 환인이 직접 죽이는 대상이며, 살려둘 대상은 모조리 땅신 교단에 넘겨 땅신 교단의 규율 심판을 받게 할 대상.
제오라가 빙의되어 마네킹처럼 굳어있는 타비아누스를 응시하던 환인이 탁자 위의 환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직 타르반시올을 찾지 못했나.”
「응……. 안 보여.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도통 모르겠어.」
“유제트의 말에 따르면 그자는 땅신 교단 승병들이 성을 포위하기 직전까지 중앙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일이 벌어지자마자 지위를 내팽개치고 도주했을 리는 없겠지.”
「그 뒤에는 지하율이 결계를 펼쳐서 전이술 자체를 못 하게 막았으니까.」
“성 안쪽도 마찬가지다. 여휘가 위상력의 발현이 어렵도록 억누르고 있었으니 탈출했을 가능성은 소숫점 이하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철수가 제 생각을 말했다.
“저…… 형님, 타르반시올 그 새ㄲ…… 그놈이 혹시 영수놈 같이 공간 관련 능력을 먹은 게 아닐까요? 그걸로 도망쳤다던가…….”
“타비아누스는 타르반시올이 먹은 능력을 참살검이라 했다. 도주와 관련된 능력은 아니겠지. 도주에 정령을 동원했다면 환연의 눈에 곧장 발각되었을 테고.”
“음…….”
환인은 진작에 타비아누스의 기억을 바탕으로 위협적이거나 귀찮을 것 같은 권능 종류의 파악을 끝낸 상태다.
타비아누스 본인이 먹은 힘은 젊음과 정력을 상시 유지해주는 활성화의 권능이었다.
의욕과 정신력은 정력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남자가 수음 시간을 가진 뒤 현자 타임에 들어가는 것도 일시적으로 정력이 고갈되어 발생하는 것이다.
연구에 들이는 정신력과 의욕을 생각한다면 그걸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주는 활성화는 천금과도 같은 보물.
조부인 유제트는 마력시라는 이름의 영혼의 눈과 비슷한 권능을 먹었다. 그 힘으로 각종 에너지에 대한 친화력을 읽어 보물이든 인간이든 옥석을 가려내는 데 썼다고.
그 외에도 투르시온 가문 인간이나 투르시온과 혈연으로 이뤄진 자들이라면 하나씩 힘을 먹었는데 보조적인 권능이 아닌 전투 쪽 권능을 얻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중 가장 큰 위협으로 따지면 푸른 나뭇잎의 탑주가 먹은 무한기관, 전대 가주인 볼레보스의 언령, 그리고 타르반시올의 참살검이다.
무한기관은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대기에서 흡수하여 위상력으로 전환, 능력을 무한정 쓸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언령言令은 문자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구현시키는 힘.
언령을 구현하는 데에는 정신력이 들며 언령화의 난이도에 따라 소비되는 정신력이 달라지는데, 최상급 정령사인 볼레보스라면 현재 환인을 언령으로 0.1초 씩이나 마비시킬 수 있는 수준.
마지막으로 타르반시올의 참살검은 역사상 단 두 번 출현한 희귀 직업 참살귀의 능력으로, 그 능력에 의해 베인 상처는 신이 아니고서야 치료할 수 없다는 검기다.
그 외에도 하얀 나뭇잎 무사였던 자의 초공간 기동이 있고 신체를 특정한 물질로 변화시켜 무적에 가깝게 변신하는 속성화 능력도 있었지만, 결명회 핵심 인사인 넷을 제외한 22명은 전원 환인의 손에 사망했다.
아무리 강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환인이 겨우 홀로 해제한 봉인구다. 그 봉인구에 당한 이상 이야기는 거기서 끝.
환인은 분신체 3으로 패시지의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현재 도시의 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자들은 세 종류다.
하나는 각 귀족 저택과 왕족 대저택을 돌아다니며 숨어있는 인간들을 색출 중인 승병.
다른 하나는 범죄자로 분류되어 승병에게 저항하다 처맞거나 승병에게 포박되어 끌려 나오는 패시지의 귀족과 왕족들.
마지막은 영령군과 영령군에게 사로잡혀 지휘소로 끌려오는 왕실 및 귀족 집안 기사 병력.
그 외 일반인들은 환인이 신언으로 한 경고를 듣고 집안에 틀어박힌 상태였다.
『현재 신의 권위를 넘본 반역 도당들을 토벌 중에 있다. 오해받아 곤욕을 치르기 싫다면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대기하도록. 거리를 돌아다니면 반역 도당들과 한패로 간주하여 불문곡직 처벌하겠다.』
……라는 경고.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존재감이 실린 목소리를 무시할 사람은 니오네브레스에 많지 않다.
현대처럼 무례한 짓을 했다간 대가리가 쉽게 깨지는 곳이 니오네브레스니까.
‘너무 발견이 안 되는데.’
정령 방지 대책 마도기를 썼다고 해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는 환연이다. 그녀의 정령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외에도 현재 패시지에 들어와 있는 하얀 늑대들 총 30명 중 보고를 위해 임시 회의실에 대기 중인 2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도시를 낱낱이 수색 중이다.
승병과 영령군도 환인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 연루자, 용의자들을 끌고 오는 한편 도시를 활개 치고 있다.
창밖을 바라보자 득실거리는 인파 사이로 르아웬과 와이아리 추기경이 고성을 지르는 것이 보인다.
추기경 둘은 포박되어 호송된 자들을 분류하고 구치소로 수송시키는가 하면 영령군이 속속들이 끌고 오는 왕실 기사 병력에게 무력화의 낙인을 찍고 신분에 따라 분류하느라 눈 돌릴 새도 없이 바쁘다.
이런 상황인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김영수.”
“옙!”
“공간 지각으로 도시 전체를 세밀하게 훑으며 타르반시올을 찾아줘야겠다. 타르반시올이 나타나거나 찾을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빠르게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좋으니 힘든 일이 될 테지.”
“하겠슴다! 야, 철수. 가자!”
“어. 다녀오겠습니다!”
그의 임무를 받은 둘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튀어 나간다.
분신체 3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1초에 2번씩 마구잡이로 공간 도약하는 영혼색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갑자기 밖에서 안으로, 나선처럼 깔끔하게 공간 도약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김철수가 수정시킨 거겠지.’
환인도 유르파에게 붙여놓은 분신체2를 제외, 밖에서 괴물을 닥치는 대로 죽여 영혼 구슬을 모으고 있던 분신체를 불러와 신의 눈으로 지상을 꼼꼼하게 살핀다.
그러고 있을 때였다.
딸랑딸랑—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외모의 은발 남자가 임시 회의실에 조심스레 들어선다.
몸짓과 행동 하나에 정중함과 기품이 담겨있는 데다 복장 또한 귀족들이 주로 입는 차분하면서 격식 있는 로브 차림.
들어서자마자 알몸으로 서 있는 타비아누스, 그리고 유제트와 볼레보스를 보곤 짧게 눈매를 떨었던 남자는 환인을 발견하고 더욱 정중한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섰다.
환인도 그의 정체를 눈치채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환인의 앞에서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읍을 올렸다.
=미리아스툼 왕가의 엘레델 슬라인이 신위에 다다르신 영제, 환인 님께 인사 올립니다.=
안느가 머리카락을 짧게 친 듯한 외모, 거기에 활달하고 쾌활한 쪽의 성격인 안느와 반대되게 차분하며 진지한 성격이 드러나는 영혼색.
안느의 친오빠인 엘레델이다.
환인은 그런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안느의 예비 남편인 환인입니다. 어렵게 행동하지 마시고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
그의 대답에 엘레델은 웃지도, 당황하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는 것도 잠시였고 어색하지만 웃음을 얼굴에 띄며 말한다.
=올해 초쯤 어머님께 연락받았습니다. 안실라…… 안느가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한 분의 신부로 들어갈 예정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예. 체블리프에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처음 뵙고 허락받았었지요.”
엘레델은 그리 대답하는 환인의 손을 두 손으로 꾸욱 잡으며 고개를 다시금 숙였다.
=저는…… 정령에 미쳐 사느라 그 아이가 힘들어할 때 정작 도와주지도 못한 몹쓸 오라비입니다. 영제님께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아닙니다. 르아웬 추기경과 함께 패시지의 기관을 견제하며 그 집단들이 절 쫓지 못하게 막지 않았습니까. 저를 향한 도움은 안느를 돕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안느도 형님께 크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
형님이라니…….
그의 세심한 배려에 목이 울컥했던 엘레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그의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그보다 협의회의 견제와 시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셨을 듯한데 가문은 괜찮습니까.”
=저희 가문, 정령의 미리아스툼은 외압에 굴할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부모님께서 자리를 비우셨기에 최대 전력이 줄긴 하였으나 저 또한 번개와 대지의 최상급 정령사.=
협의회 정도의 외압에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며 담담하게 의지를 피력한다.
=사실 투르시온은 오래전부터 이유 모를 유혹을 제시해왔었습니다. 그 기간은 증조부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준입니다만, 수상쩍은 기색이 너무 흘러넘쳤기에 증조부께서는 투르시온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사이를 유지하라시며 유언을 남기실 정도였습니다.=
“…….”
그로 인해 한때 두 가문의 사이가 크게 어긋날 뻔하였지만, 투르시온의 슈아나데가 스스로 미리아스툼에 시집오며 사이가 다시 원만해졌다고.
아마 볼레보스는 슈아나데를 시집보내어 미리아스툼을 결명회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던 거겠지.
당시에는 미리아스툼만 끌어들이면 다른 일곱 왕가와 전부 인연을 맺는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슈아나데는 그라파든에게 홀딱 빠지면서 오히려 투르시온을 멀리하게 되었고 여차저차해서…….
“……?”
환인은 일순간 든 생각에 미간을 살짝 좁히면서 턱을 쓸어내렸다.
장모님은 그때 자신을 안아주시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했었다. 당시에는 안느가 그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을 벗어나게 된 걸 이야기하는가 했었는데…….
그러고 보면 장모가 사위에게 하는 것치고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지.
아무리 잘난 사위라해도 품에 안고 몇 분이나 머리며 등을 토닥여준다니.
‘장모님은 오래전부터 결명회를 유추하고 있으셨던 건가. 장인어른도 그걸 눈치채고 약점이 되지 않으려 일부러 패시지를 떠나 유랑을 나오신 것이고.’
안느의 체질에 환인의 신경이 넘어간다.
그녀가 패시지를 나온 것도 지금 보면 장모님의 의도가 들어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게 정말 차별과 박해를 받아 추방되었다면 안느는 땅신 교단의 문을 두드릴 수조차 없었을 거다.
아무리 신권이 강한 세계라 해도 왕족 여럿이 나선다면 우르거처럼 근육이 우락부락한 플뢰 하나를 지키고자 왕가와 척질 리 없으니까.
‘혹시 안느의 그 체질은 슈아나데가 얻었던 힘이 태중의 안느에게 흘러 들어가 형성된 거였나.’
유제트는 투르시온 가문의 인원이라고 해서 무작정 힘을 뿌리고 결명회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건 타비아누스가 능력과 역량을 드러내고 나서야 결명회에 든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엘레델이 태어나기 전에는 평범히 지내다 안느를 밴 뒤에 차원 방랑자의 힘을 뽑아 그녀가 먹었다면…….
……지금에 와서는 어찌 됐든 좋은 일이다.
“아무튼 무사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엘레델은 그의 걱정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보다 제가 영제님을 찾은 것은…….=
“매제라 부르셔도 됩니다.”
=……크흠. 그, 그것은 차차… 아무튼 제가 영제님을 찾은 이유는 타르반시올 국왕 때문입니다. 혹시 영령군과 정령들이 계속 도시를 탐색 중인 것은 그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그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보았다면 금세 찾았겠지만 그러지 않다 보니.”
=말씀드리자면 일반 수단으로 타르반시올 국왕을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유는 성유물, 정령걸음 때문입니다.=
“…….”
환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며 아신의 위광이 희미하게 흘러나온다. 엘레델은 그 위광에 작게 긴장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환령계는 일종의 개념 차원입니다. 같은 정령이라 하여도 인과가 맺혀있지 않다면 대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무량대수의 허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정령걸음 성유물은 인간의 몸으로 환령계를 거닐게 해줍니다.=
“안 좋은 이야기군요.”
=예. 하위 정령이라면 상위 정령이 호출할 수 있기에 환령계라 할지라도 정령끼리는 교분할 수 있지만 타르반시올 국왕은 인간입니다.=
그자의 의지가 아니고서는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거기까지 들은 환인은 얼굴을 굳히며 분신체 3과 4를 거두었다. 타르반시올의 목적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형님께서는 타르반시올을 추적할 방법을 알고 계시는 거군요.”
=혹시라도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여 최상급 땅의 정령 어스람을 몇 년 전부터 줄곧 그에게 붙여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십 분 전, 타르반시올 국왕이 향하는 곳을 알아내었는데…….=
“목적지는 여휘의 방이겠지요.”
=……예. 타르반시올이 환령계로 들어간 시각은 영제님께서 투르시온 가문의 악행을 처단한 직후로 판단되었습니다.=
엘레델의 고발에 환인은 굳은 얼굴로 환연을 불렀다.
“환연, 김영수와 김철수를 불러라. 형님은 타르반시올을 환령계에서 끌어낼 방법도 알고 계십니까.”
=예, 예. 그건 한 가지 방법뿐인데…….=
환인의 지시에 그의 품 안에 숨었던 환연이 나오자 엘레델의 시선은 환연에게 꽂혀 돌아가지 않는다.
“그 한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 초월급 정령이 직접 찾아가 환령계에 숨어든 자를 추방하는 것입니다. 타르반시올의 위치는 어스람으로 알 수 있으며 저……분은 초월의 정령력을 지니셨으니.=
환연이라면 타르반시올을 환령계에서 추방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형님 부르셨슴까?!”
마침 김영수와 김철수가 돌아왔기에 환인은 김영수의 도움을 받아 다짜고짜 엘레델을 붙잡고 여휘의 방으로 이동했다.
“우홋?!”
“와오!”
=……!!=
졸지에 사도의 앞에 서게 된 엘레델은 키 3m의 여휘 석상을 보곤 소리 없는 비명을 짧게 질렀다가 넙죽 엎드린다.
=미, 미리아스툼의 아이가 사도님을 배알하옵니다!=
하지만 두 김씨는 짧게 환호성을 터트렸다가 금세 어금니를 꽉 깨물며 옆구리, 허벅지를 꽉꽉 꼬집고 비틀었다.
사도의 기세를 받고 패닉에 빠지기에는 환인의 기운을 너무 많이 받아봤다.
그러다 보니 훤히 보이는 분홍색 젖꼭지와 분홍색 골짜기에 신경이 쏠렸는데, 눈앞의 저 석상은 사도다. 신수의 위쪽이고 아신의 아래에 있는 사도.
좆을 세웠다간 진짜 좆될 수도 있다.
두 김씨와 엘레델이 그러고 있을 때 환인은 그들의 뒤에서 약간 대리석의 질감이 느껴지는 여휘를 못마땅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왜 말해주지 않은 겁니까.’
…라고 속으로 힐난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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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정력은 글쟁이 뇌피셜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