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8 주도 패시지
환연은 흡사 자위하듯 젖가슴을 주무르며 교성을 흘리는 이름리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붕붕 젓고는 환인에게 물었다.
「이제 돌입할 거야?」
“몇 가지만 준비하고…… 자, 방금 성의 정령 탐색 방지 기능을 해제했으니 정령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을 거다. 성안에 있는 인간들을 전원 파악해다오. 수상한 장소가 보인다면 체크해두어도 된다. 정령을 다스려 탈출하려거나 도망치려는 자가 보이면 즉시 말해라.”
「결명회 인간들을 찾아보라고?」
“저 성에 결명회의 인간이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지. 말 그대로 인원 파악이라고 생각해라.”
「알았어. 그리고 왕실 저택 빼고 귀족가 인사는 전부 파악 끝났어. 수상한 놈들은 전원 마킹해뒀으니까 대륙 반대편에 있어도 추적 가능해.」
“수고했다.”
환인은 그녀가 다시 정신을 집중해 중앙성을 낱낱이 살피는 걸 잠시 지켜보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성벽에 배치된 왕실 기사 병력 1800은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영혼 군단이 성을 포위한 마당이다.
평범한 영혼도 아니고 성제의 강화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3천가량의 병력에 그들의 전의는 이미 맨틀을 뚫고 내려가는 중.
무력의 우위는 의미가 없다. 영혼과 싸운다는 것은 성제와 전투를 벌인다는 뜻이니, 그것은 즉 신님의 정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니까.
환인은 그런 기색을 풍기는 기사들을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영령군을 진입시키면 저들은 물론 성안의 인간들을 모두 잡아들이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영령군을 동원해 저들을 치는 건 국장이라는 년을 찾아 결명회 인사 목록을 작성한 이후라야 한다.
쥐를 잡으려면 덫을 깔던가 아니면 몰이 사냥을 할 개나 고양이를 준비해두던가 해야 놓치지 않는 법이니까.
요르문센 섬에 있는 분신체 2로 시야를 옮겼다.
섬에 있는 노른과 유르파 외 일행은 백사장에 모여 리지나 호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환인은 자신의 곁에 앉아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유르파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부탁했다.
“유르파, 봉인구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만든 봉인구를 전부 꺼내주십시오.”
=으응? 40개 정도인데 괜찮니?=
“능력을 봉인해야 할 패시지의 왕족이나 귀족은 30이 채 안 되는 듯하니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재판에 올릴 중요 범죄자한테 쓸 셈이구나? 여기 있어.=
“예. 나머지는 포박만 해두고 저항하거나 반항하는 자는 모두 죽여 영혼 구슬 상태로 둘 생각입니다.”
그의 이야기에 유르파가 적잖이 아쉬워했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하나하나 봉인을 걸어주었을 텐데…….=
“하지만 결명회와 교단이 금방이라도 붙을 듯한 기세였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유르파는 이제 정말 니오네브레스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패시지의 일이 끝나면 지구로 돌아가는 길만 찾으면 끝이니까.
잠시 감회어린 표정을 짓던 유르파가 깜빡했다며 그에게 물었다.
=아참, 봉인구는 어떻게 들고 갈 생각이야? 연속 초시공 발현으로 거기까지 날아가려구?=
“여휘에게 아공간의 권능을 양도받았습니다. 재보의 관은 초시공의 분신체도 쓸 수 있더군요.”
=진짜?! 와!=
환인은 당장이라도 그 권능에 관해 묻고 싶단 표정의 유르파를 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묻고 싶지만 자신이 바쁜 걸 알고 있어 궁금증을 참는 귀여운 모습.
그런 그녀의 입술에 키스해주자 왼쪽에 붙어있던 노른도 그걸 보며 뽀뽀해달라며 졸라댔기에 그녀의 이마에 뽀뽀를 해준 순간이었다.
분신체 1에 붙어있던 환연이 그의 뺨을 콕콕 찔렀다.
「환인. 철영수가 국장을 찾았나봐. 어떤 여자랑 싸움이 벌어졌어.」
신의 눈으로 성을 돌아보자 그녀의 말대로 김철수, 김영수의 영혼색이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는게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초시공을 펼쳐 현현하자마자 육두문자와 현란한 욕설이 환인의 귀를 어지럽혔다.
“……이 씨발련아! 지금까지 보여줬던 건 전부다 가식이었냐!!”
“우리한테 정신 교란 걸고 이용해 먹은 것도 모자라 사람까지 잡아먹고는 시침 뚝 떼고 이 양심리스한 씨팔련 진짜!”
=천하고 더러운 족속답게 주둥이도 더럽구나! 우리가 아니었다면 하류 비렁뱅이로 살다 죽었을 인간 부스러기 주제에 감히 왕족을 능멸하다니!=
“부, 부스러기이?!”
“이 씨발 보지를 잡아 찢어 죽일 개 같은 년이!”
김철수와 김영수는 교회 예배당 같은 곳에서 날뛰며 안느와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을 은발 은안에 가녀린 체구의 플뢰 여자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김영수는 공간 도약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환인에게 받은 장창을 내지르는 중이고 김철수는 틈만 나면 차원 단절로 안느 못지않은 외모의 여자의 팔다리를 잘라버리려 시도하는 중.
간간이 허공에 정령술이 맺히면 그곳에 차원벽이 펼쳐지는데 여자의 정령 소환을 미연에 차단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은발은안의 여자, 타비아누스=아눌란=투르시온은 정체불명의 투명한 채찍을 사납게 휘두르며 김영수를 떨쳐내고 왼손에 쥔 글로브globe를 내밀어 김철수의 차원 단절을 막아낸다.
「저거 구체에서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초시공을 쫓아온 환연이 그런 타비아누스 국장을 보며 중얼거리자 환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적으로 주변 공간을 안정화하는 도구다. 보아하니 저 글로브의 반경 2m 안으로는 공간에 관련된 모든 작용을 무위로 돌리는군.”
「몸에 걸친 것도 다 유물이네.」
=역겹고 혐오스러우며 무능하고 파렴치한데다 짐승처럼 색만 탐하는 머저리들이 분수도 모르고!=
촥! 콰과광!!
“존나 씨발! 환인 형님한테 잡히고 나서도 그렇게 씨부릴 수 있나 보자 개년아!”
=하수구의 진창처럼 더러운 것들아! 언제는 네놈들의 보신을 위해 그자를 죽이려 들지 않았느냐!=
촹—!! 투명 채찍으로 김영수의 빈틈을 후려쳐 날린 타비아누스 국장은 성난 표정으로 차원벽 뒤에 숨은 김철수를 향해 불가시의 탄환을 쏘며 악을 쓴다.
=그래 놓고는 기회가 오자 안면 싹 바꾸고 성제에게 알랑방귀를 뀌는 꼴이라니! 내가 성제라면 모든 사건을 마무리 지은 뒤 네놈들의 멱부터 딸 것이다!=
“좆까! 형님은 적어도 너 같은 썅년하고 다르게 두말하지 않는 분이시라고! 이씨발 왜 능력이 안 통하는 거야?! 철수 이 개새꺄, 저 씨발련 능력 좀 분석해봐!!”
“저 좆같은 년이 손에 쥔 스페어! 저것부터 쳐내야 해!”
“저게 문제라고?! 씨발 넌 죽었다고 복창해라!”
쒸아악—!
“으힉?! 애미씹년이 밥 처먹고 채찍만 휘둘렀나 존나 무섭네!”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투명 채찍에 기겁한 김영수가 후다닥 물러나며 으르렁거린다.
그걸 본 환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훈련시킨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저런 채찍 하나 제압하지 못하다니
보이지 않는 채찍에 의해 예배당의 의자와 집기가 박살 나고 있어 보기에는 현란하고 위협적이지만, 타비아누스 국장의 편술도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다.
중급 모험자 수준은 아니고 하급을 벗어나 중급을 눈앞에 둔 정도.
공간 지각이라면 손목 스냅과 채찍의 궤적이 뻔히 보일 테니 피하기도 쉽고, 채찍을 한 번 휘두르면 틈이 많이 발생하니 협공도 쉬울 텐데…….
저벅저벅.
잠시 기둥 그늘에서 지켜보던 환인이 그늘 밖으로 나서자 세 명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형님!”
“환인 형님!”
=서, 성제……!=
「이 멍충이들아. 둘이서 무직자인 저거 하나 상대 못해?」
“아니 환연 누님! 저년 채찍술이 미쳤어요! 눈에도 안 보이고 엄청 빠른데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반응해서……!”
=큿!=
김영수가 억울해하며 공세가 살짝 늦춰진 타이밍에 타비아누스 국장은 이를 악물며 유물의 힘까지 끌어올려 환인의 앞쪽 바닥에 무형편을 날렸다.
에너지를 아낄 때가 아니다. 성제가 성안에까지 들어왔다면 긴급 규약 발동은 시간문제.
그게 발동하기 전에 빨리 회당으로 가지 않으면……!
타격한 지점을 크게 폭발시키는 무형편의 필살기를 날린 타비아누스는 폭발로 성제의 시야가 가려지면 그 틈에 도주할 생각이었지만…….
=……?!=
무형편이 바닥을 때리기 직전,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크게 놀라 돌아보자마자 눈앞이 핑— 돌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손에 힘이, 아니 목 아래로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느낌에 의아해하던 찰나 그녀의 귀에 경박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갔다.
“우효옷! 카운터 펀치! 카운터 펀치!”
……카운터? 내가 카운터를 맞았다고? 지각의 유물로 7급 엽사 수준만큼 지각력을 드높인 내가?
실제 타비아누스가 두 명을 상대로 비장의 한 수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은 착용자의 지각력을 상급 엽사 수준으로 올려주는 지각의 성유물 덕분이었다.
지각력은 지각력이고 편술이 뛰어난게 아니라 유물 채찍의 효과가 절륜해 김철수와 김영수를 막은 거지만 아무튼.
그랬는데 그런 지각을 뚫고 자신에게 공격을 적중시키다니, 들려오는 소문에 무투술 또한 하늘에 이르렀다더니 사실이었…….
=……꺄, 꺄아악!=
조금씩 돌아오는 감각에 허우적거리며 환인을 분석하려던 타비아누스는 그의 손이 자신의 옷을 벗기는 모습에 수치심의 비명을 질렀다.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감히 투르시온의 공주인 저에게……!=
『입닥쳐.』
=……!=
『혼재가 되고 싶다면 당장 말해라. 소원을 이루어줄 테니.』
딱, 환인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 이름리아의 혼재가 그의 뒤에서 나타나 거센 저주의 불길을 피워올렸다.
그녀도 기억하고 있는 엘위드리스 가문의 대공녀가 혼재로 변해 나타난 모습에 타비아누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다.
신언도 신언이지만 혼재를 저토록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에 저항하려는 의욕이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중.
환인은 벌벌 떨면서 저항을 멈춘 그녀에게서 실오라기도 남기지 않고 의복과 속옷을 몽땅 벗겼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김철수와 김영수가 인중을 늘리며 헤벌쭉하는 걸 환연이 흘겨보곤 타비아누스의 옷을 살피며 탄성을 지른다.
「속옷까지 유물이잖아? 진짜 돈도 많네.」
『차원 방랑자의 고혈을 빨아먹은 증거겠지.』
타비아누스가 걸치고 있던 유물을 속옷까지 전부 재보의 관에 집어넣은 환인이 개목걸이 같은 봉인구를 목에 채운 직후였다.
국장은 플뢰답지 않은 큰 가슴이 출렁일 정도로 놀라 어깨를 떨었다.
김철수와 김영수가 그녀의 알몸을 발정 난 원숭이처럼 보고 있지만 그것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의 충격.
‘마력 봉인구! 이걸 어떻게 성제가?!’
치욕스럽고 굴욕스럽지만 틈을 봐서 탈출할 집념으로 꾹 눌러 참았는데, 목에 목줄이 채워진 순간 모든 능력이 봉인되어 평민이나 다를 바 없어졌다.
큰일 났다. 타비아누스의 얼굴에 다급함이 번진다. 이러면 규약 발동에 시간을 맞추지 못하게 될 거야……!
=서, 성제……에에그극!?=
다급한 마음에 환인에게 딜을 걸려던 타비아누스는 그 순간 정수리로 무언가 들어오는 감각을 느끼곤 눈을 까뒤집었다.
‘이, 이건 영혼 빙의……! 안돼, 안돼……!’
간신히 가슴과 사타구니를 가리던 타비아누스가 벌떡 일어나 젖가슴과 보지를 가리지 않고 인형처럼 선다.
얼굴도 멍한 표정이지만 그 안의 영혼은 절규를 지르며 몸부림치는 중.
환인은 혼돈에 빠져드는 영혼색을 무시하고 신의 눈으로 그녀의 몸 안에 다른 유물이나 마도기가 삽입되어있지 않은 지 살폈다.
깔끔하다. 플뢰족의 공주이니 암살자들처럼 몸안에 비장의 한 수를 숨기는 저열한 행동은 못한다는 거겠지. 그리고 우물쭈물하는 김철수와 김영수를 불렀다.
그의 호출에 둘은 불편해진 바지 앞을 고치면서 주눅 든 얼굴로 슬금슬금 환인에게 다가갔다.
“저…… 형님. 그게요…….”
“국장 저게 모습을 숨기고 있어서 찾느라 시간이 걸려가지고…….”
솔직히 명령받고 30분 가까이 시간을 보낸데다 명령까지 완수하지 못해서 크게 혼날 거라 생각한 둘이었지만…….
“그래도 타비아누스 국장을 찾았으니 잘했다. 늦은 것은 내가 명확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니 신경 쓰지 말고.”
“형님…….”
“형님…!”
“지금부터는 성안의 무직자들을 찾아 전부 서쪽의 교단 지휘부로 데려가라. 속도가 중요하니 신분이 높다며 저항하거나 소리친다면 팔다리 하나둘 정도는 잘라도 상관없다.”
“예, 옙!”
“이번에는 잘하겠습니다!”
“그래. 이번 일이 끝나면 약속한 것을 제외하고도 너희가 제법 마음에 들어 할 것을 줄 테니 열심히 해라.”
“옛!!”
“옙!!”
사회생활을 많이 해봤기에 상사는 부하의 잘못을 감싸주고 잘한 게 있다면 칭찬해야 좋다는 걸 김철수와 김영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데 밑에 놈을 챙기고 가르치고 다독이거나 키울 여력이 어디 있는가.
그랬는데 환인 형님은 역시 달랐다.
잘못은 탓하지 않고 잘한 것은 칭찬해주며 확실한 포상까지 준비해둔다.
의욕에 불이 붙은 둘은 타비아누스를 찾으면서 외워둔 성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간 지각에 걸리는 인간을 죄다 성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1분에 서너 번씩 파바박 점멸하는 둘을 신의 눈으로 좆던 환인은 알몸으로 우두커니 선 개목줄의 타비아누스를 차갑게 응시했다.
세상 절망한 것처럼 절규를 지르는 듯한 타비아누스의 영혼색.
그런 타비아누스 국장에게 다가가 정강이를 퍽퍽 걷어차 무릎 꿇린 뒤 정수리를 움켜잡듯이 손을 올렸다.
『이제 대충 상황이 파악되겠지. 얌전히 죽고 싶다면 결명회의 설립 목적 및 현재 목적, 집회 위치, 회장과 회원, 회당까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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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에에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