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 아드네빌라를 찾아서
* * * *
쿠르르르르륵—
무수한 물거품의 소리 같기도 하고 거대한 짐승의 사나운 목 울림 같기도 한 소리가 거품과 함께 공기 방울 위로 타고 흘러간다.
지느러미가 크로커스꽃을 닮아 옥타 크로커스, 혹은 옥타크로커스라고 부르는 6급 대형종 마수의 마력 사슬에 잡혀 선박째로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온 지도 세 시간 째.
=으~음.=
마스트가 전부 부러져 대형 보트처럼 변한 리지나 호의 후미. 아영은 자홍접에 두르데인의 확장 건틀릿과 온갖 신체 강화 장신구를 착용한 상태로 침음성을 흘렸다.
강제로 끌려가는 중이지만 상황은 그렇게 나쁘진 않다.
모두 무사한데다 오빠가 붙인 영령 다섯도 건재하다. 쿠에들도 모두 멀쩡하고 다들 완전무장 중에 컨디션도 좋다.
괴물들에게 끌려가던 인어들도 구출해서 풀어주어 발목을 잡는 것도 없는 상황.
유르파 언니의 마도구 덕분에 물방울이 배 전체를 감싸고 있어 숨도 쉴 수 있고, 만약을 대비한 긴급 탈출 장치도 준비되어있어서 여차하면 공간도약으로 도망칠 수도 있다.
외부의 위협에서 완전히 격리될 수 있는 김철수의 차원 단절은 배 전체를 감싸진 못하지만, 일행을 감싼 뒤 유르파 언니의 공간도약 비술을 펼칠 때까지 버틸 정도는 된다.
이동 좌표는 오빠가 이 상황을 예견한 것처럼 요르문센 섬에 등록해놓으라 해서 등록한 상태.
‘탈출하면 배를 잃기야 하겠지만 오빠라면 우리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보다 배와 짐을 잃는 게 천 배 만 배 낫다고 할 사람이니까.’
아무튼, 지금 상황이 벌어지게 된 이유를 찾기 위해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는 중인데…….
콰르르르르륵—…….
……기분이 가히 좋지 않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생선도 없는 바닷속은 무언가, 괴물의 아가리 속 같단 말이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건 가끔 앞에서 물거품이 잔뜩 흘러와 지나치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그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이쪽의 의지나 의견이 더해지지 않은 강제적인 이동이 기분 좋을 리 없지만, 대형종 마수에게 어두운 바닷속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점에 그 사실이 더해지니 기분이 몇 배나 다운된다고 할까.
배 후미에서 시야 강화로 주변을 살펴보던 아영은 소득 없이 배의 갑판, 김철수를 중심으로 모두 모여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손바닥만 한 큐브 형태의 마도구를 점검하던 유르파가 그녀를 돌아보며 묻는다.
=뭔가 보이는 게 있었니?=
=하나도 없어요. 진짜 까맣기도 하고 뭐라도 있어야 보일 텐데 온통 물뿐이니까…….=
=해저랑 해수면 사이를 이동 중인 거려나.=
=지나치는 물거품이 위로 떠 오르는 걸 보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는 거 같은데 언제까지 이렇게 이동할지 모르겠어요.=
유르파의 손가락이 달칵, 큐브의 한 곳을 누르자 손바닥만 한 금속 큐브의 육면에 복잡한 술법진이 빛처럼 떠오른다.
이윽고 부웅— 약한 진동과 함께 술법진이 큐브를 중심으로 3차원 입체처럼 형성되기 시작한다.
달칵, 어느 한 곳을 누르자 빛을 잃고 툭 유르파의 손 위로 떨어지는 큐브.
=……그게 공간도약 마도구예요?=
=응. 좌표 수정했으니까 발동시키면 반경 10m 안에 있는 건 전부 요르문센 섬으로 이동시킬 거야.=
아영도 성술사이기도 하고 술법에 대해 꽤 공부했기에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알고 있었다.
오빠가 사는 세계에서 가리키는 오파츠라는 걸로 분류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귀족이나 호족이라면 군침을 흘릴만한 마도기를 잠깐 구경하던 아영은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배 우측 난간에서는 영령 하나가 주기적으로 동전을 3~4개씩 뿌려 표식을 남기는 중이고 쿠에들은 노른의 다리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평화롭게 낮잠 자는 중.
김영수와 김철수는 긴장하면서 주위를 살피는 중에, 이모렐은 벼락활을 쥐고 석상처럼 앞만을 바라보고 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배를 유선형으로 감싼 공기 방울 3중막을 바라보다 유르파에게 묻는다.
=유르파 언니, 저 방울 내구하고 유지력은 어느 정도예요?=
=음~ 그렇게 강한 수준은 아니야. 그래도 혹시 몰라 세 겹으로 감쌌으니까 옥타크로커스가 다리로 한 대 때리지 않는 이상 평범하게는 터지진 않을걸?=
……옥타크로커스 다리? 끌려들어 갈 때 얼핏 본 옥타크로커스의 다리는 하나가 리지나 호 둘레의 절반 정도였다.
=언니, 그런 게 배를 후려치면 공기 방울이 문제가 아니라 배가 반토막 날 거 같은데요.=
=아하하하.=
아영과 유르파가 대화하고 있으니 이모렐과 함께 언제라도 화살을 쏠 수 있도록 사주 경계 중이던 백려강이 조금 풀죽은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유리 언니. 아영도 미안해….=
=엥? 뭐가?=
=으응?=
=제가 그때 괜한 말을 안 했으면 철수의 차원 단절로 바다의 마력 사슬을 끊고 여기까지 안 끌려왔을 텐데…….=
그녀의 사과에 무슨 말인가 하던 유르파가 조금 난처한 듯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다독인다.
=그런 말 마~. 그때 고를 선택지에 정답은 없었어. 보니까 괴물들의 목적은 벨 아가씨인 거 같은데 계속 버텼으면 괴물이 계속 몰려왔을지도 몰라. 거기에 옥타크로커스 급 괴수가 또 출현했으면 협만도 안전하지 않았을 거고…… 절벽이 무너져서 협만이 매몰될 수도 있었고?=
=언니 말이 맞아. 우리 힘으로는 배를 돌리거나 해서 협만을 탈출하고 할 수 없었을 테고 절벽 위 섬으로 피신해야 했을 텐데 그랬으면 십중팔구 배가 파손되었을 거야. 인어들이 죽은 건 덤이고.=
=맞아맞아. 그리고 자기랑 환연이라면…… 지금쯤 우릴 뒤쫓고 있을지도 몰라. 자기가 오면 이런 일은 다 해결해줄 거니까.=
그러니 걱정할 거 없다고 하자 백려강도 자책을 조금 거두며 작게 미소 짓는다.
그때 김철수의 옆에 앉아 정신 집중으로 광역 공간 지각을 발휘 중이던 김영수가 움찔하면서 유르파를 향해 소리쳤다.
“유르파 누님! 아래쪽에 땅이 감지되는데요!? 천천히 다가오고 있어요!”
=……! 다들 충격에 대비하고 인어의 호흡 먹어! 벨 아가씨랑 아영인 쿠에들을 물로 보호하고!=
유르파의 외침에 다들 그녀에게 나누어 받은 인어의 호흡 환약을 재빨리 삼킨다. 그 순간 큐르르르르르— 배 아래쪽으로 물살이 강하게 일어나며 배가 극심하게 흔들렸다.
배의 질량이 만들어내는 물결이 해저에 충돌하며 난폭한 와류를 만들어냈기 때문.
삣!?
삐이이…!
뺙!
진동에 쿠에들이 위아래로 들썩이며 비명을 지르자 노른이 녹색 날개를 꺼내 활짝 펼쳐 두 팔과 날개로 쿠에 다섯 마리를 감싼다.
비포장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리는 것처럼 선체가 흔들리고 배를 감싼 공기 방울도 당장 터질 것처럼 격하게 출렁이자 김철수가 유르파를 돌아보며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누, 누님! 차원 단절 쓸까요!?”
=아직!=
김철수의 차원 단절은 펼치는 순간 공간에 고정되어버린다.
한 자리에서 우주 방어를 전개할 때는 차원 단절만큼 뛰어난 능력이 없지만, 지금처럼 좌표가 계속 바뀌는 도중에 펼치면 배는 배대로 날아가 버리고 일행은 지금 장소에 덩그러니 놓여진다.
그러면 이곳까지 온 보람도 없이 공간도약 비술을 써야하니 그것만큼은 피해야지.
혹시 자기가 쫓아오고 있는데 길이 엇갈리기라도 했다간 시간을 얼마나 낭비할 것인가.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차자작, 미리 준비해놨던 팔찌와 장갑과 목걸이 등을 착용하는 유르파.
환인의 개량형 방벽 마도구를 만들며 파생시킨 6등급 염동력 마도기에 정신력 강화와 정신력 증가의 마도기들이다.
여기에 정신 강화 비약까지 도핑하자 일순간 정신력과 의지력이 충만해지며 그녀의 몸 주위로 염동력의 고리가 발생한 순간.
콰과광!!
“으갸악!?”
“퀙!”
=꺄아……!=
용골이 부서지는 건 아닐까 싶은 극심한 충격이 배에 가해지며 공기 방울이 퍽—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자욱한 흙탕물과 함께 사방에서 바닷물이 들이닥쳤다.
배의 밑이 해저에 닿으며 발생한 충격.
계속해서 이어지는 끔찍한 진동과 물의 격류에 짐과 사람이 물살에 사방으로 튕겨 나가기 직전, 유르파는 염동력을 펼쳐 짐과 동생들, 철영수 모두를 끌어안고 버틴다.
‘크읍!’
선박에 가해지는 진동, 그리고 거대한 폭포 아래에 들어와 있는 듯한 충격량은 도핑까지 한 정신력으로도 이겨내지 못할 만큼 염동력에 강한 부하를 주었다.
이를 악물고 위상력과 함께 수천, 수만 톤급 과부하에 버티고 있자니 오뚝한 코에서 핏물이 확 번진다.
그 순간 물의 벽이 그녀를 포함해 일행을 뒤덮고 이어서 찬란한 순백의 보호막이 모두를 포근히 감싼다.
백려강과 아영의 지원 덕분에 유르파는 부담이 어느정도 해소되며 한결 버티기 쉬워졌고.
쿠구구구—! 구구구구구—……! …드드드드드드—……….
버틸수록 선체가 쪼개질 것 같던 극심한 진동이 차츰차츰 가라앉고 극심한 물살도 점차 진정되어가며 부담이 갈수록 약해진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완전히 멈추며 주위가 고요해졌다.
……멈췄…나?
머리를 숙인 채 숨죽이고 있던 유르파는 살그머니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일으켰다.
=여, 여긴 어디니……?=
포근하게 내려오는 햇볕에 푸르게 반짝이는 물 속.
바닥에 가득 깔린 것은 총천연색 산호와 해초, 말미잘에 물고기들이 집으로 쓰는 구멍 숭숭 난 하얗고 거대한 현무암과 각종 바위들.
배의 돌격에 놀라 도망갔던 생선들이 슬금슬금 돌아오는데 그 색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조금 전까지 칠흑처럼 어둡던 바닷속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사한 장소에 유르파가 탄성을 흘리자 아영과 백려강도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곤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름다워요…….=
=뭐지…… 여긴 못해도 수심 1,000m 물속인데…….=
“야, 철쓰. 여기 뭐임? 심해 아니었음?”
“문어 새끼가 우리 패대기치고 간 거 보면 심해 맞을 텐데 뭐냐 진짜.”
김영수의 공간 지각 범위는 아무런 장해와 방해가 없을 때 최대 600m에 달한다.
건물 같은 건 지장이 없지만 땅속이나 물속처럼 물질이 가득한 장소에서는 지각 거리가 크게 깎이는데, 그걸 참작해봐도 현재 위치의 수심은 1km 남짓한 상황.
그런 곳에 이런 별천지가 있다니, 환각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던 아영이 눈을 날카롭게 뜨며 주위를 다시 살폈다.
=유리 언니. 여기 미궁 같은데요.=
=확실히…… 미궁이 주변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에엣? 아!=
쿠우우우우—
=배가 기울어요!=
땅에 기다란 고랑을 만들다 멈춘 리지나 호가 옆으로 스르륵 넘어지며 평형이 무너진다.
미끄러지는 짐을 여자들과 김철수, 김영수가 황급히 챙기고 유르파는 염동력으로 물구슬에 갇힌 쿠에들과 짐을 챙긴 일행을 잡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 순간 김영수가 움찔하면서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뒤에 괴물이 와요!”
=……!=
괴물이라니 무슨 괴물?
일단 유르파는 기울어지다 바위와 산호에 걸려 멈춘 리지나 호 아래쪽으로 일행과 짐을 전부 챙겨 숨었고, 그 직후 리지나 호보다 더 큰 은색 상어가 유유히 좌초된 배 위를 헤엄쳐 지나갔다.
=…….=
=…….=
마수라면 족히 6급은 되지 않을까 싶은 은상어가 머리 위를 헤엄치는 모습에 일행이 소리 없이 침을 꼴깍 삼킨다.
그러다 잠시 후 멀리 가버려 시야에서 사라졌고, 김영수가 공간 지각 범위에 은상어가 사라졌다고 말하고 나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영이 소리 죽여 말한다.
=좌초된 배가 이상하게 보일 법도 할 텐데 별로 신경을 안 쓰네. 이런 게 이 근방에 종종 나타난다는 건가?=
=주변에 하얀 현무암이 많아서 의외로 배가 눈에 안 띄는 걸지도 몰라….=
“생선은 시력이 엄청 안 좋대요. 게다가 색맹인 것도 있다던데요?”
김철수의 이야기에 잠깐 그를 본 유르파는 이럴 게 아니라며 입을 열었다.
=일단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자리부터 잡자. 철수야?=
“옙, 누님.”
=산소거품으로 막을 칠 테니까 그 안에 차원 단절을 막 형태로 만들어줄래? 완전히 밀폐시키지는 말고 저기 저 현무암처럼 잔 구멍하고 출입구를 만들면 돼. 그냥은 말고 형태가 배를 받쳐서 이 이상 넘어지거나 하지 않게끔…… 가능할까?=
“당근이죠!”
=그래. 내가 신호를 주면 만들어줘.=
유르파가 지팡이를 꺼내 위상력을 밀어 넣자 지팡이를 중심으로 공기 방울이 물을 밀어내며 자그마한 돔을 만든다.
후왓— 일행은 숨을 크게 내쉬면서 한숨을 내쉬었고 김철수는 유르파의 손짓에 즉시 작은 원룸 정도 되는 공기 방울 내에 차원 단절을 펼쳤다.
유르파는 흠뻑 젖은 하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후우, 다들 무사하지?=
=네. 저랑 벨도 멀쩡해요. 노른, 쿠에들은 다 잘 있어?=
「응. 내가 잘 데리고 있어.」
평범한 쿠에는 경험하지 못 할 일이 연달아 벌어지는 바람에 겁을 먹었는지 작아진 쿠에 다섯 마리는 노른의 곁에 바짝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저, 저도 괜찮슴다.”
“저도요.”
김철수와 김영수는 흠뻑 젖어 몸의 굴곡이 드러난 유르파와 백려강, 아영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돌아앉아 대답했다.
남자의 본능은 보라고 하지만, 이성은 봤다간 형님한테 죽을 지도 모른다며 본능을 찍어누르는 상태.
이모렐도 멀쩡하고 영령들도 다 있고 짐도 ok,
모두 무사한 걸 확인한 유르파는 영령 중 하나가 내미는 돈주머니를 받아들었다. 대충 1/3 정도 던진 건가?
그제야 길게 한숨을 내쉬며 가방 하나를 붙잡고 반쯤 늘어졌다.
염동력을 너무 쓴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급한 불은 대강 껐다. 코인까지 계속 떨어트려 표식을 남겼으니 이제 할 일은…….
=……조금만 쉬었다가 주변을 확인하자. 자기가 오기 전까지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아둬야 할 거 같으니까.=
그녀의 이야기에 동생들과 두 김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
쿠어어엉—
빛이 닿지 않는 시커먼 해저에 네 자루의 빛나는 검기가 무수한 빛의 선을 남기며 생선 괴수를 무수하게 꿰뚫는다.
일행을 덮치려던 심해어처럼 끔찍한 몰골의 생선은 오장육부에 구멍이 난 채 천천히 가라앉았다.
=밋쏨이 저렇게 간단히…….=
배 한 척쯤은 간단히 삼켜버릴 만큼 큰 주둥이를 벌린 채 절명한 괴수의 모습에 시자한 장로와 제자들이 전율한다.
저 괴수를 잡으려면 자신도 흉터가 남을 정도로 악전고투를 벌여야 하는데 저 전사는…….
이실리테가 돌아오는 모습에 환인의 곁에 서 있던 안느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언니랑 애들이 어디까지 끌려간 거야…….=
옥타크로커스에게 끌려간 여자들과 달리 환인은 해저의 밑바닥에서 이따금 달려드는 마수나 괴물을 해치우며 떨어진 동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게 벌써 1시간 째다.
처음에는 환연이 만든 잠수함 같은 물고기 모양 배를 타고 이동했다.
하지만 강한 정령력이 바닷속 마수나 괴물을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환인이 눈치챈 뒤로 이동 방식을 변경, 환연은 하급 물정령으로 동전을 찾으면서 적을 탐지하고 환인과 두 여자는 시자한 장로 및 제자들의 등에 업혀 이동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자 일행의 이동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져 시속 100km에 달할 정도였는데, 이런 속도로도 언니 동생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안느는 조바심에 침착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환인은 그녀의 안달을 들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여기까지 선체의 파손 흔적이 없다는 건 옥타 크로커스의 목적은 그녀들을 데려가는 것 뿐이라는 게 확실하다.
50분 전쯤에 부러진 마스트를 발견했지만 그건 물의 저항을 위해 유르파가 직접 부러트린 걸로 보였으니 제외.
‘정말 아드네빌라가 백려강을 부르기 위해 마수를 보낸 건가.’
본능적으로? 아니면 단지 백려강에게 백청룡의 향기가 나서 부하들이 충성심의 발로로?
아드네빌라가 백려강의 기운이 가까이 온 것을 느끼고 맞이하러 보낸 거라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황은 안 좋다.
“시자한 장로. 조금 더 속도를 낼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두 배까지 낼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환연, 이제 동전은 회수 안 해도 된다. 지금부터 속도를 위주로 가지.”
「괴물이 나타나면?」
“내가 정리할테니 방향만 지시해라.”
환인이 광명창의 코어를 집어넣는 모습에 환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코트 옷깃에 붙었다.
그리고 시자한 장로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거의 200km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속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저쪽!」
“…….”
그런 속도에 신식 영혼의 눈이 포착하는 생명체의 흐릿한 빛, 그리고 환연의 방향 지시가 더해지자 어마무시한 상황이 벌어진다.
신식 영혼의 화살이 일발필중으로 진로에 나타나는 괴물의 목숨을 지워나가니 집채만 한 괴물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와 무시무시한 속도로 멀어져가는 것이다.
환인과 그녀의 여인들을 등에 업고 헤엄치던 시자한과 제자들은 두려움에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뭔가가 등 뒤에서 슉슉하면 몇 초 뒤 머리에 구멍이 난 채 죽은 거대한 괴물이 스쳐 지나가니 시자한과 제자들은 등에 사신을 태운 기분이었던 것.
그렇게 죽은 괴물을 모으면 워르나도 함락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시자한이 등에 업힌 환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여, 여행자님. 조금 더 가면, 뉴라 장로가 말했던 장소 중 하나가 나옵니다…….=
“그곳이 이 근방입니까?”
=예. 원래 이 정도 수심은 숨쉬기도 어렵고 어두컴컴해 인어들도 꺼리는 곳입니다. 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도리어 흐름도 잔잔해지고 숨도 쉬기 편해지는데…….=
몇 달 전 이상 기후 현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인어 정찰대가 발견한 장소는 마치 수심 20m 정도의 산호 군도처럼 말도 못 하게 아름다운 별천지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어들은 바다 한정으로 육지의 패스파인더나 다름없다.
머릿속에 게임의 미니맵과 월드맵이 있는 것처럼 이동 거리는 물론이고 동서남북 사방위에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현재 시각을 초 단위로 정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
그런 인어 중에서도 장로급인 시자한이 하는 말이라면 100% 확실하다.
“그곳으로 갑시다.”
요르문센 서쪽 바다에서 최근 반년간 발생한 해양 특이점은 총 세 곳.
원래는 느긋하게 그 세 곳을 둘러보려 했는데 환인은 다른 두 곳을 방문할 필요가 없겠다는 예감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20분쯤 지났을까.
「환인, 보여?」
“그래.”
환인 일행의 앞에 아름답지만 그래서 더욱 기이하고 소름 끼치는 바닷속 별천지가 나타났다.
투명한 스카이블루 색 바다에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아득히 먼 곳까지 깔려있고 수많은 열대어가 무리 지어 다니며 황홀한 군무를 보여준다.
조개를 깨 먹는 바다거북도 있고 눈이 아릴 정도로 선명한 말미잘을 등에 얹은 바닷가재에 슬금슬금 산호초 사이를 지나는 표범 무늬 문어도 보인다.
도저히 수심 1,000m의 심해답지 않은 열대 바다 풍경.
해저에 이런 것이 형성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미궁이군.”
콰아아아아아—
「환인, 뒤.」
그때 뒤에서 급격하게 다가서는 생명체의 기운에 환인이 아신위의 휘광을 드러내며 돌아보자 아가리를 쫙 벌리고서 달려들던 은색 상어가 움찔하고 멈춘다.
“…….”
환인의 얼음장 같은 시선에 은상어는 슬그머니 주둥이를 다물고는 괜히 옆을 지나가던 해파리를 덥석 물었다.
마치 ‘널 먹으려던 게 아니라 이걸 먹으려고 했던 거였어.’하는 행동.
=주인님, 죽일까요?=
“평범한 생물인 것 같으니 내버려 둬라.”
차가운 이실리테의 목소리가 들린 것처럼 은상어는 쏜살같이 도망쳤고 환인은 다시 열대 바다 같은 산호초를 둘러보며 환연에게 물었다.
“배는 안 보이나.”
「응. 동전의 흔적이 이 근처에서 끊겼어. 끊긴 흔적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는데 주변을 좀 더 둘러보는 게 좋을 거 같아.」
“…….”
환인이 시자한의 등에서 떨어져나와 주위를 살핀다.
산호초가 있는 곳만 물이 너무나 투명하고 깨끗해 저 멀리까지 보이는데…….
배도 안보이고 미궁 특유의 경락도 안보인다.
산호초가 해저 지면을 뒤덮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개방형 미궁은 뭔가 다른 방식으로 기운을 흡수하는 걸까.
신식 영혼의 눈을 열고 다시 차분히 산호초를 둘러보며 리지나 호를 찾던 중 시자한이 그의 곁에 붙으며 말했다.
=여행자님. 저쪽에서 사람의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느낌상 두 명…? 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혹시 여행자님의 동료분들이 아닐까요?=
「그걸 어떻게 알아?」
=저희 인어는 감각이 예리합니다. 생물마다 고유의 정전기 같은 걸 느끼는데 사람의 것은 물고기나 마수 같은 것들과 명확하게 차이 나서 알아보기 쉬운 편이지요.=
……인어는 상어처럼 로렌치니 기관을 가지고 있나?
환인은 시자한에게 그곳으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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