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95화 (795/813)

795 아드네빌라를 찾아서

환인은 여자친구들, 이제는 연인을 넘어 예비 아내들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녀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평범한 파티라 해도 리더는 동료들의 능력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역량을 초월하는 의뢰를 받아들여 몰살당하거나, 강적과 전투 중 후퇴해야 할 타이밍을 읽지 못하고 전멸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기 때문.

환인은 그렇게 생각하기에 도시를 들르거나 전투가 발생할법한 지역에 들어서면 환연을 통해 가장 먼저 해당 지역의 전투 난이도 측정부터 진행한다.

이유라면 당연히 그녀들의 신변에 위기가 닥치는 일을 막고, 그녀들의 위기로 인해 자신의 분노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측정을 진행하고 나면 그녀들이 외출하거나 자신이 자리를 비워야 할 때면 전투 위험도에 따라 연인들을 짝지우거나 임시 거주지에 인원을 배치하고 떠난다.

……하지만 그것도 여행 초-중기의 이야기.

근래에 들어 여자들이 점점 강해지며 일행의 무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조금씩 제약을 풀고 있었다.

유르파의 외출에만 연인들을 하나둘 정도 붙여주고 그 외에는 각자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해린족의 도시인 워르나에 방문할 때는 이전처럼 상황 대처 능력과 전투 능력을 칼같이 가늠해 일행을 둘로 나누었다.

환인, 이실리테, 안느, 환연.

일행 중 가장 강한 네 명이 빠졌지만 배에 남는 인원들도 절대 약하지 않다.

유르파, 백려강, 아영, 노른, 이모렐, 영기와 심핵력을 잔뜩 충전시킨 영령 다섯에 김철수와 김영수까지.

노른과 이모렐, 영령 다섯은 공중 전투에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특히 노른은 바람의 신수로써 능력이 점점 농익어가는 중이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백려강은 현대에서 육체적인 각성을 이루고 신비궁에 무한의 화살통까지 얻은 뒤 말 그대로 살아있는 포대가 되었다.

협만에 밀려들던 나가족 백여 마리는 누가 도와줄 필요도 없이 적당한 시간만 있었다면 그녀 홀로 쓸어버렸을 것이다.

유르파는 환인이 자릴 비웠을 때 버프를 담당하고 아영은 7급 성술사로써 회복과 보호를 책임진다.

영령 다섯은 설령 물속에서 고위급 괴물들이 몰려와도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을 만큼 불사신이며 김철수와 김영수가 공간도약에 차원 단절을 난사해대면 설령 8급 진수나 괴수가 공격해오더라도 그녀들을 어쩌진 못할 거라고 환인은 확신했다.

=…….=

=…….=

그랬기에 여자들은 배가 있던 협만으로 돌아왔을 때 잠깐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요르문센 섬 해안가로 올라왔던 환인과 여자들은 시드네와 헤어져 협만으로 돌아왔을 때, 정박해있어야 할 리지나 호가 여자들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던 것.

=……배하고 언니, 애들 어디 갔어?=

=애, 애들이 배를 끌고 나갔나?=

「뭐 하러? 환인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돌아다니란 말도 안 했잖아.」

게다가 환인의 영혼 선원도 없고 자신의 정령 도움도 없다.

선수가 협만 안쪽을 향한 채 닻을 내렸으니 배를 돌려서 다시 나가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인간화를 풀고 다시 작아진 환연은 환인의 어깨에 앉으며 물과 바람의 상급 정령을 불러다 섬과 인근 바닷속을 훑었다.

「가라앉은 배 조각도 없고 섬에도 애들의 흔적이 안 보여. 하늘에서 내려다봐도 아무 흔적 없는데.」

“……협만에 전투의 흔적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다.”

「진짜네.」

하지만 정말 자세히 안 보면 모를 정도다. 백려강의 화살 흔적으로 보이는 얕게 패인 절벽이라거나, 노른의 바람칼로 보이는 베인 바위 자국이라거나.

“그리고 유르파가 있는데도 모두 사라졌다면…… 누군가에게 납치당했다기보다 그녀들이 스스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

가슴 속에 약간이지만 불안이 싹트는 것을 이성적인 판단으로 치워버린 환인은 환연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근방 해역을 정령으로 샅샅이 살펴봐라. 유르파나 아영이 아무런 대책 없이 모습을 감췄을 리 없다. 뭔가 힌트가 될 물건을 남겨놓았을 테지.”

「찾는 중이야.」

그와 환연의 대화를 듣던 안느는 황당하다는 듯이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다가 문득 하늘을 보곤 어이없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우리가 워르나에서 몇 시간 안 보냈지? 그런데 하늘이 왜 저래.=

=노을이…….=

워르나에 들어선 것은 대충 오후 2시 즈음이었다.

안에서 2시간가량을 보냈다 해도 아직 해가 훤해야 할 텐데 서쪽 수평선으로 해가 떨어지며 하늘이 붉게 물드는 중이다.

여름 늦더위도 이제 조금씩 꺾이는 시기라지만 아직도 오후 6시는 훌쩍 넘어야 해가 지는데, 노을이 진다는 것은 못해도 4시간은 훌쩍 지났다는 이야기.

=워르나가 그 희귀하다는 시간 지연 효과의 미궁이었나 보네…….=

“…….”

환인은 그리모암의 강력을 발동하고 개량형 방벽 패널을 밟으며 한순간에 수십 미터 높이의 협만 절벽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연안 쪽 절벽으로 나와 먼바다를 둘러본다.

영령화 시킨 영혼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멸한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느껴지지만 너무 멀어서일까. 감각이 희미하고 옅어 위치나 방향을 알 수 없다.

아직 그녀들에게 붙어있는 것은 맞는듯한데…….

그때 그의 어깨에 앉아있던 환연이 먼바다 쪽을 손가락질했다.

「환인, 저쪽 바다에서 인어 하나가 나가족들한테 쫓겨 이쪽으로 오고 있어.」

“둘은 여기서 기다려라.”

개량형 패널을 최소한으로 펼쳐 허공 답보처럼 환연이 가리킨 곳을 향해 달리자 얼마 안 가 그녀가 가리킨 인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면 근처에서 쏜살같이 헤엄치고 있는 인어 하나. 그 뒤를 수영 속도가 나가족 중 가장 빠른 나 겔들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환연.”

그의 말과 동시에 인어가 커다란 물구슬에 갇혀 하늘로 쑥 올라오고, 인어를 쫓던 나가족은 닭 쫓던 개처럼 벙찐 얼굴로 수면에 머리를 내밀었다.

그런 나가족들에게 떨어진 것은 환인의 강화 영혼 폭발.

퍼어어어엉—

보다 물리적인 위력에 특화된 영혼 구슬이 환인의 의지에 따라 최대 위력으로 폭발하자 나가족의 피로 물든 물보라가 터져 크게 솟구쳤다.

그 범위에 살아 숨 쉬던 것들이 수백, 수천 조각의 살점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환인은 도망갔던 작은 생선들이 돌아와 나가였던 것의 살점 파편을 먹어 치우는 걸 지켜보다 근처 해안의 암초로 돌아가 그 위에 섰다.

물구슬 속에 갇혔던 인어는 정체불명의 인간의 등장에 잔뜩 긴장하다가 환인이 펼친 평온의 파동을 맞고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인어가 혹시…… 하며 물었다.

=저, 혹시…… 환인 님이세요……?=

“제가 환인입니다. 환연, 풀어드려라.”

그의 지시에 둥둥 떠 있던 물구슬이 팍— 터지며 속에 들어가 있던 인어가 바다에 떨어진다.

첨벙하고 작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입수했던 인어는 재빨리 환인이 선 암초에 상체를 올리며 소리쳤다.

=환인 님! 유르파 님이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괴물들이 몰려와서 배를 끌고 가는데! 백려강 님이 용님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안 가려고 했지만 친구들이 잡혀가면서……! 수영이 빠른 제가 빠져나와서 환인 님한테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해서……!=

손을 허우적거리며 두서없이 소리치는 인어지만, 환인은 그것만으로 상황을 대략 추론해내며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없다고 해야 할지, 타이밍이 어긋났다고 해야 할지.

환인은 안느와 이실리테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이쪽으로 날듯이 달려오는 걸 바라본 뒤 자신의 추론이 맞는지 확인을 위해 인어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저, 저는 피슬리네에요!=

“피슬리네 씨. 그러니까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피슬리네는 친구들과 함께 협만에 정박 중인 배를 찾았다.

=네! 리엘라가 여기에 육지 인간님들이 있고 맛있는 걸 준다고 해서……!=

“예.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그녀들과 놀던 중 바다에서 괴물들이 몰려왔다는 거군요. 괴물들은 다짜고짜 배를 끌고 가려 했고 전투가 벌어졌으며, 그때 피슬리네 씨의 친구들이 휘말려 납치당하였고요.”

=처음에는 다들 무척 멋있게 싸웠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여자들이 시종일 괴물을 상대로 우세한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괴물들이 토막 나는 와중에도 인어들을 납치해 도주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화망의 자그마한 틈을 통해 괴물 몇 마리가 배에 붙었다.

바다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밧줄이 배에 연결되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그, 그 밧줄은 평범하게는 자를 수가 없어요! 밧줄이 배랑 연결되니까, 밖에서 엄청나게 큰 괴물이 밧줄을 잡아당겨서……!=

여자들은 삽시간에 배 째로 바다에 끌려가며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유리 언니… 저 괴물에게 아드네빌라 님의 기운이 느껴져요…!’

‘배를 통째로 우리까지 끌고 가려는 걸 보면 우릴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닌 거 같지?’

‘언니 어떻게 하죠? 배를 버릴까요?’

배를 버리고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배를 지키기 위해 이대로 끌려갈 것인가.

유르파는 배를 지키는 것을 선택했다.

일행의 소지품 중 매우 중요한 것들은 환인이 아스펜드에 직접 보관하고 있다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들도 위상석, 보석, 마도 장비 소재, 제작해놓은 마도기를 다 합치면 족히 수천 금화에 달한다.

거기에 여행 내내 일행의 탈것이 되어준 마차, 그리고 소형화된 쿠에들에 실루까지 배 안쪽 객실에 있다.

‘엄청난 속도로 끌려가는 중에 쿠에들과 짐을 가지고 탈출하긴 어렵다고 판단을 내렸겠지.’

안느와 이실리테는 탄식했다.

=미치겠네……. 언니는 어쩌자고 그런 선택을……!=

=물건은 다시 장만하면 그만인데…….=

=배는, 배는 순식간에 바다로 끌려들어 갔어요! 배를 끌고 가는 건 옥타크로커스였는데……!=

크라켄마냥 거대한 문어 괴물에게 끌려가던 유르파는 일행의 비술사로서 모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만들던 각종 마도구와 마도기 중에서 비장의 마도기를 발동시켜 선체를 공기 방울로 감쌌다.

그리고 모두에게 인어의 호흡 환약을 나누어주고 피슬리네에게 강화의 비술을 걸어주며 부탁했다.

=저 혼자, 협만까지 도망쳐서, 환인 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시면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하셨어요!=

피슬리네에게서 경위를 다 들은 환인이 여자들을 돌아보자 안느가 걱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언니가 아무 이유 없이 끌려가는 걸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말이야.=

“도중에 내렸다간 바다에 빠질 테고 사방에 괴물이 몰려들면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거기에 백려강이 말한 아드네빌라의 기운이 묻은 괴물들도 신경이 쓰였을 것이고 붙잡혀간 다른 인어들도 신경이 쓰였겠지.”

=하아…….=

“여기까지 오며 이것저것 계속 만들어낸다 싶더니, 해저 전투를 염두에 둔 마도기를 작성하고 있었나 보군.”

=어떻게? 마도기가 무척 다양하다고 해도 아무런 지식 없이 그만한 걸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

“팔라툼 왕실이 고급 비법서와 제작 도구를 선물하지 않았었나. 왕실에서 쓰던 것이고 책자도 두꺼웠으니.”

그런 마도기 제작법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공간도약 비술이 있다.”

=아……! 맞아, 도령이 여기다 좌표 갱신하라고 했었지? 당황해서 잊고 있었어.=

“저 바다로 끌려갔다면 가장 먼 곳도 수백 킬로미터 거리다. 그녀 말로는 약간 무리하면 수천 킬로미터도 이동할 수 있다 했으니 요르문센 섬으로 돌아오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 본다.”

이실리테와 안느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다짜고짜 끌려갔다고 들었을 때는 진짜 심장이 철렁했는데.

「그뿐만이 아니야. 유르파가 한 건지 아영이 한 건지 모르겠는데 이정표도 남겨놨어.」

=진짜?=

안느가 되묻는 타이밍에 바다 쪽에서 동화 한 닢이 날아와 그녀의 손에 잡힌다.

「끌려가면서 돈을 막 뿌렸나 봐. 물살에 떠밀려 이리저리 좀 흩어지긴 했는데 대충 방향은 보여.」

=그러면…… 일단은 다행이네.=

=응.=

이실리테와 안느는 일단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언니와 동생들을 찾으러 가자고 하고 싶지만, 조금 있으면 밤이 찾아온다.

밤의 바다는…… 원래도 바닷속은 잘 안 보이지만 밤의 바다는 더하다. 거기다 밤이 되면 바다의 마물들은 더욱 흉포해진다.

여기서는 환인의 판단을 기다렸다가 그의 뜻에 따르는 게 최선.

두 여자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심각한 얼굴로 비가 쏟아지는 수평선의 바다를 응시 중인 환인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비단 바다 생물뿐만 아니라, 생물이라면 햇빛을 제외하고는 삶을 논할 수 없다.”

=……?=

갑자기 무슨 이야기지? 잠깐 이해가 안 가지만, 그가 이 상황에 흰소리를 할 리 없으니 귀 기울여 경청한다.

“바닷속도 마찬가지다. 햇빛이 바닷속을 비추면 해조류는 광합성을 하며 산소를 발생시켜 바닷속 용존 산소량을 늘려준다.”

그렇게 되면 주변 바닷속 생태에 영양이 풍부해지고 해양생물이 모여들어 좋은 어장이 형성된다.

생선이 모여들면 필연적으로 그런 생선을 잡아먹는 큰 해양생물이 모여들기 마련이며, 그렇게 생태계가 구축되면 거기에 발을 들이미는 괴물과 마수 등도 많아진다.

“……즉, 반년 넘게 비가 내리고 있는 요르문센 앞바다는 생태계가 초토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겠지.”

=…….=

「…….」

“아드네빌라는 신수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자리매김한 존재다. 위광을 가지고 있어 평범한 마수나 괴수는 그 위광에 닿자마자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죽어버리지. 용의 둥지도 아닌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학살이 벌어졌을 거다. 물속 생태계 변화와 그 학살이 합쳐지면 바닷속 마물 먹이 사슬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알 수 없다.”

「운이 좋다면 바다가 텅 비어있을 거고, 재수 없으면 초대형 마물이 그 시체를 노리고 기어들어 와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래. 배를 끌고 갔다는 옥타크로커스도 그렇게 자리 잡은 놈일지 모르지.”

환인의 설명에 여자들의 표정이 다시 딱딱해진다.

그는 그런 연인들의 뺨을 어루만져 표정을 풀어주며 설명했다.

“지금 당장 출발하는 것은 불안 요소가 있다. 환연이 아무리 릴라이스와 합체했다지만 이대로 출발하면 환연에게 부담을 많이 지운다. 그러니 시자한 장로와 그녀의 제자들이 오길 기다렸다가 그들이 도착하면 출발하도록 하지.”

7~8급에 달하는 희귀 직업자 인어 장로와 그 제자들이라면 혹시 모를 상황에 제법 손을 거들 수 있을 거다.

환인의 이야기에 이실리테와 안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늘 무표정이나 담담한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도 상당히 딱딱하다. 자신들만큼이나 언니와 동생들을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그런 그의 앞에서 어떻게 마음 졸이는 모습을 내비칠 수 있을까.

“피슬리네 씨.”

=네, 네?=

“지금 당장 워르나로 돌아가서 시자한 비아트 장로께 서둘러 달라 전해주시겠습니까.”

=아, 넵!=

워르나는 바깥보다 시간이 절반가량 느리게 흘러간다. 그녀가 느긋하게 준비한다면 하루 이틀도 걸릴 수 있는 일.

=잠깐, 너 다쳤잖아. 치유 받고 가.=

=감사해요!=

안느에게 다친 상처를 치유 받고 환인에게 원기 충전까지 받은 피슬리네는 총알같이 협만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피슬리네가 사라지고 5시간 뒤, 해가 지고 달이 높게 떠올랐을 때 시자한 장로가 세 명의 제자와 함께 협만을 찾아왔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뉴라 장로에게 정리된 정보까지 받아 챙겨오느라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3시간도 채 안 되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온 시자한이 대단한 거다.

그녀가 몸에 걸친 비늘 갑옷은 그녀의 백황색 머리카락과 썩 잘 어울리는 황백색에 일부 뼈로 어깨 받침에 흉갑까지 만들어놓아 척 봐도 최상급 마도기로 분류될법한 물건.

거기에 언월도와 비슷하게 생긴 산호창을 들고 있으니 일당백의 강함이 전해지는 수준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제자라고 하는 인어 세 명도 비슷한 수준의 장비를 갖춘데다 두 명은 4급과 5급 엽사, 한 명은 상급 물정령을 다루는 정령사.

적어도 시자한은 물속에서만큼은 이실리테나 안느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전사이니 다섯 시간이나 기다린 것이 아깝지 않았다.

=으음.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저와 제자들을 기다리신 것은 잘한 결정이셨습니다. 지금부터 저와 제자들이 아신님을 수행하겠습니다.=

“참고로 이쪽이 아까 보셨던 세 명 중 한 명인 환연입니다. 초월급 물 정령인 릴라이스와 합체하여 준 초월급 정령술을 펼칠 수 있습니다. 참고하셔서 의견을 조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 상황을 짧고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자 환연이 정령력을 가감 없이 화악 내뿜는다.

시자한은 인어 여왕과 비슷하면서도 계통이 다른 그 존재감에 식은땀을 살짝 흘렸고 정령사인 제자는 반쯤 기절할듯한 표정이 되었다.

상급과도 간신히 계약한 그녀에게 최상급을 넘어 초월급 정령의 존재감은 순간 의식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환인하고 이실리테하고 안느는 내가 챙길 테니까 시자한 장로는 주변 안전이랑 이상 확인을 부탁할게.」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면 출발하도록……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충돌할 수 있는 부분을 적당히 조율한 환인은 환연이 생선 모양의 보트를 만드는 사이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인어의 호흡 환약을 나누어주었다.

협만 안쪽의 작은 백사장, 유르파가 좌표를 갱신해놓은 곳 근처에 전언을 적어놓은 천을 매 놨다.

혹시 길이 엇갈려 그녀들이 공간도약으로 돌아오더라도 그걸 발견하면 느긋하게 섬에서 기다려주겠지.

환인과 두 여자는 환연이 만든 물의 배를 타고 시자한 장로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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