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94화 (794/813)

794 수중도시 워르나

환인은 여왕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짐작 가지 않았다.

혹시 평온의 파동에서 발생한 에너지를 흡수한 것이 문제가 된 건가. 이유라면 그것 외에는 없을 듯 한데.

환인은 장로실을 나가려는 시자한 장로를 뒤따라가다 그녀가 문 앞에 서서 물 구슬을 불러내는 것을 보고 그녀의 뒤로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예? 앗……?!=

공주님 안기로 시자한을 들자 흠칫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인을 바라본다.

해린족의 문화나 풍습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남자가 거의 안보이며 신분과 입장에서 오는 약간의 자신감으로 무뢰한이라는 소릴 듣지 않겠다는 자신이 있어 나온 행동이었다.

물론 시자한 장로에게 약간의 수작을 겸해 호의를 쌓으려는 흉계도 포함되어있다.

장로실을 둘러보았을 때 기혼자라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시자한 장로는 당황해서 가슴을 출렁일 정도로 움츠러들긴 했지만, 딱히 기분 나쁘다거나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심기를 살핀다.

=그…… 기분 나쁘지 않으시오? 육지 사람들은 해린족의 비늘이 기분 나쁘다고들 하던데. 더욱이 본인의 몸에는 흉터가…….=

“눈이 아니라 옹이구멍을 가진 사람들이군요. 장로님의 흉터는 치열한 삶의 훈장입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신경 쓰지 마시길.”

그리 말하며 문을 열고 나가는 환인의 행동에 시자한=비아트는 살짝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어린 동족들도 흉터투성이인 자신을 무서워하고 매하나 시클링은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도 않는다.

동족과 도시를 수호하는 일에 대가를 바란 적은 없지만…… 이렇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남자를 만나니 시자한은 가슴이 옥죄이는 느낌에 조금 숨이 차는 느낌이었다.

어째서일까. 그의 손이 닿아있는 몸과 비늘이 장독 민어의 독에 당했을 때보다 더 뜨겁고 아린다.

시자한은 이 감각에 집중하면 왠지 자궁이 이상하게 되어버릴 것 같아 애써 신경을 돌리는데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후우, 작게 한탄했다.

=어머나 세상에. 자한 언니, 오늘 알 낳으러 가는 날이야?=

하필이면 저 녀석과 마주치다니. 내일 워르나 전체에 소문이 퍼지겠어.

수로 건너편의 장로실에서 사는 뉴라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들은 시자한이 엄한 목소리로 크림색 머리카락과 비늘을 가진 같은 장로를 나무랐다.

=뉴라, 여왕님께서 부르시는 영혼사님이시다. 군말하지 말아라.=

시자한 장로의 집이 있는 각청궁 하층에는 총 4개의 방이 있었다.

북쪽을 기준으로 사이에 수로 두 개를 놓고 왼편에 시자한 장로의 장로실과 다른 장로실 하나. 수로 건너 오른편에 뉴라의 장로실과 또다른 하나.

만약 여왕이 호출하지 않았다면 환인 일행을 그녀, 뉴라에게 안내해주었을 것이다.

그녀가 바로 워르나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취합하는 정수 방면 장로였으니까.

직업자는 아니지만 굉장한 실력의 정령사이자 법술사인 뉴라는 상급 물정령처럼 허공을 우아하게 헤엄쳐 환인 일행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긴 시자한과 환인을 번갈아 보며 고양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워르나의 투귀가 소녀처럼 육지 인간의 품에 다소곳이 안겨있는 건 큰 사건인걸?=

=내가 수로까지 가는 것을 도와주신 것뿐이다.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 더 말하지 마라.=

더 놀렸다간 폭력을 쓰겠네. 시자한의 연이은 다그침에 입을 열려다가 닫은 뉴라는 크림색 풍성한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쓸어 넘기며 환인에게 눈웃음을 쳤다.

=안녕하세요, 육지에서 오신 분. 저는 뉴라 나이오트에요. 워르나 인근의 정보를 수집하고 취합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정수 방면을 맡고 계시는 장로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환인입니다.”

=저도 반가워요. 하지만 영혼사시라고 하셨나요? 아우라가…….=

=그만. 이분의 신원은 내가 확인하였다. 여왕님께서 부르셨기에 지금 상층으로 올라가 보아야 하니 더는 훼방 놓지 말아라.=

=언니도 참. 저도 여왕님의 호출을 받았다고요.=

=……너는 왜?=

=여왕님의 의중을 저따위가 어떻게 알겠어요? 자아, 자한 언니는 수로에 던져놓고 저랑 같이 가요, 환인 님~.=

=너……!=

「그쯤 하는 게 어때?」

자신들이 안 보이는 것처럼 티격태격하는 시자한과 뉴라를 못마땅해하던 환연이 약간 날 선 어조로 쏘아붙였다.

「당신들 여왕이 환인을 불렀다며. 친목은 나중에 쌓고 빨리 안내해주면 좋겠어. 우리도 그렇게 마냥 느긋한 상황이 아니거든.」

=음. 미안하오. 즉시 안내하도록 하지.=

시자한은 즉시 사과하고 환인의 품에서 내려온 뒤 바닥에 물의 길을 만들어 주르륵— 미끄러져 수로로 들어간다.

그런 그녀를 따라간 뉴라가 매하 대신 물썰매를 만들어 환인 일행을 태우려 했지만, 환연이 손을 쓰는 게 먼저였다.

물을 굳혀 4인승 자그마한 보트를 만들고 그걸 중급 정령에게 끌라고 시키자 뉴라가 보트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놀라워한다.

=세상에, 물과 물의 정령을 어떻게 그리 자유자재로 다루는 거죠? 워르나의 중급 아이들은 말 안 듣기로 유명한데.=

「…….」

=아하하하. 알았어요.=

‘군소리 말고 안내나 해.’라는 환연의 냉담한 시선에 뉴라는 호호 웃으면서 시자한과 함께 수로에 잠겨 들어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인은 앞에 마주 보고 앉은 환연의 못마땅한 시선을 상층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받았다.

「…….」

‘맥락없이 시자한을 안아들었던게 못마땅했던 건가.’

하지만 환연이 이런 질투를 하는 것도 이상한데…….

……그런가. 릴라이스와 합체해서 인간형으로 커지며 질투와 독점욕이 약간 생긴 거군.

저렇게 툴툴거리는 건 질투하는 자신이 생경해서 보여주는 신경질 같은 거고.

그 후 공중수로를 따라 이동하고 때때로 각청궁을 관통하기도 하며 10분 정도 상층으로 올라간 끝에 도착한 곳은 처음 워르나에 도착한 곳의 반대편이었다.

=처음 발을 디뎠던 곳은 각청궁 반대편이었구나.=

=맞아요. 바깥에서 들어올 때는 모두 그곳에서 나오게 되죠.=

뒤쪽은 다소 밋밋하고 그늘이 져 무던한 느낌인데 반해 이쪽은 각청궁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분수처럼 보였다.

각청궁의 전체적인 형태는 비유하자면 와인바에서 쓸법한 등받이가 길쭉한 다리 하나의 의자.

거기에 유려한 각선을 넣고 검은뿔소라의 형상을 씌우면 각청궁이 된다.

콰과과과과과……

나탑, 각청궁의 꼭대기에서 분당 수만 리터의 물이 쏟아져 각청궁의 중간층에 떨어져 호수를 이룬다. 그런 호수에 여러 줄기의 공중수로가 또 모여들어 합쳐지고 있다.

그렇게 폭포와 공중수로가 합쳐진 물은 다시 흘러내려 지상으로 초대형 폭포가 되어 쏟아지는 식.

뀨~?

뀨뀨~!

각청궁 중층 호수로 들어서며 웅장한 각청궁의 폭포 호수를 정신없이 감상하던 안느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매하 울음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 각양각색의 매하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순진무구한 모습에 작게 웃음 짓는다.

=매하들이 여기 모여있네.=

순진무구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성가시다는 뜻이 된다.

매하가 족히 수십 마리 가까이 모여들어 신기한 듯 보트를 졸졸 따르거나 툭툭 건드리니 나아가는 길에 상당히 방해된다.

급기야 앞을 가로막는 모습에 시자한이 눈썹을 찡그리며 매하들을 향해 나지막이 호통쳤다.

=이놈들. 여왕님을 뵈러 가야 하니 저리 가라!=

뀻!?

뀨우~!

그러자 매하들이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도망가버려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겁이 많다는 이야기에 어울리는 반응이다.

덕분에 더 이상 방해 없이 중층 폭포 호수를 거슬러 올라가 폭포에 다가가자 두두두두— 대량의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그즈음 폭포 한가운데가 기다렸다는 듯이 커튼처럼 좌우로 열리며 물방울 모양의 통로를 드러냈다.

=…….=

=…….=

통로에 들어서자 폭포는 다시 닫혔고 고막이 얼얼할 정도의 폭포 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침묵에 잠겨 드니 들리는 것은 찰방찰방, 보트가 나아가며 물결과 부딪치는 소리뿐.

폭포 커튼이 드리워지며 빛까지 차단되었는지 약간 어두운 통로에 푸른 물결무늬가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물이 스스로 빛나는 건가……?=

그 몽환적인 광경에 이실리테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물을 손바닥으로 퍼 올려보지만 딱히 특이한 것은 없는 평범한 물이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던 일행은 어느 순간 허밍이 작게 들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님. 어디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진짜. 누가 부르는 거지?=

「해린족 여왕이 부르는 거 아냐? 혼자 부르는 거 같은데.」

그의 여자들이 작게 속삭이고 있으니 앞서 조용히 헤엄쳐 나아가고 있던 시자한이 뒤를 돌아보며 당부했다.

=잠시 후면 여왕님의 어전에 당도하오. 부디 여왕님께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길 부탁드리겠소.=

“예.”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통로 너머에서 흘러들어오는 존재감은 상당히 무해한 느낌이다.

워르나 전체의 분위기도 그렇고 이것이 여왕의 기질이라면 싸움으로 번질 일은 없겠지.

통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물방울 모양의 통로가 점차 커지고 작게 들리던 허밍 음도 뚜렷해진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살짝 코너를 튼 순간, 빛이 확 쏟아지며 공간이 압도적으로 넓어졌다.

=……!=

「…….」

여자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살짝 얼어버렸다.

흡사 남국의 앞바다처럼 아름답게 꾸며진 대형 오페라 하우스 정도의 홀. 무대처럼 거대하고 넓은 단과 그런 단을 가득 채울 정도의 커다란 조개껍데기 침대.

그리고 대왕고래만큼이나 거대한 인어.

뭔가, 신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도 아닌 신비한 느낌의 거대 여자 인어는 조개껍데기 침대에 엎드려있었는데…….

저 깊은 바닷속 심해처럼 짙푸른 머리카락은 명주실만큼이나 가느다란데 그런 머리카락이 물속에 있는 것처럼 보기 좋게 너울거린다.

머리에는 눈썹 위까지만 가리는 하얀 면사포 비슷한 것을 썼는데, 감고 있는 눈꺼풀에는 푸른 별빛을 새겨놓은 것처럼 무수한 작은 빛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다.

입술도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검으면서 별빛처럼 반짝인다.

푸른 산호 목걸이, 노란 산호 귀걸이, 하얀 산호 팔찌 등, 머리에 쓴 면사포까지 느껴지는 위상력을 보면 유물급에 가까운 장신구들이다.

환인 일행이 탄 보트가 조개껍데기 침대가 있는 곳 근처에서 멈추자 거대 인어, 인어 여왕이 천천히 눈을 떴다.

=아…….=

=누, 눈이…….=

「……!」

환인의 여자들이 흠칫하고 놀라 어깨를 떤다.

홍채도, 동공도, 흰자위도 전부 칠흑처럼 새까맣다. 그런 눈동자를 채우는 것은 크고 작은 십자 모양의 무수한 빛덩어리.

환인은 저 눈빛을 받자마자 머릿속에 느낌표를 띄우곤 보트에서 일어나 인어 여왕을 올려다보며 신언으로 말했다.

『당신이 낮에 노른을 보았던 바다의 신수군요.』

=……!?=

=……!!=

이번에는 시자한과 뉴라가 깜짝 놀라 환인을 돌아본다.

그녀들도 바보가 아니다. 이 바다에서 반백 년을 살아오며 갖은 경험을 한 해린족의 장로들.

영혼을 짜릿하게 만드는 저 목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신, 신언? 그러면…… 신님?=

=바보 언니야. 아신님이시잖아…!=

=아니…… 아신이시면 오르빈치에 드셔야지 왜 워르나에…….=

중얼거리던 시자한의 머릿속에 아까 들었던 이야기가 재생된다.

아드네빌라, 백청룡이 요르문센 섬 앞바다에 자리를 잡았고 저 여행자님…… 아신님은 그 백청룡을 찾으러 왔다는 것.

시자한의 심장이 쿵쾅콩닥 뛴다.

그녀가 그러는 사이 인어 여왕은 환인의 이야기에 눈매를 곱게 휘며 작은 미소를 띠고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짓눌려있던 하얗고 거대한 유방이 그 움직임에 제 모습을 되찾는다. 그리고 환인은 어째서 그녀가 조개껍데기 침대에 엎드려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새가 알을 품는 것처럼 인어 여왕은 가슴으로 은은한 푸른 안개를 휘감은 사람 크기의 수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수정의 정체는 환인이 짐작했던 대로 심핵이었다.

그리고 심핵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환인의 눈동자가 황금빛에 휩싸이며 신식 영혼의 눈이 발동, 인어 여왕이 심핵과 연결되어있으며 인어 여왕이 곧 워르나이고 워르나가 곧 인어 여왕임을 알아차렸다.

‘미궁을 해린족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심핵과 융합되는 길을 선택한 건가…….’

저 밤하늘과 별빛을 잘라내어 붙여놓은 듯한 눈동자가 그 증거다.

상체를 일으킨 인어 여왕은 거대한 팔을 내밀어 그 손바닥을 환인에게 펼쳤다.

그녀의 손바닥에 맺힌 것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자그마한 황금빛 구슬, 신식 영혼의 파동으로 발생한 에너지의 집결체였다.

《《가져가세요. 이 에너지는 워르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여왕의 홀에서 웅웅 울려 퍼지는, 신언에 비하면 약간 모자라지만 신묘한 목소리에 여자들이 어깨를 작게 움츠린다.

환인은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손바닥에 손을 뻗어 그 황금빛 구슬을 받았다.

역시 이것 때문에 자신을 부른 거였군.

『미안합니다.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것 같군요.』

진심을 담아 사과하자 인어 여왕은 부드러운 미소를 눈매에 띄우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신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시자한, 뉴라.》》

=예, 여왕님.=

=네에.=

《《너희는 아신님을 돕거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왕님!=

=네에!=

인어 장로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여왕을 환인은 말없이 물끄러미 응시했다.

여왕이 저토록 거대한 모습이 된 것은…… 심핵과 연결되어서 발생한 부작용 중 하나인가.

‘심핵을 제어하는 것은 평범한 수단으로는 불가능한 걸지도 모르겠군.’

히스론드 수도 팔라툼의 미궁에서 술법 기사들이 보여주었던 집흡방출식은 심핵력을 심핵에서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위상력보다 한 단계 높으며 심핵력보다는 한 단계 낮은 소비성 에너지를 강제로 뽑아내는 것임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심핵 그 자체를 조종해 심핵력을 갈취하는 방법은 아직 시도해보지 못하였는데…….

‘여왕의 상태를 보면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워르나의 심핵은 이미 인어 여왕의 유방에 파묻혀 모습을 감추었기에 더는 분석을 못 하지만, 상황을 보면 심핵력을 늘리는 방법은 미궁의 심핵을 찾아 부수는 것 뿐인 듯하다.

《《그만 손님을 모시고 물러나거라.》》

여왕의 축객령에 보트를 끌어서 홀을 나가려는 시자한과 뉴라의 뒤통수로 잠시 시선을 주었던 환인은 자신을 응시하는 여왕을 바라보다 질문을 가슴에 묻었다.

저 여자는 무척이나 애매한 위치다.

신수는 신수이지만 심핵의 힘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심핵에 얽혀 워르나에 묶이게 된……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미궁의 중핵이 되어버린 상태.

진정한 아신이 되지 않도록 현재 한 발만 걸친 자신처럼 그녀 또한 세계의 섭리? 이치? 그런 것에 살짝 꼬리지느러미를 걸친 상황이다.

그리고 미궁의 생성과 소멸은 세계의 뜻과도 같은 것.

그런 것을 두고 특이점이나 다름없는 그녀와 자신이 언급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지나가는 것이 이득일 테지.

인어 여왕에게 살짝 묵례하자 그녀도 다시 눈을 감더니 살짝 고개를 숙여주고는 베개만큼이나 커다란 유방에 반쯤 머리를 기대며 다시금 허밍을 하기 시작한다.

들어온 수로의 반대쪽 통로로 진입하니 허밍 소리가 급격히 작아지며 다시금 찰방이는 소리가 물방울 모양 통로를 울린다.

“시자한 장로님.”

=말씀하십시오, 아신님.=

“저는 아직 진정한 아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평범하게 이름을 불러주시거나 그마저도 부담스럽다면 여행자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어찌……. 아,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워르나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이곳 환경에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빠르게 요르문센 섬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환인의 뜻을 눈치챈 뉴라는 그를 돌아보며 아까보단 공손히 입을 열었다.

=환인 님의 뜻은 알겠어요. 그러면…… 환인 님께서는 어떤 이유로 워르나를 방문하셨나요?=

“백청룡 아드네빌라, 알류겔 호수의 주인이 요르문센 섬 앞바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수색 능력으로는 그녀를 찾기 어렵더군요. 해서 바다의 종족인 여러분들의 힘을 빌릴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러네요. 그 광대한 영역이라면 전투를 상정한 수색이 필요할듯하니까…… 우선 그 백청룡이라는 신수님에 관한 정보를 확인해보아야겠어요. 담당 인어를 찾아 탐문을 해야 할듯하니 요르문센 섬으로 돌아가서 기다려주시면 내일모레 안으로 연락을 드릴게요.=

장난기를 뺀 뉴라의 이야기에 시자한도 말을 얹었다.

=탐색은 제가 여행자님을 돕겠습니다. 장비를 챙기고 제자도 호출하여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시자한 장로께서는 워르나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 중이셨던 게 아니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왕님의 명령은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 여행자님께서는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되도록 진행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요르문센 섬에서 뵙겠습니다.”

요르문센 섬의 7시 방향 협만에서 배를 정박시켜놓았다고 이야기하자 두 인어 장로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각청궁의 하청으로 내려갔다.

가기 전에 시자한이 복귀를 도와줄 인어를 호출하였는데…….

=버, 벌써 돌아가시나요? 사나흘은 머무르시지 않을까 했는데요…….=

조금 어안이 벙벙한 시드네가 황당함과 당황함을 애써 감추는 모습으로 물었기에 환인도 대강 그녀가 이해할 만큼의 이야기만 들려주었다.

“어쩌다 보니 볼일을 빠르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배를 두고 온 것도 조금 걱정되니 일찍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해주십시오.”

=알겠어요. 그러면 왔던 곳으로 다시 안내해드릴게요.=

순순히 납득한 시드네는 물속에서 휘파람을 불어 매하를 네 마리 불러들였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길에 매하의 도움을 받을 모양새.

=워르나와 바깥이 연결된 통로는 대략 서른이 넘어가요. 그리고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도 모두 다르지요. 요르문센 섬의 협만으로 나가는 길은 워르나의 지저 호수에 있어요.=

지저 호수는 각청궁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닥에 고여 형성한 깊고 거대한 호수를 가리킨다.

시드네는 공중수로를 타고 그 지저 호수로 내려갔는데, 환인은 각청궁이나 수로에서 보이지 않던 해린족의 남자들을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안에 인어들의 평범한 생활상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있었던 것이다.

“…….”

환인은 키가 3m 정도 되는, 귀상어의 몸에 팔다리를 붙여놓은 듯한 해린족 남자가 지나가는 것을 잠시 눈으로 좇았다.

“…….”

저쪽에는 쏠배감펭의 몸에 사람의 팔다리가 난 1.5m 키의 어인이 공기 방울 주머니에 산호며 생선을 담은 채 어디론가 헤엄쳐가는 중이고 반대쪽에서는 베타, 샴투어라고도 하는 붉고 화려한 어인이 공기 방울 같은 것을 계속 만들어 붙이며 집을 짓고 있다.

인어와 어인, 머맨과 머메이드.

족히 7만에 가까운 해린족이 호수 속에 삶의 터전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니 공기 방울을 머리에 쓴 안느가 시드네에게 물었다.

=시드네 씨. 해린족 남자는 각청궁이나 공중수로에서 안 보이던데 이유가 뭐야?=

=우리 종족 남자들은 물 밖에서 생활하지 못해서예요. 여자는 물 밖에서도, 물 안에서도 숨을 쉴 수 있지만 남자는 물 밖으로 나가면 질식해서 죽어버리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물고기잖아요?=

=그, 그러네.=

당연한 것을 물은 여자가 된 안느가 뻘쭘하게 대답하며 거대한 랍스터를 타고 가는 장어 어인을 보곤 조금 어지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안느, 괜찮아?=

=어어. 근데 나… 앞으로 물고기 못 먹을 거 같아…….=

=어차피 수목화 때문에 못 먹으면서.=

=……왜애. 도령 아이 임신하면 그때 먹어도 되잖아.=

=그럼 먹어.=

=이슬이 넌 괜찮아?=

=안 괜찮을 이유가 어디 있어. 해린족 남자를 봤다고 생선을 못 먹는 건 루크랑 인돈족 남자를 봤다고 돼지고기를 못 먹는 거와 같아.=

=그런가……?=

작게 중얼거린 안느는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뭐, 지금은 조금 충격받아서 못 먹어도 나중에 가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워르나의 지저 호수에서도 가장 아래쪽에 난 시퍼런 동굴로 눈길을 주었다.

=저곳이 요르문센 섬과 이어진 동굴이에요. 저 안은 물살이 빠르니까 매하의 등을 단단히 잡아주세요. 혹시라도 튕겨 나가거나 공기 방울이 벽에 긁히면 방울이 터질 수 있거든요.=

=어, 괜찮아. 우리 전부 인어의 호흡 환약을 가지고 있거든.=

=그럼 괜찮겠네요. 알겠습니다. 동굴에 진입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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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대충 대가리박고 지각해서 죄송하다는 이야기)

(변명 같지만 어금니가 깨져서 괴롭다는 이야기)

(나쁜 일이 계속 몰려와서 슬프다는 이야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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