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1 아드네빌라를 찾아서
급히 시작한 선상 비비큐 파티였지만 술과 음료, 생선에 고기와 각종 야채가 가득 준비된 풍족한 식사였다.
물론 술은 현재 일행의 상황 탓에 1인당 두 잔으로 제한했다.
치직— 지지지직-
온갖 고기와 생선, 야채가 꼬치 막대기에 꿰인 채 숯불에 구워지며 향이 선상을 가득 채운다.
산적처럼 넓적한 고기와 호박에 브로콜리 등을 끼운 꼬치, 주먹만 한 새우와 피망, 방울토마토, 연근 등을 끼운 꼬치, 소시지와 떡, 애호박, 가지와 버섯 등을 끼운 꼬치.
물론 수목화 중인 안느와 아영을 위한 only 야채 꼬치도 있고 각종 부위별 고기만 끼운 고기 꼬치, 팔뚝만 한 생선을 통째로 올린 생선구이 등 먹거리가 다양하다.
=야, 아영아. 알감자 더 올려. 버섯도. 아스파라거스는 어딨지?=
=이거 그릴 틈이 넓어서 떨어지겠어요. 촘촘한거 가져올게요!=
=읏차!=
=와아…! 유리 언니, 고기 너무 큰거 올리셨어요…! 이렇게 크면 골고루 익히기 힘든데….=
=괜찮아~ 불을 직접 움직여서 익힐 거니까!=
“우오오오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랍스터 버터 숯불구이 존맛탱……!=
일행은 깨끗한 음식 재료 상자에서 각자 기호에 맞는 재료를 꺼내 꼬치를 만들어 먹거나 아니면 통째로 그릴에다 구우며 음료와 함께 비비큐를 즐긴다.
야채만 굽는 곳, 야채와 고기를 굽는 곳, 고기만 굽는 곳, 생선만 굽는 곳.
네 곳에서 하얀 연기와 함께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환인. 나 빵에 고기 잔뜩 올려줘.」
「나도 만들어줘!」
“그래.”
환인은 환연과 노른을 위해 그릴에서 핫도그 빵을 구운 뒤 거기에 고기를 종이장처럼 얇게 채 써서 철판에 구운 것을 듬뿍 올리고 겨자와 고추냉이,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를 잔뜩 뿌려주었다.
「응긋, 매워! 맛있어!」
「호아아…! 후으응…!」
고추냉이와 겨자의 톡 쏘는 맛에 연신 호호 숨을 내쉬며 핫도그를 먹어치우는 둘의 모습에 여자들도 그의 팔이며 어깨에 달라붙어 자신도 만들어달라 부탁한다.
환인은 작게 웃으며 그녀들을 위한 고기 핫도그를 계속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들이 먹여주는 꼬치구이도 함께 먹으면서.
그렇게 다들 어느 정도 배를 채워 꼬치구이를 만드는 속도가 줄기 시작할 때, 이실리테가 애지중지하는 조미료 가방에서 커다란 소스통을 꺼내 들었다.
비장의 소스인지 이실리테의 얼굴이 자못 진지하다.
딸칵, 뚜껑이 열리며 반투명한 옅은 녹색의 액체가 나타나는 순간 톡 쏘는듯한 찡한 냄새가 일행의 후각을 자극했고, 열심히 꼬치를 구워 먹던 일행이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슬아 그거 뭐야? 냄새가…… 고추냉이 같기도 하고 생강 같기도 한데 색은 옅은 녹색이고?=
=얼마 전에 완성한 특제 비법 소스야.=
=특제?=
=특제!=
=언니 특제 소스……!=
새끼손가락으로 소스를 살짝 찍어 먹어본 이실리테는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만들어졌네. 아영아, 야채 꼬치 하나 가져와 봐.=
=넵!=
뭐가 특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실리테 언니의 요리 솜씨는 왕궁 수석 주방장을 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실력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입으로 절대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는 언니인데 그런 언니가 무려 ‘특제 비법 소스’라고 했다.
거기다 야채 꼬치를 가져와 보라고 한 것은 저 소스를 자기나 안느 언니님도 먹을 수 있다는 말!
후다닥 달려가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야채 꼬치를 가져온 아영은 버섯-브로콜리-아스파라거스-피망-방울토마토의 클래식한 야채 꼬치에 옅은 녹색 소스가 꼼꼼하게 발라지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특제 비법 양념이 코팅된 꼬치가 그릴 위로 올라가니…….
화아아아—…….
=……?!=
=……!=
=엇……!=
“헐?”
코를 찡하게 만들면서도 새콤매콤한 향기가, 고기를 굽는 것 같으면서도 생선을 굽는 것 같기도 하고 향기 강한 채소를 굽는 것 같기도 한 냄새가 넓게 퍼져 나와 일행의 침샘을 마구 자극했다.
배를 적당히 채웠는데도 이만한 냄새라니?
침샘이 폭발한 여자들은 쉴 새 없이 꼴깍거리며 이실리테의 손만 빤히 바라보았고, 이실리테는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들여 야채 꼬치 하나를 구워낸다.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꼬치를 조심스럽게 접시에 받쳐 환인에게 올렸다.
=주인님, 한 번 드셔보세요.=
“잘 먹지.”
여느 고급 음식점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향기에 환인도 관심을 드러내며 잘 구워진 야채 꼬치, 가장 끝에 꿰여있는 한입 크기의 느타리버섯을 빼물었다.
“……!”
치아가 버섯을 끊는 순간 즙이 흘러나와 혀를 감싸고, 그 순간 최고급 육질의 고기를 시어링까지 완벽하게 마친 스테이크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과장 보태지 않고 버섯 조각 하나에 100g의 스테이크가 농축된듯한 맛이다.
“이건 스테이크 맛인가? 굉장하군.”
=스테이크? 스테이크 맛이니?=
=이실리테 언니가 스테이크 맛을 내는 소스를 완성하셨나 봐요!=
=도령이 저렇게나 말할 정도면 맛도 엄청 뛰어나단 이야긴데!=
이어서 브로콜리를 빼 먹은 환인은 저도 모르게 미간에 힘을 잔뜩 주었다.
“이건 닭고기 맛인가? 어떻게.”
=엥? 닭고기?=
두 번째로 혀에 닿은 소스 맛은 달짝지근한 거 같으면서도 매콤함과 쓴맛, 약간의 신맛이 느껴졌는데 그 위에 브로콜리의 식감과 채즙이 더해지니 순식간에 비비큐 치킨 맛이 혀의 미뢰를 점령했다.
여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세 번째인 아스파라거스를 씹은 환인은 이번엔 육고기의 감칠맛에 생선의 진한 담백함이 섞여 하모니를 이룬다는 사실에 살짝 어이없어했다.
=…아악! 더는 못 참겠어! 이슬아, 빨리빨리! 소스 발라줘!=
늘 미식가처럼 한 입 한 입 음미하던 환인이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여주니 안느는 참지 못하고 야채 꼬치를 잔뜩 가져와 성화를 부렸다.
야채에서 고기맛을 내게 하는 소스라니, 들어본 적도 없지 않은가.
조바심을 내는 안느의 모습에 이실리테가 후후 웃으며 꼬치를 한 번에 구워 나누어준다.
그리고 꼬치를 먹어본 여자들은 MSG를 처음 마주한 요리사처럼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소스 하나로 이런 다양한 고기의 맛을 구현해낸 거지?
육고기도 야채나 채소의 종류에 따라 소, 돼지, 닭, 양, 개, 곰, 사슴 등 다양한 맛을 보여주었고 그건 생선도 마찬가지였다.
삼치, 방어, 참치, 전복, 광어, 게, 새우, 랍스터, 장어, 거북이, 고등어, 도미…….
소스의 양과 두 종류 이상의 야채를 동시에 먹으면 탕, 구이, 찜, 볶음 같은 맛의 바리에이션도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오, 신기하네. 그래서?’라는 반응으로 끝낼 법한 소스였지만 안느와 아영에게는 아니었다.
이실리테가 개발해낸 비법 소스는 수목화 상태라 제한적인 식사만 가능한 플뢰에게 고기의 유혹을 치료해주는 마법의 조미료였으니까.
=너희가 고기를 못 먹게 된 이후로 계속 애달픈 시선을 보내서 만들어본 거야. 마음에 들어?=
=이슬아, 사랑해!=
=이실리테 언니. 이제부터 언니를 성모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와락 껴안으며 가감 없이 감동한 표정과 마음을 드러내는 둘의 행동에 이실리테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특제 비법 소스의 향기는 동물에게도 통하는지 작아진 쿠에들이 비비큐 그릴 근처에서 끽끽꼭꼭 울어대며 환장하는 모습에 유르파가 꼬치를 나누어주며 안느에게 물었다.
=그런데 있잖니. 자기는 반로환동하면서 아신님이 되었잖아? 그러면 수명의 제약은 거의 벗어난 거 아니야?=
=……응?=
=8급 직업자만 되어도 종족 평균 수명의 서너 배를 사는 편이잖아. 그런데 자긴 아신님이 되었으니까 이제 안느 아가씨랑 아영이가 굳이 수목화를 유지할 이유가 있는가 싶어서.=
체블리프에서 만났던 안느의 모친, 슈아나데는 이렇게 설명했었다.
‘정수의 활용 방법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반려자를 위해 정수를 원액 그대로 제공하여 건강과 활력을 증진하고 무병장수하게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꽃에 정수를 뿌려 순수화로 만드는 것이지요.’
건강과 활력 증진은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무병장수는 아신의 신체가 된 지금 이미 이루어진 것과 다를 바 없다.
=…….=
=…….=
둘은 유르파의 지적에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얼굴로 머릴 긁적였다.
그렇게 따지면 수목화가 필요 없긴 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표정으로 꼬치를 굽고 있는 환인을 힐끔거리던 안느가 물었다.
=도령. 도령은 어떻게 생각해?=
“글쎄.”
사람의 삼대 생활 요소에 엄연히 식食이 들어갈 정도로 먹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수목화는 욕구 하나를 절제해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게 얼마나 괴로울지는 경험해본 사람만 알겠지.
환인은 딱히 무병장수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살다 보면 잔병치레를 할 수 있고 죽는 것도 생명이 있는 생물이면 당연히 맞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생이 길고 짧은 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그였는데, 그럼에도 안느의 정수를 계속 섭취한 것은 그녀들의 희망과 바람이 자신의 무병장수였기에 받아들인 점이 적지 않았다.
눈을 뜬 환인은 안느와 아영의 시선에서 계속 수목화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챘다.
“…안느 네가 수목화를 유지하겠다면 나는 좋다. 너의 정수는 내게 활력수나 다름없으니까. 아영, 너도 정수로 키우는 순수화가 곧 꽃을 맺을 시기이니 꽃이 성공적으로 피어난다면 그 꽃잎은 유르파의 연금술로 뛰어난 약이 되어 너희들의 양식이 되겠지.”
진지한 이야기에 눈치껏 구석에 박혀서 야금야금 고기 꼬치만 집어 먹는 김철수와 김영수를 잠깐 본 환인은 다시 여자친구들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너희가 수목화를 풀겠다고 해도 나는 좋다. 너희가 각종 육류를 보며 애달픈 표정을 짓는 걸 보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이실리테가 만들어주는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하는 걸 구경하는 것도 좋겠지.”
=그러니까…… 도령은 우리 결정에 맡기겠다는 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느는 조금 붉어진 길고 뾰족한 귀를 매만지다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계속 유지할래. 아영이 너는?=
=저도요. 적어도 언니들이랑 벨하고 노른이 먹을 불로장생약 하나씩 만들 때까진 유지해야죠.=
일부러 이 주제를 꺼냈던 유르파는 이전처럼 평화로운 표정이 된 그녀들 바라보다 슬쩍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모종의 이유로 수목화를 끝내야 할 일이 발생한다면 갑자기 그 말을 꺼내는 것도 그녀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과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수년 동안 말없이 유지해오던 것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겠다고 말해야 한다면, 그게 설령 평범한 아르바이트라 해도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지 않은가.
물론 그가 나쁜 소리를 할 일은 없다. 안느나 아영이 수목화를 멈춰야겠다고 하면 그걸 수용하고 나아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 그 문제도 해결해주려 노력하겠지.
하지만 장본인이자 당사자는 그렇게 마음 편히 있을 수 없다. 안느와 아영은 일행의 건강과 수명을 책임지는 중요한 위치를 나름대로 담당하고 있었으니까.
그랬는데 우연히 한 번 언급해둘 만한 주제가 나왔고 덕분에 이렇게 이야기를 해놨다.
나중에 혹시라도 이야기를 꺼내야할 상황이 온다면 그녀들은 한결 편하게 언급할 수 있겠지.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전례를 남겨놓았으니까.
랍스터 숯불구이를 뜯어먹는 실루를 쓰다듬어주던 유르파는 문득 절벽 위를 보았다가 실소를 흘렸다.
=아하하하. 이슬이 아가씨, 저기 위 좀 봐.=
=……?=
그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던 이실리테가 눈을 끔뻑였다.
돛대나 돛과 돛 사이의 로프에 잔뜩 앉아있는 바닷새들. 그리고 절벽 위 가장자리에 줄지어 늘어선 주먹만 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큰 소동물들.
그런 동물들이 그릴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영이 기막혀하며 중얼거린다.
=설마 저 동물들이 이실리테 언니의 소스 냄새에 이끌려 온 거에요?=
=그런 거 같은데?=
눈을 끔뻑이던 안느가 고기 꼬치에서 살점 하나를 빼 난간 바깥쪽으로 휙 던지자 그 근방에 앉아있던 바닷새들이 번개같이 날아올라 고기 쟁탈전을 벌인다.
=우와, 이슬이 요리 솜씨는 이제 동물들한테도 통하네.=
=처음부터 노른이 입맛을 사로잡지 않았었니?=
=그랬던가?=
히히 웃으며 즐겁게 꼬치에 특제 소스를 발라가면서 굽는 여자들.
환인도 작은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꼬치구이로 식사를 하다가 기묘한 인기척에 협만의 절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무로 입구가 가려진 해저 동굴 근처 수면에 몇 개의 여자 사람 머리가 둥둥 떠 있다.
“…….”
역시 나왔군. 이실리테가 만든 특제 소스 덕분에 양념갈비까진 굽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본격적인 비비큐 파티가 벌어지기 전, 여자 인어 영혼을 불러들여 간단한 정보를 입수했던 환인이었기에 놀라지 않고 꼬치 몇 개를 접시에 담아 해린족이 있는 난간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난간에 다가서자 멀리서 수면 위로 눈만 빼꼼 내밀고 있던 인어들이 약한 경계심을 내며 슬그머니 물러난다.
환인은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다양한 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인어들를 바라보다 개량형 방벽 패널 한 장을 소환해 그 위에 접시를 올리고 인어들 쪽으로 천천히 날려 보냈다.
더욱 경계심이 짙어지는 인어들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어려 보이는 초록색 머리카락의 인어는 반대로 호기심을 드러내며 수면에 내려선 접시로 다가와 그것을 가져간다.
환인은 후, 작게 웃고는 패널을 회수한 뒤 비비큐 파티를 즐기는 여자친구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얼마 후.
=도령. 배 근처로 해린족이 가까이 온 거 같은데? 아까 쟤들한테 먹을 거 준 거 맞지?=
“그래. 꼬치구이를 머릿수에 맞게 줬었지.”
그 말을 하고 난 직후, 그를 부르듯이 주먹만 한 물방울이 퐁- 포퐁— 솟아올라 갑판에 떨어져 테니스공처럼 통통 튄다.
그걸 본 쿠에들이 우르르 몰려가 물공을 가지고 장난치기 시작하는데 물공은 멈추지 않고 하나씩 둘씩 밑에서 솟아올라 갑판에 통통 떨어져 내렸다.
환인이 난간 쪽으로 다가가 얼굴을 내밀자 순간 도망칠 것처럼 움츠러들었던 인어 다섯이 수면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주신 음식 잘 먹었어요!=
=맛있었어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인어들에게 환인이 물었다.
“조금 더 드셔보시겠습니까.”
=더 주실 수 있으신가요?!=
=먹고 싶어요!=
=야아~ 모두 조용히 해봐~.=
자연색으로 염색한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빨간 머리카락의 인어가 다른 인어들을 진정시키더니, 몸에 비스듬히 매고 있던 해초 가방에서 하얀색 가리비를 꺼내 환인에게 휙 던졌다.
보기에는 평범한 가리비인데 뭔가 싶어 열어보니 안에는 신선한 파래가 잔뜩 들어있고 사이에 새끼손톱 크기의 진주 한 알이 자리잡고 있었다.
=육지 사람은 그거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앗?!=
환인은 그걸 빨간 머리 인어에게 다시 돌려준 뒤 여자친구들이 잔뜩 구워놓은 꼬치구이를 접시에 담아 다시 내려주었다.
“우리도 식사 중이라 구워놓은 꼬치구이가 많으니 나눠드리겠습니다. 사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어.=
설마 진주를 돌려줄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꼬치구이가 가득 담긴 접시를 받은 빨간 머리 인어가 당황한다.
어쩌지? 이거 그냥 받아도 되나? 마을 장로들은 육지 인간을 함부로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때 환연이 그의 뒤에서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협만의 입구 쪽을 가리켰다.
「환인. 나가족이 몰려오고 있어.」
고개를 돌리자 그 근처에서 감시 임무를 수행하던 영령 중에서 하나가 그제야 날아와 나가족이 일백 가량 접근 중임을 알린다.
동시에 해저 동굴 입구 쪽에서도 다수의 인어가 더 출현했다.
잘 여문 젖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있던 앞선 인어 다섯과 달리 물방울 모양의 비늘로 짠 비늘 갑옷을 걸치고 산호창을 쥔 12명의 인어들.
그중 하얀 산호 티아라를 쓴 검녹색 머리카락의 인어가 눈물점이 있는 고혹적인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리엘라! 지금 거기서 뭘 하는 거죠?=
=앗, 시드네 님. 그게 있잖아요……. 이, 이거 한 번 드셔보세요!=
=이건 육지 인간들의 음식이지 않나요! 이런 걸 함부로 받아 먹, 받아…… 받아먹으면…….=
얼굴 앞에 들이밀어진 닭고기꼬치에 눈썹을 치켜뜨고 리엘라에게 호통치려던 시드네는 콧속으로 강렬하게 밀려드는 향기에 말 끝을 흐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육지 인간들의 향신료 냄새.
그마저도 물에 젖어 축축한 냄새가 아니라 산뜻하면서도…….
=…에잇!=
리엘라는 꼬치를 노려보는 시드네의 입에 다짜고짜 닭고기꼬치를 밀어 넣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면 아무리 마을의 전사님이라 해도 화를 내지 못할 거야.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시드네의 화난 얼굴이 실시간으로 풀려간다.
=……핫?! 윽, 아 아무튼!=
우물우물, 잽싸게 꼬치구이 하나를 우물우물 씹어삼킨 시드네는 생글생글 웃는 리엘라를 째려보곤 산호창의 창대로 그녀의 작은 머리를 통통 때렸다.
=위협이 다가오고 있으니 당신들은 얼른 마을로 물러나세요.=
=네에~!=
=넹!=
리엘라는 접시에 물방울을 덧씌워 꼬치구이가 물에 젖는 걸 방지하곤 아직 난간 쪽에 서 있는 환인에게 손을 흔든 뒤 재빨리 해저 동굴 입구로 사라졌다.
그녀를 따라 다른 비무장 인어 넷도 사라지고, 비전투 인원을 모두 치운 시드네는 하얀 배와 그 배의 난간에 기대고 선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 수면을 손바닥으로 철썩, 때린다.
그러자 물기둥이 그녀의 하반신을 감싼 채 높이 치솟아 올랐다.
삽시간에 배 위에 서 있는 환인과 눈높이가 같아진 시드네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육지 인간이 찾아올 줄은 몰랐군요.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선물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겠어요.=
“별것 아닙니다. 식사 중에 손님이 찾아오면 응당 먹을 것을 대접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심이니까요. 그보다…….”
검녹색의 단정한 생머리에 오른쪽의 물방울 모양 눈물점이 있는 시드네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배 후미 쪽으로 돌린 환인은 백려강과 이모렐에게 손짓하고 본인도 그쪽으로 향하며 말을 이었다.
“나가족이 몰려오는 것 같으니 우선 놈들부터 정리하고 이야기를 더 나눌까요.”
=어, 어떻게 그걸 알았죠?=
“우리에게도 뛰어난 실력의 정령사가 있습니다.”
협만은 물론이고 해안가 근처에도 크고작은 물의 정령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대부분 하급 정령이었는데 아마도 인어들의 정탐병 역할을 하는 정령이었겠지.
몰려나온 12명의 인어를 슥 둘러보는 환인.
넷이 4급가량의 직업자고 여덟에게서는 물의 정령력이 강하게 느껴졌다. 저들에게 맡겨두어도 몰려오는 나가족 백 마리 정도는 금방 정리할 테지만…….
“백려강. 모습을 드러내는 나가족은 모두 날려버려라.”
=네, 오라버니!=
저 인어들, 해린족과 원만한 대화를 위해서는 이쪽의 실력을 조금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백려강이 신비궁을 전개하고 활 시위에 빛의 화살을 거는 사이 환인은 영령 둘을 비가시화 상태로 소환, 나가족의 나팔수를 찾으라고 보내놓았다.
「곧 보일 거야.」
환연의 귀띔이 있은 직후 폭이 50m가 겨우 넘어가는 협만의 입구에 더러운 것들이 나타났다.
코발트블루의 맑은 물색과 전혀 다른, 하수구 색과 비슷한 거무튀튀한 비늘의 괴물들.
사람의 머리와 닮은 나쿠스, 사비를 닮은 머리의 나르가, 그리고 뱀을 닮은 나겔의 나가족 3형제다.
놈들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밀려오니 마치 1급 청정수에 똥물이 역류하는 것처럼 협만이 더러워지는 느낌이다.
나가족이 우둘투둘한 두꺼운 비늘의 물뱀 하반신으로 물을 밀어내며 나타나자마자 백려강은 자비없이 신비궁의 활시위를 튕기기 시작했다.
퓨퓨퓨퓨퓻—
활시위가 한 번 튕길 때마다 빛화살이 2발, 3발씩 퍼부어지며 나가족의 몸통에 구멍을 숭숭 낸다.
재수 없이 머리에 구멍이 나거나 심장이 꿰뚫린 나가족은 즉시 몸을 까뒤집으며 수면으로 떠 오르고, 다른 곳에 구멍이 난 나가족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깨끗한 물을 빨간 피로 물들이며 허우적거린다.
수면에 떠올라 피와 함께 둥둥 떠다니는 나가족의 시체는 수면에 떠다니는 유독성 기름띠처럼 보였기에 환인은 유르파를 불렀다.
“유르파, 파도를 일으켜 시체를 전부 협만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겠습니까.”
=물론!=
멋지게 휜 지팡이를 꺼내 든 유르파가 활시위를 계속 당기는 백려강의 옆에 서서 주문을 외우니 배의 후미에서 자그마한 일렁임이 발생한다.
그 일렁임은 진동이 증폭되는 것처럼 점점 너울거리다 급기야 너울성 파도가 되어 나가족을 덮쳤다.
유르파가 나서고 너울성 파도가 발생할 때까지 고작 3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고작 그 시간에 나가족은 60여 마리가 죽어 나갔다.
전부 신비궁 덕분이다.
보통 투사체는 물에 들어가는 순간 속도와 위력이 급격하게 감소하는데 유물에 속하는 신비궁은 그러한 일반적인 물리 법칙을 상당수 무시하는 물건이었기 때문.
그렇게 협만 안으로 들어오려던 나가족들과 나가족의 시체가 한꺼번에 파도에 떠밀려 협만 바깥으로 밀려나자 해린족이 나섰다.
=자매들이여! 얼마 남지 않은 빌어먹을 종자들을 해치우자!!=
물기둥에서 뛰어내린 시드네가 물속에서 어뢰처럼 튀어 나가니 남은 열한 명의 인어들도 비슷한 속도로 그녀의 뒤를 따른다.
환인의 어깨에 앉아 그 광경을 육안으로 구경하던 환연은 응? 하고 다른 쪽을 돌아보더니 어쩐지~ 하며 머리카락을 등 뒤로 흘려넘겼다.
「환인, 해린족이 원래는 협만 입구에서 앞뒤 협공을 하려 했나봐. 바깥쪽에서도 해린족이 나타나서 파도에 떠밀려 나간 나가족을 덮쳤어. 와, 두부처럼 순식간에 썰어버리네.」
그녀의 실황을 듣고 있으니 어째서 해린족이 바다의 종족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직업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 해린족도 물정령을 부려 산호창에 회오리를 감고 시속 100km에 가깝게 헤엄치며 나가족에게 창을 휘두르거나 찌르면, 공격에 적중당한 나가족의 몸뚱이가 두부처럼 터져나간다.
일반 해린족도 이러할진데 직업자인 해린족은 어떠할까.
바닷속에서 사납고 살벌한 물의 술법과 공격이 오가지만 해린족은 나가족의 공격을 거의 다 피해버리고 나가족은 해린족의 공격을 전부 몸뚱이로 받아낸다.
말 그대로 나가족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해린족들.
환인은 협만의 입구 너머 바다 한 지점이 붉게 물드는 걸 바라보다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잠시 후 손님이 찾아올 듯하니 꼬치구이를 조금 더 만들어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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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드디어 800화네요!
앞으로 200화면 네자릿 수..... +_+
2년 가까이 미궁기담을 따라와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당!!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