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 아드네빌라를 찾아서
요르문센 섬은 80%가 산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데다 산도 나무와 덤불로 발 디딜 틈 없이 뒤덮여 있어 험준하기 짝이 없는 자연환경이었다.
섬으로 다가가는 와중 망원의 비술로 섬 곳곳을 살피던 유르파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섬이 굉장히 큰데 초식 동물은 거의 없나 봐.=
=설마.=
안느가 그럴 리 없지 않냐며 그녀를 돌아보았지만, 섬의 풍경은 그녀의 말대로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잔디나 작은 수풀이 아니라 나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길게 자란 덤불 등이 섬을 뒤덮고 있다면 초식 동물이 살지 않는다는 증거로 보기 충분하지 않을까?=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을 다 잡아먹은 뒤에 자기들도 먹이가 없어서 멸종한 거야? 그 뒤에 섬이 저렇게 된 거고?=
=동물이 애초에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
어차피 자연환경만 적당하면 식물은 철새나 바람이 실어다 나르는 씨앗 등으로 대지를 뒤덮을 수 있으니까.
=바다에는 뭍으로 올라올 수 있는 괴물이 많으니까 그 괴물들이 다 잡아먹었을 수도?=
=물이랑 땅을 오갈 수 있는 동물 중에 육지에서 빨리 움직이는 동물이 있을까요……?=
=거북이, 악어, 해달, 바다사자, 하마…….=
=언니님도 참. 하마는 아니죠.=
이것저것 아는 동물을 나열하던 안느는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생각해 봐도 아니었던 것.
여자들이 그러는 사이 환인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섬을 바라보다 섬 근처의 수면에 어른거리는 걸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
잘못 본 게 아니다. 너무 멀어서 어떤 종족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희끄무레하게 일렁이는 저것은 영혼이 틀림없다.
환인이 이름리아를 소환하는 한편 강제력으로 저 멀리 보이는 영혼을 불렀을 때, 백려강이 조류에 떠밀려 오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당황하며 그의 팔을 잡았다.
=오, 오라버니. 바다에서 나가족의 시체가 떠내려오고 있어요.=
=응?=
=뭐라고?=
배의 난간에 붙은 여자들도 그걸 발견하곤 당혹스러워했다.
그녀의 말대로 비취색, 청록색 비늘이 붙은 살점과 지느러미 일부. 쪼개진 비취색의 바다뱀 같은 머리라거나 녹색 비늘이 덕지덕지 붙은 사람의 머리가 깨져서 허연 뇌수를 흘리며 떠밀려 오거나 한다.
=뭐야. 하나둘이 아닌데 물속에서 싸움이라도 났나?=
=……단면을 보면 죽은 지도 얼마 안 됐어요.=
하급 물의 정령을 시켜 팔꿈치 아래로만 남은 나가족의 팔을 낚아 올린 아영이 끊어진 단면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무언가에 물어뜯긴 듯한 부위는 아직 물에 불어 터지지 않아 조금씩이지만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중이다.
=이상하네. 바다 괴물들은 어지간해서는 나가족을 안 건드린다고 알려져 있는데.=
대규모 집단생활을 하는 나가족은 바다의 깡패, 양아치로 취급받는다.
개중에는 5~6급의 강력한 개체가 출현하기도 하는데 그런 나가족이 몰려가서 몰매를 놓으면 7급 괴수도 더럽다고 침을 뱉으며 도망갈 정도다.
과거에 딱 한 번, 돌연변이 수준인 8급 나가족이 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나가 왕국까지 만들어져 메리아놀이 사력을 다해 토벌을 진행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동원된 7급 이상 직업자가 1,000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했으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는 수준.
게다가 요르문센 섬 서편은 이리저리 협만이 형성된 곳이다.
수심도 낮아 정말 강력한 괴수는 저기까지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나가족이 떼거지로 죽어나가고 있다니?
안느가 어찌 된 일인지 환연에게 물어보려는 찰나, 때마침 환인의 코트 안쪽에서 환연이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물속은 평화로워. 시체는 다른 데서 흘러오는 거야.」
=다른데? 어디?=
안느가 묻자 환연의 시선이 한쪽을 향한다. 여자들도 그곳을 바라보다가 각자 황당해했다.
들쭉날쭉 암초가 곳곳에 보이는 해안가인데 저기서 대규모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그러는 사이 환인은 가까이 다가온 영혼이 나가족인 것을 확인하고 이름리아에게 타락시켜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쉽네요. 성제님, 이런 마물들은 타락이 통하지 않는 듯해요.」
후우우, 보기에도 섬뜩한 붉은 기운을 불어넣던 이름리아는 나가족의 흐릿한 영혼이 붉게 물들지 않으니 대놓고 아쉬워한다.
‘동물도 안되고 정령도 안되고. 명백히 지능이 있는 인간형 마물도 안된다면 혼재가 되는 것은 사람뿐인 거군.’
니아마드에서 70여 정도의 적옥을 확보해 대강 100개를 맞췄지만, 목표로 삼았던 100개에 도달하니 또다시 조금 더 모으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이름리아의 출현으로 배를 조종하던 영혼들이 슬금슬금 멀어지는 가운데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자신을 보며 요사한 미소를 띤 이름리아를 역소환시키고 노른을 불렀다.
“노른과 섬을 한차례 둘러보고 올 테니 섬에는 더 다가가지 말고 대기해라. 환연도 여기서 기다리고.”
=배는 우리가 잘 지킬 테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
안느의 이야기에 환인은 신수 형상으로 돌아간 노른의 등에 올라타며 대답했다.
“영도의 기록실에서 요르문센 섬 근방에 여러 번 해비족을 목격했다는 문서를 봤었다. 십중팔구는 해비족과 나가족이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일 테니 괴수나 진수의 출현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니오네브레스 대륙 서쪽과 메리아놀 본섬 사이 교역 항로가 살아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였으니 그리 먼 과거 일도 아니다.
펄럭— 펄럭— 노른이 날아오르려 날갯짓으로 시동을 걸 때, 아영이 황급히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앗참참, 오빠! 해비족을 만나거든 해비족이라 하지 말고 해린족이라고 불러야 해요! 걔들은 사비족의 갈래로 불리는 거 엄청 싫어하니까요!=
“어째서지. 해비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아름다운 바다라고 해서 해비가 아니었나.”
=네. 그런데 사비족이 해비족에 비해 유명하고 생김새도 비슷한데다 이름까지 비슷하니까…….=
해비족? 그거 사비족 사촌 동생 같은 거 아냐?
해비족은 사비족의 몸종 아니었나요?
바다에서 사는 사비족이 해비족이잖아. 응? 아니라고?
……같은 인식이 퍼졌고, 해비족이 거기에 대해 항의하면 사비족이든 해비족이든 비늘 달렸으면 뭐 거기서 거기지 유난을 떤다는 식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문제는 그런 사비족도 대륙 주류 인종에 끼지 못하고 아인종으로 취급받는다. 해비족 입장에서는 종족의 신분이 매우 격하되는 기분이었겠지.
환인은 그런 비사에 관해서는 잘 몰랐기에 알려줘서 고맙다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노른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요르문센 섬은 동쪽과 서쪽의 형상이 꽤나 달랐다.
서쪽 해안선은 협곡이나 협만이 많으며 기암괴석과 암초도 많아 험한 지형인 데 반해 동쪽 해안선은 무수한 파도에 깎여나간 것처럼 모난 곳 없이 반듯한 백사장이 초승달처럼 길게 나 있었다.
산의 형세 또한 동쪽과 서쪽이 크게 차이 났다.
동쪽은 바람이 불어오는 모래 사구처럼 완만하고 나뭇잎도 듬성듬성, 나무도 길고 곧게 자란 것에 비해 서쪽은 가파른 절벽이 대다수에 나뭇잎도 무성하다.
수심도 서쪽은 20~50m 남짓한 대륙붕이 섬을 시작으로 꽤 넓게 퍼져 비취색으로 빛나는데 동쪽은 백사장에서 조금만 나가면 대륙사면이 펼쳐지며 바다색이 시커멓게 변한다.
반시계 방향으로 섬의 북단을 찍고 남쪽 6시 방향으로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던 노른이 등에 탄 환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환인. 바다 저쪽에서 시선이 느껴져.」
“어느 정도 거리지.”
「몰라. 되게 멀어.」
현재 비상의 고도는 해발 1만 미터. 항공 여객기가 날아다니는 높이다.
이곳에서 수평선이 보이는 거리는 대강 350km인데 말이 350km지, 거기서는 자신이나 노른은 점이 아니라 먼지 한 톨보다 작게 보일 거다.
“…….”
신식 영혼의 눈으로 바다 전체를 훑었지만 수상한 점이나 이상한 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아신위의 휘광을 억누르는 것 없이 온전히 펼쳤다.
평소 흐릿한 아지랑이 같던 휘광이 단숨에 성스러운 황금빛을 뿌리는 찬란한 광휘로 변하며 수 미터를 뒤덮는다.
그 존재감에 놀랐는지 노른의 뒤통수 깃털이 곤두선 솜털처럼 바짝 일어난다.
거꾸로 곤두선 듯한 깃털을 차분히 쓰다듬어주어서 원래대로 만들어준 환인이 물었다.
“지금도 시선이 느껴지나.”
「아니! 환인이 그렇게 하니까 순식간에 사라졌어.」
“육안이 아니라 기감으로 느끼던 건가…….”
노른은 느꼈지만 자신은 느끼지 못한 것을 보면 저 바다를 영역으로 삼은 신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환인은 생각했다.
바다의 신수가 자신의 영역을 들락거리는 존재를 느끼고 어떤 벌거숭이가 이러나 보았다면 아귀가 맞아떨어지니까.
「지오드 같은 신수?」
“그래. 너도 신수니까 말이다.”
아신위의 휘광을 가라앉히며 대답해준 환인은 다시 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위광을 보였기 때문일까. 섬의 상공으로 새 떼가 어지럽게 날아오른 게 보인다.
10km 가까이 떨어져 있어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예민한 짐승들은 이 거리에서도 신위를 느끼는 건가…….
아무튼, 시선이 사라졌다면 자신의 노림수대로 노른을 아신이 데리고 다니는 반려동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것도 임시 처치밖에 안 된다. 돌아갔다가 노른을 데리고 배와 함께 동쪽 해안으로 돌아오면 바다의 신수가 높은 확률로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지.
‘돌아올 필요도 없지만.’
저쪽을 바다의 정체 모를 신수가 장악했다면 영성이 꺾인 아드네빌라는 도르와인 섬과 요르문센 섬 사이 해역에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100%다.
섬을 돌아서 동쪽 바다로 나올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멕시코만에 달하는 영역을 샅샅이 뒤져야 하는 건 변함이 없군.’
환인은 노른을 타고 섬의 최남단을 찍고 리지나 호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심핵력과 신력의 추적에도 아드네빌라를 발견하지 못한 건 충격적이지 않다. 아드네빌라도 메리아놀의 추적을 염두에 두고 일을 벌였을 테니까.
오히려 손쉽게 찾았다면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겠지.
그러면 아드네빌라를 어떻게 찾아야 좋을까.
지하율에게 연락해볼까 아니면 대성녀에게 연락해서 방법이 없는지 물어볼까. 릴라이스에게 다시 부탁해 정령들로 아드네빌라를 찾아보는 것도 고려해봐야겠고…….
아드네빌라를 찾을 방안을 떠올리며 섬의 서편을 살피던 환인의 눈에 일단의 생물들이 포착되었다.
얼핏 미역 같은 머리카락에 여자의 알몸 상반신, 그리고 물고기의 하반신.
현대 소설 속 인어와 같은 모습을 한 해린海鱗족이다.
「환인. 저기 물고기 사람이 있어.」
“너도 발견했나.”
「가까이 갈까?」
전투를 치렀는지 여기저기 작은 상처를 입은 해린족 서른 명이 코발트블루로 빛나는 협만의 얕은 물 속을 빠르게 헤엄쳐가고 있다.
물 속인데다 멀어서 아우라의 확인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원 직업자인 것은 확실하겠지.
“아니. 다가가면 놀랄 테니까.”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고 있으니 협만의 벽 쪽으로 붙는다. 이어 바다 쪽으로 드리워진 무성한 나뭇잎 아래로 들어가 버리더니 잠시 후 종적을 감추었다.
‘저곳에 해린족의 수중 동굴 입구가 있나…….’
……바다의 이종족하면 대부분 사람이 해린족을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바다는 해린족의 영역이다.
‘요르문센 앞바다의 사정은 해린족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
위치를 기억해둔 환인은 리지나 호로 돌아갔다.
=아, 역시 해린족이 나가족이랑 싸웠구나.=
=바다에서 나가족이랑 싸울만한 종족은 해린족뿐이긴 하죠.=
돌아가서 해린족을 발견한 이야기를 해주자 여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해린족의 생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잖니……. 섬 안에 공동이라도 있는 걸까?=
“지하 해저 동굴이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저쪽 산자락을 뒤지다보면 그 해저 동굴과 연결된 곳도 있을 겁니다.”
환인의 시선이 쌍둥이 산처럼 선 두 개의 큰 산 중 왼쪽의 한층 작은 산을 가리킨다.
“일단 해린족과 접촉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다. 바다는 그들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을 테고 반년이 넘도록 앞바다에 비가 뿌려지고 있으니 해린족도 그 이유를 조사해보았을 테니까…….”
=아드네빌라가 어디 있는지, 하다못해 수상한 장소를 그들이라면 알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래.”
안느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환인은 사라를 불러 돛을 접으라고 한 뒤 환연에게 배를 저쪽 협만으로 천천히 이동시키라고 전했다.
그의 요구에 따라 환연은 중급 물정령을 선저에 붙여 배를 천천히 이동시키고 여자들은 각자 흩어져 나가족의 습격에 대비해 감시를 강화한다.
좀비처럼 퀭한 얼굴이 된 김철수와 김영수도 파도가 잦아든 지금, 약간이지만 기운을 차리고 감시에 힘을 보태는 상황.
배가 천천히 협만 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환연이 아, 하고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왜 그러지.”
「몇몇 남아있던 해린족이 이쪽의 상급 물정령을 발견하고 도망갔어. 우리를 경계하기 시작한 거 같은데 어떡하지.」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천천히 협만으로 배를 몰아라.”
환연이 공격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바닷속을 감시하기 위해 상급 물정령 둘을 배치해놓았을 뿐.
오히려 덕분에 괜찮은 정보를 얻었다.
상급 정령을 보고 도망갔다는 것은 플뢰족처럼 정령을 볼 수 있는 데다 강함까지 가늠할 만큼 정령력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직업자로 치면 상급 정령을 부리는 상급 정령사는 7급 정도로 친다.
즉 7급 직업자 둘이 배를 호위하고 있다는 말인데 2~5급 나가족과 드잡이질을 하며 상처를 입었던 해린족을 생각하면 이쪽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것이다.
이쪽이 적대적인 스탠스를 취하지 않는 한 말썽이 일어날 소지는 없을게 틀림 없다.
=나가족이 없어. 해린족이 다 회를 쳐버렸나?=
=그럴 것 같아. 나가족이 살아서 도망갔다면 환연의 정령 감지에 걸려들었을 테니까…….=
안느와 이실리테가 작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리지나 호는 호리병 모양의 협만 입구로 진입했고, 안에 펼쳐진 풍경에 여자들이 작게 탄성을 질렀다.
=와아아…….=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다 있을까…….=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에요오….=
종합운동장 정도 되는 넓이의 협만에는 투명한 코발트블루 빛의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오색 찬란한 산호가 그런 협만의 바닥을 꾸미고 있었다.
바닥은 깨끗하고 하얀 모래로 가득해 수면의 빛을 파도 모양으로 반사하고 있었고 총천연색의 열대어는 그런 산호 사이사이를 빠르게 헤엄치며 그림 같은 남국의 바닷속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런 협만의 화룡점정은 안쪽의 자그마한 백사장이었다.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하얀 백사장에 크고 작은 바위, 그리고 반듯한 절벽과 그런 절벽 군데군데에서 자라는 기묘한 소나무들.
그러한 협만에 티 없는 순백의 새하얀 배가 들어서니 풍광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느낌이다.
바람결에 소나무가 작게 흔들리고 수면이 옅게 찰랑이니 남국의 휴양지가 있다면 이런 곳이겠다는 감상이 환인의 머릿속을 채웠다.
난간에 머리를 내밀고 아래를 바라보던 아영이 옆에 다가온 백려강을 돌아보며 말한다.
=물이 별로 안 깊어 보이는데 용골이 안 닿네.=
=물이 너무 깨끗하면 물속 원근감이 이상해지기도 한다고 해.=
=흐음.=
잠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영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투척용으로 챙겨둔 자갈을 꺼내 퐁당, 떨어트렸다.
그리고 자갈이 가라앉는 속도를 계산해 수심을 읽은 아영이 놀라 혀를 내둘렀다.
=와 진짜 깊다. 10m가 넘겠어.=
=너도 참…… 여기다가 자갈을 함부로 던져넣으면 어떻게 해. 자.=
물을 움직여 아영이 던져넣은 자갈을 회수한 백려강이 그녀에게 자갈을 돌려준다.
그걸 돌려받은 아영은 혀를 작게 빼물며 헤헤 웃었다.
=어차피 바다인데 자그마한 조약돌 정도는 상관없지 않을깡?=
=해린족은 다른 곳의 조약돌을 쓰레기로 여길지도 모르잖아.=
=……확실히 그냥 길가에 굴러다니는 걸 주워놨긴 했어.=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협만의 정중앙에 배를 위치시킨 환연이 환인에게 물었다.
「이제 뭐 해?」
“기다려야지.”
그의 시선은 아까 해린족들이 사라진 물속 동굴 입구에 닿고 있었다.
소나무의 그림자에 절묘하게 가려져 잘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만큼 눈에 안 띄는 동굴.
고개를 돌린 환인은 여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환연은 정령으로 주위를 들쑤시지 말고 배 주변만 지키게 해라. 이실리테는 점심을 준비하고 안느는 닻을 내려라.”
=네 주인님.=
“점심은 갑판 위에서 바베큐 식으로 하지.”
=바!=
=베!=
=큐!=
몇 달만의 바베큐였기에 여자들이 신나 하며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환인은 여기까지 배를 몰아온 사라와 다른 기사 영혼들을 회수하고 아르겐테아 정찰병 다섯과 엘위드리스 기사 다섯을 꺼내 주변 감시를 지시했다.
“협만 입구와 협만 절벽 위도 꼼꼼하게 감시하도록.”
「예, 성제님!」
「넷!」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환연이 눈썹을 작게 들었다 내리며 묻는다.
「영령을 비가시화 시켜서 동굴 안으로 들여보내 정탐하면 안 돼?」
“해린족이 마수나 마물이었다면 그랬겠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일단은 거짓말을 할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니 이해해라.”
「흐응~. ……뭐야, 나보구 왜 이해하라는 건데?」
그의 이야기에 수긍하고 넘어가려던 환연은 문득 어감에서 묘한 뉘앙스를 느끼고 그를 째려보았다.
그랬더니 환인은 다 알지 않느냐며 피식 웃었다.
“엿보는 것에 재미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업으로 여기고 있지 않나.”
「뭐어? 야아! 그건 지금까지 네가 시켜서 주변을 감시하느라 그랬던 거잖아!」
“하지만 재미있어했지. 너는 내가 시키기 전에도 사람들의 사생활을 엿보았고 나와 그녀들의 잠자리도 훔쳐보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하네.」
그의 말에 반박할 말이 없었던 환연은 흥흥 콧방귀를 끼면서 여자들이 비비큐를 준비하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환인도 그쪽을 구경했다.
방염 가죽을 깔고 그릴 석쇠를 그 위에 꺼내고, 질좋은 숯을 옆에 쌓고 각종 그릇, 접시, 집게와 가위 등을 세팅하더니 환인의 허락을 받아 도수가 약한 술을 꺼내는 여자들.
그러다가 해린족의 동굴 쪽을 돌아보았다.
저 동굴 안쪽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동굴과 연결된 산 아래라고 해야할지. 백사장의 절벽 안쪽에서 영혼의 기척이 느껴지는데…….
이제는 벽으로 가려져 있어도 영혼의 위치를 정확히 감지할 수 있는 데다 강제력까지 내릴 수 있게 된 환인은 잠시 고민했지만, 말 그대로 고민은 잠시였다.
‘이쪽으로 와라.’
성불을 위해 영혼의 사정을 보고 듣는 일은 영혼사의 권리이자 의무다.
영혼사가 영혼과 대화하는 것은 해린족이 수영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인만큼 영혼을 불러 상담해주며 정보를 얻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섬의 철새들: 뭐야 시발!
섬의 인어들: 히익, 뭐야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