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 항구 도시 니아마드
여자친구들과 데이트하는 느낌으로 항구를 향해 걷던 환인은 홀로 수십 미터 높이로 우뚝 선 성역탑을 간간이 응시했다.
도시의 민원 사무처리 시설이라 할 수 있는 행정관, 그리고 도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영주성은 보통 미궁과 가장 떨어진 곳에 짓기 마련이다.
이유라면 당연히 미궁의 역류가 발생했을 때 도시 핵심 인사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하지만 니아마드의 행정관은 미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영주성도 도시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미궁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문제의 성역탑은 행정관과 영주성 사이.
“…….”
환인이 보기에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을 내놓기 좋은 위치 선정이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서 추측과 가설이 가을녘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귀찮고 성가셔서 짜증 난다는 감정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주인님…….=
풍요의 여신처럼 완벽한 젖가슴이 살짝 짓눌릴 정도로 팔짱을 끼고 있던 이실리테의 목소리에 짜증과 성가심이 억눌러지고 대신 훈훈한 감정이 기지개를 켠다.
“왜 그러지?”
=저기, 주인님이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지신 것 같아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눈치챈 건가.
도적 두목답게 눈치고 뭐고 없던 처녀가 자신의 심중을 꿰뚫어 볼 만큼 눈치가 늘다니.
순간 현대에서 잠시 사귀었던 여자친구들이 공통으로 했던 말 ‘오빤 내 마음도 몰라?’가 떠올랐고, 반대급부로 이실리테가 더욱 귀엽게 느껴진다.
그녀와 팔짱을 풀자 이실리테의 분위기가 먹이를 뺏긴 강아지처럼 축 처진다.
풀죽은 기색으로 슬그머니 자신에게서 떨어지려는 이실리테를 붙잡아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평범한 손잡기가 아니라 연인의 손깍지다.
=……!=
보이지 않는 그녀의 복슬복슬 호박색 꼬리가 좌우로 붕붕 흔들리는 듯한 착시가 느껴졌다. 은근슬쩍 깍지 낀 손을 꼼지락거리는 것은 덤이다.
겉모습은 청초하고 아리따운 아가씨인데 행동은 이렇게 귀엽다니.
말 꼬랑지처럼 조금씩 흔들리는 그녀의 포니테일을 바라보다 성역탑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조금 짜증이 나서 말이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이어진 게 벌써 5년째인가. 아무리 나라도 슬슬 지칠 만도 하지.”
=…죄송해요. 저는 주인님과 함께 있기만 하면 행복해서…….=
행복해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했다는 건가.
환인은 속으로 실소를 흘리다가 짐짓 어이없다는 투로 꾸짖었다.
“나는 악질 트롤들 때문에 심기가 사나운데 나의 귀여운 메이드는 마냥 행복하다는 거군……. 이거 괘씸한데.”
웃음기가 섞인 이야기에 이실리테도 배시시 웃다가 슬쩍 그와 어깨를 밀착했다.
이실리테는 성에 대해 담백한 플뢰 남자마저 한순간 돌아보게 만드는 퍼펙트한 바디를 지녔다.
그리고 그런 육체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지하굴 미궁산 흑-백의 의복.
타이트한 검은색 실크 질감의 바지와 노출도 높은 실크-시스루 상의는 특유의 색감 밸런스로 청초함과 단아함을 강조한다.
여기에 여신처럼 아름다운 얼굴의 미형美形이 더해지니 남자든 여자든 시선을 절로 잡아끄는 매력으로 가득하다.
근처를 지나가던 플뢰족 남자가 이실리테를 힐끔 쳐다보는 걸 느끼고 매혹적인 메이드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새하얀 옷깃 위로 드러난 그녀의 뽀얀 목덜미에 진한 키스 마크를 남겼다.
=주, 주인님…….=
갑작스러운 대담한 스킨십에 이실리태는 당황하면서도 뿌리치지 못하고 쩔쩔맨다.
그 광경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휙휙 휘파람을 불거나 짓궂게 웃으며 야유를 날렸다.
앞서 나란히 걷던 노른과 백려강도 주위의 야유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얼굴이 빨개진 이실리테를 보곤 웃으며 속닥속닥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쩔쩔매는 이실리테의 귀여운 모습 덕분에 짜증이 쑥 내려간 환인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보이는 성역탑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성역탑에서 여러 가지 음모와 악의가 느껴졌다. 설령 백번 양보해서 순수한 선의로 지은 탑일지라도 이제 와 저걸 허물거나 철거하는 것은 큰 문제가 생기겠지.”
=저 탑이 없어지면, 괴물의 습격이 시작되어서 그런가요?=
“그래. 사람은 미래에 닥쳐올 커다란 사건보다 즉시 피부에 와닿는 자그마한 소란을 더 크게 느끼는 법이니까.”
인구 감소는 피부에 즉시 와닿지 않지만 성역탑이 사라지며 시작될 괴물의 공격은 그들의 삶을 역경에 빠트릴 것이다.
400년간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괴물과 싸우는 나날로 돌아가라 하면 누가 좋아할까.
성역탑을 철거하려하면 니아마드의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고기 꼬치를 먹던 백려강은 그 이야기에 궁금증을 드러냈다.
=오라버니께서는 어째서 성역탑에 문제가 집약되어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성역탑의 기능은 말 그대로 획기적인 수단이다. 그 원리와 효과만 보면 도입 하지 않는 게 이상한 정도지. 하지만 400년이란 시간이 지날 동안 성역탑은 이곳 외에 퍼지지 않았다. 성역탑의 원리는 안느도 알고 있을 정도인데 말이다. 이상하지 않나?”
=…….=
=…….=
특허 같은 게 존재……하긴 하지만 그 강제력은 강하지 않다.
가까운 도시 간이라면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해도 국가와 국가 정도로 거리가 떨어지면 효력이 거의 유명무실해진다.
그런데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모종의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
“가격 문제나 효율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확실한 것은 돌아가서 안느에게 몇 가지 더 물어봐야 알 수 있겠지.”
아무튼, 가급적 니아마드의 사정을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환인은 항구로 이동해 영혼 감응으로 선원 출신의 영혼을 찾는 한편 적옥으로 만들 영혼도 탐색해나갔다.
니아마드에는 31명의 영혼이 있었다.
6만 명은 넘을듯한 도시에 31명은 적은 수이지만, 승령천제가 얼마 전에 벌어진 점을 생각하면 적당한 숫자다.
그중 색을 지닌 영혼은 당연히 한 명도 없었고, 환인은 플라비우스족 단쌍익의 일등 항해사 출신 여자를 찾는 순간 탐색을 종료했다.
「불행한 사고로 죽었지만 나는 괜찮으니까, 가족들에게 난 걱정 말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전해만 주세요. 그러면 영혼사님을 도울게요.」
“알겠습니다.”
니오네브레스에서도 선원은 괄괄하고 강한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영혼이 흐릿한 이성을 유지하는 상태였던 것과 달리 선원 영혼은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 중이었기에 그녀를 가족에게 데려가 대면시켜주는 것으로 약식 계약을 진행했다.
물론 남은 유족들에게 영혼사의 방문을 비밀에 부치라는 당부를 한 것은 당연한 일.
적옥으로 만들만한 인재도 없었기에 노을이 하늘을 불태울 무렵 영주성을 지나쳐 호텔로 복귀한 환인은 안느와 아영, 이모렐이 거실에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령, 어서 와. 이슬이랑 너희도.=
=어서옵셔. 오빠, 미궁에 들어가 보셨어요?=
“미궁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갈 예정도 없고.”
잰걸음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안느와 아영의 어깨를 차례대로 두드려준 환인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파악한 것과 미궁 앞 광장에서 얻은 정보를 적당히 간추려 들려주었다.
안느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진다.
=으음. 성역탑에 그런 효과가 있다고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메리아놀의 다른 도시에 설치된 성역탑은 없는 건가.”
=응. 탑을 짓는 데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고 또 매일 한 번씩 7급 성술을 펼치는데 드는 위상력도 굉장한 양이거든.=
=주인님 예상이 맞았네요. 비싸고 효과를 잘 못 봐서 다른 곳에 설치를 못 한 거요.=
=그랬어? 아무튼 그런 거야. 삼면이 바다라서 나가족의 위협에 노출되어있는 데다 중급 도시인 니아마드라서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 다른 도시는 설치해봤자 돈이랑 에너지만 낭비하는 꼴일 거야.=
안느의 이야기에 7급 성술사인 아영도 수긍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광역 성술은 일반 성술보다 위상력을 최소 3배는 더 먹는 편인데다 이만큼 넓은 지역을 감당하려면…… 음…… 기본 7급 성술의 소모 위상력에서 21배 정도 더 들겠네요. 그 정도의 위상력을 매일매일 충전하려면 7급 직업자가 4명은 있어야겠네.=
=7급 직업자가 네 명…….=
백려강이 살짝 아연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린다.
영웅의 도시라고 불리는 헬루멘에도 7급 이상의 직업자는 영주인 시하=사이지를 포함해 고작 셋뿐이었다.
매일 7급 4명 수준의 위상력을 소모하는 게 얼마나 큰 제약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창 밖으로 얼핏 기묘하게 보이기도 하는 성역탑에 안느가 시선을 주었다.
=그만한 부작용이면 영주한테 당장 알려주는 게 좋을 텐데 그렇다고 성역탑을 철거하면 나가족의 습격이 당장 벌어질 테니 진짜 진퇴양난인 셈이네.=
=안느 언니님. 400년이나 지났잖아요. 원한을 가졌던 나가족도 다 죽어서 까먹지 않았을까요?=
=글쎄……. 나가족의 악명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대대로 원한을 곱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아.=
“…….”
배를 구해서 나가면 나가족의 공격이 파상적으로 쏟아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던 환인은 거실을 잠깐 둘러보다가 안느에게 물었다.
“환연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응. 오랜만의 도시라서 신나게 놀고 있나 본데…… 부르면 돌아오지 않을까? 불러?=
“그럴 것까진 없고. 그보다 루모는 어떻지.”
=응? 괜찮은데 왜?=
풍성한 은발을 자연스럽게 늘어트리고 있던 안느가 목뒤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자 그녀의 머릿결 속에 숨어있던 빛의 소녀가 나타나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늘어진다.
안느의 머리카락에 매달려있다가 환인의 시선을 받게 된 루모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안느의 목깃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야생의 정령을 거의 보지 못해서 말이다. 성역탑에 안좋은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하는데 계약 정령은 예외인가.”
헐, 하고 짧게 탄성을 지른 안느는 루모를 붙잡고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이 안도하는 걸로 바뀌는 걸 봐선 문제는 없겠지.
아영은 이제 자신의 보고 차례라 생각하고 이모렐과 함께 부두와 항구를 돌아다니며 얻은 정보를 풀어놓았다.
=오빠가 알아보라고 지시한거요. 항구에 조선소가 있긴 한데 당장 구할 수 있는 배는 없대요. 지금 건조 중인 거 말고도 2대가 더 예약이 밀려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정보 조직을 통해 중고 선박을 구할 수 없을지 좀 알아봤는데…….=
운 좋게도 연안 항해용 2돛의 캐러벨선 하나를 팔려 하는 귀족을 알아낼 수 있었다고.
=단점은 바람 정령으로 조타와 추진 가속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특주품이라서 좀 비쌀 거래요. 적어도 200금화는 가지고 가야 할 거라던데요?=
200금화라면 정원이 딸린 작은 저택과 하인, 하녀에 가구까지 장만할 수 있는 거금이다. 전투용 마도기로 시선을 돌리면 4~5급 직업자에게 맞는 중~상등품 무구 풀세트를 갖출 수도 있는 돈.
“가격은 문제 되지 않으니 내일 그 귀족을 찾아가 보도록 하지. 부두의 분위기는 알아봤나.”
=옙. 성역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연안에서는 나가족의 습격이나 공격을 거의 안 받는다더라고요. 다만 조금이라도 깊은 바다 쪽으로 나가면 바로 공격해와서 중급 바람 정령 2체가 없으면 얌전히 연안만 항해한다고 해요. 그래도 소수의 나가족이 공격해오는 일이 가끔 발생하기에 충분한 호위 병력을 갖추고 다닌다네요.=
“그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전투 병력이라면 영령군만 동원해도 넘칠 테니까.”
=옙.=
아영의 보고가 끝나자 안느도 주머니에서 한 권의 책자를 꺼내 환인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도령이 말했던 항해술의 기초 서적이야. 선원 영혼은 구했어?=
“그래. 플라비우스족 선원이 하나 있더군. 영령군에게 항해술을 가르치고 나도 항해술을 익히면 아드네빌라를 찾는 데는 문제 없겠지.”
항해술 기초 서적은 노트 한 권도 안 되는 양이었다.
내용도 별자리로 방향을 잡는 법, 바다에 나갈 때 필요한 준비물, 배의 상태를 점검하는 법 등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들 뿐.
환인의 표정이 미묘해지자 유르파와 함께 그 책을 사 온 안느도 어색하게 웃는다.
=별 내용 없지? 그래도 혹시 몰라서 샀는데 율이 언니가 깎고 깎아서 3열동화를 줬어.=
“종잇값도 안 되겠군. 유르파는 무엇을 하고 있지.”
=뭐 만든다고 하던데? 방에 들어가면서 집중할 거니까 부르지 말아달라더라. 나중에 알아서 나올 거라고.=
“그런가.”
기감을 그녀의 방으로 돌리자 작업대 앞에 앉아 무언가를 주물럭거리는 유르파가 느껴졌다.
고개를 끄덕인 환인이 소파에 앉으며 분위기가 바뀌자 이실리테와 백려강이 저녁을 준비한다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환연이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알게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린 얼굴이다.
「나 왔어.」
잠시 후에는 유르파도 기지개를 켜며 방에서 나왔고 김철수와 김영수도 넘어와 객실이 금방 시끌시끌해진다.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사이좋게 떠드는 걸 구경하며 릴렉스를 하다 영혼 구슬을 잔뜩 꺼내들었다.
오늘 구한 선원 영혼 하나, 그리고 엘위드리스의 기사 영혼 열다섯.
“그러면 저들에게 항해술을 가르치십시오.”
「그, 영혼사님. 가르치는 건 어렵지 않은데요…….」
선원 영혼은 경험 많은 일등 항해사 출신. 가르칠 역량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하지만 섣불리 대답을 못 하고 전원 푸른색에 척 봐도 기사급 직업자로 보이는 영혼들을 보며 우물쭈물했다.
못해도 귀족에 가까운 사람들일 텐데 보잘것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겠냐는 기색이 역력하다.
약식 계약인 탓에 할 수 있는 걱정을 들은 환인은 무뚝뚝하게 서있는 엘위드리스의 기사 영혼들을 우묵한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전원 고분고분 잘 따를 테니 역할을 정해주고 배치한 뒤 교육해주시면 됩니다.”
고분고분 잘 따르지 않는다면 따르도록 정형 해주겠다는 환인의 의지를 읽은 기사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정형이라니, 팔 세 개에 다리 네 개, 머리 두 개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건가?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성제님이라면 하고도 남으실 것 같다.
웃고 있지만 웃지 않는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환인의 시선에 기사들은 침을 꼴깍 삼키고 선원 영혼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열심히 배우겠소. 잘 부탁드리오.」
「예, 옙.」
“조종할 배는 2돛의 캐러밸선이 될 예정입니다. 교육은 위치별로 2인 1조를 만들어서 해주시고, 항해에 필요한 준비물은 따로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이후에는…….”
그렇게 환인이 항해를 대비한 교육 일정과 방식을 요구하는 중에 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영이 환인에게 다가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빠. 그러고 보니 조금 신경 쓰이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성역탑이요.=
“어떤 이야기지.”
=그, 몇 명이 성역탑의 위험성을 눈치채고 발언하다가 위쪽에 밉보여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는 소문이었어요. 별거 아니면 별거 아닌 이야기긴 한데…… 그래도 오빠라면 소문에서 뭔가 느끼시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요.=
“……매장당했다는 인물의 인상착의 등은 없나.”
=아무래도 대놓고 수소문할 일은 아닌 거 같아서요. 본격적으로 조사해볼까요?=
환인은 잠깐 생각해보았다.
지하율에게 연락해 일정을 조율했지만 아드네빌라의 수색과 본격적인 패시지 내부 상황 파악에 소요될 시일을 생각하면 니아마드에서 쓸 시간은 얼마 없다.
그래도…….
‘가급적 개입 안 하려 해도 정보가 있어야 사건 사고를 피해 갈 수 있으니.’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아영에게 조심스럽게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린 뒤 환연을 불렀다.
“도시의 어린아이 숫자를 파악할 수 있겠나. 나이는 신생아부터 생후 3살 전후로.”
「조사해볼게. 그나저나 이런 지시를 내리는 걸 보면 성역탑의 기능 문제라는 건 확정했나 봐?」
릴라이스에게 몸을 준 뒤 정령으로 자신의 주변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내막을 다 알고 하는 질문에 환인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영이 가져온 소문까지 더하면 영주 측은 이미 성역탑의 부정적 효과도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 거기에 사건을 은폐하려 든 게 사실이라면 영주는 해당 여파를 피할 모종의 수단까지 있단 이야기고…….”
만약 자신의 비약이 맞아떨어져 니아마드가 실험을 위한 장소이며, 이 실험에 결명자나 차원 방랑자 관리국이 개입해있다면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직접 손을 쓸 생각이다.
잠시 기다리자 환연이 흠, 파고 팔짱을 끼며 조사 결과를 말했다.
「환인 네 비약이 맞아떨어졌나 본데? 도시 인구는 약 6.9만 명인데 신생아는 800명이 조금 안 돼. 이 정도면 출산율이 1.0도 안되는 수준 아냐?」
“정확한 출산율은 인구 통계가 필요하니 알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적게 느껴지긴 하는군.”
1가구당 아이를 둘 낳아 키운다고 하면 400쌍의 신혼부부가 있다는 말이 된다.
인구 통계학을 배운 적은 없지만 건강한 인구 피라미드라는 항아리 모양을 생각했을 때 69,000명의 인구 중 신혼부부가 고작 800명이라는 건 명백히 이상하다.
니오네브레스 사회풍습 상 신혼부부가 이 숫자라면 인구 그래프가 역피라미드를 그릴 텐데 그건 단적으로 국가 소멸 위기급이란 말이다.
그게 말이 되는가?
현대라면 갖은 정보와 문화가 다양해 결혼에 대한 선호도가 낮을 수 있지만, 니오네브레스는 밤에 할 수 있는 유흥이라곤 부부간에 섹스뿐이다.
플뢰족이 성에 담백해서 무슨 축제를 벌여 인구수를 장려하기도 하고 수명이 워낙 긴 이종족이 많으니 그것도 반영해야하지만, 출산율이 2.0을 넘어 3.0, 4.0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인데…….
“적은 게 아니라 위험한 수준인가……. 아영이 들은 소문이 진짜라면 영주 측이 공론화 하려는 자들을 매장하려 한 것도 이상하지 않아.”
성역탑으로 인해 도시가 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정도로 인구가 늘고 있지 않은데다, 그 원인이 성역탑의 파장으로 인한 인체 악영향 때문이라는게 밝혀진다?
잠깐 생각해본 환연은 작게 학을 뗐다.
「장난 아니네. 사실이 밝혀지면 어느 쪽이든 도시가 망하겠어.」
“아영, 이리 와라.”
=넹?=
김철수와 김영수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던 아영이 잽싸게 환인에게 달려간다.
그녀를 부른 환인은 환연과 대화에서 짚어낸 사실을 알려주며 매장당했다는 인물을 조사할 때 각별히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건 진짜 심각하네요……. 알겠습니다. 인피면구랑 변장 마도구도 써서 조심할게요.=
“그래.”
하여튼…….
패시지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도시를 피해 움직이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는 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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