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9 항구 도시 니아마드
인식 저해 후드 로브를 쓰고 여자친구들과 호텔 로비로 내려간 환인은 컨시어지에게 대략적인 지역 정보를 요구했다.
지역 정보라 해도 별다른 건 아니고 행정관의 위치, 미궁의 위치, 부두와 항구, 선원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 정도.
=그러면 이것은 어떠신가요? 니아마드를 방문하시는 귀빈들께 필요하실듯한 관광 안내집이랍니다.=
단정한 치마 정장 차림의 플뢰 여성이 내민 것은 10장 정도 되는 식물성 섬유소로 만든 종이 책자였다.
한지와 비슷한 촉감에 손으로 직접 써넣은 수제 안내 책자에 1은화를 낸 환인은 먼저 미궁으로 향했다.
안내집에 기록된 미궁 방향 쪽으로 다수의 영혼이 감지되었기 때문.
엘위드리스, 지오드 지협 입구 마을, 두르데인을 돌아다니며 영혼을 찾느라 영혼 감지를 계속 쓴 덕분에 그의 영혼 감지의 범위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현재 범위는 니아마드의 2/3을 뒤덮는 수준으로 도시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에서는 도시 전체가 영혼 감지 범위 안에 들어온다.
더욱이 이름리아를 소환해서 데리고 다닌 덕분일까. 영혼의 회옥, 청옥, 적옥, 흑옥의 분류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고 정신을 집중하면 영혼의 타락 수준도 어렴풋이나마 짚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묘한 감상마저 느껴졌다.
뭔가, 이제서야 진짜 영혼사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인력마차를 타고 가지.”
대로변 지정 장소에서 대기 중인 인력 마차, 승마차, 인력거 등을 발견한 환인이 이야기를 꺼내자 당장 노른이 뺨을 작게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한다.
「내가 태워주면 되는데!」
“나만 말이겠지. 이실리테와 백려강은 어쩌려고.”
「둘은 마차 타고 오라구 해. 그럼 되잖아.」
결코 둘을 내 등에 태우진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그녀를 환인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입술을 작게 오물거리다가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나마 예전처럼 빼애액 소릴 지르며 고집 피우지 않는 것이 그녀의 성장을 증명하는 부분이 아닐까.
노른의 머리를 토닥여준 환인은 하반신이 말인 루크랑 인마족 여성의 4인용 인력거에 올라탔다.
=어서오세요,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라돔 미궁 앞 광장으로 갑시다.”
=네에~!=
인마족 여성은 콧노래를 부르며 마차를 포함, 300kg에 가까운 인력거를 가볍게 끌었다.
보통 말 한 마리의 힘은 1마력hp이라고 표현한다. 다만 1마력이라는 어원이 생겨난 것은 꽤나 과거.
현대의 말은 1마력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당시보다 강인해지고 튼튼해져서 1hp = 말 1필이라는 공식은 안 맞다.
그건 인마족에게도 통용되어 인마족 여성은 4명이 탄 4인승 인력거를 일반인의 달리기와 비슷한 속도로 끌고 가는 중이었다.
그마저도 속도를 이 이상 내면 탑승감이 엉망이 되어 일부러 낮춘 것이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이보다 2배는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을 듯해 환인은 작게 감탄했다.
라드세아에서 한 번 인마족의 인력 마차를 타본 적이 있는데 새삼 인마족의 신체가 흥미롭다고 할까.
적당히 빠르게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으니 인력거를 끌던 인마족 여성이 교차로에서 잠시 멈춰선 틈을 타 일행에게 물었다.
=손님~ 탑승감은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아가씨는 이 일을 오래 하셨나 보군요. 다른 인력 마차와는 다르게 숙련도가 느껴집니다.”
=에헤헤.=
인력거에 서스펜션은 없지만 도로의 요철을 다 알고 있는지 흔들리지 않게 인력거를 끄는 데다 푹신한 쿠션이 있어 승차감은 나쁘지 않았다.
잘 보면 인력거도 매일 신경 써서 손질한 듯이 반질거리고 켄타우로스 같은 마부의 옷도 어디 깁거나 헤지지 않고 깨끗한데다 깔끔한 복장.
말의 등에도 망토 커버 같은 것을 씌워 말 쪽의 성기와 항문이 안보이게끔 가린 것도 제법 격식을 갖춘 느낌이다.
중심가에서 영업하는 인력 마차답다고 할까.
그런 그녀를 상대로 환인은 적당히 화술을 펼쳐 대화를 나누며 니아마드에 대한 정보, 현지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성역탑이 만들어지고 400년이라니, 저런 대단한 건축물을 만드신 것을 보면 니아마드의 영주님께서는 굉장히 훌륭한 분이시겠습니다.”
=물론이죠! 우리 영주님 가문은 대대로 영민들을 가족처럼 생각해주시는 대단하고 훌륭한 영주님들이에요!=
“하지만 저런 위업이 하룻밤 사이에 뚝딱하고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와, 플뢰님은 학자님이신가요? 그 말씀대로 처음 성화탑이 만들어졌을 땐 마수와 마물뿐만 아니라 사람이랑 동물한테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할머니한테 들었어요.=
성역탑聖域塔은 7급 성술사가 모든 위상력을 쏟아부어 펼치는 파사破邪의 영역 술법을 위상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게 제작한 설치형 최상급 마도기였다.
미궁 최심부에 군영을 주둔시키는데 필수인 항정신抗精神의 제단에서 착안, 니아마드의 영주가 사비를 들여 설계하고 제작한 구조물이라고.
그런 성역탑이 세워지고 시험 운전이 개시 되었을 때, 사람은 뭔가 정신적인 불편함 두통, 구역질 같은 증상을 겪었고 동물의 경우 예민한 개체는 폐사할 정도에 둔감한 동물은 계속 도망가려 하는 효과가 나왔다.
그 원인이 성역탑의 강한 효과 때문이란걸 알아낸 영주는 피드백과 함께 성역 발산의 강도를 조율해나갔고, 끝끝내 사람이나 동물한테는 나쁜 영향이 없고 마물이나 마수같이 저주받은 놈들에게만 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이야기.
“…….”
마부 아가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성화탑으로 발생할 부작용 몇 가지를 떠올렸던 환인은 일단 질문을 묻어놓고 평범한 도시 풍경 감상이나 감탄 등으로 마부 아가씨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렸다.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해당 소속을 칭찬해주면 분위기도 풀리고 경계심도 약해지기 마련.
그 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운을 뗐다.
“도시가 매우 청결한데 작은 동물 같은 해수 구제 작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나 봅니다.”
“그러면 성역탑이 기능한 이후 나가족이나 마물의 공격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까?”
“라돔 미궁의 특산물인 생선이 유명하다던데 요즘 미궁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군요.”
성역탑에서 이어지는 질문이라는 건 꿈에도 눈치채지 못한 마부 아가씨는 중간중간 도시를 칭찬하는 환인의 말솜씨에 홀려 어깨를 으쓱거리고 헤헤 웃으며 아는 것 모르는 것 전부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작은 동물 같은 건 원래 없었다. 마물의 습격은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 미궁 1~2층의 수익이 점점 안 좋아진다며 노동자들이 푸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도착했어요, 손님!=
“수고했습니다. 이건 팁입니다.”
요금에 더해 1열동화를 팁으로 준 환인은 기뻐하며 중심가로 돌아가는 마부 아가씨를 바라보다 드넓은 미궁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오를 한참 넘긴 시각.
여름을 넘어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지만 열대와 아열대 사이의 기후인 니아마드에는 한여름 같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중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를 만큼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곳곳에 차양막이 쳐진 광장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서늘함이 느껴질 법한 얼굴로 걸어가는 환인을 옆에서 힐끔거린 이실리테는 또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그게 아니라면 주인님이 저렇게 표정이 굳어있을 리가 없으니까.
아까 마부 여자랑 대화하시면서 뭔가를 짚어내신 건가?
음…….
=주인님. 혹시 탑에 안 좋은 효과가 붙어있는 건가요?=
“단정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높을 듯하군.”
=아까 마부에게 해수 구제 사업에 대해 물어보시던데 생명의 탄생과 관련된 일인가요…?=
이실리테의 건너편에서 그의 보폭에 맞춰 걷던 백려강이 묻자 환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두 여자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도시는 해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더욱이 니아마드는 항구 도시지. 어업까지 이루어지니 부두 쪽에는 항시 먹을 것이 풍족할 텐데…….=
어부들이 흘리고 가는 피라미 같은 생선을 노리는 갈매기, 쥐 떼가 많은 게 당연하다.
그리고 쥐를 노리는 고양이는 당연히 따라붙게 되고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 없는 들개는 물론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소동물과 곤충들도 가득해야한다.
하지만 환인은 미궁으로 오며 곳곳을 살폈지만, 그런 생물들이 지나치게 적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문제는 아이들의 숫자 또한 적다는 거지.”
=……!=
=아……!=
바닷가 쪽 하늘을 흘끔거리던 여자들은 환인의 지적에 광장을 둘러보곤 뒤늦게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이 진짜였던 거다.
니아마드 정도 되는 중급 도시라면 1인분의 노동력을 갖추지 못한 고아나 생계가 어려운 집안의 아이들이 적지 않기 마련.
그런 아이들은 잔심부름을 노리고 대게 이런 광장에 모여드는데…….
=…아이가 정말 적어요…….=
다른 도시라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어른들의 눈치를 보다가 잔심부름의 기미를 느끼면 득달같이 달려들 아이들이 어른 10명의 사이사이 2~3명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1명을 볼까 말까 하다.
=400년이나 되었으면 눈치챌 법도 한데 어째서 아무도 모르는 걸까요?=
이실리테가 심각한 표정으로 옆을 뛰어가는 심부름꾼 고아 소녀를 바라보다 그에게 물었다.
“그 400년이 애매한 시간이라서겠지.”
인간이라면 400년은 6대, 7대는 족히 바뀔 시간이다.
하지만 니아마드는 절반의 인구가 플뢰족과 프라우드 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종족도 100년은 살아가는 종족이 다수.
성역의 부정적인 효과가 눈에 띄게 발생하는 것은 적어도 수 대를 거치며 그 여파가 몸에 축적되어야 하기 때문인듯한데, 3~4대 정도로는 정말 눈에 확 들어올 만큼 티가 나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니면 어느샌가 적응해버려서 이상함을 못 느끼고 있을 수 있고.
환인은 후드를 조금 깊게 눌러쓰며 신식 영혼의 눈을 전개해 천막 좌판을 늘어놓은 사람들과 미궁을 오가는 사람들을 훑었다.
그렇게 100명에 이르는 숫자를 파악한 환인은 살짝 피로해진 눈을 마사지하며 생각했다.
‘상태가 그렇게 엉망인 사람은 안 보이는데…….’
어쨌든,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인구 소멸이 진행 중이라면 며칠 성역탑의 파장을 쬐는 정도로 몸에 문제는 안 생길 듯하다.
하지만 미궁은…….
=어이, 형씨. 보아하니 미궁 정보를 얻으러 온 거 같은데, 지형 지도는 물론이고 출현 이형종 종류하고 지대 정보에 돈이 될만한 채집 루트도 있어. 이 모든 1계층 정보가 단돈 2은화. 어때?=
“…….”
환인은 앞을 가로막고 호객을 하는 12살 남짓한 남자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곱상한 12살의 외모지만 진짜 아이는 아니다. 셀핀 프라우드족 성인인데…….
덥석.
=큭, 뭐?!=
등 뒤로 숨긴 오른팔을 잡아 들자 망치로 짓이겨졌다가 그대로 아문 듯한 손이 드러난다.
남자의 사연을 환인이 꿰뚫어본 순간, 보여주기 싫은 것을 강제로 보여주게 된 셀핀족이 왈칵 성질을 냈다.
=씨발! 뭐 하는 거냐고! 이 개새끼, 사기 싫으면 싫다고 해!=
“2은화.”
=……어?=
“전부 내지.”
남자의 왼손에 들린 5장짜리 종이를 뺏은 환인은 그의 눈앞에 반짝이는 은화 두 닢을 내보였다.
그러자 은화와 환인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남자는 잠깐 볼멘 표정을 짓다가 환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2은화를 낚아챘다.
=쳇. 다음부터 조심하라고.=
그 후 멀어지……려던 남자는 환인에게 목덜미 옷깃을 잡혀 버둥거렸다.
=아 진짜 뭔데!!=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1열동화도 하지 않는 걸 2은화나 받아 챙겼으니 그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나.”
=…….=
“싫으면 은화 돌려주던가.”
=재수 옴 붙었네 진짜.=
돌려주긴 싫은지 은화를 주머니에 거칠게 쑤셔 넣은 남자는 환인을 째려보다가 광장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분수대가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서 이야기해.=
“도망쳤다간 길 한복판에서 엉덩이를 때려줄 테니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게 좋아.”
=개 같은 귀쟁이한테서 도망칠 생각 따윈 안 해.=
남자의 거친 언행에 이실리테가 눈을 날카롭게 뜬다.
뒷골목 약팔이한테서도 못 느껴본 기세에 움찔한 남자는 쳇, 다시 혀를 차고 분수대로 이동했다.
분수대에 도착해 왼손으로 얼굴의 땀을 씻은 남자는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아 물었다.
=뭘 듣고 싶은 건데?=
보통 분수대 주변은 다른 곳보다 시원하기 마련이다. 이런 분수대 근처는 장사하기 좋은 곳일 텐데 장사치들이 없다.
이유는 이 주변을 단속하는 병사들이 있기 때문이겠지. 이곳에서 이야기하자고 끌고 온 것도 만약의 폭력 사태를 막아보려는 남자의 고육책일 테고.
환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부루퉁한 표정의 남자에게 질문했다.
“미궁의 몇 층까지 이형종이 모습을 감췄지.”
=……다른 도시의 염탐꾼이야?=
“잔머리 굴릴 생각이라면 하지 말라고 권해주고 싶군.”
=…….=
미세하게 움찔한 남자에게 환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 상황은 외지인이라고 속이고 바가지 씌우려 한 응보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그래서, 대답은?”
병사를 불러다 곤욕을 치르게 할까 했던 남자는 담담한 환인의 태도에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순순히 대답했다.
=3층까지야. 얼마 전에 3층에서도 이형종이 모습을 감췄다는 소문이 파다해.=
“정신 침해 현상도 사라졌나.”
=그래. 대신 2계층부터는 더 심해졌다고 들었어. 구조물 재생도 1층은 아예 사라졌고 2층, 3층은 이전보다 절반 가까이 느려졌어. 외부에서 찾아온 용병 파티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형종도 다른 미궁보다 더 강하다는 이야기가 드문드문 들려와.”
“…….”
라돔 미궁의 생태를 두 단어로 설명하자면 지저동굴 호수다.
1계층에는 주로 블루 카이만과 씨 스네이크가 나오고 1계층 하부에서는 스케일 워커라는 이족보행 생선이 출몰한다고 남자가 판 지도에 나와 있었다.
라돔 미궁은 4급으로 4계층까지 존재하지만, 그렇게 깊은 곳까지 내려갈 의사는 없다.
2계층 이형종의 종류만 알면 되는데 그걸 알자고 몇십 은화를 지불해서 병사들에게 지도를 사는 것도 아깝고, 그렇다고 2계층까지 내려가서 확인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지도의 규모만 봐서는 외길에 가까운 대형이었으니까.
환인이 침묵하자 셀핀 남자는 저쪽에서 잡담을 나누는 병사를 힐끔거리곤 분수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말했다.
=그럼 됐지? 난 간닼……! 쿨럭콜록콜록!=
또다시 목깃이 잡혀 목이 졸려졌던 남자는 격하게 기침하면서 눈물을 매단 얼굴로 환인을 째려보았다.
“마지막으로, 2계층의 이형종은 어떤 것들이 있지.”
=너무 날로 먹으려 드는 거 아냐? 내가 병사들 불러서 소리치면 좆되는건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하나 확실한 건 너만 좆될거라는 거다. 거기다 그 손과 이 수제 종이를 보면 네 평판은 이미 나락 상태일 텐데, 이때 다툼이 발생하면 병사들이 네 말을 믿을까, 내 말을 믿을까.”
=……하 진짜 어디서 이런…….=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연필처럼 가공한 펜을 꺼내더니 환인이 쥐고 있던 종이에다 휘리릭 글자를 끄적여주었다.
=이게 전부야! 이번에는 잡지 마!=
마지막으로 치와와처럼 으르릉거린 남자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을 때, 환인은 남자가 적어준 이형종 목록을 보다가 품에 집어넣고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미궁에 들어갈 이유는 없어 보이니 잠시 주변을 돌지.”
=네, 주인님.=
「왜 안 들어가? 안에 마음에 드는 이형종이 안 나와서?」
환인의 손을 잡은 노른이 그를 올려다보며 궁금해하자 환인은 작게 웃음을 지어주었다.
“이형종 중에 영혼이 있을법한 것은 두 종류뿐인데, 아무래도 3계층 아래에서 나올듯한 느낌이라.”
마침 눈에 띈 노점에서 두툼한 고기 꼬치를 팔고 있었기에 환인은 한 판을 전부 사서 이실리테와 백려강에게 하나씩 쥐여주고 나머지는 전부 노른에게 넘겨주었다.
매콤달콤한 냄새가 훅 밀려오는 바삭한 고기 꼬치 다발에 노른의 표정이 환해진다.
「우와. 환인, 사랑해!」
바삭과 딱딱의 사이의 절묘하게 구워진 고기 꼬치를 한입 작게 뜯어먹은 백려강이 환인을 따라가며 물었다.
=오라버니. 도시에 심상치 않은 전조가 곳곳에서 보이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 땅의 영주님께 알리실 건가요?=
“미리 알려주면 귀찮아질 여지가 커 보인다. 떠나면서 환연을 통해 슬쩍 편지를 전달해주면 되겠지.”
그나저나 환연의 정령 감시가 없으니 조금 불편하다.
노른의 적의 포착이나 감지는 환연과 다를 바 없는 수준. 방비 쪽으로는 걱정하지 않는다.
‘도시에 아이들이 몇이나 있는지, 어디에 모여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데.’
하지만 도시의 탐색과 단순 자료 조사 면에서는 일행 중 누구도 환연을 못 따라가니…….
호텔로 돌아가서 환연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해소할 생각으로 환인은 미궁 입구 주변을 돌아다니며 영혼 감지에 느껴지는 미궁 주변 영혼을 찾아 하나둘 회수하기 시작했다.
슬슬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에도 미궁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입장하는 자들이 많다면 그걸 지켜보고 치안을 유지하는 병사들도 많다는 이야기.
병사들의 시선을 끌지 않도록 수상해 보이지 않게끔 돌아다니며 영혼 일곱을 수거한 환인은 가까운 찻집으로 이동했다.
미궁 앞이라 직업자를 상대하기 때문인지 건물 내부에 시원한 바람이 맴돌고 있다. 여기에 차가운 과실음료와 냉커피를 주문해 마시니 불볕더위 아래 돌아다니던 열기가 삽시간에 사라진다.
환인은 2층 창가 자리에서 미궁 앞 광장을 내려다보며 수거한 영혼을 다시 불러내어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일곱 영혼은 전부 회색빛으로, 직업자 영혼은 아니지만 미궁 근처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아 미궁에 무언가 미련이 남은 이들.
셀핀족 남자에게 들은 정보와 대조할 생각으로 질문을 던지던 환인은 의외로 셀핀족 남자가 전부 사실만을 이야기해주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면 몇 계층에 어떤 이형종이 나오는 지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알려주지 않은 건 사소한 복수심 때문이겠지.
환인은 남자가 지도에 적어주고 간 이형종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오피디언, 리저드스케일, 씨 터틀, 렛서 서펜트, 웨어 서펜트, 옥토 펄서.
이형종 이름 옆에 수거한 영혼 일곱 중에 생전 미궁 노동자였던 인물이 알려준 계층을 써넣어놓는다.
2계층에는 스케일 워커, 렛서 서펜트가 출몰하고 곳곳에 자리 잡은 호수에서 옥토 펄서가 나타난다.
스케일 워커는 1m도 안되는 키에서 1.5m로 부쩍 커지고 옥토 펄서는 주둥이에 물을 담아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워터젯처럼 쏘는 이형종.
3계층에는 씨 터틀, 렛서 서펜트와 웨어 서펜트가 출몰하는데 곳곳이 물에 잠긴 수중 동굴 형태라 활동이 까다롭다는 평이다.
그리고 대망의 4계층.
여기서 팔 달린 뱀 이형종인 씨 스네이크 오피디언과 겉모습만큼은 사비를 닮은 리저드스케일이 나오는데, 이 둘이 영혼을 가진 이형종이 아닐까 환인은 짐작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수중 동굴을 뚫고 니아마드의 병력이 주둔 중인 4계층까지 가는 건 성가신 일이지.”
도중에 400년간 성역탑의 간섭을 받은 미궁이 어떤 폭주를 일으킬지 모르고.
1계층이나 2계층 정도에 영혼을 지니지 않았을까 싶은 이형종이 나온다면 그녀들의 무기 숙달을 위해 내려갈 의향이 있었는데 4계층이라, 이쪽이 사절이다.
“땀도 식었으니 선원 출신 영혼들을 찾으러 가볼까.”
=네, 주인님.=
「아. 환인, 나 고기 꼬치 더 먹고 싶어.」
“노른이 먹고 싶다면 사줘야지.”
어른 여자 팔뚝 길이만 한 검붉은 소스의 고기 꼬치를 24개나 사서 반씩 노른과 백려강에게 안겨주었다.
노른은 세상 행복한 얼굴로 꼬치가 가득 든 봉투를 껴안고 냠냠 먹는데 백려강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환인이 안겨준 고기 꼬치 봉투에 당황하기만 한다.
“부끄러워하지 마라. 먹고 싶다면 먹어야지.”
=네엣….=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식탐이 들통난 게 부끄러웠지 백려강의 얼굴색은 좀처럼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새콤매콤한 냄새를 풍기는 고기 꼬치를 한 입 먹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환인은 행복해하는 노른과 백려강을 바라보다 이실리테에게 왼팔을 내밀어 팔짱을 끼게 시켰다.
그러자 이실리테의 얼굴에도 수줍지만 행복해하는 감정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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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2시간 휴식이 있었다곤 해도 8시간 차 이동은 진짜 에바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