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4 노천광산 도시 두르데인
오랜만에 넓은 욕탕에서 여자친구들과 혼욕을 즐기고 나온 환인은 나른한 감각을 만끽하며 소파에 몸을 뉘었다.
안식처의 욕실도 작은 편은 아니지만 여자친구들 모두 함께 들어가는 것은 무리.
뜨거운 물 속에서 찹찹한 몸을 지닌 백려강을 안고 환연과 노른의 입술 봉사를 받았더니 온몸이 노곤하다.
=주인님, 아이스 아메리카노예요.=
“고맙다.”
이실리테가 쟁반에 담아 가져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벨벳으로 마감한 최고급 의자에 몸을 파묻으니 극락이 따로 없는 기분이다.
아신위가 되면 이런 기분도 못 느끼겠지.
환인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아신亞神이란 신에 버금가는 존재. 아신이 된다면 희노애락과 칠정오욕에서 멀어지며 기껏 알게 된 감정을 모두 잃고 예전의 사이코패스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이라는 존재는 싸패나 다를 바 없겠군.’
인간의 감정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 못하는…… 아니, 받아들이지 않는 존재들.
그게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뭘까.
‘자애신은 조금 다른 듯하지만…….’
「휘유~.」
30cm 사이즈의 환연이 풍욕을 한답시고 탁자 위에서 바람 정령을 불러놓고는 알몸으로 제 몸을 수건으로 토닥토닥 때린다.
바람 정령이 불어주는 바람을 맞으며 그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참 목욕탕의 50대 아저씨 같다.
「응?」
아·아를 조금씩 마시며 차가운 느낌을 즐기던 환인은 그녀가 풍욕을 하다 말고 의아하다는 듯이 한쪽을 돌아보는 모습에 물었다.
“감지에 무언가 걸렸나.”
「영수가 중급 거리 사창가에서 싸우고 있는데?」
“…….”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는 그의 시선에 환연은 휘릭— 물로 옷을 만들어내 입고서는 그의 아·아를 뺏어 마시며 설명해주었다.
「아, 시원해. 상대가 복면강도 꼴을 하고 있는데 철영수가 먼저 싸움을 벌인 게 아니라 상대가 싸움을 걸어왔나 봐. 응, 이실리테가 쥐어패면서 가르친 효과가 나온다. 그럭저럭 싸우네.」
처음 간 창관에서 복면강도의 공격받을 일이 뭐가 있을까.
이 세계에도 역사는 베갯머리에서 이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관은 정보 조직이 앉아서 소문을 모으기에 무척 좋은 수단이다.
남자들이 창녀를 안고 현자 타임에 들어가면 입의 자물쇠가 헐거워지며 조금만 간지럽혀주면 중요한 정보를 술술 흘릴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환연에게 그 창관의 상황을 전해 들은 환인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차원 관리국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시설인가. 둘은 우연히 그곳에 들어가서 눈에 띈 거군.”
차원 방랑자인데다 패시지에서 나와본 적 없는 김철수와 김영수다. 오늘 창관 방문 또한 계획 일부가 아니라 우연히 발생한 일.
그럼에도 김철수, 김영수를 복면인이 알고 있다면 이 결론밖에 안 나온다.
그곳의 본래 목적은 창관을 운영하며 차원 방랑자의 정보를 수집하는 거겠지.
「그놈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살다 보면 운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에게는 행운일 수도 있는 일.
환인은 자신의 아·아를 다 마셔버린 환연을 한 차례 토닥여주고 지시를 내렸다.
“환연, 창관에 거동 수상자가 없는지 지켜보고 지역을 이탈하려는 자가 있다면 정령을 붙여서 추적해라. 그리고 너희는 가서 창관의 매상 기록부와 각종 서철을 수거해오고.”
드로거스 왕가가 현 시국 패시지에서 멀어지려 한다면 관리국이 운영하는 창관을 내켜 하지 않을 게 뻔한 일.
현 상황의 고착과 드로거스, 결명자의 사이를 더더욱 벌려놓는 데는 창관 운영기록만큼 좋은 게 없을 것이다.
「어? 환인. 철영수가 복면 놈들 데리고 오려나 본데?」
“…….”
의도는 알겠지만 취조의 의미가 없다.
창관의 목적과 그곳에서 근무하는 인물들의 지위나 신분을 생각하면 관리국의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을 리 없으니까.
복면인들이 두 김씨를 노린 것도 김철수와 김영수를 사로잡아 관리국에 보고를 올려 나름대로 출세의 발판으로 삼을 생각이었던 거겠지.
어쨌든 자리에서 일어난 환인은 가벼운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었고, 그 직후 객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김철수의 헐떡이는 목소리가 함께 흘러들어왔다.
[환, 환인 형님. 관리국 끄나풀 두 놈을…… 헥, 잡았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라.”
이모렐이 문으로 다가가 열어주자 피투성이 복면인 둘을 들쳐멘 김철수와 김영수가 헉헉거리며 거실로 들어온다.
터덩-
복면인을 바닥에 던지듯이 내려놓자 확 퍼지는 피 냄새에 방에서 여자들이 나오며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영이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김철수에게 물었다.
=너희 사창가 놀러 간 거 아니었어?=
“끄응. 우연히 들어간 곳이 차원 관리국 비밀 기지였나 보더라고요. 들어가니까 이놈들이 나와서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그냥 돌아왔어요.”
=이상한 소리?=
“자기네 이야기를 들으라는데 뭐 뻔하죠. 형님 행동을 정탐하라거나 배신하라거나 그런 게 아니겠어요?”
=호오. 그래서 안 듣고 그냥 돌아왔다는 거야? 착하네~.=
씨익 웃으면서 둘을 칭찬한 아영은 복면인의 복면을 벗겨보곤 고개를 갸우뚱했다.
=흐음. 관리국 중요 인사 목록에 없는 얼굴인데.=
“아영. 죽지 않게 치료해놓고 능력을 못 쓰게 한 뒤 묶어놔라. 내일 행정관이나 영주성에 던져놓을 테니까.”
“엇. 심문 안하시고요?”
그냥 갖다 놓는다는 이야기에 김철수가 으잉? 하고 눈을 크게 뜬다.
“그럴 의미가 없다고 본다만. 신경 쓰인다면 깨워서 몇 가지 물어보던가.”
“아~ 힘들게 괜히 가져왔네…….”
생각해보니 주도도 아니고 바깥 도시의 말단 요원 같은데 중요한 걸 알고 있을 리가 없지.
김철수가 쩝, 하고 기절한 복면인을 노려보니 환인이 둘의 어깨를 작게 두드렸다.
“창관의 기록 장부와 저 둘이면 관리국의 불법 활동 증거로 삼을 만하겠지. 잘 데려왔다.”
“어? 아, 넵.”
아영이 복면인들을 치료하는 것을 구경하던 김철수는 잠시 후 영령군이 서류 다발과 장부 여러 개를 갖고 복귀하는 장면에 형님이 이미 손을 써놓은 상태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쓱해졌다.
그 후 잡아 온 복면남들을 아영이 고문한 결과, 환인의 예상대로 복면남들은 차원 관리국의 외부 자원(방랑자) 수급 업무를 담당한 하급 요원이었다.
장부를 눈앞에서 흔들며 손톱 아래를 쑤시고 관절에 단검을 박아넣어 재생과 고문을 동시에 진행하니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백하듯 알고 있던 것을 술술 불었던 것.
주도의 관리국에서 탈주한 김철수와 김영수에 대한 행동 지침과 인상착의가 전달되어있었는데 봉인 지정 술법진이 있는 방도 있겠다, 출세와 승진욕에 함정을 파서 둘을 잡으려했던 거라고.
“…….”
“…….”
그것을 들은 김철수와 김영수는 얼굴이 벌게졌다.
자신들을 회유해서 간첩이나 첩자로 재활용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냥 잡으려 들었던 거라니…….
그 외에는 아는 것도 없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은, 흔한 말단 조직원 그 자체여서 둘의 쪽팔림은 두 배였다.
“국장 그 시발련 진짜 용서 못한다…….”
“잡히면 시발 절대 가만 안놔둬야지…….”
쪽팔림에 그렇게 다짐하는 김철수, 김영수였다.
그런 일이 있고 다음 날 아침.
각자 할 일과 차원 방랑자 관리국이 운영하는 창관의 정보, 증거를 제출하기 위해 여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호텔 지배인을 통해 뜻밖의 방문 요청을 받았다
=영주성의 집사장님께서 직접 방문하시어 접견을 요청하셨습니다…….=
=집사장님이요? 그런 분이 왜 우릴?=
=그것이, 저희도 잘…….=
문을 열고 나간 아영의 천연덕스러운 반문에 지배인도 그것이 궁금했다.
예약 없이는 내어주지 않는 최고급 객실을 이들에게 내어준 것은 상급 관문에서 근무 중인 사촌이 보낸 금속 막대 때문이었다.
두르데인 거주자들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외부 방문자, 그것도 중요해 보이는 인사들에게만 요청 시에 건네주는 금속 막대.
그걸 가져왔기에 귀빈용 객실을 내어준 것인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영주성의 집사장이 찾아오다니.
집사장에게 조심스럽게 용무를 물어볼까 했지만, 집사장의 권력은 자신 같은 호텔 지배인의 목은 간단히 떨어트릴 수 있는 데다 집사장의 무표정이 너무 무서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환인은 아는 게 없어 보이는 지배인을 보곤 여자친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실리테와 안느, 노른은 날 따라오고 유르파, 백려강, 아영은 각자 할 일을 해라. 이모렐은 유르파를 따라다니고.”
그리고 영령군 여섯을 소환해 유르파, 백려강, 아영에게 각각 둘씩 붙여준 환인은 코트를 걸치며 지배인에게 말했다.
“집사장이 계신 곳으로 안내 부탁합니다.”
=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실리테? 안느? 지배인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들었더라? 뭔가 유명한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자연스럽게 긴장한 지배인의 안내에 따라 호텔에 마련된 응접실로 이동한 환인은 작은 키에 근육이 드러날 정도로 핏이 꽉 끼는 정장의 프라우드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일행이 화려하게 꾸며진 응접실에 들어서자 의자에 차분히 앉아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허릴 숙인다.
그의 앞으로 자리를 옮긴 환인은 그가 허리를 드는 것을 보고 물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흠잡을 데 없는 메리아놀 억양으로 말을 걸자 남자가 차분하고 정중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했다.
=환인 성제님을 뵙습니다. 저는 두르데인의 영주이신 하락 토하말 두르데인님을 섬기는 골터입니다. 미흡하나 영주성의 집사장 직을 맡고 있습니다.=
“……변장에 제법 자신이 있었는데 용케 알아차리셨군요.”
=알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알게 되는 것이 세상의 섭리이며 모른다면 알려 하지 않은 것이다. ……영주 어른께서 늘 입에 달고 사시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환인입니다. 성가신 일을 피하고자 이렇게 변장 중입니다.”
변장용 마도구 팔찌를 풀자 환인의 녹색의 머리카락이 검은색으로 물들고 뾰족하던 귀도 둥그스름하게 변한다.
=……!!=
지배인은 눈앞에서 변해가는 남자의 모습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거칠어지려는 숨소리를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설마, 설마 영도의 성제였다니……!
이제야 기억난다. 검희 이실리테와 은빛 철벽의 안느. 성제의 양팔이자 아끼는 애인.
지배인은 검은 머리의 미남자를 힐끔거리며 자신의 평소 행실을 마음 속 깊이 칭찬했다.
호텔의 출입문을 넘는 사람은 모두가 고객이라는 좌우명 아래 친절 봉사를 해왔는데, 만약 상대 신분에 따라 서비스를 차별하는 라이벌 호텔의 그 녀석이었다면…….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나누려는 두 거물의 모습에 지배인은 슬금슬금 문으로 뒷걸음질 쳤다.
옆에 있다가 이상한 거라도 주워듣는 날에는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일.
마악 응접실을 나가려던 지배인은 턱, 하고 어깨에 올라오는 손길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진땀을 줄줄 흘리며 옆을 돌아보자 은빛 철벽의 안느 영혼 기사가 웃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배인 씨. 여기서 보고 들은 거 전~부 비밀인 거, 알지?=
=예, 예. 입에 단추 채우고 죽는 날까지 비밀로 하겠습니다.=
=응. 눈치 좋은걸. 이 근처에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부탁할게.=
=옛.=
쥐어짜내듯 대답한 지배인은 탁, 문을 닫고 나간 뒤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컨시어지와 벨보이들을 불러다가 귀빈 응접실로 누구도 접근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조치를 취해놓자 뒤늦게 심장이 벌렁이면서 식은땀을 쏟아낸다.
50년 평생 지배인 생활을 하면서 오늘만큼 놀랐던 적은 처음인 지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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